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호원/아심여칭 2017. 5. 17. 22:18

가람&하즈키 로그 정리

2017.01.28



1.


 실례라는 걸 알면서도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멈출 수 없는 까닭은
 나 자신조차 알 수 없다.
 끝내 바닥에 버리고 온 그 날카로운 칼날을 잊을 수가 없었다. 밤새 시달리고 또 시달리고 나서야 하룻밤이 지난 아침에 제 자리로 돌아가 보았던 호원은 어느새 말끔하게 사라진 빈 바닥을 보며 허탕함을 느꼈다. 분명 일처리가 빠른 사자들이 그 흔적들을 말끔히 지워버렸던 게 분명했다. 그들로선 현명한 선택이었다. 틀린 건 어느 것도 없었다.
 하지만, 비워낼 수 없는 이 공허함은 어떻게 채우란 말인가?
 터덜터덜 걸음을 옮겨 바닥에 주저 앉았다. 새벽까진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던 꽃잎들도, 아이의 목을 잔인하게 갈랐던 칼의 끄트머리도 찾을 수 없었다.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니 좋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저 멀리 누군가가 그리 외쳐 말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호원은, 쉬이 웃음을 내보일 수가 없었다. 그저 말끔해진 바닥을 손가락 끝으로 훑으며 남몰래 울음을 삼켰다.

 아아
 너의 마지막이
 기어이 사라져 버렸구나.

 용기가 없어 네 마지막 흔적 조차도 고이 묻어주지 못한 게 어찌나 슬프던지. 다시 한 번 후회될만한 짓을 벌여 가슴이 짓눌려 아파왔고 괴롭고, 숨이 막혔다. 아직까지도 눈앞에 선선한 그 맑은 미소를 잊으면 어쩌나 싶어 하루 시간이 지나가는 내내 그 아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더 이상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어리석게도, 그 정도 슬픔이었나보다. 라고 생각해버렸다.
 
 그렇게 말끔히 미소가 사라진 채 다시 하루를 배회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제대로 웃지도 못하는 호원에게 요괴와 사람들은 그를 배려하며 진심으로 걱정했다. 더 이상 남는 것도 제대로 없는 한심한 남자에게, 그들은 쉽게 동정을 베풀었다. 마음을 주고 정을 나누었다.
 그리고 절친이었던 요괴 남자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야 비로소 다시 깨달았다.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고. 아니다- 아니다 부정하던 것들을 사실 모두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남몰래 그녀를 아이와 비교해 미워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새 사람을 남몰래 악감정을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에 커다란 돌덩이가 내려앉았다.

 그녀에게 미안했고
 소년에게 미안했다.

 "그러니까.... 미안해요."

 미안할 짓을 하지 말라며 하즈키는 먼저 넌지시 말을 언급했었지만 호원은 그 한 마디 외엔 떠오르는 게 몇 없었다.
 이미 저질렀는 걸. 그제야 겨우 하즈키와 얼굴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천호라고 불린 그녀는 아름다웠다. 사랑스러웠고, 또 어여뻤다. 놀랍게도 가람과 다를 바가 없는 하즈키 본인의 외모자 그 자체였다. 쓰다듬은 머리칼은 아이와 다를 바 없이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웃음이 나왔다. 다시 웃을 수 있다는 게 기뻤다.

 "고마워요."

 그렇게
 말할 생각이었다.

 호원을 따라 방긋 웃는 그 미소를 보기 전까지는.
 이상하지. 이상하네. 후두둑 쏟아지는 눈물을 멈추기가 어려웠다. 몇 번이나 울어버린 눈가는 새빨개져 따가웠고 콧물은 또 그렇게 바보 같이 흘러 나왔다. 그녀에게 있어 호원의 모습은 심히 괴상해보였을 것이다. 미안한 짓을 하지 말라며 그렇게 말해줬는데 또 미안한 짓을 해버렸다. 꺽꺽 입밖으로 새어나오는 소리를 참지 못하고 아이마냥, 그렇게 하즈키 앞에서 호원은 울고 또 울었다. 하하, 하... 실없이 웃음을 토해내기도 했다. 그렇게 하즈키 마주 편에 울고 웃으면서 실없이 뱉어냈다.

 "보고 싶어...."

 멋대로 웅얼댄 목소리, 닿았을지도 모른다. 훌쩍대며 소매로 눈물을 닦아냈다. 곧 호원의 머리에 따뜻한 손길이 닿았다. ....-읏! 그 부드러운 손 조차 소년과 흡사한 모습에 남자는 바보같이 오열하고 또 쏟아내버렸다.
 그렇게 미안하고 후회감만 들었던 마지막 소년의 얼굴이, 이제 더 이상 그 아이의 흔적은 어느 곳에도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앙증맞던 얼굴은 여전히 하즈키 안에 남아있었다. 이 말을 하면 그녀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부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인간인 호원이 그녀를 보기에는, 그 웃음을 보았을 땐 소년은 그곳에 남아있었다. 여전히 사람 좋게 웃으며 상대와 밝게 대화를 나누고, 씩씩하게 행동하는 멋진 19세 소년이 있었다.

 너는 그곳에 있었다.
 여전히 있었다.




2.

 많은 불행을 겪어와 온갖 상처는 다 입었긴 했지만 고의적으로 내 몸을 괴롭히거나 하는 행위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겁쟁이에다 소심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피를 보는 건 두려웠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 자신에게 상처주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처음 봤어. 자기 자신을 그렇게 상처 주는 사람이자 요괴를.
 그녀는 죽음을 당연하게시 여긴다. 요괴의 능력을 인간이 쉬이 알 수는 없지만 죽음으로서 새 탄생을 하는 건 맞는 것 같았다.  눈앞에서 직접 목격했다. 소년에서 소녀로, 인간에서 요괴로, 수많은 꽃들을 몸 밖으로 배출하던 새 탄생의 아름답고 잔혹하던 광경을 보았다.
 마주 편에 서 있던 요괴를 응시하며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아름다운 것에 반해 지켜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생각하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울렸다. 된다면 다신 보고 싶지 않았다. 직접 제 손으로 몸 안에 칼을 들쑤시며 베어내는 그 감촉과 고통을 짐작할 수조차 없더라. 말라 붙은 입술을 제 손가락으로 훑어내며 호원은 그녀의 차가운 시선을 슬쩍 피해버렸다.
 애초에 이승으로 내려오기 위함으로 쓰는 방법이라면
 그렇게 아파하지 않아도 되지 않아?
 코스프레는 단순한 변명에 불과했다. 밝게 웃으면서 해답이라는 듯 우습게 말했다. 누가 봐도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그저 이 자가 아파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상대는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리며 그럼 그 장면을 네가 보지 않으면 되지 않겠느냐며, 너와 상관은 없다며 말할 지도 모른다. 물론 그 말엔 틀린 것은 없었고 호원이 딱히 그와 그녀에게 뭐라 충고할 순 없었다.
 하지만 혹시, 이곳을 떠나게 되더라도 너와 그를 보게 된다면 나는 아마 태연하게 웃으면서 상대를 보기가 어려울 지도 모른다.
 그 고통을 스스로 겪고 상대가 다시금 땅을 밟았다고 생각하면 상상조차 못할 이 자의 고통을 떠올리며 호원은 다시 그녀를 동정하고 그를 그리워하며 둘을 가여워 여길 것이다.

 "이대로는- 절대- 이승으로 돌아가지 않아!!!!"

 호원의 말에 심히 불쾌했던 모양이었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던 하즈키의 얼굴이 빠르게 구겨졌다. 비명 섞인 고함을 내지르며 한순간에 호원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곱고 어여쁜 작은 손이 어찌나 강하던지, 꽉 조여진 손목이 약간씩 아픔을 느낄 정도였다.
 
 씩-씩 노여움을 품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밝게 웃던 아름다운 미소에도 감정이 느껴지지 않던 무표정에서도 감정이 물들지 않던 느낌이었것만, 분노어린 그녀의 표정엔 온갖 감정을 뿜어냈다. 하찮은 인간이 논하기엔 그것은 거대한 압력이었다. 겁에 물들어 호원이 잠깐 움츠러 들기는 했지만 꾹 입술을 다물고 자리를 지켰다.
 화를 낼 만큼 자신의 본 모습으로 돌아가기 싫어하는 하즈키에게는 분명 그녀만의 이야기를 숨겨두고 있다. 호원과 마찬가지였다. 말할 수 없는 이야기가 그녀에게도 분명히 있었다. 멋대로 실실 웃으며 그 모습으로 가라 말했던 호원에게 명백한 큰 잘못이 있었다.

 하지만 사과는 하지 않을 거야.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모르기에
 아니, 설사 안다고 하더란들
 인간의 이기심으로 네게 나쁜 말을 고할 지도 모른다.

 "나는 당신이 아파하는 건 싫어요....."

 그녀보다 더 날카롭고 잔혹한 커다란 물건을 스스로 몸 안에 꽂아내는 반복되는 고통은 이제 그만해주세요. 호원의 손목을 낚아챈 하즈키의 손을 조심스레 반대쪽 손바닥으로 감쌌다. 미안해요. 미안할 짓은 하지 말라고 했는데 자꾸만 미안한 짓을 해버리네요. 당장 사과를 못하는 것도 용서해줘요. 가쁜 숨이 섞여 길게 토해냈다.
 고개를 숙여 그녀의 손가락 끝에 이마를 대고 호원이 중얼거렸다.

 "그냥... 당신이 오랜 시간동안 아파왔던 걸 멈추고 싶었어요."
 
 그냥 그뿐이에요.
 어려운 말이었죠?




3.

 나는 당신의 고통을 모른다. 앞으로도 모르겠지.
 당신을 이해할 수도 없다. 너의 세계를 알지 못하니까.
 아마 죽고 난 후에도 너에 대해 알아가지 못할 것이다.
 "신경쓰지 마. 아프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 말 만큼은 진심이 아니라는 걸 얼추 예상할 수 있다.  둔하고 멍청한 내가 그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손으로 감싼 작고 고운 손이 있었다. 체온이다. 긴장한 탓에 차가워진 손바닥 끝 사이로 너의 체온이 흘러 들어왔다. 쌀쌀맞게 대답한 그녀와는 다르게 몸의 체온만큼은 한없이 상냥하고 덧없었으며 웃고 있었다. 밤하늘을 연상케 만드는 하즈키의 눈동자 속을 읽어낼 수 없었다. 그때문인지 더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신이 만들어 낸 모든 생명체가 감지하지 못할 고통은 없다.
 그것이야말로 그 분께서 내린 무에서 유로 만들어 낸 죄이자 업이다.
 혹여나 따뜻한 손을 먼저 뿌리칠까 싶어 놓지 않기 위해 꽉 부여 잡았다. 그녀는 둔한 내가 이미 그 거짓말을 알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많이 아팠죠. 많이 아팠었지. 손끝에 이마를 꾹 누르고 작게 웅얼댔다.

 "난.. 당신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지 못하고, 뭐라고 대신 말할 자격은 없어요. 그죠?"

 너머로 대답은 없었다. 당연한 걸 뭘 말하냐는 듯한 얼굴이 그려지진 않았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으나 고개를 들 자신은 없었다.
 안개가 가욱했던 세계. 그 속에서 만난 갓 스무살과 갓 열아홉. 아는 거라곤 서로가 술을 좋아한다는 것과 상대가 만만치 않은 술꾼이라는 것. 겨우 며칠 전에 말을 트며 즐겁게 웃었다는 것. 그렇게 헤어져 버렸다는 것. 아는 거라고는 겨우 그 정도. 요괴로 된 그녀가 정확히 몇 살이고 어떤 삶을 살아오고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는 알지도 못한다. 그런 애매한 위치에서 혼자 따박따박 따지는 인간이라니, 그녀가 얼마나 나를 싫어할까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러니 말은 딱 하나, 이것만.
 무거웠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가만히 저를 응시하는 하즈키의 시선이 느껴지자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당신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대가 아플 수밖에 없는 선택을 지금 당장 해야만 한다면

 "언젠가.. 다시 만나요."

 지금 생이 아니라도 좋아. 죽어서 뼈로 남아 재가 되어 땅이 되고, 거름이 되어 작은 풀잎으로 태어나 꽃을 피우고 지고 또다시 어느 세상에 거름이 되어 그렇게 바람으로 살아가고 있을 때. 아주 늦은 먼 미래라도 좋으니 다시 한 번 더 만나요. 그렇게 만나

 "그땐 따라하는 게 아니라 밝게 웃어주세요. 정말 아프지 않고 괜찮다면 그때 그렇게 웃어줘도 괜찮겠죠?"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먼 훗날에.
 그렇게 언젠가 다시 만나요 우리.
 그땐 인간 대 요괴가 아니라 바람 대 요괴일지 또 모를 일이었겠지만.







가람이랑 더 대화해볼걸 젠ㄴ장.. (덕캐와의 적은 대화에 눈물을 줄줄 흘린다...)

하즈키...ㄴ무 예뻐... 가람이두...근데 너무 애잔함....ㅠㅠㅠㅠ

둘다 복지 빵빵하게 자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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