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돌식이도 귀여워
돌식이 이렇게 생겼다고 생각하니까 망충귀요미 쩐다 돌식아 그지......
2017.02.09
1. 정말?
"내가 언젠간 지긋지긋한 집 독립해서 반드시 강아지 한 마리 키울 거야."
두고 봐라 진짜. 살벌하게 이를 으득으득 갈며 눈에 불을 밝히는 주명이었지만 양가득 품에 강아지를 안고 있는 꼴이니 전혀 무서워 보이지가 않는다. 아아, 그러세요 그래.. 호원은 흐릿한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음료수 빨대만 아그작 씹어댔다. 집안과 종종 들썩대는 주명의 일상이 호원에게도 늘 일어나는 일이었기에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그래그래, 꼭 졸업해서 혼자 살아. 강아지랑 같이 살면서 이 카페 좀 그만 와보게...
혼자 카페 오기 싫다고 친구를 일주일 기준으로 5번 이상을 오는 놈이 또 어디 있겠단 말인가. 벌써 거덜난 지갑이 배가 고프다며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주르륵 눈물을 삼키며 호원은 가만히 강아지를 안고 있는 주명을 지켜다 보았다. 개가 그렇게나 좋을까. 평소 부루퉁한 얼굴이 멍멍이를 볼 때 만큼은 잔뜩 눈에 하트를 그리며 달려드니 몇 년지기 친구라고 해도 생소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뭐- 나쁜 것도 아니고 본인이 좋다는데 뭘.
매번 집에 오갈 때마다 받는 스트레스를 푸는 겸으로 오는 것이니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가줄까. 테이블에 팔을 얹고 턱을 괸 호원이 이내 픽 웃었다. 테이블 위를 낑낑대며 올라오려는 멍멍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왈! 왈! 멍멍 짖어대는 카페 안엔 두 소년이 사이좋게 강아지를 품에 안으며 이야기를 나누기 바빴다.
2. 진짜네....
왕!
"내가 키운다고 했지."
"...."
진짜네... 호원이 메고 있던 가방을 툭, 떨어트리며 웅얼댔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호원과 주명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에 입학했다. 과는 달라도 늘 함께하는 건 변함 없었다. 고등학교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일상에 호원도 서서히 학교에 적응하기도 한편, 동시에 주명은 정말로 자취에 성공했다. 게다가 서울 한복판의 커다란 주택집. 역시 도련님은 뭔가 다르구나... 라며 감탄하기도 한편 단단히 마음을 먹은 주명의 얼굴엔 고등학교 시절 그대로의 불길이 홧홧 타오르고 있었다. 주명이 시작하고 자취를 시작한지 약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과제에 절여 터덜터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기숙사로 향하던 호원을 붙잡은 손길은 주명과 품에 안긴 작은 생명체였다. 주명이 씩- 입꼬리를 올리며 슬쩍 강아지를 안아다 호원에게 내밀었다. 내가 키운다고 했지. 이리보고 저리봐도 강아지였다. 금빛 털을 반짝반짝 빛내는 아기 강아지.
"이 애기..."
"어제 입양해왔다. 엄청 예쁘지."
"겨, 견종..."
"골든 리트리버."
바닥에 떨어진 가방을 주울 새도 없이 호원이 덜덜 떨리는 손을 강아지 쪽으로 내밀었다. 똘망똘망 눈망울을 밝히는 강아지가 호원이 내민 손에 꿍, 머리를 가져다 댔다. 보들보들한 털의 감촉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인형도 천사도 아닌 작은 강아지가 손안에서 꿈틀거린다. 호원이 입술을 부들부들 떨었다. 귀, 귀.. 귀...
"귀여워!!!!!!!!!!!"
"ㅋㅋㅋㅋㅋㅋㅋ그치!"
주명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웃는 사이 호원이 강아지를 받아다 품안에 안았다. 품안에서 꼬물대는 게 미치겠다. 아 심쿵사 할 것 같아... 찌이잉 울리는 느낌에 호원이 질끈 눈을 감으며 강아지를 끌어안는 팔에 힘을 주었다. 아으으으으- 너무너무 귀엽다아...
"야야, 애 숨막히겠다."
"웅... 미안, 얘 너무 귀엽다. 너네 집에 매일 가야지..."
"누가 너 들여다 준데?"
얄밉게 말하는 연인을 한 번 째릿 째려보던 호원이 시선을 거두고 리트리버의 머리 위에 쪽쪽 입을 맞췄다. 얘 너무너무 귀엽다. 강아지를 양손에 안아다 시선을 맞춘 호원이 되물었다.
"이름은 뭐야?"
"돌식이"
"...?"
내가 방금 잘못 들은 거지? 의아함에 확 고개를 올린 호원의 시야 안에는 흐뭇하게 연인과 강아지의 모습을 들여다 보고 있는 주명의 얼굴이 들어왔다. 내가 생각해도 좋은 이름 아니냐. 호원의 얼굴이 점점 더 일그러졌다.
"...너 말야...."
"? 왜."
"애기 낳으면 절대 네가 짓지 마라..."
"...뭐, -뭐라는 거야... 커흠. 그건 좀... 이르지 않냐."
뭐가 이른데. 민망한지 양 볼을 발그레 붉히며 큼큼- 헛기침을 하는 주명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호원이 강아지를 다시 품에 안았다. 왕! 아이가 앙증맞게 짖자 호원이 살살 아기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돌식아, 뭐- 그.. 네 인생이 고달픈 건 아닐 테니까 말야. 그렇지? 말을 알아듣긴 한 걸까 돌식은 꼬리를 흔들기에 바빠 보였다.
으응, 뭐 정 어려우면 형아가 나중에 개명 해줄게....
3. 내가 네 새아빠야
"야호!! 침대!"
"그거 네 침대 아니거든!"
"치사하게-!"
조금 정도는 자리 내어줘도 좋잖아. 이렇게 넓은데! 호원이 불만을 터트려 보았지만 주명은 듣는 척도 하지 않은 채 호원의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호원이 본가에서 반강제로 쫓겨나고 주명네 집에 함께 동거를 시작한 첫 번째 날이였다. 애인에게 째째하게 집세도 받고 얹혀사는 대신 밥이랑 집안일을 하는 담당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아무렴 어떤가. 요즘 자취방들도 비싸고! 연인네 집이고! 주명네 집은 엄청 넓고! 침대도 기분 좋고!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구르며 호원이 키득키득 웃었다. 이불에 얼굴을 파묻었다. 주명의 냄새가 났다. 종종 집에 자고 가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같이 살려고 하니까 긴장되네. 남몰래 두근대는 가슴을 졸이며 호원이 게슴츠레 감던 눈을 떴다.
'주명도 같은 생각 하고 있을까나...'
왕!
"...?"
익숙한 멍멍이 짖는 소리. 그 소리에 호원이 벌떡 일어나자 방문틈에 꼬리를 즐겁게 흔들고 있던 돌식이 튀어나왔다. 대학교 시절 손바닥만하던 작은 크기의 강아지는 본래 대형견 이미지의 그대로 커다랗게 자라선 아름다운 금빛 털을 휘날리며 늠름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우와! 식아! 잔뜩 신이 난 호원이 양 팔을 벌리자 왕왕 짖어대던 돌식이 펄쩍 주명네 침대 위로 뛰어올랐다. 커다란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호원이 비틀대다가 겨우 돌식을 껴안고 다시 침대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아이고! 이제 형아가 너 못들겠다."
품안에 들어오기도 힘든 돌식을 껴안으며 호원이 키득키득 웃었다. 언제 이렇게 또 컸어? 풍성한 털을 붕붕 쓰다듬자 돌식이 헥헥 혀를 내밀다 호원의 뺨을 핥아올렸다. 간지러운지 호원이 빵빵 웃음을 터트렸다. 거대한 무게가 호원의 몸 위를 덮쳐 짓눌렀지만 아무렴 어떤가. 그의 눈에는 여전히 대학교 시절의 아기 강아지 시절과 그대로였다.
"형아 오늘부터 너네 아빠랑 같이 살게 될 건데- 식이랑도 살게 되는 거니까 잘 부탁할게!"
멍!
알아들은 걸까, 대답하듯 왕 짖던 돌식이 몸을 부볐다. 복슬대는 털을 왁-왁 거칠게 쓰다듬으며 호원이 푸흐흐 웃음을 터트렸다. 팔을 둘러 꼬리부터 아이의 등을 팡팡 두들기며 호원이 돌식의 털에 얼굴을 묻었다.
"아니- 같이 사는 거니까.." 털 안에 쪽쪽 입술을 내리찍으며 호원이 웅얼댔다.
"나도 돌식이네 아빤가. 새아빠 어떻게 생각해?"
월!
"정말? 좋다고?"
월!
나도 좋아해! 목부터 확 끌어안은 호원이 부비적대자 돌식이 왕- 왕 짖기 시작한다. "야!! 차호원 네 짐 빨리 정리 안 하냐?!" 혼자서 낑낑대며 정리하던 주명이 버럭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사람도 멍멍이도 슬금슬금 침대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지만.
4. 같이 씻을까
".....으으으..."
"아 미친..."
어떻게 얘 한 번 씻길 때마다 대전쟁이냐.... 몸에서 윤기가 나는 돌식과는 달리 호원과 주명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에 빠진 생쥐꼴이었다.
고양이처럼 깔끔하게 몸을 관리하는 편이 아닌 강아지는 고양이보다도 몸관리 청결에 신경을 써주어야 한다. 특히나 중요한 건 목욕인데 문젠 한 번 씻을 때마다 온 난리가 난다는 것이다. 특히 대형견 멍멍이는 더더욱. 주명과 호원이 지금 그 타이밍이었다.
씻을 수밖에 없는 순간까지 온 돌식의 상태에 주명과 호원이 옷소매를 걷어올리고 아이를 질질 욕실까지 끌고왔다. 물을 조심스레 틀고 리트리버인 돌식에게 조금씩 끼얹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전쟁인 시작한 후였다. 물을 끼얹기 시작하자 돌식은 화들짝 놀라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했다. 욕실문을 닫아둔게 다행이지 아니면 큰일 날 뻔 했다. 결국 호원이 돌식을 잡고 나서야 주명이 조심스러운 손길이지만 최대한 빠르게 강아지를 씻길 수 있었다.
그 뒤는 수월했냐고?
NO
"으아아, 식아 제발 가만히 악!"
"악 돌식아!"
물을 묻힐 때마다 돌식이 탈탈탈 몸을 흔들어 털을 털어내었고, 바로 옆에 붙어있던 호원과 주명이 봉변을 당했다. 온 물기가 호원과 주명의 옷에 덮쳤고, 워낙 발버둥을 치는 바람에 뿌리려던 물은 두 남자가 홀라당 다 엎어쓰고 말았다. 물 뿐만 아니라 강아지 전용 샴푸로 만든 거품까지도 입안에 들어가거나 눈을 괴롭혔으며 도망치려던 돌식을 잡으려던 호원이 벌러덩 미끄러져 넘어지기도 했다. 아- 엄마 나 집에 갈래..... 뿌옇게 오른 수증기를 눈에 담으며 호원이 울음을 삼켰다.
씻기기만 하는 게 끝나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야- 야 야 차호원 쟤 도망친다 잡아!"
"잡으라고 해도 너무 빨리 도, 망 헉! 악!"
"차호원!"
겨우 씻겨낸 강아지를 말리기 위해 잠깐 밖에 데리고 나오면 또 온 바닥을 헤집고 물을 튀기며 뛰어댕기기 시작한다. 호원과 주명이 눈물을 줄줄 흘렸다. 안 말리면 감기 든다니까!!! 그렇게 우왕자왕 10분이라는 시간을 잡고 나서야 멍멍이를 잡아든 호원과 주명이 부랴부랴 드라이기로 말리기 시작했다. 거기서 또 20분 가량 시간을 소비했다. 완벽하게 목욕을 끝낸 돌식은 윤기있는 털을 흔들며 우아하게 길을 걸었지만 이미 온 몸이 축축 젖고 얼음장이 된 두 남자는 몸을 감싸며 파르르 떨고 있었다.
"추, 추워..."
"애 하나 씻기려다 우리가 죽겠네...."
덜덜덜 몸을 떨던 주명이 급하게 수건 몇 개를 꺼내다 호원의 손에 하나 쥐어주었다.
"일단 빨리 씻자. 자 받아."
"아- 고마워. 그, 근데 우리 누가 먼저 씻..."
"....."
"...아"
마, 맞아... 우리 지금 다 홀딱 젖었지... 천천히 수건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털어내는 주명의 모습을 보며 호원이 확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어, 어- 어어 나 왜 긴장하는 거야...!?
그러고 보면 호원과 주명의 씻는 시간대는 늘 달랐기 때문에 이렇게 함께 욕실에 들어가야 할 때가 없었다. 와- 그럼 서, 설마 같이 씻어야 하는... 화아아악 달아오른 뺨만큼은 차갑게 식은 몸과는 다르게 뜨거웠다. 슬쩍 시선을 돌린 곳엔 검은 티셔츠가 젖어들어 달라붙은 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와 진짜 미치겠네............
왜 하필 저게 지금 눈에 들어 온다냐... 호원이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마른세수를 했으나 뺨의 온도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치, 침착해 차호원.... 끙- 두 눈을 감은 호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주- 주명아. 물기를 닦아내던 주명이 불러낸 호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어- 그.. 그러니까... 이, 이대로 둘다 안 씻으면 감기 들 테고..... 그, 그냥..."
"......"
벼- 별로 이상한 생각 하는 건 아니고.... 입술을 앙 다문 호원이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조금씩 주명을 향해 시선을 올렸다. 발그레진 뺨은 여전하다.
"같이.... 들어갈까?"
"......차호원."
아까까지 계속 꾹 입을 다물고 있던 주명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어, 어어... 어? 점점 더 다가오는 주명의 움직임에 쿵쿵대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한 호원이 눈을 데굴데굴 걸렸다. 뭐, 뭔데 이 전개?! 이상하게 아까까지 방방대던 돌식이도 짖지 않는다. 조용한 분위기에 시뻘겋게 얼굴이 물든 호원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주명이 슬쩍 팔을 뻗어 호원의 왼쪽 뺨에 손을 가져다 댔다. 쾅! 심장에 망치를 두들기는 것 마냥 울려대기 시작했다. 차갑게 식은 몸이 얼굴의 열 덕분에 서서히 몸의 열이 올라왔다. 축축하게 젖은 주명의 검은 티셔츠를 쥐어 잡으며 호원이 반쯤 눈꺼풀을 내렸다.
아니
뭐
나야 하면.....
좋고...........
"......우리 집 욕실 두개잖아 바보야."
"................................."
맞아 그랬었죠.... 다른 의미로 시뻘겋게 얼굴을 붉힌 호원이 주명의 말에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