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갈매 2017. 4. 27. 21:14

2016.12.25




다리가 서서히 말을 듣지 않게 된 건 금방이었다. 18세 아시아 리그 2회전이었을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1 : 1을 달리는 시점 상대팀 파워 포워드를 밀어내려다 다리가 엇갈리고 그대로 엎어졌다. 순식간이었다. 늘 그라운드와 골대만 바라보던 지후는 어느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온종일 하늘 아래 그라운드를 달리는 주제에 위를 올려다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게 파랗고,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그는 하늘에게 시선을 뺏겨버려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설마 부상 탓에 움직이지 못했던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눈치챘던 건 응급요원들이 그를 싣고 가기 시작했을 때. 안지후의 공식전은 그렇게 인대 파열로 인해 끝나버렸다. 

11살 때부터 정기 교육을 받아 시작한 축구는 7년을 채웠다. 세계 축구 선수들과 비교하면 턱없이 짧고, 턱없이 길지 못했던 축구 인생이다. 그에겐 얼마든지 억울하다 호소할 수 있는 목소리도, 분함에 내리칠 수 있는 주먹도, 서러움에 흘릴 눈물도 있었다. 단지 움직이지 못하는 다리가 있을 뿐. 그 탓에 지후는 말하지도 때리지도 울지도 않았다. 무거워지는 다리를 느끼며 현실을 점차 받아들였다. 한계가 남들보다 빨랐다. 그저 조금 남들보다 빨랐을 뿐이다.

 

지후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만, 그 뒤를 쭉 지켜보고 있던 부모님만이 어린 자식의 길을 놓지 못했을 뿐이다. 근처 병원에 호송된 후 결과를 받아들이고 난지 이틀 후, 한국에 있는 부모님으로부터 지후에게 연락이 닿았다.

 

[정말 이대로 네 축구를 그만둘 셈이냐?]

"..."

[지후야, 아깝지도 않아?]

"별 수 없죠."

 

다리가 안 된다니까요. 그의 부모는 자식이 눈물이라도 터트릴 줄 알았는지 덤덤한 반응에 당황한 모양이었다. 새삼스럽긴, 원래 이렇잖아요 저. 며칠 후 귀국 준비를 하겠다며 전한 후 그 뒤로 지후가 부모에게 연락을 넣는 일은 없었다. 그들 또한 연락은 없었다. 지후가 귀국 준비를 끝내고 나서려 할 때 쯤도 리그 3회전 패배로 자신이 이끌던 팀도 정리 준비를 끝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귀국하는 내내 지후는 온 스트레스가 쌓였다. 첫 번째로 그가 좋아하지 않은 요란스러움이 주변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비행기에 내리고 한국에 발을 디딤과 동시에 찰칵대는 셔터음 소리와 기자들의 고함 섞인 질문들 탓에 귀에 휴식을 주기가 힘들었다. 하도 인파가 몰려 밖에 발걸음 하나 내밀기조차 어려웠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지후에게 달려들다시피 하며 '부상은 어떤가요?!' '점차적인 부상 탓에 은퇴를 한다는 루머가 퍼졌는데 사실입니까 안지후 선수?!' '팀의 패배는 본인 탓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정말 종류별대로 팩트 공격이 대단하다. 그쪽이 공격수 하셔도 되겠어. 쏟아지는 질문들을 최대한 태연함을 유지하며 지후는 무시했다.

뭐, 이 기자들의 질문들이 대부분 사실이기 때문에 부정할 수는 없었지만. 지후의 공식 은퇴는 귀국한 후 바로 다음날로부터였다. 한국의 언론이나 축구협회에서도 막 뛸 수 있는 젊은 인재가 빨리 은퇴한다는데에 혼란을 가진 듯 보였다. 한동안 아시아 리그전과 안지후의 은퇴 이야기가 국내에 떠들썩했다. 언론이 들쑤시는 탓에 지후의 은퇴전도 이주 뒤쯤이 지나서야 진행할 수 있었다.

 

'...피곤하다...'

 

하루 열 몇시간 내내 축구를 하는 것보다도 겨우 몇 시간 언론에 휘둘리는 게 그에게 있어서 배로 더 고역인 일이었다. 겨우 기자들을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후의 몸은 축 처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쩌렁쩌렁 울렸던 귓가가 드디어 잠잠해졌다. 짐을 정리하기 전에 안이 드러나지 않게끔 창이란 창의 커텐을 다 쳐 놓은 후 문단속을 꼼꼼히 하고 나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정적만 나도는 집 안을 훑어보던 지후는 털썩 소파 안에 몸을 기대 누웠다. 마주 편에 자리잡은 테이블 위에는 팬들이 보내준 선물들과 가져온 짐들이 한가득이다.

과자, 초콜릿, 좋아하는 책들과 축구공.. 가져온 옷들과 유니폼들 등등... 가만히 선물 꾸러미를 내려다보던 그는 손을 뻗어 하나를 집어들었다. 본인의 유니폼. 아시아 리그 전에 부상 직전 마지막으로 입었던 복장이다. 한 부분이라도 놓칠 세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이제 입을 일도 없을 테니 자세히 들여다 보기라도 하자.

 

파란색. 하늘 위를 뛰어다니는 우리.

이제 그 위를 마주하는 대신 하늘을 올려다 봐야겠지.

 

'...끝인가.'

 

끝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나도 짧았다.

짧아도 너무 짧았다.





-



 

오랜만에 지후가 생각나서 써보았다!

얘 축구 그만둔다고 결정을 내렸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잘 울지는 않는 녀석이니 그저 끝까지 울진 않았겠지만

착잡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