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호원/해적버스 2018. 8. 24. 23:29

[루라님 생축♥] 끝

루라님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해적물이 너무너무 보고 싶었는데 표현력이 이정도밖에 되지 않네요.. ㅠ0ㅠ)9

 

 

 

 

 

 

확신한 건데 이 새낀 암만 생각해도 정상이 아니다.


팅팅 불어터진 호원의 얼굴을 보며 주명은 생각했다. 지금은 동료들 사이에 모여 왁자지껄 떠들며 웃고 있다지만, 불과 40분.. 아니 30분 전까지 이 남자는 거의 실신할 정도로 눈물을 쏟아냈다.


사람 몸의 대부분은 물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쯤은 안다. 그래서 주명은 생각했다. 오늘 저 놈이 흘리는 눈물은 자기 몸 안에 있는 수분을 쭉쭉 다 빼가 언젠가 눈물에 말라 비틀어 죽을 것이라고. 그렇게 펑펑 울며 자기 자신에게 칼을 겨누게 될 거라고, 주명은 생각했다.


그 누구도 호원에게 칼을 겨누지 못했음을 안다. 그는 주명같은 선원에게 있어 세계같은 남자였으며, 그들의 전부였다. 그들의 모범이 되어야 함을 알기에 적이 자신에게 칼을 겨누는 것을 참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칼등을 뽑는 기세라도 보인다면 먼저 목을 졸라 죽였다. 칼날이 베어 있는 발로 서슴없이 이미 숨을 거둔 타인의 몸을 짓밟는다. 아무 감흥 없는 얼굴로. 그게 차호원이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죽음을 넘보지 못하게 할, 우위에 서있는 남자.


그래서 주명은 생각한다. 저 놈을 죽일 수 있는 건 저 놈 자기 자신밖에 없다고.


요컨대 바로 오늘처럼, 컥컥 막힌 숨을 삼키며 자기 자신을 궁지로 몰아 넣은 것을 보며 죽음을 선택한다면 자기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밀어넣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어쩌면 호원이 조금 더 극악적으로 생각했다면, 오늘이 이 남자의 마지막 날이었을 지도 모른다. 선원들의 날이 마지막이 되는 것처럼.
하지만 결국 오늘은 차호원의 마지막이 아니었다.


“명아!”


벽에 기대 서있기만 한 주명의 시선을 눈치 챈 건지 호원이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그 옆으로 다른 선원이 호원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꺽꺽 웃어댄다. 호원이 따라 웃으며 소리쳤다.


“한참 재밌는데 거기서 뭐해! 빨리 와!”


“...”


재밌다라.

 

확실히 조금 전까지 울던 것과는 달리 지금의 호원은 즐거워 보였다. 속도 없이 환하게 웃으며 주명을 반긴다. 도저히 몇 시간 전까지 살육을 무차별로 행하던 남자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도저히 몇 십여 분 전까지 오열하고 있던 남자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재밌다. 즐거운 시간.


가만히 서있는 주명을 대신해 신입 선원이 쪼르르 다가와 커다란 맥주 잔을 건넸다. 잔을 건네는 아이의 손이 살짝 떨리는 것이 보이자 주명은 가만히 보던 것도 잠시 잔을 받아들였다. 잔 안에서 출렁이는 노랑빛 맥주가 꼭 노을에 진 파도처럼 흔들렸다.


주명은 맥주잔에 입을 가져다 댔다. 입안으로 넘겨오는 차가운 쓴맛에 살짝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테이블 너머 선원들과 깔깔 웃고 있는 호원을 보니 매섭던 붉은 눈이 부드럽게 풀어진다.


‘명아. 너무 일찍 바다에 갔어. 너무 일찍..’


자신의 키에 반도 되지 않던 작은 선원의 몸을 끌어안은 호원이 흐느끼며 말한다. 주명은 대답 대신 허리춤에 찬 칼을 고쳐 잡으며 그를 식은 눈으로 내려다 보았다.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은 아이의 몸을 끌어 안으며 호원이 울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타인의 피를 뒤집어 쓴 야수가 된 채로 어린 천사를 끌어안았다. 아이의 몸을 붙잡은 호원의 손이 발발 떨리는 게 보인다. 마치 떨어지면 안 된다는 양 강하게 부여잡고 있었다.


끅, 끕. 애탄 울음소리를 삼키며 주명은 눈을 감았다. 사람을 베며 웃고 있던 남자는 베어진 사람을 위해 울고 있다. 이 얼마나 모순적일까.
주명이 눈을 깜빡였다. 피칠갑을 하고 있던 그의 선장은 이제 깨끗하고 하얀 옷을 입고, 맑디 맑은 하얀 미소를 지으며 다른 이들과 섞여 있다. 주명은 다시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네가


누군가의 기일이 ‘재밌다’ 라고 표현한다면


나 또한 그 ‘즐거움’ 에 섞이지 않으면 안 되겠지.

 

 

*

 

 

"언젠가 향해가 끝날 날이 오겠지?"

 

일찍이 해가 뜰때 시작했던 전투가 마무리 되면, 산처럼 쌓인 시체를 태워 바다에 내보냈을 땐 해가 저물어 노을이 졌다. 잔치를 마무리 하고 나오면 해는 어느새 저물어 있었다.

 

호원은 배의 간판 위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있는 모습에 주명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다 입을 열었다.

 

"그렇겠지. 꼬부랑 할아버지 될 때까지 계속 하려고?"

 

"뭐 어때. 아기 때부터 바다에 있었는데."

 

호원은 태어난 곳도 바다 위에서였다. 육지를 밟은 시간 보다 파도에 몸을 맡기고 배에 실은 날이 더 많았다. 그런 그가 바다에 나올 생각을 해보자니 딱히 조각이 맞추어 지지는 않았다. 

 

그는 바다가 아니면 안 되는 남자였다. ..하지만 언젠가는,

 

"끝이 오겠지."

 

"에에~.."

 

"에에~.. 가 아니지. 늙어서까지 해적질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너도 언젠가 뒤를 물려줘야 하는 날이 올 걸. 주명이 덧붙여 말했다. 호원은 대답 대신 하늘을 올려다 본다. 까만 하늘 위로 별이 촘촘하게 박혀 있다. 호원은 손가락을 올려 별의 개수를 가늠해보다가 다시 팔을 내렸다. 

 

"아니. 아마 못하겠지." 언젠가 바다 위에 서지 못할 날이 온다. 매일 옆에 서있던 부하가 사라지고, 새로이 배에 침범한 적이 다시 바다에 내보내지는 것을 지켜보며 호원은 생각했다. 

 

바다는 넓지만 끝은 있다. 한계까 있다. 언젠가 끝이 난다. 언젠가. 호원이 고개를 내렸다. 그를 따라 주명도 아래로 시선을 내린다. 밤바다의 거친 파도가 철썩거리는 소리를 내며 배의 등판을 부딪쳐간다. 간판에 엉덩이를 붙인 채 호원이 다리를 흔들자 참다 못한 주명이 입을 열며 경고했다. "하지 마라. 떨어진다 너." 

 

"싫다. 끝나는 거."

 

호원이 고개를 뒤로 쭉 빼고선 주명을 보며 웃었다. 싫다는 것 치곤 활짝 웃는 얼굴에 주명이 의아한 듯 눈썹을 치켜 세웠다. 

 

"주명아."

 

"말해."

 

"언젠가 끝이 온다면, 그때도 옆에 있어줄 거야?"

 

"..."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다. 응? 있어줄래? 끝이 온다는 말은 바다를 내려와야 한다는 것, 호원에게 있어 죽음을 뜻하는 것일 텐데. 그는 참 욕심이 많았다. 죽을 때까지 옆에 있어 달라는 거냐. 주명은 난간에 팔을 걸쳐 얼굴을 묻었다. 얼굴을 가린 탓에 표정을 알 수가 없어 호원의 입이 오리발처럼 나왔다.

 

"뭐야. 싫어?"

 

"싫고 나발이고."

 

응? 하고 반응한 사이에 주명이 고개를 올렸다. 눈 꼬리가 환하게 휘어 올라간 모습을 보며 호원은 잠시 말문을 잃었다. 어두운 밤하늘도 이렇게 밝게 빛이 날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할 때에 그가 입을 열었다. 

 

"싫다고 말하면 네가 응, 하고 대답할 거냐?"

 

호원이 두 눈을 천천히 깜빡이다가 이내 작게 웃었다. 

 

아니. 내가 미쳤다고 그러겠어?

 

하여간. 고집불통 선장인 건 여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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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적AU로 앤오님이랑 썰푼거.

* 묘.. 묘사 언어 입강간 주의....





 바다는 말하지 않기에 굶주린 남자들을 불태운다.

 욕망, 오로지 그것을 위해 뛰어든 자들이었다. 남자는 손쉽게 자신처럼 돈과 마약, 그리고 욕망에 찌든 자들을 긁어 모으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다음은 쉬웠다. 육지처럼 정해둔 법이 없는 자유로운 바다는 그들이 무슨 짓을 벌이던 간에 늘 공평하게 대하며 입을 모아 닫았다. 남자는 그 부분을 사랑했다. 예를 들면 이렇게 눈앞에 벌벌 떠는 어린 소년을 죽이기 직전인데도 대답이 없다는 점을 제일 만족스러워했다. 사, 살려주세요... 늘 같은 레파토리로 많은 자들이 남자 아래에서 벌벌대며 목숨을 구걸한다. 남자가 가장 쾌락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살려달라는 소년의 목을 붙잡고 천천히 숨을 죽인다. "아, 아으...아..." 괴롭게 숨을 토해낸 소년이 서서히 죽어갈 때 즈음에 부하들에게 받아낸 칼로 아이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낸다. 눈깔부터 파먹어줄까, 응? 소년이 비명을 질렀다. 그래- 그 은밀한 다리 사이부터 갈라놔야지. 남자의 조롱에 온 동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남자는 낄낄 괴기한 입 꼬리를 올리며 아이의 목구멍에 칼을 찔러 넣었다. 부들부들 떨어대던 소년은 곧 숨을 죽였다. 쾌감에 온 몸이 전율했다. 그래- 이 맛이지. 바다는 여전히 답하지 않았다. 남자만의 세상이었다.




* * *




 "뭐? 누구?"

 "어제 대장이 죽인 그 꼬맹이 있잖슴까- 거, 같이 향해하고 있던 근처 해적선네의 꼬맹이었다네유."

 "그래서 어쩌라고. 씨발, 한 판 붙재?"

 "저, 저한테 뭐라 하지 마시라여 대장! 그, 그랬다면 진작에 저 판에서 칼들고 쳐들어왔을 거 아님까."


 잠깐 얘기 좀 하자네여. 찌질이 부하새끼 한 놈이 우리만의 아지트 너머로 떠있는 해적선을 가리키며 말했다. 흐음, 남자는 풍성한 수염을 문지르며 코를 훌쩍였다. 어젯밤일? 별로 큰 감흥도 없던 일이었다.

 부족한 물품들을 채우러 육지에 잠깐 들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남자들과 같이 육지에 배를 세운 해적단이 있었던 것이고. 설마 함께 논 꼬맹이가 그쪽네 뱃잡이 일줄은 누가 생각이야 했겠는가. 벅벅, 나른함에 작게 하품을 늘어뜨리며 남자는 사타구니를 벅벅 긁었다. 감흥도 없는 일이었다. 당장 꺼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뭐, 얘기를 안 할 수도 없을 노릇이지. 자비로우신 이 몸이 참아야지. 남자는 순순히 자리를 옮겼다. 상대편쪽 배에서 미리 자리를 마련해준 모양인지 배를 넘어가기 위한 가판대도 세워져 있었다.


 '배는 우리 크기랑 똑같고..... 고만고만.. 싸워도 딱히 피해는 없을 놈들 아냐?'


 흥, 그래봤자 쓰레기들이지. 가판대를 넘어선 순간 남자를 노려다 보는 일렬들의 선원들 시선들에 잠시 흠칫 떨긴 했지만 남자는 침착한 척 콧웃음을 쳤다. 나름 위엄은 있어 보이려 했던 모양인지 남자가 향하는 길을 비워둔 채 일렬로 선원들이 쭉 서있었다. 그 끝은 해적 돛대가 달려 있는 쪽이었으며 커다란 금빛 의자가 세워져 있었다. 거기에 앉아있는 왕좌의 주인은 누구겠는가, 남자처럼 자신만의 배의 주인이며 바다의 자유인인 그들의 대장이었다.


 하지만, 조금의 흠이 있군. 남자가 참지 못하고 스멀스멀 기분 나쁜 입 꼬리를 올렸다.

 

 설마- 저게 진짜 캡틴이야? 주변에 있는 호리호리한 남창놈 하나 잡아다 둔 게 아니고? 장난치지 좀 말지 그래. 남자는 그들의 배에 발을 딛으며 이내 꺽꺽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싸하게 식은 커다란 배 안에 남자의 웃음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왕좌에 앉아있는 대장이란 놈은 순 어린아이 장난하는 것 마냥 크지 않은 체격의 청년이었다. 육지에 가면 널려있을 그런 흔한 개미 새끼 한 마리 말야. 바다의 세계에선 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청년은 육즙한 근육을 가지지도, 거대한 덩치를 가지지도, 자랑스러운 흑빛 피부색을 가지지도 않았다. 이 바닥에선 조금 희귀한 동양인의 얼굴로 흑발의 머리카락과 매일 태양과 등지고 서있기엔 짙은 피부를 가져 보이지도 않았다. 황인족인가? 잡아다 팔면 꽤 값은 쳐주겠군. 남자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저 가만히 자신을 응시하는 까만 눈동자는 나름 날카롭게 바라보고 있었으나 헛웃음나는 일이었다. 그마저도 왼쪽 눈은 검은색 안대로 가려져 있었다. 저거면 고양이만도 못한 애새끼지. 그저 있어 보이는 거라곤 어깨 위에 걸쳐 입은 코트는 곳곳에 비싸 보이는 보석이 박혀 있었고 나머지 옷도 나름- 남자가 호원을 위아래로 훑어 보며 입맛을 다셨다. 길게 뻗은 다리를 꼬아 올린 청년의 자태는 나름 봐줄만 했다. 뭐, 거긴 나름 합격점으로. 


 으쓱 어깨를 들어올린 남자는 들고 있던 술병을 멋대로 바닥에 떨궜다. 주변의 날카로운 시선이 다시 꽂혔지만 알반가? 그저 성큼성큼 아무렇지도 않게 왕좌에 앉아있는 어린 애새끼에게 다가갔을 뿐이다. 어느덧 바로 코앞에 다가왔다. 니가 날 불렀냐? 초면에 무례한 인사였지만 남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청년은 입을 열기 전에 여전히 관찰하듯 남자의 얼굴을 들여다 볼 뿐이었다. 대답을 하지 않으니 조금 신경질이 났다. 


 "너냐고, 날 부른 바다의 뭣도 모르는 애창렬이."

 "거, 말조심 합시다."


 오자마자 머리 뚜껑 뚫리고 싶냐. 옆에 청년과 함께 조용히 서 있던 남자가 살벌하게 입을 열었다. 눈치를 챌 기색도 없이 남자의 옆 대가리 쪽에는 총구가 꽂혀져 있었다. 남자는 작게 숨을 들이키며 눈동자를 옆으로 굴렸다. 희귀한 동양형 남창이 둘이나 있었네. 조금 헝클어진 검은 흑발을 날린 또 하나의 청년은 끝에 살짝 꽁지 머리를 묶고 있었다. 옆 보스와 같은 왼쪽 안대를 차고 있었지만 흑안의 청년과는 달리 이 청년은 불행을 상징하는 붉은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도 나쁘지 않다, 보석같고- 뽑아다 팔면 나름 값비싸지 않겠는가. 소매를 걷어올린 어깨 위는 살짝 피부가 탔지만 역시 바다의 우리들만큼은 따라가지 못했다. 여전히 얍실하고 약해 보이는 강아지들이었다. 눈앞에 보스보다야 못했지만 이 배의 나름 위치는 되어 있던 모양인지 총구 끝의 은빛색이 마치 남자의 눈엔 금덩이로 보였다. 좋은게 여기 꽤 많구만. 이런 놈이라도 보스라고 위협하는 꼬라지가 조금 귀여워 보일 정도였다. 남자는 다시 어깨를 으쓱였다. 슬쩍 손을 올려 미안하다는 의사도 보냈다.


 "하- 내가 조금 입방정이 심해서 말야. 술도 마셨고."

 "-괜찮아요."


 별로 아무렇지도 않고. 벙어리인 줄로만 알았던 보스가 입을 열었다. 나름 중저음이 목소리는 꽤나 들어줄 만 했다. 남자가 슬쩍 시선을 그에게로 옮기면 캡틴 청년은 조용히 입 꼬리를 올리며 웃고 있었다. 

 "나 괜찮으니까 다들 그것들 내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눈치 채지도 못했었는데 남자의 뒤에서 스르륵, 철컥대는 수많은 기계음들과 칼가는 소리가 울리다 멈췄다. 씨발... 어느 사이에? 살짝 당황한 눈초리의 남자가 눈동자를 떨었고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청년은 신기한 듯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마치 10대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당신인가요? 아, 초면에 죄송합니다! 전- 여기 배 선장 차호원이라고 합니다. 에헤헤, 멋대로 위협해버려서 죄송해요-"

 "미친 차호원 쪼개지 말라니까.."
 "아- 큼큼.... 미안미안."


 태연스러운 두 아이와의 대화는 천연덕스러웠다. 날카로웠던 이미지의 얼굴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호원이란 캡틴 청년은 수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고 그를 보좌하는 다른 청년은 한심스러웠던지 다른 동료들과 함께 푹푹 한숨을 내쉬었다. 뭐, 뭐야.. 내가 괜히 긴장한 건가. 하긴, 여태껏 저지른 업적을 생각해보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괜히 몸이 으쓱여졌다. 남자의 광대가 슬금슬금 올라갔다.


 "사람을 초대한 예의가 이따구라 실망스럽군."

 "죄송해요! 다음부턴 조심할게요. 제가 말했으니 이제 얘네는 아무짓도 하지 않을 거니까... 제 물음에 몇 가지만 답해주시면 돼요."


 알겠죠?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맑다. 캡틴이라고 보기엔 역시나 아이다운 얼굴이었다. 남자는 기세등등한 얼굴로 이 새끼를 어떻게 조리해 먹을까 생각중이었다. 대기해 놓은 부하들은 널리고 널렸다. 동양인들은 비싸게 팔리니 둘이면 두 배. 치렁치렁하게 걸린 옷을 뜯어다 벗기면 세 배. 여기 있는 인간들을 모두 바다의 밥으로 먹이고 배를 먹어버리면 네 개. 군침이 돌았다. 호원을 내다보며 남자가 마른 침을 삼켰다. 어젯밤에 이 인연을 만들어다 준 쓰레기에게 잠시나마 감사함을 느끼며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봐도 뻔하지만, 물어 봐. 못해 줄 답은 없지."
 "어제 빵을 사러 간 저희 배 귀여운 아이가 사라져서요. 여기 빵 맛있다고 그렇게 사랑스럽게 웃던 아인데... 없어져버려서 모두가 찾으러 종일 돌아다녔는데도 못 찾았거든요. 그때 사람들한테 들었어요. 당신과 비슷한 얼굴을 한 남자가 아이를 끌고갔다고."


 그게 사실인가요? 호원이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고 남자는 동시에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호원의 배에 남자의 껄적대는 웃음이 넓게 퍼졌다.


 "그래- 그래! 크하핫, 내가 데려갔지! 걸어가는 폼이 요상스러워서 짜증이 나서 말야!"

 "그랬구나- 그 아이가 다리가 조금 불편해서요."
 "아아! 그래서 먼저 분질러줬지. 꺽꺽 우는게 볼만 하더군."

 "....."

 "시끄럽게 울길래 목도 졸라주고, 단 한 손으로 말야."


 자랑하듯 굵은 팔쭉을 호원에게 쑥 내밀며 남자가 말했다. 어땠는지 궁금하진 않아? 슬쩍 권유하는 말투를 건넨 남자가 두텁한 손을 호원의 목에 가져다 올렸다. 커다란 손이 단숨에 얇은 목을 집어냈다. 하지만 깡은 있던지 호원은 눈 한 번 끔뻑대지 않으며 남자를 응시했다. 이런 식으로 그 아이의 목을 졸랐나요? 청년은 조용히 자신의 목을 조르는 남자의 손목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손가락 사이로 여러 보석 반지가 박혀 있었다. 탐이 난다 탐이 나. 남자가 걸쭉한 눈으로 호원을 내려다 보았다.


 "그래- 몇 초도 버티지 못하더군. 왜, 너도 그렇게 될까 두렵냐?"

 "....! 서, 설마 날 죽이려는 거에요? 그 아이를 죽인 것도 당신이지!"


 금세 시퍼렇게 얼굴이 질린 호원이 되묻자 남자가 기름진 입술을 달싹이며 웃었다. 거 당연한 걸 뭘 자꾸 묻나. 곧이어 슬쩍 호원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대며 속삭였다. "걱정 마, 너나 저 새끼나 가지고 놀아야 재밌지 죽이는 건 아깝거든." 나름의 남자다운 협박이었다. 아마 제대로 된 협박이었을 것이다. 겁에 질려 아랫도리에 질질 싸는 건 아냐 몰라. 키들대며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렇구나. 호원이 작게 웅얼댔다.


 "정말 당신이 죽인 거구나." 어느새 차갑게 내려앉은 호원의 목소리가 남자의 귓가에 감돌았다. 동시에 꽉 붙잡듯 호원의 양 팔이 남자의 어깨를 감쌌다. 한 번 가볍게 몸을 틀어 올린 청년은 곧이어 긴 굽을 세워 남자의 배를 걷어찼다. 뿌직, 소리를 내며 남자의 살틈이 굽에 촘촘하게 박혀진 칼날에 베여 피가 뿜어져 나왔다. 아아아악!!!! 비명을 지른 남자가 그대로 바닥에 돼지마냥 데굴데굴 굴렀다. 피가 굽틈으로 새자 슥슥 더러운 걸 밟았다는 것 마냥 호원이 핏방울을 튀겨냈다. 으음- 곤란한 듯 작게 끙 앓기도 하면서.


 "나 괜찮으니까 다들 손 내리라고- 아차, 저 사람들이 죽일 것 같으면 싸우고... 주명 너도 총 내려."

 "내가 그러니까 얼른 끝내자고 했지."

 "실수로 사람 착각한 거면 어떡해? 엄청 실례잖아!"

 "이럴 때만 착해 빠졌어요..."


 쯧쯧, 혀를 끌끌 찬 주명이 이내 양 손에 쥔 총구를 다시 내렸고 이를 만족스럽게 바라본 호원이 슬쩍 왕좌의 자리 틈에 끼워져 있던 칼을 손에 쥐었다. 가지고 놀듯 허공에 칼을 던졌다 탁! 받아내며 잠시 흥얼거린 호원이 배를 붙잡고 힉- 힉 더러운 숨을 토해내는 남자에게로 다가가 몸을 쭈그렸다.


 "아파요?"

 "읍.... 커억.."
 "우리 윌도 아팠을 텐데."


 그정도로 아파하면 어떡해요... 손에 착 감기는 칼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 보던 호원이 활짝 웃었다. 뭐가 그리 기분 좋은지 입 꼬리를 올리며 실실거렸다. 맑은 청년의 얼굴이 칼틈 너머로 비췄다.


 "난 만약 사람을 착각한 거면 당신을 위해 뭐든 해줄 수 있었을 거에요. 날 팔아 넘긴다고 했었죠?"

 "윽........우으윽..."

 "아이만 무사한다면 뭐든 줄 거야. 보석? 필요 없으니 가지세요. 보물들? 저-기 창고에 있으니까 마음대로 가져가세요. 배? 원한다면 드려야죠 뭐. 샌드백? 나 맞는 거 엄청 잘 하는데! 거래? 노예? 남창? 으음.. 조금 힘들 것 같긴 해도 다리 벌리는 연습은 해보지 뭐. 대신 다른 저 동양인은 절대 안 돼요. 하기만 해봐. 팔아넘기는 것도- 나만이면 족해."


 우리 아이 하나 구하는데 내가 뭘 못하겠어. 키득키득 조금 정신이 나간 것 마냥 웃어 제끼던 호원은 어느 순간 뚝- 웃음을 멈췄다. 그랬는데, 정말 다 해줄 생각이었는데


 "죽였다며."

 "커억..."

 "목 졸라 잔인하게 죽였으니 그대로 전부를 드릴 수가 없겠네요 아저씨."


 요란스레 칼을 가지고 놀던 호원이 이내 손잡이를 바로 잡더니 쑥 아래로 내리 꽂았다. 남자의 사타구니였다. 쩌억, 갈라지는 소리에 남자가 온 비명을 질러내기 시작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그토록 바라던 부하는 내려오기는커녕 주변 선원들이 낄낄대며 웃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괴물 마냥 무표정인 얼굴로 칼틈을 비틀어 남자의 다리 사이를 갈라 놓았다.


 "내가 하나만 얘기해 줄까요."


 꿀렁꿀렁 남자의 다리와 배 사이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웅어리 져 바닥을 적셨다. 호원이 가만히 입술을 달싹이며 남자가 그랬듯, 그의 귓가에 조용히 숨을 내뱉으며 속삭였다.


 "바다를 뭣 모르는 애창렬은 너거든."


 아아, 바다는 자유롭다.

 이렇게 비명을 지르는데도 여전히 침묵만을 유지하니까. 소년은 마치 악마같았, 아니- 악마였다. 죽어가는 남자를 뭐가 그리 좋은지 흐뭇하게 내려다보며 칼을 들쑤셔 천천히 몸을 박아넣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그치만 아저씨가 먼저 시작했으니 내가 할 수밖에 없잖아. 흐릿해진 시야 너머 마지막에는 호원이 작게 눈물을 흘린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들 남자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죽어가는 자신을 위해 자신을 죽인 남자가 운다고 해도, 무슨 감흥이 있겠는가.


 그저 온 몸이 피투성이로 변해가는 걸 처참하게 느끼면서 남자는 죽어가야만 했다. 문득 죽어가는 와중 생각했다. 이 새끼는 쾌감을 느꼈을까? 자신은 자유롭게 바다에 몸을 맡기며 자신이 저질러온 만행에 큰 쾌감을 느꼈다. 그렇다면- 이 소년도? 자신처럼 될까? 조용한 바다에 몸을 맡기며?


 시체가 답을 알 리가 없지. 누군가 차갑게 답을 던져 놓은 것 같았다. 호원이 남자의 얼굴을 갈라 놓은 것을 끝으로 남자의 자유는 사라졌다.





* * *




 "난 언젠가 지옥에 갈 거야."

 "넌 아직도 그 소리냐."


 모든 싸움이 끝난 뒤 일처리는 여유로웠다. 죽어간 시체를 한 곳에 쌓아두고 천천히 한 곳 지점에 떨어트리기 시작한다. 풍덩! 소리를 내며 천천히 바다 속으로 빠져드는 시체는 곧 물고기의 저녁식사 만찬이 될 것이다. 이따금 상어가 찾아와 모두를 삼켜 버릴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누군가는 배 터지게 먹고 있겠지. 그 다음엔 남은 동료들이 털어낸 배에 쓸만한 것들을 담아 옮겼다. 약육강식의 익숙한 세계였다. 바다란 곳은. 잔혹해도 여전히 살아가야만 했다. 주명은 마지막으로 바다 아래로 떨어지는 자신의 동료들을 내다보다 곧 그 앞에서 조용히 몸을 수그리고 있는 캡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조용히 숨을 죽이며 손을 모으고 있었다. 전투 후의 묻어낸 피투성이의 제복과 피투성이의 살결을 닦아낼 생각도 없이 그저 조용히 손을 모으며 눈을 감았다. 더덕더덕 여러 명의 피가 묻은 손은 덜덜 떨렸고 선장의 눈엔 의미모를 눈물들이 흘렀다. 입술은 주명이 이해하지 못할 언어로 괴상한 기도들을 담아낸다. 저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이때만큼은 덧없이 작아보이는 캡틴의 등자락에 주명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게 몇 시간 내내 무릎을 꿇고 앉아있던 호원은 밤이 되고 나서야 천천히 고개를 틀어 올린다. 말라 붙은 눈물자국과 핏자국이 마치 그와 한 몸이 된 것 같았다.


 주명아. 계속 지켜 보고 있었다는 걸 눈치 챘던 모양이었을까. 호원이 고개를 돌려 주명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 꺼낸 이야기. 난 언젠가 지옥에 갈 거야. 우스갯소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적어도 좋은 곳은 아니지 않을까."


 랄까, 난 천국 지옥도 안 믿거든. 귀를 후벼파며 주명이 대충 넌지시 말을 던져도 호원은 뭔가에 홀린 것 마냥 바다 너머를 내다 볼 뿐이었다. 


 "그럼 아이는?"

 "..."

 "윌은 어디로 갔을까."


 이렇게 조용한 바다의 세계에서 그 아이는 안식을 되찾았을까. 주명에게 물어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알고 있으면서도 뻔하게 묻는 캡틴의 의도를 여전히 이해할 수 없던 주명은 인상을 찌푸렸다.


 "어디든 갔겠지! 요즘 세상이 말도 안 되게 엉망이라 갈 곳은 넘쳤을 걸. 왜, 해적왕이 되겠다고 설치는 놈들도 그렇게 많잖아. 넌 신경 쓰지 마. 거물이 일일히 하나하나 신경 쓰다 보면 머리 아파."

 "....그치만"

 "내 말대로 해."


 알았어? 대답을 요구하는 주명의 목소리에 호원이 숨을 천천히 들이쉬었다 내뱉었다. 앙 다물어져 있던 입가가 올라가 이내 주명을 보며 미소지었다. 그럼 이거 하나만 알려주라. 그 고집에 결국 주명도 두손 두발 다 들었다. 따라 미소지으며 양 손을 허리가에 올린 주명이 어디 말해 보라는 양 캡틴을 응시했다.


 "갈 곳이 넘치고 넘친 세상이라고 해도..... 넌 나랑 같이 가자."

 "...."

 "그 어디라도. 같이 가자."


 알았지? 흰 제복 사이로 더덕더덕 묻은 피와 움푹 패어든 상처투성이의 꼴은 꽤나 우스웠다. 그저 약한 듯 보여도 강한 이 남자는 배의 선장이자 주명과 모두의 주인이었다. 주명은 입을 벌리기 전에 잠시 붉은 빛이 감도는 눈으로 조용한 밤바다를 내다보았다. 호원은 이 바다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몇 번을 내다보든 같은 생각을 할 수도, 그의 생각을 알아낼 수도 없을 것이다.


 바다는 침묵을 한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니까. 그러니 그 대답은 우리가 찾는 거겠지.


 "명령한다면 뭐든."


 그까짓거 같이 가주지 뭐. 이미 한 배에 탄 사이였다. 호원과 주명이 서로를 보며 낄낄대며 웃었다. 잠잠한 밤바다의 철썩대는 파도소리가 배 안을 흔들며 즐거이 노래를 불렀다.








으으 입강간 요소 묘사 많은거 죄송합니다 앤오님..



    



아주 귀여운 아기 물고기를 낚아 올렸었다.


“귀여워....!”

“하하, 도련님처럼 작지만 강해 보이는 아기구만요.”


조그맣지만 마음에 드십니까? 응! 펄떡대며 손 안에 작게 자리 잡은 아기 물고기가 당시엔 왜 그렇게 귀여워 보였는지 모르겠다. 작은 아가미를 뻐끔대며 입을 벌렸다. 어린 호원이 환하게 웃으며 좋아하자 물고기를 낚은 선원은 흐뭇하게 웃으며 아이의 검은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호원은 작은 물고기에 온통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


“저기- 이거, 어항에다 담아서 키워도 돼?”

“물론이죠! 작은 유리병 하나 구해다 오겠습니다.”


잘 키워 보십쇼. 상냥하게 웃는 선원의 얼굴을 바라보던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서라 아서.” 그때 그 사이를 끼어든 건 비범한 차림새를 한 늙은이였다. 검은 안대를 끼운 채 담배곰방을 뻐끔대며 피우다 둘 사이에 냉큼 자리를 잡았다. 구루빛 근육이 자리 잡은 팔뚝은 더덕더덕 칼로 베인 상처가 선명했으며 어깨부터 팔꿈치까지는 커다란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친절하게 미소 짓던 선원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지더니 푹 고개를 숙였다. 캐, 캡틴 오셨습니까. 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가 호원에게도 전해졌다. 선원이 그럴 만도 했다. 어린 호원도 그 기에 잔뜩 눌려 쭈뼛대고 있었으니 말이다. 할, 할아버지... 강인한 그 늙은이는 호원의 할아버지였다.


노인은 흥- 콧김을 내뿜더니 이내 호원이 손안에 담고 있던 아기 물고기의 꼬리를 잡아다 바닥에 떨어트렸다. 아! 하는 사이에 바닥에 떨어진 물고기를 노인이 발굽으로 짓밟았다.


“할아버지-!”

“잘 봐둬라 원아.”


놀라 울먹이는 손자를 익숙하게 달래며 슥슥 머리를 쓰담던 노인은 곰방대를 바닥에 툭 던져 버리더니 천천히 발에 힘을 밀어 넣었다. 힘없이 파닥대던 물고기가 벌벌 떨더니 이내 지느러미를 축 떨어트렸다. 잔잔히 짓밟은 매끄러운 피부가 뿌직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숨풍숨풍 솟아 올라오는 핏덩이와 함께 얇은 내장이 튀어나왔다. 역한 기분에 호원이 입을 틀어막았다. 창백한 손자를 태연스레 옆에 두며 가볍게 물고기를 밟아 죽인 노인은 만족스럽게 미소지었다.


“이런 조무래기만한 걸 어항에다 넣어서 뭐로 써먹으려고? 커다란 범고래를 잡기는 모할망정, 넌 자꾸 내게 실망만 안겨주는구나.”

“그- 그치만.. 난 이게 좋았..”

“약하게 태어나 약한 자의 손에 잡혀 작은 어항 속에 약하게 태어나봤자 뭐하게? 원이 넌 그런 걸 신경 쓸 그릇이 아니다. 좋아한다고 네가 손에 잡아봤자 결국 네 손에 죽어갈 뿐이지. 잡아도 나중에 성체가 되어서 잡아라.”


적어도 이런 꽁치 같은 녀석보단 상어 같은 큰 놈이 좋다만. 노인이 혀를 끌끌 차며 말하자 훌쩍이며 그런 그에게 눈치를 보던 호원이 슬쩍 질문을 던졌다. 그럼 그 큰 놈은 또 뭐하는데...? 손자의 귀여운 질문에 허- 숨을 뱉어낸 할아버지가 금방 답을 던졌다. 그거야 당연히


“잡아다 먹어야지.”

‘....그래선...’


그래선 빨리 죽이는 거나 늦게 죽이는 거나 똑같잖아...

시무룩해하는 호원의 기분은 아는지 모르는지 노인은 껄껄 웃어대며 작은 손주를 품에 안아 들었다. 그렇게 물고기가 좋더냐? 그럼 내가 아주 큰 놈을 잡아다 주지! 툭툭 아이의 등을 두들기며 선채 반대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할아버지의 품에 안긴 어린 호원이 볼 수 있는 건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덜덜 떨던 상냥한 선원의 모습과 바닥에 처참하게 짓밟혀 터져버린 아기 물고기의 모습이었다.


할아버지, 그릇이 큰 사람은 약한 자들이랑 있으면 안 돼?

당연하지! 특히 원이 넌 말이다. 장차 나와 현의 뒤를 이을 녀석이 그런 조그마한 거에 신경을 쓸 터가 있나. 강한 것만 쥐어 잡고 강하게 커라 원아. 네 길을 방해하는 것들은 모두 밟아 죽여라.

...그치만 난 죽이기 싫어.

그렇지 않으면 네가 죽어.


바다는 육지의 정석이 통하지 않아. 그만큼 자유롭고 그만큼 조용한 바다는 왕좌를 비운 채 우리들의 자유를 지켜보는 거야. 담담하게 말하던 할아버지는 어린 호원의 뺨을 매만지며 사랑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넌 그 자리에 당당히 앉는 거야.


“네가 가진 그 모든 것을 이용하고 버리며 그렇게 가장 높은 자리에 앉거라 원아.”


할애비는 그것만으로도 족해. ‘그것만으로도’? 전혀 작게 느껴지지 않는 할아버지의 야망이 호원에겐 부담으로 다가왔다. ...나는 싫어. 담배 냄새가 나는 할아버지의 품에 고개를 파묻으며 어린 소년은 훌쩍댔다. 나는 아무것도 버리고 싶지 않고 죽이고 싶지도 않아. 약한 것도 강한 것도 모두 안고 가고 싶은데....



* * *



하지만

죽이지 않으면 , 내가 죽을 수밖에 없다면


‘어쩔 수 없나....’


챙! 소리를 내며 칼날과 칼날이 부딪혔다. 호원의 눈앞에는 금방이라도 잡아 찢어 죽일 것 마냥 으르렁대는 험악한 얼굴이 있었다. 그런 남자를 감흥 없이 바라보던 그는 흐응.. 슥 눈동자로 가볍게 훑다가 칼 손잡이를 잡던 손목을 꺾었다. 일순간 너머의 남자가 비죽대는 게 눈에 읽혔다. 빈틈으로 보였는지 무식하게 힘으로 밀어 넣는 남자가 무방비하게 칼을 앞으로 쑥 내리쳤고 호원은 동시에 맞대던 칼의 힘을 풀고 몸을 옆으로 돌렸다. 내려 때리던 칼날이 가볍게 돌아간 호원의 왼쪽 뺨을 살짝 스쳤다. 툭, 매고 있던 안대가 갈라져 벗겨졌다. 남자의 시선이 그쪽으로 천천히 돌아가자 호원은 다시 칼을 쥐고 남자의 옆구리를 찔러 박았다. 악 소리를 내며 엎어진 남자를 거들떠도 보지 않고 박아 넣었던 칼을 거리낌 없이 뽑아챘다. 주륵주륵 뿜어 나오는 피가 호원의 발굽을 적셨다. 이 모든게 3초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5.. 아니 6명..’


어림잡아 계산하며 호원은 송글송글 맺히는 핏방울을 엄지로 슥 닦아내다 이내 입안에 앙 물며 빨았다. 정신 차리자. 오른쪽에 나돌아 다니는 낡은 칼 하나를 집으면 양 손에 긴 칼이 호원을 감쌌다. 후우- 하아. 가볍게 숨을 몰아쉰 호원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어깨에 걸쳐진 제복이 빠른 움직임에 바람에 따라 크게 펄럭였다. 남자가 된 소년은 귓가에 수많은 소리를 차단했다.


칼과 칼이 맞대는 소리

철컥대며 총탄이 오가는 소리

귀를 뚫는 것 마냥 터지는 포탄 소리

욕이 섞인 사람들의 소리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소리 등등


전부 다 닫아버린다. 어느새 혼자만의 세계에 남은 호원은 굳게 입술을 다물며 팔을 뻗었다. 호원을 향해 두 남자가 칼과 총을 들며 달려왔다. 탕! 소리를 내며 총탄이 호원의 어깨를 스쳤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빠르게 둘 앞으로 달려나간 호원이 칼날을 치켜세웠다. 마지막으로 보인 건 두 남자의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익숙하게 몸을 돌려 양 칼날을 남자들의 목덜미를 베어냈다. 슥 소릴 낼 새도 없이 피를 뿜으며 꺽꺽 숨을 삼키며 남자들이 나가 떨어졌다. 흠뻑 제복에 피를 적신 호원은 천천히 얼굴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숨을 몰아쉬었다.

물론, 이대로 끝날 리는 없다. 아아아악! 고함을 지르며 몽둥이를 뒤를 덮친 해적이 호원의 등을 내리쳤다. 커흑, 뒤를 덮친 큰 과격함에 호원이 잠시 비틀댔다. 남자가 다시 한 번 뒤를 덮쳐 때릴 걸 고려해 쥐고 있던 칼을 콱! 바닥에 박아 넣고 기둥 삼아 기대며 쭉 다리를 뒤로 뻗었다. 허리를 돌려 거침없이 발끝을 해적의 복부에 후려쳤다. 일반 발이라면 그저 호원마냥 비틀댔지만 그는 피를 토하며 갈라진 배를 붙잡았다. -허윽, 억...!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던 남자를 두고 호원은 나머지 한 칼을 쥐고 남자의 어깨에 박아 넣었다 단숨에 뽑아냈다. 벌벌 발작하던 해적은 시체로 남아 바닥에 힘없이 나뒹굴었다.


“후우.. 흡..!” 잔뜩 풀린 눈에 인상을 콱 찌푸리며 호원이 뽑아든 칼날을 달려오는 해적에게 던졌다. 정확히 이마에 꽂혀버린 칼은 더 이상 해적과 함께 움직이지 않았다. 하아... 하으.. 가쁜 숨을 몰아쉰 호원은 이마에서 뚝뚝 떨어지는 자신의 피를 닦아낼 새도 없이 벌떡 몸을 일으켜야만 했다. 이제 넷.


휘청대는 몸을 붙잡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주변에 널리고 널린 시체를 건너뛰거나 짓밟으며 호원은 달렸다. 넌 이제 죽었어!!! 호원의 한계를 읽어낸 두 해적이 칼을 들고 낄낄대며 남자를 뒤따라 달렸다. 죽어? 누가? 붉은 피가 더덕더덕 스며든 발로 가볍게 휙휙 달리기 시작한 호원이 번쩍 몸을 위로 던져 선채 틈에 디딤돌 삼아 발을 밟았다. 손쉽게 올라가는 몸의 반동으로 어깨를 돌려 몸을 반대로 뒤집어 달려오던 두 해적의 얼굴을 쩍 다리를 벌려 발로 후려쳤다. 뻑, 뻐걱! 큰 소리를 울렸고 발굽에 밟아 맞은 두 해적의 얼굴이 갈라졌다. 가뿐히 바닥에 착지한 호원이 비틀대며 뻗은 해적의 손을 짓밟았다. 아아악... 괴로워하는 소리를 흘겨 들으며 다시 천천히, 느릿하게 얼굴 가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수많은 자들이 호원을 죽이고 싶어 했다. 그리고 시도한 결과가 이것. 허억, 헉.. 가쁘게 숨을 몰아쉬던 호원이 딱딱하게 굳은 입 꼬리를 천천히 올려 미소 지었다. 손쉽게 사람들을 죽여 간 것과는 달리 천진난만한 얼굴이었다. 바닥에 널린 수많은 시체들을 내다보며 호원은 웃었다. 잔인해 보여? 그치만 어쩔 수 없었는걸.


죽고 싶지 않아서 죽였다.

그뿐이다.



* * *



 “나 멋있었어?”
 “개뿔.”


 왜 안 뒤지고 있나 했다. 온 몸에 둘둘 붕대를 감고 있는 호원의 등을 주명이 찰싹 때렸다. 알싸한 고통에 파르르르 떠는 호원이 몸을 구부정대며 숨을 들이켰다.


 “아, 씹... 존나 아파..”
 “살아있는 게 용하다 너도. 왜 안 죽어?”
 “꼭 죽으라는 듯이 말한다 주명은!”


 너무해! 주먹을 쥐며 붕붕대던 호원이 이내 흠칫대며 움직임을 멈췄다. ...아프지 너. 으응... 온 몸에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한다. 열 때문인지 치료해둔 곳이 덜 아문 건지 온 몸이 불타는 듯 뜨거웠다. 분명 아까까진 괜찮았는데.. 작게 흐느끼는 호원을 보며 주명이 넌더리가 난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내가 한 말 거짓말 아냐.” 왜 안 뒤지고 있나 했어 정말. 주명은 호원의 조금 전 모습을 떠올리며 소름이 끼치는지 파르르 몸을 떨었다. 잠깐 스친 것들뿐이야. 라는 건 단순한 호원 시점의 착각이다. 아니, 환각? 마치 피에 굶주린 짐승이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양. 어깨에 관통한 팔은 이미 너덜너덜해져 있었고 온 몸에 칼날이 베여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정작 본인은 아무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는지 멀쩡하게 서있었다. 시체들에 둘러 쌓여 태연스레 서있던 호원은 마치 호러물 같았다. 잔뜩 피
에 덮어 씌워져선, 천천히 손등에 묻은 피를 핥아내는 모습 하나하나. 초점 잃은 눈은 무엇을 보고 있던 건지 주명은 알지 못했다.


 “...너 말야..”

 “응?”


 훌쩍대던 호원이 주명의 부름에 확 고개를 들어 올리며 눈을 반짝였다. 굶주렸던 짐승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강아지같다............... 진짜 같은 사람 맞아? 팔짱을 끼고 내려다보던 주명이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싸우는 방식 좀 뜯어 고쳐라. 매번 싸울 때마다 이 꼴이야.”
 “아얏”


 툭, 뺨을 건드리기만 해도 따가웠는지 호원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은 뺨을 매만졌다.


 “그치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주명이나 다른 애들이 다치잖아.”
 “나도 저 녀석들도 못지않게 잘 싸우거덩? 매번 네가 먼저 참견하니까 이 꼴 나는 거 아냐.”
 “그치마안- 내가 먼저 죽이면 뒤질 일도 없고, 무엇보다 주명이 안 싸우잖아.”


 난 누가 날 위해 다치면서 죽어가는 게 제일 싫어. 호원은 단호하게 말하며 냉큼 주명의 허리를 감싸 끌어안았다. 아, 야 무리하지 말래니까. 툴툴거리면서도 걱정하는 상대의 목소리에 호원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이대로 있자. 몸이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 보았자 사르르 녹는 마음을 이겨 낼 리가 없었다. 따뜻한 주명의 온기가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의 체취에 고개를 박으며 호원이 부빗 몸을 비볐다. 감싸 안았던 주명의 허리를 손끝으로 살살 문질렀다. 부빗대며 손길이 슬금슬금 아래로 내려가는 걸 느낀 주명이 인상을 콱 찌푸렸다.


 “너... 은근슬쩍 만지지 마라?”
 “아야!”


 그 속을 모를까 콱 쥐어박는 주명의 손길에 호원이 찔끔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감싸 안았다. 나 환자라니까?! 환자면 마음대로 사람 몸을 더듬어도 돼?! 뭐든지 안 돼 안 돼만 연달아 토해내는 통에 답답해진 호원이 머리를 감싸며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선장인데! 자꾸 때리기만 하고!


 “아-! 안 좋아해줄 거면 한 번만이라도 뒤 좀 대주던가!”
 “이, 이런 미친놈이....”


 대체 그 순수탱이 같은 얼굴에다 입만 걸레라도 달고 살았나...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며 파르르 떨던 주명이 다시 한 번 호원을 쥐어박았다. 쿵! 슬쩍 부어오른 혹을 감싸며 호원이 입을 꽉 다물었다. 욱신욱신 대는 머리가 몸보다도 더 아프다. 똑같이 머리가 아파온 주명이 미간을 짚으며 후-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대체 널 어디서부터 가르쳐야 하냐... 좀처럼 상식이 안 통하는 선장이었다. 바다에서 살아온 놈들이 뭐 그렇기야 한다지만... 막상 눈과 귀로 접하고 입으로 대화해보니 머릿속에 든 게 없는 멍청한 놈이다.


 “하... 야, 일단 너... 말도 안 나온다.. 어쨌든 당분간 이렇게 싸우는 거 그만둬.”
 “.....싫어.”
 “야”
 “그치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너흴 지킬 수가 없어.”


 난 선장이니까 약하든 강하든 그런 너흴 감싸는 게 내 역할이야. 슬쩍 다시 입을 연 호원이 맑게 눈 꼬리를 휘어 웃으며 주명의 손을 잡았다. 주명이 말하는 거라도 이건 바꿀 수 없어.


 “이렇게 살지 않으면 난 죽으니까.”
 “...”

 “너도 죽는 건 싫잖아.”


 나도 죽는 건 싫어. 그러니까 죽을 직전인 만큼만 몸을 굴려서 싸우는 거지. 가만히 입을 다문 주명의 손을 가져다 호원이 손등에 쪽 입맞췄다. 까칠까칠한 입술이 주명의 부드러운 손등에 눌려 깊게 붙었다 떨어졌다.


 “난 널... 이해 할 수가 없다.”


 그런 희생정신. 육지에서도 바다에서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인상을 찌푸리며 가만히 토해낸 주명의 말에도 호원은 조용히 입 꼬리를 올리며 그와 시선을 맞췄다. 주명도 그 누구도 평생 이해하지 못할 거야. 이 삶을 대신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호원의 사고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랬기에 더더욱, 죽이며 살아가야 했다.


 “그냥 어서 빨리 주명이 내 것이 됐으면 좋겠어.”


 빨리 나한테 반했으면 좋겠어. 수줍은 듯 뺨을 붉히고선 호원이 웃으며 말했다. 온전히 나의 것이 되어야 제대로 지킬 수가 있잖아. 그는 마치 준비해 둔 커다란 어항을 등 돌아 선 채 홀몸으로 바다에 뛰어 들려는 작은 아기 물고기 같았다. 그러다 할아버지 같은 자들에게 또 밟힐 거야. 약한만큼 잔인하게, 강한만큼 잔혹하게 밟아 터져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갈 거야. 호원은 다시 주명의 손등에 입맞췄다.

 소중한 모든 것을 버리고 정점에 설 생각은 없었다. 호원은 할아버지나 아버지와는 달랐다. 늙은이들과의 정치 세력따윈 개뿔, 관심 그 요만큼도 없거든.


 그저 이렇게
 그저 너와 나의 것들이 내 품 안에.


 ‘영원히 나랑...’ 욱신대는 고통을 뒤로하고 호원은 눈을 감았다. 어린 아이가 품어낼 수 없어 결국 작은 어항을 깨트려야만 했던 그때. 그때랑은 달랐다. 품 안에 가득 안을 수 있는 커다란 어항 안에 그와 자신의 것들을 담고, 호원은 살아갈 자신이 있었다. 그로 인해 희생해야 할 것이 많다면- 슬프지만 어쩔 수 없지.


 가슴이 아프고 죄악감에 시달릴 테지만 결국 그냥 넘길 거야. 내 것을 위한 일이니. 바다는 호원을 탓하지 않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러니까 괜찮아.









뒤죽박죽 이어지는 22222222 해적AU 원명 쩌는것같아...

난 그냥 이렇게 본인 자각 없이 주명한테 집착하는 호원이 보고싶었어...

그리고 그걸 부담스러워하는 주명이 좋다<

아직 주명이 감정이라는 걸 제대로 가르쳐주기 전일 때일듯.

아니면 이렇게 싸패일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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