츠츠미다 시온/현대

이야시온 / 소망이 담긴

w.갈매 2017. 5. 17. 22:08

2016.02.10





 “발렌타인데이.”

 “응?”

 “초콜릿 안 줄 거야?”


 누구한테? 이야츠다한테. 

 악보를 정돈하는 손이 뚝 멈춘다. 책상 위에 고개를 올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시로키와 눈을 마주했다. 발렌타인데이라. 요즘 세대 층에서 모를 리가 없는 달콤한 기념일은 곧 앞을 당기고 있었다. 안 챙겨줄 거야? 덤덤하게 말하는 시로키의 뽀얀 뺨을 시오나가 살짝 꼬집었다. 챙겨줄 리가 없잖아. 


 “애초에 내가 왜 시라누이한테 챙겨줘야 하는 건데?”

 “챙겨줄 줄 알았어, 시오나는.”

 “아냐.. 의리 초콜릿 같은 건 한 번 챙겨주면 또 계속 챙겨줘야 하니까.”

 “거짓말.”


 의리 초콜릿이 아니잖아. 시라누이 시로키는 가끔 사람의 마음을 콕콕 찌르는 구석이 있다. 악보를 담은 파일을 그녀의 얼굴에 꾹꾹 눌렀다. 작은 얼굴이 끙끙거리며 뒤로 물러나자 시오나는 급하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동생인 미우도 연습이 없는 날이라 연습실엔 시로키와 시오나 둘 뿐. 계속 시시한 이야기만 나누면 얼른 집에 돌아가는 게 좋다. 구석에 처박혀 있던 그녀의 가방을 건네주었다.


 “슬슬 돌아가자. 시로키도 오늘 연습 없지?”

 “.....하지만 시온..”

 “아니야 시로키.”

 “...”

 “돌아갈까?”


 잔잔한 그녀의 표정은 현재로 와선 거의 읽기 버거워졌다. 옛날엔 어떤 얼굴을 했더라, 그래도 역시 웃는 건 똑같았는데. 지금은 얼굴이 더 풀어졌기는 했지만. 아, 그땐 나도 어땠더라. 흐릿한 과거를 떠올리며 제 가방을 품에 안는 시로키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아니라고 부정해도 과거에 얽매이는 건 시오나 자신. 시로키가 아니었다. 말수가 적어진 그녀의 뒤를 걸으며 테이블 위에 올려 져 있던 달력을 확인했다.

 아, 정말. 곧 이구나 초콜릿데이. 달콤쌉싸름한 냄새를 가늠해보려 코를 킁킁거렸지만 끝에 맏아져 오는 건 탁한 연습실의 나무냄새 뿐이었다.


 지금 전해져도 알아차려주지 못할 달디 단 초콜릿은, 의미가 없는 거잖아. 그렇지?



-



 ‘초콜릿 안 줄 거야?’

 ‘이야츠다한테.’


 <초콜릿 할인 특가 30%>


 “.....”


  분명 주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말했었는데. 시로키와 헤어지고 난 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시내로 돌아간 것이 잘못이었다. 곧 다가오는 달콤한 기념일을 위해 상가들은 교묘한 술법으로 여자들의 마음을 자극하고 있었다. ‘당신의 마음을 뜨거운 초콜릿으로 전해보세요!’ 예쁜 문구와 함께 초콜릿들이 잔뜩 나열되어 있었다. 

 한참동안 까만 초콜릿 봉지들에 시선을 떼지 못하던 시오나는 아차 싶어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마음을 고쳤다. 아니, 줄 사람 없으니까 진짜! 흐트러진 가방을 바로 메고 어쩐지 무거워진 걸음을 억지로 돌렸다. 달콤한 초콜릿의 향이 시오나의 코를 자극했다. 늘 있던 연습실 냄새와, 자주 쓰던 향수나 로션과는 전혀 다른 매개체의 냄새. 나서려던 걸음을 뚝 멈춘다. 슬쩍 나열된 초콜릿 상자에 시선을 돌린다.


 ‘챙겨줄 줄 알았어, 시오나는.’


 의외라는 듯 두 눈동자를 반짝이며 말했던 시로키의 목소리가 둥둥 떠다녔다.


 ‘의리 초콜릿 같은 건 한 번 챙겨주면 또 계속 챙겨줘야 하니까.’


 애써 태연한 척 하려는 시오나의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시로키는 순식간에 그녀의 마음을 꿰뚫었다, 거짓말. 단호하게 한 마디만 말하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기에는 충분했다. 


 “....”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빨간 지갑에 천천히 손을 뻗으며 시오나가 이를 악물었다. 자연스레 내밀게 되는 손은 깊은 한숨과 함께 지갑 안을 천천히 열었다.





 결국 눈 딱 감고 질러버렸다. 초록색 상자로 포장된 자그마한 초콜릿 하나. 다양한 여자들은 서로 직접 만든 초콜릿을 전해주겠다며 재료를 사기 급급했지만 시오나는 미리 만들어져 포장된 초콜릿을 택했다. 직접 만들어서 줬다고 생각해봐. 당황한 얼굴의 이야츠다가 벌써 눈앞에 선했다. 픽 웃으며 초콜릿을 대충 가방 안에 넣어 두곤 시오나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따라 늦었네. 라며 그녀를 맞이하는 동생 미우에게도 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줄 초콜릿을 샀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졸이며 구석에 박혀 초콜릿을 꺼냈다. 예쁜 모양으로 포장되지도, 비싸지도 않는 단순한 모양의 초콜릿에 불과했지만 발렌타인데이에 줄 초콜렛이라고만 생각해도 단순한 초콜렛의 의미는 변한다.


 “...좋아해줄 리는 없겠지만.”


 시로키에게도 말했 듯이 이것은 단순한 의리 초콜릿에 불과하다. 연정이 담아있는 초콜릿이라고 해도 그건 상대방에게 닿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야. 우수한 사람으로서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이렇게 바보짓을 하고야 만다. 손 안에 감기는 초콜릿을 눈에 담으며 시오나는 떨떠름하게 미소 지었다.



 바라면서도 바라지 않았던 날이 왔다. 만만의 준비를 한 시오나는 고이 간직했던 초콜릿을 들고 집을 나섰다. 이상하게 들떠 보이는 누나의 얼굴을 본 미우가 무슨 좋은 일 있었냐며 그녀에게 물었지만 차마 좋아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줄 수 있는 게 들떴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아닌 척 대꾸했다.

 겨우 학교에 도착하면 아니나 다를까, 발렌타인데이에 대비라도 했는지 여럿 아이들의 품엔 초콜렛들이 안겨져 있었다. 여학생에게 초콜렛을 받았는지 헤벌쭉 웃으며 초콜렛을 들고 있는 남자와 아직 고민이 많은 건지 제 친구들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선 예쁜 상자를 품에 안고 있는 여학생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먼 방관자 입장이 아닌 함께하는 입장으로 시오나가 서 있었다. 당당하게 보여주진 못했지만 그녀의 가방 안에도 자리 잡고 있는 싸구려 초콜릿은 분명 자신의 것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준비한 것. 소중하게 끌어안고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중요한 건, 이걸 어떻게 그에게 주냐는 것이다.


 당당하게 건네서 준다거나 하는 용기는 절대 낼 수 없다. 다른 여학생들처럼 고백하는 꼴의 모습이 되지 않겠는가.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며 그 상황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래도 그렇게 주지 않는 한 초콜릿을 두기는 힘들 텐데. 그의 자리에 몰래 두고 나가거나 하는 방법은 다른 제 3자에게 들킬 염려가 컸다. 그런 상황은 절대코 되기 바라지 않던 시오나는 입술을 꾹 깨물며 가방 안에 든 초콜릿을 꺼내들었다.


  결국 할 수 있는 건 건네줄 그와 가장 가까운 관계에 놓여져 있는 시라누이 시로키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조용히 시끌시끌한 교실 밖을 살그머니 빠져나와 초콜릿이 보이지 않도록 품에 감추었다. 시로키와 이야츠다가 같은 반이라는 게 마음이 조금 걸렸지만 조용히 그녀에게 의리 초콜릿이라고 말하며 건네는 것이 답이다. 살금살금 그녀의 반 앞으로 다가가 빼꼼 교실 너머의 창문으로 시로키의 뒷모습을 찾았다.  


 “일단 조용히 시로키를 부른 다음에....”

 “다음에는 뭐야-입니다?”

 “그야 당연히 초콜릿을 건.... 히익?!”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비명을 꾹 누르며 후다닥 떨어졌다. 바로 시오나의 뒤에 자리 잡고 있던 건 그녀가 피하면서도 만나고 싶어 했던 이야츠다 본인이었다. 그의 시선이 한 곳에 향해있다는 걸 알아채곤 품 안에 안고 있던 초콜릿을 냉큼 뒤로 숨겼다. 하지만 이미 발견한 초콜릿은 그의 시야 안에 숨길 수가 없었다.


 “시, 시, 시라누이!!! 아, 아, 안..”

 “안녕이야-입니다. 것보다 야마다씨, 그거 초콜릿 아니야?”

 “아? 어? 착각 아냐?”

 “아무리 봐도 초콜릿 같던데-입니다.”


 아, 이런 이건 완벽하게 들켜버린 거다. 우수함을 전혀 못 발휘했잖아! 뻘뻘 땀을 흘리며 현 상황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지 똑똑한 머리로 굴려보았지만 생각나지 않는다! 위기일발 아니냐 우수한 야마다 시오나!


 “누구한테 주려고?-입니다.”

 “아니, 그....게 말이지. 그게..”


 길게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배배 꼬며 그의 눈치를 보았다. 어쩌지 어쩌지 어쩌면 좋은 거지. 혼란스러운 머리를 아무리 굴려보았자 좋게 나오는 수는 없었다. 이 틈을 타 시로키가 나와 상황을 잘 무마시켜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시로키의 시자도 보이지 않았기에 시오나는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어떻게 말해, 발렌타인 기념으로 너에게 초콜릿을 주려고 왔다! 사실 난 아주 오랜 시간 전부터 널 알고 있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너만 보고 왔었다. 라는 이야기를 어떻게 말하냐고. 본인이 생각해도 한숨만 나오는 수많은 대사들에 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절대 말 못하지! 어떻게 말하냐고!


 “야마다?”

 “.....시..”

 “시?”


 “시로키에게 주려고!!!”


 아, 망했다. 속으로 눈물을 쏟다 못해 오열을 했다. 물론 그 모습을 우수한 현 모습으로 드러낼 수는 없기에 쓰린 속을 끌어안으며 당당한 척 자신을 뽐냈다. 자랑하듯이 뒤에 감추고 있던 초콜릿을 흐뭇한 얼굴로 내밀었다.


 “어때? 이름 하여 우정의 초콜릿이지!”

 “우정의 초콜릿..입니다?”

 “그래! 내가 가장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주는 상이나 마찬가지지! 그런데 말야, 시로키가 안 보이더라고.”

 “아~ 아까 수영복을 놓고왔다고 해서 가지러 갔어-입니다.”


 시로키이이이 왜 중요한 순간에 없는 거야아아앗..!! 죄 없는 그녀의 이름을 외치며 뻔뻔스런 웃음을 흘렸다. 최대한 그녀가 없음을 아쉬워하는 얼굴을 하며 손에 들고 있던 초콜릿을 이야츠다를 향해 내밀었다. 멀뚱멀뚱 쳐다보는 눈빛이 꼭 그녀를 닮았다. 절로 풀어지는 얼굴을 감추기 위해 들고 있던 초콜릿을 그의 손에 억지로 쥐어주었다.


 “어쩔 수 없네~!! 이 우수한 친구를 둔 시로키에게 초콜릿을 건네주려고 했는데 말이야. 하는 수 없지. 시라누이가 대신 전해줄 수 있지? 어차피 종일 같이 있잖아.”

 “..주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입니다.”

 “응, 응! 당연히 그래야지! ...아, 가, 같이 먹어도 딱히 상관은 없고!”


 혹시 초콜릿 좋아하면 시로키랑 같이 먹던가! 이미 시뻘개진 얼굴은 주체하기 힘들었다. 그, 그럼 이만! 버벅버벅 튀어나오는 목소리를 꾹 눌러 참으며 그에게 초콜릿을 건네준 후 뒤돌아섰다. 얼굴 안 보였지? 달아오른 뺨을 부여잡으며 그가 부르기도 전에 허겁지겁 복도를 뛰어나갔다. 전해줬어, 전해줬다고! 급한 마음과도 잠시 전해줬다는 기쁨에 가득 차오른 지금을 주체할 수 없었다.


 제대로 그의 것이라 말도 하지 못하고 의미가 담지 못한 싸구려 초콜릿은 한 입 먹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전해줬다. 해냈어 야마다 시오나! ...

.......... 츠츠미다 시온.


 뚝 걸음을 멈추며 벽에 걸려 있는 거울 너머로 제 모습을 살폈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 하며 얇은 골격에 흰 피부, 여성용 교복은 영락없이 제 자신을 여자라고 뽐내고 있었다. 초콜릿을 챙겨준 것 또한 얼마나 여성스러운가. 여자다운 자신을 보며 자랑스레 우수하다고 생각하던 본인을 떠올리며 시오나가 짧은 웃음을 흘렸다. 

 이런 내 자신이 언제 다시 남자가 될지, 언제 ‘그’로 될지 모르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전해줬어.”


 ‘그’가 아니라 내가. 그 때의 시온이 아닌 현재의 시오나가 그를 위해 무언가를 전해줬어.

 조심스레 두 손을 포개 쥐며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을 마음에 품었다. 부디, 부디 그가 전부를 기억하지 않아도 좋아. 아무것도 기억해내지 못해도 좋아. 결국 과거는 과거고 현재는 현재니까. 그러니까 단 하나만 나를 위해 부탁을 들어주세요 시온.


 ‘분명 네가 우수한 남자였다면’


 이 현재는 나를 위해 넘겨줘. 거울 너머로 보이는 슬픔어린 그의 시선이 닿았다. 나는, 내가 시온이었다는 이유로 그를 좋아하고 싶지 않아.


 나는 시오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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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일 선..물.. (드러눕는다)

늦어서 미안해.. 컴퓨터를 이제야 만져서.. 흙흘 이야츠다 사랑한닫..닫..(찡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