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갈매 2017. 5. 17. 22:42

 2017.02.07



 1. 혼자


 커다란 집 안에 덩그러니 혼자 남으면 누구나 빈자리를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회식 있다고 했지...’

 주명이 최근 계약한 회사와의 회식은 4, 5차까지 질질 끌려간다고 들었다. 고생 꽤나 하는 모양이지만 술을 즐겨 마시는 연인이니 잘 들어오겠지. 나른한 몸을 늘어뜨리며 호원이 씻고 나오면 어느덧 시침이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주명도 없고 내일도 출근해야 하니 슬슬 자야겠네. 슬쩍 현관 쪽을 바라보다가도 밀려오는 잠에 작게 하품을 늘어뜨리며 슬금슬금 제 방으로 들어가려던 것도 잠시 멈칫, 걸음을 멈췄다. 평소 굳게 닫혀있는 주명의 방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

 제 방으로 향하려던 발걸음이 반대쪽으로 꺾여진다. 깜깜한 방문 벽을 더듬어가며 스위치를 켜면 주명의 깔끔한 방 내부가 드러난다. 급하게 회사를 가느라 미처 치우지 못한 옷들이 침대 위에 널부러져 있었다. 

 “에휴, 이럴 때 치워주는 게 나지 누구겠어...”라며 자기 멋대로 합리화를 넣고 느릿느릿 주명 방 안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그, 그냥 치워주려고. 주명이 워낙 옷을 던지고 갔으니까! 변명거리를 꾹꾹 머릿속에 밀어 넣으며 호원은 바지와 티셔츠를 하나씩 집어다 개 서랍에 넣기 시작했다. 마지막은 그가 종종 즐겨 입는 검은색 가디건이다. 냉큼 집어다 옷걸이 걸려던 호원이 다시 움직이려던 손을 멈춘다.
 “....” 슬쩍 가디건에 얼굴을 묻었다. 스읍, 하고 들여다 마시자 익숙한 나무 향이 느껴졌다. 옅은 목재에, 이따금 자연 흙냄새. 샴프도 린스도 비누도 아닌 오직 연인에게서만 느껴지는 체향이었다. 하도 입어서 옷에 다 베었나보다, 네 냄새가. 어쩐지 얼굴이 뜨거워졌다. 스스로도 변태 같은 행위라고 생각했지만 가디건에 묻은 얼굴을 떼어내기 힘들었고, 옷을 쥔 손은 점점 더 억세졌다.

 주명이, 바로- 옆에 있는 것, 같

 “-읏”

 와, 잠깐 뭔 생각을 하는 거야!? 확 달아오른 얼굴로 어쩔 줄 모르던 호원이 후다닥 가디건을 바닥에 던지며 뒷걸음질 쳤지만 발이 엇갈려 뒤로 넘어갔다. 왁! 소리 할 새도 없이 침대 위로 몸이 고꾸라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벌렁대는 가슴을 졸이며 호원이 주명의 침대에 얼굴을 묻었다.
 아프진 않다. 바닥에 자빠지지 않은 것엔 감사함을 느꼈고, 오히려 편안한 푹신함을 느꼈다. 주명의 침대 재료는 고급지다. 목재도 탄탄하고 이불 천도 깔끔한 하얀색인데다 뭣보다 천이 두툼한게 따뜻했다. 호원은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쭉 이 자리를 사용해온 남자의 냄새가 묻어나있다. 아프진 않아 다만 가슴이 조여드는 게 괴로울 뿐이다. 아, 제길.... 호원이 이불 천을 주먹을 꽉 쥐며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홧홧 타오르던 얼굴의 열이 서서히 귀, 목, 가슴, 팔, 다리, 발, 허벅지 깊은 안쪽까지 퍼진다. 난 그냥 정말로 옷을 개주려고 한 것뿐인데.... 이곳은 마치 호원의 몸을 옭아매는 거미줄 같았다. 사슬마냥 손목부터 발목, 목까지 너는 나의 모든 것을 구속하는 것 같아. 호원이 고개를 파묻었다. 몸이 뜨겁다.

 아, ....으

 잠깐 차호원... 이건 진짜 아니지.. 않아? 이성이 쿡쿡 마음을 찔렀지만 본능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호원의 등을 밀어냈다. 그래서일까, 멈추기가 버겁다.

 한 번 깊게 숨을 뱉어낼 때마다 더운 결이 흐트러진다. 헉, 아아...  손으로 꾹 쥐어낸 이불을 잡아당기자 부스럭대며 쉽게 하얀 천이 호원의 몸을 덮었다. 그 사이로 다리를 미끄러트렸다. 아. 꽉 다문 잇새 사이로 소리가 새어나온다. 발가락을 꼼지락대며 양 허벅지를 자극하듯 꾹 누르면 호원의 몸이 들썩 흔들렸다. 벌어진 입술 틈을 오른쪽 손으로 덮어 막았다. -으응.. 어느새 땀이 송글송글 맺힌 이마를 하얀 이불 위에 박아 부비적대며 호원이 꾹 눈꺼풀을 내리감았다. 그저 답답하게 이불 위를 휘젓고 다니던 손가락이 천천히 몸을 더듬고 내려갔다. 후으... 가쁜 숨을 토해냈다. 가슴가에서 허벅지까지 스르르 미끄러진 호원의 손이 이내 느릿하게 그리쥐자 움찔, 몸이 흔들리며 동그랗게 말아졌다.
 눈가에 고인 눈물이나 흐르는 땀방울이나 어느게 어느 것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작게 흐느끼던 호원이 입가를 덮고 있던 손가락 하나를 입안 틈에 밀어 넣었다. 뜨거운 치열을 더듬어가며 그가 가느다란 눈을 떠본다. 눈앞이 흐리다. 살짝 입안을 깨물며 몸을 비틀었다.

 아아

 빨리 왔으면 좋겠어.........




2. (10년 후) 아니 걍 꼴려서


 주명의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순순히 끌려 내려오는 뺨을 잡아다 호원이 입 꼬리를 올렸다. 상대가 웃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입술이 다가오기 전에 눈을 감고 있었으니까. 가볍게 입을 벌려 호원이 주명의 입술을 삼켰다. 놓치기라도 할 세라 꾹 잡은 넥타이를 쥐어 잡은 채 다른 왼팔로 남자의 목을 꾹 눌러 내렸다.

 그는 호원의 인사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다. 거부감 없는 입술은 늘 열려 있었고 호원은 쉽게 혀를 밀어 넣었다. 매끄러운 혀가 손쉽게 내부를 침투해 상대의 혀끝을 맞대 부비며 쪽 빨아들인다. 서로 탐하기 바쁜 입안을 거침없이 헤집어대며 강하게 몸을 밀착시켰다. 수만 번 넘게 해온 입맞춤이지만 애인과 하는 키스는 늘 새롭고 야하고 뜨거웠으며 늘 목이 말랐다.  
 쪼옥, 쪽 깊은 농밀한 소리가 조용한 방 내부에 울렸다. 이따금 입술을 떼어내고 다시 붙을 때마다 더운 숨소리가 오간다. 호원은 조금 급했다. 방쪽으로 주명을 밀어 넣으며 이내 침대 쪽까지 연인을 끌고갔다. 주명이 입술을 뗄 세라 다시 넥타이를 내려 당겼다. 숨은 벅차 올랐지만 맞붙은 입술은 떼어내기 싫었다. 아, 조금만 더. 응? 애타게 주명의 이름을 토해내며 남자의 뒷목을 손가락으로 간질였다. 조금만 더. 맞댄 입술 너머로 조금 웃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목을 간질였던 손을 떨어트리고 허리에 팔을 둘렀다. 앞으로 몇 발자국이다. 빙글빙글 서로를 끌어안으며 발을 놀렸다. 곧이어 침대 근처로 걸음을 옮기고, 가볍게 주명을 침대 쪽으로 밀어뜨리고 나서야 거친 키스가 끝이 났다. 번들대는 서로의 입술에 긴 타액 실이 이어지다 툭, 끊겼다. 잔뜩 달아오른 주명과 호원의 얼굴이 상대에게 환하게 드러났다. 에헤헤. 호원이 실없이 웃으며 번들대는 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어냈다. 어이가 없었는 지 주명이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호원이 네가 웬 일이야?”
 “응? 뭐가?”
 “적극적인 게 흔한 건 아니잖아.”
 “우리 명이도 마찬가지면서 뭘.”

 장난스럽게 키득키득 웃으며 호원이 주명을 눕혔다. 다급한 호원의 손길이 본인의 넥타이를 풀어 헤치기 시작했다. 잦은 결혼식 소식에 요즘들의 두 남자의 복장은 늘상 정장이었다. 불편해선 난 싫어하지만 명이 넌 잘 어울리니까 눈요기는 돼서 좋았어. 

 “그치만 말야.” 스르륵 소리를 내며 호원의 초록빛 넥타이가 주명의 배 위로 툭 떨어졌다.

 “계속 넘보는 사람들 눈이 짜증나서...” 내 껀데.... 우울한 목소리로 호원이 자신의 셔츠 단추를 한두 개씩 풀었다. 금방 드러나는 살결 너머로 찬 공기가 감쌌다. 파르르 떨던 것도 잠시 푹 고개를 숙이며 아직 단정한 주명의 넥타이를 손가락 사이로 배배 꼬며 웅얼댔다.
 “왜, 그래서 질투나서 이러냐?” 참 별걸 다 한다. 주명이 호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길이 따뜻하고 기분 좋다. 어느새 잔뜩 풀어진 입술을 벌리며 호원이 주명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쪽, 작게 입맞추며 키득키득 웃는다. 아, 야 하지 마. 민망해하는 연인을 두고 다시 쪽 쪽 목덜미에 깊게 입술을 묻고 또 묻었다. 강하게 느껴지는 연인의 체향에 호원의 몸이 달아올랐다. 아으 못참겠다. 호원이 주명의 뺨을 느릿한 손길로 매만졌다.

 “아니- 그거랑 별개로 그냥 하고 싶어서.”
 “차호원 이거 아주 지 멋대로야.”
 “뭐 어때 거절할 것도 아니면서.”

 하자- 응? 주명의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단추 틈 사이로 손가락을 하나 둘씩 밀어 넣는다. 발개진 뺨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틀어올려 주명의 귓가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슬쩍 고개를 내린 주명이 조용히 호원에게 되물었다. 마주한 눈동자의 열기가 뜨겁고 아른거렸다. 

 “내일 일은?”
 “연차”
 “그럼 됐어.”

 밤은 길다. 맞춘 입술 사이로 다시 한 번 거친 숨결이 오갔다. 호원이 강하게 주명의 목을 끌어당겼다.



3. 루라님 소재 감사


 “...야, 미친.. 차호원 이게 다 뭐냐....”
 “....”

 호원은 쉬이 애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주명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호원이 가지고 있던 잡지를 들고 있었다. 그저 일반 패션 잡지나 홍보용 잡지이면 좋았을 것을, 하필 그걸 발견하면 어쩌자는 건가. 주명이 든 잡지는 명백하게 19금 딱지가 걸려있는 여성의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야한 잡지였다. 숨어서 몰래 딱 한 번, 그 딱 한 번을 걸려버려 잡지를 빼앗기고 말았다. 호원은 쉽게 주명과 시선을 마주하지 못했다. 수치감으로 얼굴이 홧홧 타올랐다. 쥐구멍이 있으면 들어가고 싶어....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꽉 깨물며 호원이 울먹였다.

 “그, 그거 내 거 아닌..”
 “그럼 왜 읽고 있었는데.”

 목소리가 찬물을 엎은 것 마냥 차갑다.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어느새 무릎을 꿇고 있는 호원이 푹 고개를 숙이며 웅얼댔다.

 “....주변 동료가 빌려줘서...”
 “읽으려고 아예 만만의 준비를 하셨다?”

 저 봐라 저 봐. 주명이 턱을 슬쩍 위로 가리키며 호원의 옆자리에 준비된 휴지들을 보며 말했다. 남자의 분노서린 말 너머로 푹푹 한숨이 튀어나왔다. 이내 슬쩍 잡지 페이지를 하나씩 넘겨 보던 주명이 허, 하며 반쯤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차호원군의 취향은 쭉쭉빵빵한 글래머에 코스프레인가봐?”
 “..아, 아아아-! 마- 말하지 마!!!”
 “어디 보자.. 다양하네? 메이드에 바니걸에.. 허 참, 간호사 널렸으면서 간호사 복은 눈에 보이디?”
 “그, 그만~!”

 딸기마냥 시뻘겋게 물든 호원이 씩씩대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명은 여전히 의기양양한 얼굴이었다. 내 마음은 하나도 모르면서! 씩씩대며 일어난 호원이 서러움에 눈물을 뚝, 뚝 흘렀다. 호원이 무슨 심정으로 그 책을 받고 읽으려고 했는지 주명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저 머릿속에 어떻게 화를 내고 놀릴까 생각중이겠지. 손등으로 벅벅 눈물을 문지르며 호원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네가 키스도 뭣도 안 하려고 하니까 읽는 거잖아 이 궁예 고자야!!!!”
 “ ”

 멋대로 내지른 호원의 발언에 주명이 어리벙벙한 얼굴로 호원을 올려다 보았다. 이내 점점 더 붉어지는 연인의 얼굴이 호원과 흡사했다. 너, 너 뭐라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주명이 가지고 있던 잡지를 탁 채가며 호원이 대화를 이어냈다.

 “분위기를 먼저 잡으려고 하면 피하고! 손잡기만 해도 긴장하고!...이, 이건 나도 그렇지만 아무튼 초보 티 내는 것도 너무 심하잖아...... 같이 살기까지 하는데 나랑... 나랑 같이 있으면서..”

 아무 생각도 안 드냐 바보 멍청아... 훌쩍훌쩍 눈물방울을 떨어트리며 호원이 흐느끼듯 말을 토해냈다.

 “물론 애인 두고 애인 집에서 야한 잡지나 읽고 있는 내 입장이 한심하긴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우리 둘이 더 한심하다고 이 고자 새끼야아아...”

 제대로 덮쳐지던가 아니면 제대로 덮치던가 둘 중에 하나만이라도 좀 해라... 엉엉 뭐가 그리도 서러운지 꺼이꺼이 울어대던 호원이 주명을 두고 방으로 쾅 문을 열어 제끼고선 큰 소리를 내며 닫아버렸다. 야, 차호원.... 얼음장마냥 딱딱하게 굳어버린 주명의 목소리가 거실 속에 천천히 흐트러지며 사라져갔다.  









아 진짜 얘가 혼자 욕정하는 걸 어떤 상황으로 만들어야할지 1도 모르겠어서 막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