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지후/검은 사제들 2017. 4. 27. 20:21

검은 사제들 2

2015.11.21



“빈첸시오 사제.”
 “네.”


 기도로 올려둔 초가 화르륵 타올라 촛농이 뚝뚝 떨어질 때까지도 둘은 한동안 서로 입을 열지 못했다. 결국 마지못해 먼저 입을 연 늙은 남자에 마주 편에 앉아있던 안지후가 간결하게 대답했다. 싸늘할 정도로 침착하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남자. 선택 받은 자들 중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쉽게 꿰뚫을 수 있는 능력에 감탄했다.


 “프랑스의 장미십자회에서도 자네에 대한 극찬이 끊기 지 않더군. 모두 너에게 기대를 걸고 있어.”
 “과찬입니다.”
 “아니- 뭐어, 우리가 할 수 없는 걸 아주 깔끔하게 하고 있으니까. 기특하지, 기특해.”


 아차, 조금 감정이 섞여버린 말이 나와 버렸다. 마음을 읽힌 건지 안경 너머로 날카로운 흑안의 눈동자가 비추었다. 늙은 남성은 그에 흠칫하며 반사적으로 시선을 내렸다. 피도 안 마른 것한테 제 스스로 동요했다는 것에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큼큼, 괜한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말한 대로 장미십자회에선 새내기 병아리밖에 되지 못한 이 작은 사제에게 온 기대를 걸고 있다. 몇 나오지 않을 천재성을 지니고 있는 어린 신부. 하느님의 어린 양. 그 실력은 이미 학교의 교내에서도 늘 오고갈 정도로, 웬만한 고참 신부들에게도 이름이 나돌아 다닐 정도로 뛰어나다. 이 때문에 아니꼽게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는 거지. 남자의 마른 주름이 절로 다 찌푸려졌다.


 “그래서 말일세. 빈첸시오 사제. 이번에 맡은 일이... 그래.”
 “...12형상 악령에 관한 일입니다.”
 “지금 같은 시대에 너무 판타지 소설 같다고 생각하지 않아?”


 하느님은 그 누구라 한들 공평하게 모두를 사랑하시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은 그러하지 못했다. 인간은 졸렬하고 질투심이 많으며 속부터 검은 생물이다. 절대 코 자신보다 높은 위치로 올라가는 자를 좋게 바라볼 수 없다. 요컨대 지금 늙은 남자가 앞에 있는 천재적인 자질을 갖춘 아이를 옳게 바라볼 수 없는 것처럼.


 아버지를 곁에 모시고 그만큼 평화를 상징하며 모두의 안식을 바라는 존재. 신부란 그런 역할이다. 라며 본인들의 기준에 멋대로 얽매여보면서. 당신과 다른 평범한 존재임을 부정한다.


 “이런 시대에 구마라니. 어처구니 없는 소리지. 일반인이 들으면 뭐라고 생각하겠어?”
 “...”

 “안 사제. 우리 종교가 대중화되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린 지나 알어? 자넨 그걸 다”


 네 손으로 직접 망가뜨리고 싶은 겐가? 겨우 깬 정적이라고 생각했것만 다시 둘을 둘러싼 고요함은 방 안을 가득 헤집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벌떡 몸을 일으킨 것은 안지후였다. 지후는 가만히 서선 제 앞에 앉아 있는 남자를 응시했다. 태연스레 말하고는 있었지만 지후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이미 많이 보고 난 뒤다. 겁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본인들의 일에 충실하지 못한 자들. 고개가 흔들렸다. 결국 이번에도 허탕이었던 것이다. 


 “말씀하신 건 잘 알겠습니다.”
 “그래.. 너무 깊게 건들이지 마. 그쪽이 다 알아서 해줄 테니까...”

 “그건 제가 판단할 일이지만요.”

 

 이미 끝난 일에는 관심 밖이다. 결국 이번에도 허탕인 걸까. 칫, 혀를 끌끌 차며 몸을 돌렸다. 유혹에 찌든 악의 얼굴을 눈에 담기가 거북해 서둘러 방문을 열었다. 등을 돌리고 있었기에 그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대충 감이 잡혔다. 시선이 느껴지는 그에게 등을 돌리지 않은 채 지후는 천천히 제 입을 떼었다.

 
 “그리고 사제님이 하신 말씀으로 아주 잘 알게 됐습니다.”


 존경하는 아버지.
 찬미하는 그리스도여.


 “당신은 아버지를 향해 등을 돌린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저 어리석은 자를 구원해주소서.

 

 

 

 

*

 

 

 허한 기분은 좀처럼 지울 수 없다. 몇 번이나 이리저리 돌아다녔지만 시선을 안겨주는 곳은 없다. 다들 공포심에 젖어 있었다. ‘설마, 그런 게 정말 있다고 믿는 건가?’ ‘내 눈으로도 제대로 안 봤고 말이지...’ ‘자네, 장밋빛십자회라고 너무 거만해진 거 아닌가?’ ‘그런 건 입에 담지도 말게.’ ‘요즘 사회는 말일세..’ 같은 패턴의 말들과 거추장스러운 웃음소리들 뿐. 빈첸시오는 같은 입장에서 있는 그러한 신부들을 거북하게 느끼고 혐오했다. 신부의 입장으로라면 어느 누구라도 보듬어주고 사랑해야 할 것을. 결국 자신도 아직 멀었다며 반성의 십자가를 그렸다.

 그래, 그래서 너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도 먼 길을 걸어야 꼬리라도 겨우 찾을 수 있는 걸까.

 흑빛의 눈동자에는 늘 서려있던 빛이 반쯤 사라졌다. 작은 그 아이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말로 다할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들어왔다. 왜 하필? 왜 하필 그 아이란 말인가. 늘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존경하며 자신의 종교에 찬양과 기쁨을 뱉을 줄 알던, 그 착하고 어린 것을 왜 하필 천한 악령의 눈에 띄었단 말인가.

 “...”

 고민해봤자 결국 답은 나오지 않는다. 이럴 바엔 한 곳이나 더 돌아다니는 것이 낫다며 빈첸시오는 제 마음을 추렸다.

 빈첸시오가 다른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주머니에 들어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주머니에 손을 뻗고 핸드폰을 확인하면 익숙한 이름이지만 웬만큼 제가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을 독특한 그로부터 온 발신이었다. 이 인간이 무슨 일이래. 삐죽 입 꼬리를 올리며 전화를 받았다.

 내용은 꽤나 흥미로웠다.

 


*

 

 “그래서 베드로 씨께서 하고 싶은 말씀은?”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좋은 놈을 찾았다고. 네가 부탁한 대로.
 “난 그냥 선배가 해줘도 될 것 같은데.”
 -난 배우다가 그만둔 놈이야. 하기엔 좋은 그릇이 못 돼.
 “..뭐, 일단 내용은 잘 알겠어. 그래서 상대는?”
 -상성이 꽤 잘 맞아. 그 흔치 않다는 백호랑이 띠인 놈.
 “그리고?”
 -너처럼 천재라고 불리고 있는 녀석이랄까. 소개받은 사람이라 나도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몰라.
 “....잘은 모르겠지만 천재라고 불리는 거라면”

 우선 싸가지는 없는 녀석이겠네. 핸드폰 너머로 울리는 굵은 목소리에 지후는 한참동안 킥킥거렸다.

 

 그를 사랑하는 자가 있는 이상, 주님은 아직 우리 곁에 계신다.

 그리고 영원히.

 

 

 

 

 

 

 

 

-

 

뭘 쓰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베드로=솔레이 언급하는 자=그레이

언제 또 된다면 다음 이야기 이어야지.. 



출처: http://seagullaxe.tistory.com/40 [쓰레기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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