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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제들 2
2015.11.21
“빈첸시오 사제.”
“네.”
기도로 올려둔 초가 화르륵 타올라 촛농이 뚝뚝 떨어질 때까지도 둘은 한동안 서로 입을 열지 못했다. 결국 마지못해 먼저 입을 연 늙은 남자에 마주 편에 앉아있던 안지후가 간결하게 대답했다. 싸늘할 정도로 침착하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남자. 선택 받은 자들 중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쉽게 꿰뚫을 수 있는 능력에 감탄했다.
“프랑스의 장미십자회에서도 자네에 대한 극찬이 끊기 지 않더군. 모두 너에게 기대를 걸고 있어.”
“과찬입니다.”
“아니- 뭐어, 우리가 할 수 없는 걸 아주 깔끔하게 하고 있으니까. 기특하지, 기특해.”
아차, 조금 감정이 섞여버린 말이 나와 버렸다. 마음을 읽힌 건지 안경 너머로 날카로운 흑안의 눈동자가 비추었다. 늙은 남성은 그에 흠칫하며 반사적으로 시선을 내렸다. 피도 안 마른 것한테 제 스스로 동요했다는 것에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큼큼, 괜한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말한 대로 장미십자회에선 새내기 병아리밖에 되지 못한 이 작은 사제에게 온 기대를 걸고 있다. 몇 나오지 않을 천재성을 지니고 있는 어린 신부. 하느님의 어린 양. 그 실력은 이미 학교의 교내에서도 늘 오고갈 정도로, 웬만한 고참 신부들에게도 이름이 나돌아 다닐 정도로 뛰어나다. 이 때문에 아니꼽게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는 거지. 남자의 마른 주름이 절로 다 찌푸려졌다.
“그래서 말일세. 빈첸시오 사제. 이번에 맡은 일이... 그래.”
“...12형상 악령에 관한 일입니다.”
“지금 같은 시대에 너무 판타지 소설 같다고 생각하지 않아?”
하느님은 그 누구라 한들 공평하게 모두를 사랑하시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은 그러하지 못했다. 인간은 졸렬하고 질투심이 많으며 속부터 검은 생물이다. 절대 코 자신보다 높은 위치로 올라가는 자를 좋게 바라볼 수 없다. 요컨대 지금 늙은 남자가 앞에 있는 천재적인 자질을 갖춘 아이를 옳게 바라볼 수 없는 것처럼.
아버지를 곁에 모시고 그만큼 평화를 상징하며 모두의 안식을 바라는 존재. 신부란 그런 역할이다. 라며 본인들의 기준에 멋대로 얽매여보면서. 당신과 다른 평범한 존재임을 부정한다.
“이런 시대에 구마라니. 어처구니 없는 소리지. 일반인이 들으면 뭐라고 생각하겠어?”
“...”
“안 사제. 우리 종교가 대중화되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린 지나 알어? 자넨 그걸 다”
네 손으로 직접 망가뜨리고 싶은 겐가? 겨우 깬 정적이라고 생각했것만 다시 둘을 둘러싼 고요함은 방 안을 가득 헤집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벌떡 몸을 일으킨 것은 안지후였다. 지후는 가만히 서선 제 앞에 앉아 있는 남자를 응시했다. 태연스레 말하고는 있었지만 지후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이미 많이 보고 난 뒤다. 겁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본인들의 일에 충실하지 못한 자들. 고개가 흔들렸다. 결국 이번에도 허탕이었던 것이다.
“말씀하신 건 잘 알겠습니다.”
“그래.. 너무 깊게 건들이지 마. 그쪽이 다 알아서 해줄 테니까...”
“그건 제가 판단할 일이지만요.”
이미 끝난 일에는 관심 밖이다. 결국 이번에도 허탕인 걸까. 칫, 혀를 끌끌 차며 몸을 돌렸다. 유혹에 찌든 악의 얼굴을 눈에 담기가 거북해 서둘러 방문을 열었다. 등을 돌리고 있었기에 그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대충 감이 잡혔다. 시선이 느껴지는 그에게 등을 돌리지 않은 채 지후는 천천히 제 입을 떼었다.
“그리고 사제님이 하신 말씀으로 아주 잘 알게 됐습니다.”
* 허한 기분은 좀처럼 지울 수 없다. 몇 번이나 이리저리 돌아다녔지만 시선을 안겨주는 곳은 없다. 다들 공포심에 젖어 있었다. ‘설마, 그런 게 정말 있다고 믿는 건가?’ ‘내 눈으로도 제대로 안 봤고 말이지...’ ‘자네, 장밋빛십자회라고 너무 거만해진 거 아닌가?’ ‘그런 건 입에 담지도 말게.’ ‘요즘 사회는 말일세..’ 같은 패턴의 말들과 거추장스러운 웃음소리들 뿐. 빈첸시오는 같은 입장에서 있는 그러한 신부들을 거북하게 느끼고 혐오했다. 신부의 입장으로라면 어느 누구라도 보듬어주고 사랑해야 할 것을. 결국 자신도 아직 멀었다며 반성의 십자가를 그렸다. 그래, 그래서 너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도 먼 길을 걸어야 꼬리라도 겨우 찾을 수 있는 걸까. 흑빛의 눈동자에는 늘 서려있던 빛이 반쯤 사라졌다. 작은 그 아이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말로 다할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들어왔다. 왜 하필? 왜 하필 그 아이란 말인가. 늘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존경하며 자신의 종교에 찬양과 기쁨을 뱉을 줄 알던, 그 착하고 어린 것을 왜 하필 천한 악령의 눈에 띄었단 말인가. “...” 고민해봤자 결국 답은 나오지 않는다. 이럴 바엔 한 곳이나 더 돌아다니는 것이 낫다며 빈첸시오는 제 마음을 추렸다. 빈첸시오가 다른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주머니에 들어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주머니에 손을 뻗고 핸드폰을 확인하면 익숙한 이름이지만 웬만큼 제가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을 독특한 그로부터 온 발신이었다. 이 인간이 무슨 일이래. 삐죽 입 꼬리를 올리며 전화를 받았다. 내용은 꽤나 흥미로웠다. “그래서 베드로 씨께서 하고 싶은 말씀은?” 우선 싸가지는 없는 녀석이겠네. 핸드폰 너머로 울리는 굵은 목소리에 지후는 한참동안 킥킥거렸다. 그를 사랑하는 자가 있는 이상, 주님은 아직 우리 곁에 계신다. 그리고 영원히. - 뭘 쓰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베드로=솔레이 언급하는 자=그레이 언제 또 된다면 다음 이야기 이어야지..
존경하는 아버지.
찬미하는 그리스도여.
“당신은 아버지를 향해 등을 돌린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저 어리석은 자를 구원해주소서.
*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좋은 놈을 찾았다고. 네가 부탁한 대로.
“난 그냥 선배가 해줘도 될 것 같은데.”
-난 배우다가 그만둔 놈이야. 하기엔 좋은 그릇이 못 돼.
“..뭐, 일단 내용은 잘 알겠어. 그래서 상대는?”
-상성이 꽤 잘 맞아. 그 흔치 않다는 백호랑이 띠인 놈.
“그리고?”
-너처럼 천재라고 불리고 있는 녀석이랄까. 소개받은 사람이라 나도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몰라.
“....잘은 모르겠지만 천재라고 불리는 거라면”
출처: http://seagullaxe.tistory.com/40 [쓰레기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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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제들 1
2015.11.14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어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어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어 악에서 구하소서.
부디 이 작고 가여운 생명을 안타깝게 여기시어 주님의 손길을 내려주시고 악에서 구해주소서. 남자는 조용히 눈을 감은 어린 소년의 이마에 십자가를 그렸다. 곤히 잠든 소년의 창백한 피부는 마치 죽은 것 마냥 애처로워 보였다. 죽어서도 죽을 수 없는 불쌍한 영혼이여.
손에 쥔 은구슬을 주먹에 꽉 쥐어내고 남자는 조심스레 소년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세상에 빛이 있는 만큼 원치 않아도 악 또한 존재하고 있다. 주님은 모든 자들을 구원하려 애쓰시지만 유독 그 손길을 거부하는 자들은 늘 존재한다. 악에 물들어버린 자, 타락해버린 자,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자. 이 세 가지를 대표로 악마가 실존한다.
주님은 그들에게까지 손을 뻗지 못한다. 손을 뻗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탓이다. 우리의 아버지는 최대한 그러한 자들이 잠잠해지기를 원하기에 우리들을 보내셨다.
악을 쫓아내기 위한 유일무의한 인간이란 존재를.
"신, 부님.. 아파요."
쭉 눈을 감고 있던 어린 소년이 드디어 입을 뗐다. 아프다는 말에 남자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가슴에 얹은 손은 여전히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위에는 작은 십자가가 올려져 있었다.
"너, 무 아파..."
- 주님께는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있으시어
"엄마한테 데려다 주세요..."
- 곧 이 생명을 구원하시리니.
신에게 사랑받는 종족인 만큼 세상의 모든 생명들은 늘 질투의 시선을 꽂고 그들은 끝없는 악에 노출되어있다. 악들은 우리 종족이 매일 어둠에 물들어지기를 원하고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도록 이끈다. 한 번 미끼를 물면 무너질 때까지 놓치지 않는다. 인간은 악을 물리치기 위해 신이 만드신 유일무의한 자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늘 빛에 찬양 받고 살지는 않는다. 신의 존재인 만큼 어둠에 혹하기도 쉬워진다. 약한다면 약한 대로, 어리석다면 어리석은 대로. 신은 늘 우리를 감싸주지만 우리는 그 손을 뿌리칠 수도 있다.
그 손을 뿌리친다는 건 빛과 멀어지겠다는 단절의 의미. 그것은 악과 손을 잡겠다는 시작의 의미로 인간의 타락성을 주요시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빛이 없는 세상에선 절대 살아갈 수 없다. 목숨을 잃는 것은 순간이다. 우리는 그것을 막기 위해 존재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아버지의 부름에 의해서.
훌쩍거림은 잦아진다. 소년의 숨소리는 점차 헐떡거림이 커지고 어느새 자신을 붙잡고있는 그를 향해 간곡하게 빌기 시작한다. 신부님, 신부님. 방 안을 울리는 소년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애처로웠다. 그래, 너무나 애처로웠기 때문에 더욱 더 남자의 귓가에 잘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네 놈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다음 네놈의 부모 앞에 갖다 바쳐주마. 고깃 덩어리로 그 입천장을 다 쓸어주지.'
"신.. 부님...!"
'3년 후 만나게 될 친구의 장기부터 도려내는 게 좋을까? 네 주변에 있는 암컷들을 강간할 테야. 뼈저리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움을 맛보게 해주지!'
"괴롭히지 마세요...!!"
- 신은 우리를 창조했으며 그것에 마따한 책임을 내리도록 하셨나이다. 우리는 그것에 보답하여 빛과 창조의 신인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다 바치리나이다. 아멘.
소년은 경계를 넘어섰다. 단지 그뿐이다. 온갖 비명을 지르는 아이를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내려다보던 그는 묵묵히 주님의 말씀을 읊었다.
내가 상대하고 있는 존재는 인간의 아이가 아닌 악한 사령의 존재이다.
그러니 부디, 경계를 넘고 사경을 헤매는 이 어린 생명을 구원해주소서. 온갖 저주를 토해내는 사령의 얼굴에 하얀 천을 두르고 남자는 다시 한 번 십자가를 그었다. 십자가를 그려내는 손에는 울긋불긋한 점박 투성이와 썩은 살냄새가 진동했다.
흑발의 머리카락이 바람을 타고 흐러내렸다. 그 사이로 보이는 까만 눈동자는 그들을 향해 침묵의 안내를 이끈다.
"제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악한 생명을 주님의 곁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오직 인간에게만 자격이 있으며
"아멘."
나는 그를 따르는 사제이다.
-
그냥 뻘하게 사제 안지후가 보고 싶었다. 시커멓게 생긴게 의외로 어울릴지도... 강동원 사제복이 넘 섹시했다는 거시다..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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