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호원/현대
짝사랑
w.갈매
2017. 5. 17. 22:21
2017.01.30
호원이 자초해서 벌여져 버린 일이였다. 그건 아주 순식간에 일어났다.
"차호원 씨, 차트 뽑았어요?! 빨리!"
"아- 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가 병원에 들어와 응급실로 배정 받은지 약 2주가 지났다. 이곳은 하루하루가 또다른 전장이었다. 하루에 수십 명 목숨이 위태로운 환자들이 수술실과 중환자실을 오갔고 의사와 간호사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그들의 뒤를 따랐다. 수술 하나의 시간만 해도 몇 시간은 기본인데다 의사의 케어까지 도맡아야 하는 간호사들은 고된 노동력을 쏟고 있었다. 여기로 배정받고 하루에 몇 시간을 자보는 것이 꿈이 되어버렸다. 짬짬하게 몇 분씩 자는 것조차 골든타임을 방해하는 아까운 시간. 삼교대를 밥먹듯이 해대 낮밤을 구별하기도 어려웠다. 호원은 마음만 같으면 당장 기절하고 싶은 욕망이 굴뚝같았다.
...그치만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혼자 좋다고 기절할 수가 있을까. 환자들의 차트를 안고 달려가던 호원은 주변에 널린 환자들을 내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평소의 2~3배는 더 많아진 환자들의 숫자. 게다가 모두가 같은 병을 앓고 응급실에 실려왔다. 그들은 사고로 피가 난다거나 큰 부상을 입었다기 보다는 조금 다른 부류의 환자들이었다. 메르스? AI 독감?
"우웨에에엑!"
"화, 환자분! 여기 통에다 뱉으세요."
"아아악!"
"아아악!"
"진정하세요! 바닥에서 이러시면 다른 분들이 지나가기 힘들어집니다!"
'..우와아...'
꽃을 뱉는 중병이라니, 들어본 적이라도 있어야지.
하나하키 병. 일본에서부터 전염이 돌기 시작한 병은 꽤나 커다란 전염과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치사율을 가지고 만들어졌다. 증상은 간단하다. 어떤 특정한 무언가를 떠올리게 되면 입밖으로 수많은 꽃을 토해낸다. 꽃의 종류는 각각 다르다. 매우 흔한 꽃과 매우 희귀한 꽃으로 다양하게 나누어져 있다. 또 어떤 건 뱉기 쉬운 꽃입과 목구멍에서부터 걸려 나오지 못해 질식할 위험성에 있는 꽃들도 많다. ...식물원 흥하겠다. 처음엔 그러려니 생각했다. 안일한 일이었지만.
처음엔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 생각했던 하나하키 병은 점점 더 최악으로 치닫아 이내 아시아와 유럽을 괴롭히고 있는 병종이 되어버렸다. 한국의 수많은 사람들도 감염되어 난리가 났다. 치사율? 운이 좋은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그저 병만 가진 채 꽃만 토해내며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호원처럼 운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게 문제다.
"여기 차트 가져왔습니다."
사람들 사이를 피해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호원은 급하게 담당 의사에게 차트를 건넸다. 그는 심각한 얼굴로 차트를 이리저리 훑어보다 이내 꾹 입술을 깨물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조급한 얼굴로 차트를 내려둔 의사가 입을 열었다.
"가족 관계자 분들은 연락이 됐나요 호원 씨?"
"네. 지금 오고 계신다고 연락 왔습니다. 말씀하신 수술 동의서는 임시적으로 받아뒀고 수술방도 4호실 열어놨습니다."
호원의 말에 의사의 얼굴이 조금 누그러졌다. 수고했어요. 짤막하게 말을 던진 남자가 곧바로 고개를 돌려 환자에게 시선을 두었다.
"도착하시면 바로 진행시켜두면 되겠네요. 이주연씨? 늦지 않게 당장...."
"난 안 할 거라고 했잖아요!!!!!!"
"난 안 할 거라고 했잖아요!!!!!!"
그녀가 갈라진 목소리로 언성을 높여 말했다. 호원과 의사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인상을 찌푸려야만 했다. 정확힌 말을 포함해 현재 그 모습 자체였지만. 침대 위는 꽤 참담한 현장이었다. 두 간호사가 발버둥치는 여성의 몸을 겨우 잡아 억제시키고 있었으며, 그녀가 앉아 누워있던 침대 시트는 온갖 핏덩이로 섞인 선인장 조각들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었다. 갈라진 목소리의 주 원인이었다. 그녀가 한 마디 한 마디를 꺼낼 때마다 입밖으로 선인장 가시들과 핏덩이가 꿀렁대며 튀어나왔다. 아무리 봐도 위험 가득한 순간이다.
호원이 말한 운이 좋지 않다는 경우가 이것이다. 일반 꽃들과는 달리 독성이 든 꽃이나 가시가 달린 꽃으로 하나하키가 걸려버린 환자들은 생명에 위협이 가해진다. 꽃을 뱉으면 뱉어낼수록 생명을 깎아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참혹한 병이었다. 이 위험성을 알게 되자마자 전 세계적으로 연구를 시작했고, 유행이 발발해지자 겨우 치료 수술법을 구해냈다. 하나는 병이 퍼지는 증세를 더디게 만들어주는 약과 나머지 하나는 하나하키 병을 없애는 수술이었다. 심장부근 바로 옆에 하나하키 바이러스의 씨앗이 안치 되어 몸 위로 자라나 목구멍까지 연결돼 꽃들이 퍼져나간다. 이럴 경우엔 씨앗 자체를 파괴해버리면 금방 완치될 수 있다고 연구적 결과가 나왔다.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마지막 해결방법인 셈이었다. 수술법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닌지라 누구나 완치될 수 있는 간단한 해결책의 병. 하나하키
'...하지만..'
병에 걸린 사람들은 병을 치료하지 않는다.
그게 문제라는 것이다. 결국 치료 방치 끝에 사람들은 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어간다.
"난 안 받아!!!!! 당신들이 뭔데 치료하네 뭐래야!! 꺼져!!!"
그들은 거부한다.
이유는 너무나 간단해서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하나하키 병이 걸리는 주 원인은 누군가를 짝사랑하게 되는 마음이 생겼을 때.
"난 잊고 싶지 않다고!!!! 싫어!!!! 꺄아아악!!!!"
"지, 진정하세요!! 호원 씨! 진정제 좀!"
"아, 아 네!"
"아, 아 네!"
이런 환자들이 요즘들어 극심하게 증가하다보니 간호사들이 품안에 주사기를 필수로 들고 다녀야만 했다. 두 간호사가 여성을 꾹 잡아 저지하고 있을 때를 다가가 호원이 주사기를 집은 손을 세웠다.
하나하키에 걸린 사람들이 병을 치료하는 수술을 거부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심장 옆에 자리잡은 하나하키 씨앗을 제거하게 되면 상대를 좋아하게 되었던 마음을 싹 잊어버리게 된다. 그 이상 이하의 감정이 사라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강제적으로 잊게 되어버리는 최악의 수술법이었다. 과학적으로도 제대로 증명되지 않은 이 수술법에 사람들은 거부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수술을 받는 사람들의 숫자도 극히 드물었다.
"놔! 놓으라고!"
제압당한 그녀가 흐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작게 떨리는 여성의 몸이 안타까웠다. 혼자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괴롭고 힘들 텐데, 그 마음을 놓지 못하고 아파해야 하는 그녀를 동정했다. 하얀 시츠가 입가에 흐르는 피로 붉게 물들어져 갔다.
...불쌍해.
"잠깐만 계세요. 곧 진정제 투입하고 조금만 흥분을.."
"아악, 이거 놔 미친 놈아!!!!"
"아윽!"
"?! 호원 씨?!"
그녀의 얇은 팔 위에 주사를 놓으려던 순간이었다. 간호사들의 손길을 뿌리친 여자의 손이 텁 하고 호원의 머리채를 잡아 뜯었다. ;;; 아파아파아파!!!! 잔뜩 흥분한 여자에게 진정제를 투입하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머리를 뜯겼다. 머리숱도 얼마 없어 서러운데! 그제야 멀리 상황을 지켜보던 의사도 급하게 달려와 막으려 애를 썼지만 여성의 손은 상상 의외로 굵직했다.
사, 살려줘!
이러다 진짜 내가 죽겠네!
"그만하세요 환자분!!!"
"내가 그이를.. 그 사람을 어떻게 좋아했는... 윽! 우웁....."
"?!"
아 엄청 불안한 느낌.
불안한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다는 게 더 서럽다. 움찔 몸을 떨던 그녀가 입을 벌렸다. 하필이면 또 호원이 있는 곳이었다. 피가 주루룩 입과 턱을 타고 흘러내렸고 그 위로 선인장의 피색이 물든 붉은 꽃잎이 얼굴 위로 쏟아졌다. 호원 씨!!!!! 의사와 간호사들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생각해보면 나도 남 걱정 할 게 못 됐는데. 그녀를 동정했던 마음이 조금 후회가 됐다.
무수히 많은 꽃잎들이 호원의 얼굴 위로 쏟아졌다.
한가지 더 추가해야 하는 말이 있다면
전염성이 심한 하나하키 병이 옮는 방법은 꽃가루와 꽃잎이 타인의 신체에 닿는 것이었다.
* * *
"...윽, 으으... 아욱..."
호원은 하루종일 화장실에 매달려야만 했다. 이것으로 벌써 삼일이 지났다. 하루하루가 약 백 년 같은 느낌이었다. 일을 하고 교대 시간이 되고 나서야 겨우 화장실로 뛰어갈 수 있던 호원은 비틀비틀 휘청대는 몸을 겨우 부여잡고 변기에 매달렸다. 화장실의 역한 냄새와 목에서부터 올라오는 따끔거리는 느낌이 남자를 괴롭혔다. 변기 뚜껑을 열고 곧바로 호원이 입을 벌렸다.
후두두둑. 목구멍 위를 비집고 올라오던 꽃잎 한 장 한 장이 변기 위에 쏟아졌다. 아, 숙취를 해결하는 기분 같은데. 끙 앓는 사이 다시 꿀렁대며 장기가 뒤집어지는 것 마냥 고통이 이어졌다. 입술 너머로 떨어지는 꽃잎과 잎파리 줄기들은 모두 초록색으로 빛났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도 연한 초록빛을 빛내던 것들이 점점 더 붉은 색으로 물들여 흩어졌다. 살점을 파고 베어든 탓에 타액이 섞인 피가 뚝, 뚝 떨어진다.
가시였다.
"아..웩...! 윽, 아으으... 컥."
어쩜 이렇게 운이 없을 수가 있을까. 투영했던 변기가 꽃잎들과 함께 새빨갛게 오염돼 버렸다. 살점이 찢어지며 역류하는 고통을 느끼며 호원이 찔끔찔끔 눈물을 흘렸다. 답답함에 옷깃을 꾹 쥐며 파르르 몸을 떨었다.
어렴풋이 예상은 했었다. 간호사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는 명분이 있기 때문에 감염의 노출도는 컸다. 언젠가 하나 옮는다고는 생각하고 각오도 했었는데. 쩍쩍 갈라지는 목구멍 너머가 괴로워 호원이 기침을 했다. 잎파리가 바닥 아래로 떨어졌다. 환자의 꽃을 온 몸으로 받아내는 바람에 호원은 결국 하나하키 병에 걸리고 말았다. 단순히 병만 걸리고 증세가 시작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어쩔 수 없었다.
"힉.. 헉, 허어...윽."
겨우 역류의 증상이 멈춘 호원이 훌쩍대며 화장실 벽에 기대 주르륵 몸이 내려앉았다. 종일 꽃을 토해내니 식욕도 기운도 없다. 허탈한 마음에 멍하니 허공에다만 시선을 두었던 그는 바닥에 몇 개씩 떨어진 꽃잎들을 내려다보았다. 슬쩍 그 중 피가 묻어나지 않은 잎 하나를 주워들었다.
줄기나 잎파리 색과 비슷한 초록색 꽃잎. 특이했다. 사실 그닥 예뻐 보이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꽃은 가시를 품고 다닌다던데 왜 넌 예쁘지도 않은데 가시를 품고 다니냐.
'상처 입기가 싫어서인 거려나...'
초록색 장미. 아름답지도 못한 게 가시만 날카롭다. 호원은 쓰게 웃었다. 가시에 온 입안이 찔려 타액만 삼켜도 쇠맛이 났다. 주머니 속에 손수건을 꺼내다 입으로 틀어막고 피를 뱉어냈다. 이따금 쿨럭댈 때마다 작은 잎파리들이 하나 둘씩 튀어나왔다. 서서히 멎어드는 증상에 안도감을 느끼며 겨우 몸을 일으킨 호원은 변기 물을 내리고 뚜껑으로 봉쇄했다.
쿠르릉 소리를 내며 가라앉는 물소리를 들으며 호원은 천천히 눈꺼풀을 내렸다. 피곤했다. 손에 쥐고 있던 꽃잎이 바스락댔다. 그는 지쳐 있었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건지 알고 싶지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분명한 건 이 증상을 멈춰 낼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던 호원은 연구 문서를 떠올렸다. 한창 이슈가 되어가는 하나하키 병 증세와 해결법은 여전히 세계적으로 대중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 병의 치료 법. 전염을 더디게 만드는 약과 감정을 잊는 대신 완치할 수 있는 수술. 그리고......
* * *
서로가 사랑함을 발견하면 마지막 꽃과 함께 증상이 끝나버리는 로맨틱한 병.
하나하키
호원은 이 병이 그저 미웠다.
* * *
"자, 여기 약."
"아- 고맙습니다."
"뭘. 그런데 당신 정말 이걸로 되겠어?"
이건 해결책이 아니라고. 노인이 내밀어 준 약병을 가리키며 단호하게 말했다. 주먹 크기 정도로 된 하얀 약병의 겉 표지에는 <완화제>라고 적혀 있었다. 호원은 쓰게 웃으며 노인의 쭈글쭈글한 손바닥 위에 돈을 건네 주었다. 괜찮아요. 덤덤하게 대답한 남자의 목소리는 다 쉬어서 걸걸해져 있었다.
괜찮긴 무슨. 그런 호원의 상황을 한 순간에 바로 꿰뚫어낸 듯 노인이 턱을 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이 바닥에서도 몇 십 년 짼데 이런 독한 병은 또 처음이야. 고질난 병도 아니고 고칠 수도 있는데 이렇게 꼭 넘어가기만 한단 말이지... 젊은이, 알아들어? 감기처럼 쉬이 낫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러다 폐렴으로 훅 가 너."
"하하하..."
어른들의 잔소리에는 끝이 없는데. 예상대로 노인은 줄줄이 병의 증세를 말하며 짐짓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세계적으로 알고 있는 병이었고 무엇보다도 호원은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였다. 하지만 여기서 다 알고 있으니 말하지 않아도 된다. 라고 말할 자신감은 없어... 결국 그 자리에서 잔소리만을 30분. 어서 빨리 해결하라는 노인의 끝말과 함께 호원은 헬쓱해진 얼굴로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어렵다면야 수술을 받아보던가. 노인이 넌지시 건네는 제안에 호원은 동그랗게 눈을 떴다. 그러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부드럽게 입 꼬리를 올린 남자는 약봉투를 받고 슬쩍 고개를 숙였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대로 대답 없이 나가려는 청년의 모습에 노인이 다시 그를 잡아 세웠다.
"자- 잠깐! 정말 제대로 치료해야 한다니깐! 할미 말 알아들어? 네가 걸린 그 병은 말여, 자칫하단..."
"괜찮아요."
호원이 약국의 문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기분이 좋아진 호원이 고개를 살짝 돌려 노인을 향해 씩 웃어보였다. 정말로 괜찮아요. 목소리는 갈라져 여전히 걸걸한 상태였지만.
"그대로 포기하기엔 이미 너무 좋아하고 있어서요!"
호원이 나간 문에 걸려있는 종소리가 살랑살랑 흔들려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청년이 사라져 텅 비워져 있는 약국 테이블에 가만히 턱을 괴고 앉아있던 노인은 그저 멍하니 그곳에 시선을 둘 뿐이었다.
...젊네 젊어.
청춘이네 청춘이야. 그저 조용히 흘러가는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하나하키 존잼이얌.
초록색 장미 좋아한다. 가시고 있고 다른 예쁜 장미들보단 수수해서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