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호원/학원물

발렌타인데이

w.갈매 2017. 5. 17. 22:51


 2017.02.04




사랑을 전할 수 있다는 절호의 기회의 날.

 그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깨달아야 할 건 총 두 가지.

 하나는 그 녀석과 나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라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녀석이 죽어도 단 건 입에 대지도 않는다는 거....!'


 털썩, 좌절감에 자리에 주저앉은 호원은 작게 훌쩍였다. 이래선 연인들의 기념일이라고 부르는 화이트데이나 빼빼로데이도 모두 무쓸모다. 왜냐! 차호원이 좋아하는 주명이란 남자는 정작 입에 일 년에 한 번 단 걸 댈까 말까한 사람이라는 것. 단 게 얼마나 맛있는데! 평소 단 거라면 환장하는 호원에게 있어 발렌타인은 환상의 날과 마찬가지였다. 단 걸 좋아하는 호원과 단 걸 싫어하는 주명. 이 얼마나 틀어진 사랑인가! 쾅! 소리를 내며 호원이 책상에 이마를 쿵, 쿵 박았다. 주변 학생들이 호원을 힐끗대며 웅성거렸다.


 '별로.. 별로 이걸 핑계로 고백이라던가 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데...'


 훌쩍. 물마냥 줄줄 새어 흐르는 눈물을 훌쩍대며 호원이 눈을 감았다. 가깝게 어울린 절친인 만큼 주명의 입맛이나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은 눈에 다 꿰고 있었다. 그래서이기 때문에 더더욱 단 음식은 손수 건네주기가 힘들었다. 얼굴이 반반한 만큼 인기가 많은 주명이 초콜릿을 많이 받을 거란 사실도 이미 알고 있었으며, 동시에 그 초콜릿은 모두 주명의 입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야, 너 뭐하냐."
 "...."

 "집에 가자. 종례 끝났어."


 옆 반이었던 짝사랑 상대이자 친구인 남자는 호원의 속도 모른 채 가방을 메며 그를 찾아왔다. 털털해 보이던 남자의 가방이 신경이 쓰였지만 호원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책상에 이마를 박은 채 조금은 억울하단 얼굴로 주명을 응시했다. 아, 뭐. 가자니까. 인상을 찌푸린 주명에게 시선을 던지다가도 이내 긴 한숨을 늘어뜨렸다. 용기 있게 고백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지만..


 '그래도 간접적이나마 얘기 할 기회는 달라고.....'




* * *




 "야, 너 기분 안 좋아 보이는데.. 무슨 일 있었냐?"


 너 때문인데요. 튀어나올 뻔한 말을 입속으로 꾹꾹 밀어내며 호원은 주먹을 꾹 쥐어냈다.


 "그, 그냥 뭐 그렇지.... 우리 학교가 제일 봄방학 소집일 늦게 했잖아."

 "아- 그건 좀 짜증난다니까. 다른 학교들은 벌써 다 방학 했다던데..."


 우리 학교 선생님들 머리가 어떻게 됐나봐. 그 또한 불만스러웠던 모양인지 투덜대며 쿵쿵, 발걸음을 세게 눌러 걷는다. 그런 주명의 뒤를 따라 걸으며 호원은 그가 메고 있던 가방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평소와 다름 없는 크기지만 안에 뭐가 들었으려나. 설마 진짜 초콜릿? 여자애들이 우정 초콜릿 이런 걸 변명으로 하고 준 거 아냐? 아냐, 꼭 여자라고 할 수도 없지. 주명은 인기가 많으니까 남자애들한테도 충분히....  


 '아아 이런 생각만 하는 내가 싫다.....!'


 받으면 뭐 어때! 받을 수도 있는 거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고! 머리가 지끈지끈 울려오는 기분이 들어 호원은 깊게 숨을 내쉬며 엄지로 미간을 꾹꾹 눌렀다. 야, 너 정말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거야? 평소랑은 조금 다른 친구의 모습에 의아한 주명이 호원에게 되물었다. 사실 너 때문에 조금 아프다. 라는 말을 솔직하겐 할 순 없고... 으음, 대충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시선을 돌리던 호원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어 물었다.


 아니- 그..


 "오늘 딱 발렌타인데이였잖아. 주명 넌 초콜릿 많이 받았나 싶어서.."

 "초콜릿?"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인상을 찌푸리던 주명이 이내 아- 소리를 내며 덧붙여 말했다.


 "뭐, 어차피 난 단 거 싫어하니까."

 "하하.... 그렇지."


 받았긴 받았다는 뜻이구나... 속으로 욕을 토해내며 호원은 울고 또 울었다.


 "설마 너 그거 때문에 기분 안 좋은 거야?"

 "..뭐?"

 "넌 초콜릿 하나도 못 받았어?"

 "..............아-"


 그러고보니..... 정말 한 개도 못 받았네. 정말 울어야 하는 거 아냐...?

 종일 주명 생각으로 끙끙 앓느라 교실에 짱박혀 있던 것이 문제였다. 부실이라던가 어딘가 돌아다녔더라면 우정의 초콜렛이든 그냥 아무런 의미 없이 받는 초콜릿이든 뭐든 받았을 텐데. 등교하고 종례가 끝나 주명이 데리러 올 때까지 내내 책상에 우울하게 고개를 박으며 훌쩍였던 자신의 쪽팔린 모습을 떠올렸다. 누가 봐도 실연당한 남자의 모습이다. 그런 상황의 남자에게 누가 감히 초콜렛을 용기 있게 건넬 수 있었을까. 호원은 하하, 짧게 웃으며 머쓱하게 뺨을 긁적였다.


 그래, 주명에겐 이렇게 보였겠지...


 "그렇네... 정신이 급해서 받을 타이밍도 못 잡고.. 한 개도 없다. 으으...."

 "받을 타이밍이 아니라 널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한 개도 안 준 거겠지!"


 꼬시다 야! 뭐가 그리 재밌는지 낄낄거리며 웃는 주명의 모습에 다시 화가 솟아올랐다. 사람 속도 모르고!


 "아, 아니거든!? 나- 나도 뭐 좋다면 줄 사람 있을 지도 모르고........ 어, 어딘가에 분명......" 아아.. 젠장 난 정말 찌질이야.... 주륵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훌쩍대면 호원의 머리에 따뜻한 온기가 닿았다. 별 수 없네 정말. 주명이 씩 입 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이 형님이 달래주마."

 "......하-?"




* * *




 "달래준다는 게..."


 이거냐... 호원은 품안에 말티즈 견 강아지를 끌어 안으며 말했다. 주명은 흐뭇한 얼굴로 작은 강아지를 무릎 위에 올려두고 손으론 열심히 친한 강아지였던 뽀삐를 매만지고 있었다.

 주명이 우울해하는 호원을 끌어다 데려온 건 아니나 다를까 애견카페였다. 이미 당골이 된 카페에서 사장님과 익숙하게 인사를 나누고 호원을 자리에 앉힌 주명은 티라미수와 음료수를 시켜다 떡하니 테이블 위에 대령했다. "강아지들 안 먹게 조심하렴." 인자한 사장님은 서비스로 강아지 간식을 주명과 호원에게 각각 한봉지씩 안겨주며 말했다. 그렇게 자리를 잡은 호원은 강아지 한 마리를 안아다 티라미수를 꾸역꾸역 입안에 넣고 있게 되었다.


 "하나도 못 받았다니까 특별히 사준 거 아니냐."


 고마워 해야지. 흐뭇한 얼굴로 웃는 주명을 호원이 노려보았다.


 "단순히 그 핑계로 애견카페 오고 싶어한 걸 누가 모를 줄 알고?"

 "...."


 역시 그냥 오고 싶어 한 거였구나... 슥 고개를 돌리며 다시 뽀삐에게 온 집중을 불어 넣는 주명을 보며 호원은 숟가락으로 티라미수를 퍼먹었다. 호원이 가장 좋아하는 단 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맛있어. 슬쩍 고개를 숙이면 강아지가 두 눈을 반짝이며 호원을 올려다보며 고갤 기웃대고 있었다. 미안, 이거 먹으면 넌 아야해. 달래듯 강아지의 목을 살살 문질러주며 호원은 작게 웃었다.


 결국 오고 싶다는 이유로 자신을 핑계로 두고 온 것이긴 하지만 와중에 호원을 생각해서 데리고 와준 걸 생각하면 가슴이 간지러워졌다. 이런 이유로 좋아해하는 내가 싫지만.... 크게 티라미수를 퍼먹어다 압, 입안에 쏙 밀어 넣었다. 달달하다. 욱하고 올라왔던 우울한 감정이 마법처럼 사르르 퍼졌다. 딱히 깊은 의미로 받은 것도 아닌 티라미수였지만 그래도 좋을 수밖에 없다. 누가 준 건데. 마주 편에 앉아있는 주명을 응시했다.


 아, 하하하 그렇게 좋아? 강아지랑 함께 있는 주명이 가장 행복해 보인다. 뭐가 그리 좋은지 뽀삐도 실컷 꼬리를 흔들어대며 주명의 품에 파고들었다. 부드러운 손길로 강아지의 등을 팍팍 쓰다듬으며 주명이 활짝 웃었다.


 초콜릿도 하나도 못 받고, 정작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뭣도 못 주고, 뭐처럼 받는가 싶었더니 핑계 삼아 받아온 티라미수 하나에 신경은 온종일 강아지에게 쏠렸긴 했지만....


 '그래도 좋은 걸 어쩌나....'


 깊게 숨을 들이쉰 호원이 슬쩍 입 꼬리를 올리며 따라 웃었다. 번쩍 손을 올렸다.


 "사장님! 여기 티라미수 세 개만 더 가져다주세요!"

 "켁, 너 더 먹게?!"
 

 그만큼 사줄 생각은 없거든 돼지야?! 기겁하는 주명을 향해 호원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이건 내가 사는 거거든.


 "하나는 아무것도 못 받은 나를 위해."

 "그만 먹어라...."

 "다른 하나는 미래의 나를 응원하기 위해!"

 "응원은 개뿔.."


 하나하나 토를 다는 친구의 모습에도 꿋꿋하게 호원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너."

 ".....나 단 거 싫어하는 거 알면서."

 "에이, 그래도 뭐처럼인데 한 입 정도는 괜찮잖아."


 기겁하는 주명을 두고 호원이 크게 티라미수를 숟가락으로 퍼다 주명에게 내밀었다. 그러니까 이건 내가 주명한테 주는 선물. 아- 해봐. 호원이 장난스레 웃으며 키득거렸다. 








급하게, 부랴부랴..

오늘이 발렌타인인지 몰랐어요... ㅠㅠ(석고대죄) 죄송합니다........

발렌타인데이에도 주명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