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호원/해적버스 2018. 8. 24. 23:29

[루라님 생축♥] 끝

루라님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해적물이 너무너무 보고 싶었는데 표현력이 이정도밖에 되지 않네요.. ㅠ0ㅠ)9

 

 

 

 

 

 

확신한 건데 이 새낀 암만 생각해도 정상이 아니다.


팅팅 불어터진 호원의 얼굴을 보며 주명은 생각했다. 지금은 동료들 사이에 모여 왁자지껄 떠들며 웃고 있다지만, 불과 40분.. 아니 30분 전까지 이 남자는 거의 실신할 정도로 눈물을 쏟아냈다.


사람 몸의 대부분은 물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쯤은 안다. 그래서 주명은 생각했다. 오늘 저 놈이 흘리는 눈물은 자기 몸 안에 있는 수분을 쭉쭉 다 빼가 언젠가 눈물에 말라 비틀어 죽을 것이라고. 그렇게 펑펑 울며 자기 자신에게 칼을 겨누게 될 거라고, 주명은 생각했다.


그 누구도 호원에게 칼을 겨누지 못했음을 안다. 그는 주명같은 선원에게 있어 세계같은 남자였으며, 그들의 전부였다. 그들의 모범이 되어야 함을 알기에 적이 자신에게 칼을 겨누는 것을 참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칼등을 뽑는 기세라도 보인다면 먼저 목을 졸라 죽였다. 칼날이 베어 있는 발로 서슴없이 이미 숨을 거둔 타인의 몸을 짓밟는다. 아무 감흥 없는 얼굴로. 그게 차호원이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죽음을 넘보지 못하게 할, 우위에 서있는 남자.


그래서 주명은 생각한다. 저 놈을 죽일 수 있는 건 저 놈 자기 자신밖에 없다고.


요컨대 바로 오늘처럼, 컥컥 막힌 숨을 삼키며 자기 자신을 궁지로 몰아 넣은 것을 보며 죽음을 선택한다면 자기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밀어넣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어쩌면 호원이 조금 더 극악적으로 생각했다면, 오늘이 이 남자의 마지막 날이었을 지도 모른다. 선원들의 날이 마지막이 되는 것처럼.
하지만 결국 오늘은 차호원의 마지막이 아니었다.


“명아!”


벽에 기대 서있기만 한 주명의 시선을 눈치 챈 건지 호원이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그 옆으로 다른 선원이 호원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꺽꺽 웃어댄다. 호원이 따라 웃으며 소리쳤다.


“한참 재밌는데 거기서 뭐해! 빨리 와!”


“...”


재밌다라.

 

확실히 조금 전까지 울던 것과는 달리 지금의 호원은 즐거워 보였다. 속도 없이 환하게 웃으며 주명을 반긴다. 도저히 몇 시간 전까지 살육을 무차별로 행하던 남자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도저히 몇 십여 분 전까지 오열하고 있던 남자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재밌다. 즐거운 시간.


가만히 서있는 주명을 대신해 신입 선원이 쪼르르 다가와 커다란 맥주 잔을 건넸다. 잔을 건네는 아이의 손이 살짝 떨리는 것이 보이자 주명은 가만히 보던 것도 잠시 잔을 받아들였다. 잔 안에서 출렁이는 노랑빛 맥주가 꼭 노을에 진 파도처럼 흔들렸다.


주명은 맥주잔에 입을 가져다 댔다. 입안으로 넘겨오는 차가운 쓴맛에 살짝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테이블 너머 선원들과 깔깔 웃고 있는 호원을 보니 매섭던 붉은 눈이 부드럽게 풀어진다.


‘명아. 너무 일찍 바다에 갔어. 너무 일찍..’


자신의 키에 반도 되지 않던 작은 선원의 몸을 끌어안은 호원이 흐느끼며 말한다. 주명은 대답 대신 허리춤에 찬 칼을 고쳐 잡으며 그를 식은 눈으로 내려다 보았다.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은 아이의 몸을 끌어 안으며 호원이 울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타인의 피를 뒤집어 쓴 야수가 된 채로 어린 천사를 끌어안았다. 아이의 몸을 붙잡은 호원의 손이 발발 떨리는 게 보인다. 마치 떨어지면 안 된다는 양 강하게 부여잡고 있었다.


끅, 끕. 애탄 울음소리를 삼키며 주명은 눈을 감았다. 사람을 베며 웃고 있던 남자는 베어진 사람을 위해 울고 있다. 이 얼마나 모순적일까.
주명이 눈을 깜빡였다. 피칠갑을 하고 있던 그의 선장은 이제 깨끗하고 하얀 옷을 입고, 맑디 맑은 하얀 미소를 지으며 다른 이들과 섞여 있다. 주명은 다시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네가


누군가의 기일이 ‘재밌다’ 라고 표현한다면


나 또한 그 ‘즐거움’ 에 섞이지 않으면 안 되겠지.

 

 

*

 

 

"언젠가 향해가 끝날 날이 오겠지?"

 

일찍이 해가 뜰때 시작했던 전투가 마무리 되면, 산처럼 쌓인 시체를 태워 바다에 내보냈을 땐 해가 저물어 노을이 졌다. 잔치를 마무리 하고 나오면 해는 어느새 저물어 있었다.

 

호원은 배의 간판 위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있는 모습에 주명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다 입을 열었다.

 

"그렇겠지. 꼬부랑 할아버지 될 때까지 계속 하려고?"

 

"뭐 어때. 아기 때부터 바다에 있었는데."

 

호원은 태어난 곳도 바다 위에서였다. 육지를 밟은 시간 보다 파도에 몸을 맡기고 배에 실은 날이 더 많았다. 그런 그가 바다에 나올 생각을 해보자니 딱히 조각이 맞추어 지지는 않았다. 

 

그는 바다가 아니면 안 되는 남자였다. ..하지만 언젠가는,

 

"끝이 오겠지."

 

"에에~.."

 

"에에~.. 가 아니지. 늙어서까지 해적질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너도 언젠가 뒤를 물려줘야 하는 날이 올 걸. 주명이 덧붙여 말했다. 호원은 대답 대신 하늘을 올려다 본다. 까만 하늘 위로 별이 촘촘하게 박혀 있다. 호원은 손가락을 올려 별의 개수를 가늠해보다가 다시 팔을 내렸다. 

 

"아니. 아마 못하겠지." 언젠가 바다 위에 서지 못할 날이 온다. 매일 옆에 서있던 부하가 사라지고, 새로이 배에 침범한 적이 다시 바다에 내보내지는 것을 지켜보며 호원은 생각했다. 

 

바다는 넓지만 끝은 있다. 한계까 있다. 언젠가 끝이 난다. 언젠가. 호원이 고개를 내렸다. 그를 따라 주명도 아래로 시선을 내린다. 밤바다의 거친 파도가 철썩거리는 소리를 내며 배의 등판을 부딪쳐간다. 간판에 엉덩이를 붙인 채 호원이 다리를 흔들자 참다 못한 주명이 입을 열며 경고했다. "하지 마라. 떨어진다 너." 

 

"싫다. 끝나는 거."

 

호원이 고개를 뒤로 쭉 빼고선 주명을 보며 웃었다. 싫다는 것 치곤 활짝 웃는 얼굴에 주명이 의아한 듯 눈썹을 치켜 세웠다. 

 

"주명아."

 

"말해."

 

"언젠가 끝이 온다면, 그때도 옆에 있어줄 거야?"

 

"..."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다. 응? 있어줄래? 끝이 온다는 말은 바다를 내려와야 한다는 것, 호원에게 있어 죽음을 뜻하는 것일 텐데. 그는 참 욕심이 많았다. 죽을 때까지 옆에 있어 달라는 거냐. 주명은 난간에 팔을 걸쳐 얼굴을 묻었다. 얼굴을 가린 탓에 표정을 알 수가 없어 호원의 입이 오리발처럼 나왔다.

 

"뭐야. 싫어?"

 

"싫고 나발이고."

 

응? 하고 반응한 사이에 주명이 고개를 올렸다. 눈 꼬리가 환하게 휘어 올라간 모습을 보며 호원은 잠시 말문을 잃었다. 어두운 밤하늘도 이렇게 밝게 빛이 날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할 때에 그가 입을 열었다. 

 

"싫다고 말하면 네가 응, 하고 대답할 거냐?"

 

호원이 두 눈을 천천히 깜빡이다가 이내 작게 웃었다. 

 

아니. 내가 미쳤다고 그러겠어?

 

하여간. 고집불통 선장인 건 여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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