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호원/아심여칭

이하얀 로그 정리

w.갈매 2017. 5. 17. 22:16

2017.01.28




 1.

 "호원씨가 범인이였군요..."
 "히익"

 이런, 내 입방정 제기랄.. 급하게 호원이 입을 막아 보지만 술기운이 남아도는 입 너머로는 이미 뱉어낸 말과 당황함에 차오르는 딸꾹질 뿐이다. 싱긋싱긋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 네 개의 가호선이 그려졌다. 붉은 빛이 감도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던 하얀이 호원을 보며 방긋 웃었다. 뒤에서 커다란 오오라가 느껴졌다. 호원은 다시 딸꾹질를 했다.

 히끅

 "제가 그렇게 말리고 이르고 다녔는데..."

 빠직
 툭 끊어지는 소리. 서늘한 바람소리. 입안에 감도는 맥주의 달디 쓴 맛.
 호원은 다시 한 번 더 딸꾹질을 반복했다.

 "아니 뭐 그럴 수도 있죠.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생기고 저런 일도 생기고."

 네, 그리고 내가 죽고 난 다음 다시 죽는 일도 생기죠.
 다시 한 번 존댓말이 튀어나올 뻔 한 걸 참아내며 호원은 입술을 손가락으로 꾹꾹 밀어 넣었다. -여성의 무서움은 이것이다. 날카로운 눈초리도 화내는 언성도 아니다. 분위기만으로도 살얼음이 될 무시막지한 포스. 하얀이 그랬다. 차가운 기운이 돌아도 땀이 뻘뻘 흘러 나왔다.
 호원은 마른 침을 삼키며 간신히 붙여 놓은 손가락을 떼었다. 살얼음마냥 붙어든 입술을 떼어내기엔 오랜 시간이 걸렸다.



2.

 이곳에 있는 나 자신이 점점 이상하게 변화되어 간다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자신밖에 모르는 겁쟁이 차호원이 조금씩 남을 걱정할 수 있게 되는 마음을 가지고
 어색하게 웃던 미소가 어느새 정말로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
 아아, 나는 정말로 변해가고 있던 거구나.
 그리고 이제 그건 멈춰 버렸구나. 시계 초침이 거꾸로 돌아가더니 이내 뚝 한 지점에 멈췄다. 두 아이가 횡단보도에 서있던 그 순간이었다. 호원의 시간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슬쩍 두 번째 손가락 끝으로 입 꼬리를 꾹 눌러다 보았다. 어색하게 웃던 예전의 미소도, 호탕하게 웃던 현재의 미소도 이제는 없다. 잊어버렸다. 방법을 알지 못하게 됐다.
 못난 차호원은 더 못난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져 까만 세상 속에서 주변을 탐색할 새도 없이 호원은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어느 것도 감정 소비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그 아이의 피가 묻은 칼날로 쑤겅대며 심장을 꿰뚫었다.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멈췄다. 입 꼬리를 올려볼 노력은 하지 않았다. 모래시계의 알맹이들은 허공에서 정지해버렸다.
 
 그런 빈 알갱이가 된 상태에서 그녀랑 대화를 나누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녀 또한 생사구에 오게 된 피해자였고, 호원만큼이나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그보다 한 살이나 어린 학생이었다. 하지만 이 강인한 여성은 호원보다 용기가 컸으며, 늘 자신만만했고 자기 의지가 확고한 멋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벼이 생각했다. 적어도 자신보단 괜찮을 거라 멋대로 생각했다.
 
 맑은 눈물방울을 흘리며 훌쩍이는 하얀을 보기 전까진, 말이다.
 어떻게보면 호원 씨가 저보다 음악을 더 잘 아시는 것 같아요. 그가 건네준 손수건으로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 보이며 그녀는 밝게 미소를 지었다. 울고 있던 전 얼굴보다 훨씬 더 말끔하고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글쎄, 한참은 부족한 아마추어지만. 조곤조곤 말을 건네며 호원은 웃었다.
 ....잠깐, 웃었다고? 어느새 입가에 살짝이나마 올라간 입 꼬리를 매만졌다. 그렇게 웃어보려 해도 어색하거나 다물어지던 모난 입이 이렇게나 가벼이 올라가버린다. ..호원은 잠깐 충격을 받았다.

 "고마워요. 그렇게 얘기해줘서."

 하얀은 정말로 감사함을 느낀 모양이었다. 밝게 웃는 얼굴이 어여뻤다.
 ...결국 이렇게 쉬웠던 걸. 힘겹게 미소 지으며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 전처럼 밝은 얼굴은 아니겠지만서도, 이게 당신과 나에게 힘이 될 수만 있다면야.
 나야말로.






하얀이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 마음아팠다 ㅠㅠ

로그 더 이어볼걸 아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