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호원/아포칼립스 2017. 5. 17. 22:41

주명아....

2017.02.07



주명이가 물렸대..................







 콰득
 
 “아...!”


 틱,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파란 구슬 비즈들이 바닥에 후두둑 쏟아졌다. 검붉게 물들어진 이빨이 아득 소리를 울리며 호원의 손목을 뜯어냈다. 시선은 바닥에 굴러가는 구슬들에게 한눈이 팔렸지만 딱딱하게 몸을 굳을 틈은 없었다. 살들을 비집고 씹어 먹는 상대의 시선을 끌고 물린 팔을 잡아당기면 따라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그때를 노리고 손에 쥔 송곳을 상대의 후두부를 강하게 찔렀다. 부패해서 머리카락이 없는 썩은 뒤통수에 송곳이 꽂히고 꿀렁대며 검은 피가 새어나오면 괴물은 움직임을 멈췄다. 호원을 물고 씹어 먹던 것이 멈췄다. -아윽, 괴로운 소리를 토해낸 그가 시체를 발로 걷어찼다. 튀어나왔던 곳에서 다시 밀려들어간 시체는 더 이상 살아나지 않았다.

 호원은 작게 숨을 헐떡이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손목에 물린 살점이 반절은 뜯겨져 나가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흐르는 핏방울이 바닥에 흐트러진 비즈들에게 스며들었다. 호원은 점차 떨리는 몸에 불끈 주먹을 쥐었다. 눈에서 뚝 뚝 눈물방울이 따라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손목에서 울부짖는 고통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다. 철없이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하고 문을 연 자신의 한심함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뚝. 뚝. 피에 스며들었던 구슬이 맑은 눈물에 다시 한 번 씻겨져 내려갔다.


 ‘주명....’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너의 이름. 덜덜 떨리는 손으로 허겁지겁 흐트러진 구슬들을 주워 모으기 시작했다. 철렁 내려앉은 심장은 차가웠다. 몸이 마치 마비가 든 것 마냥 덜덜덜 떨렸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앉아 있을 시간은 없었다. 서너 개 구슬을 주워든 호원은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벌떡 일어나 쓰러진 시체를 창고 안에다 밀어 넣어 덜컹 문을 닫아 잠궜다. 굳게 닫힌 철문에 이마를 쿵 쿵 박아내며 호원은 물렸던 주먹에 불끈 힘을 내쥔다.

 이곳에 오는 게 아니었어. ‘정말 혼자서 괜찮겠어?’ 어차피 학교 밖도 아니고 뒷간에 다녀오는 건데 뭘. 수차례 조사 탐방이 끝나고 난 일이었다. 아직 열어보지 않은 학교 뒷간에 물건을 가져 오기로 했었고, 막 돌아온 조사팀들은 지쳐 있는 상황이었기에 호원은 제 스스로 나섰다. 밖도 아니고 학교 내부인데! 상처 입은 동료들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며 호원이 웃었다. 금방 다녀올게.


 그리고 그 다녀온단 결과가 겨우 이거.


 ‘...아까 그 좀비... 경비 아저씨였지.’


 물리고 나서 뒷간으로 도망치셨던 걸까. 조용했던 건 이 근처에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좀비가 숨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곧 다가간 호원의 발자국 소리를 들은 좀비가 문을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드르륵 문이 열린 순간 경비원에서 시체가 된 좀비는 단 번에 호원을 덮쳤다. 안일한 생각이었다. 호원이 어리석었다. 그 벌로 입은 상처는 처참했다. 무엇보다도 망가진 팔찌가 그 증거였다.


 “....으윽...속상해...”


 이제 넌 더 이상 그 무엇도 만들어주지 못할 텐데. 손 안에 쥐어진 작은 구슬들을 내려다보며 호원이 작게 흐느꼈다. 처음으로 나한테 준 네 선물인데. 이렇게 험하게 다뤄버렸어.


 아직 세상이 멸망하기 전, 처음으로 뛰게 된 주전 시합에 긴장 된 그가 호원을 위해 선물해 주었던 구슬로 된 비즈 목주 팔찌였다. 손재주가 좋은 넌, 곧잘 이런 걸 만들어다 전시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나를 위해 만들었다고 한 건 그게 처음이었잖아. ‘이게 찌질한 차호원을 위해 행운 팔찌가 되어줄 거다.’ 걱정 말라며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네 손이 그저 덧없이 좋았다. 호원은 남몰래 붉어진 얼굴을 감추며 웃었다. ‘고마워.’ 너한텐 그저 친구를 위한 가벼운 선물이었겠지만, 나한텐 참 의미가 컸었는데.


 어떡하지, 무서워. 죽고 싶지 않아. 살고 싶어.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덜덜덜 떨리는 몸은 공포심으로 가득 찼다. 머릿속을 헤집던 수많은 좀비들을 떠올렸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그들처럼 된단다. 믿겨지지 않았다. 살을 좀먹혔던 손목은 허연 뼈가 드러날 정도로 처참했고 흐르는 피는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아프다. 더럽게 아프다. 이렇게 아픈데 곧 고통조차 느끼지도 못할 시체가 된다니 싫어 싫어 싫어.


 너를 먹고 싶지 않아. 해치고 싶지 않아. 줄줄줄 흐르는 눈물은 알 수 없는 감정들을 씻어냈다. 무서웠다. 가장 먼저 널 공격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호원을 사로잡았다.

 결국 이렇게 망쳐버리고 말았어. 더 이상 푸른 바다빛을 띄우지 않는 구슬은 호원의 피와 함께 굳어져 갔다. 훌쩍훌쩍 울먹이던 호원은 이내 눈꺼풀을 천천히 내리감았다 번쩍 떴다. 소년은 울음을 삼켰다.


 무섭고 아프고 괴롭다.

 하지만, 계속 이대로 있을 순 없었다.





*  *  *



 “야, 너 뭐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려?”

 결국 기다리다 못한 주명이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 온 모양이었다. 단단히 창고는 잠구어 뒀다. 바닥에 쏟아졌던 핏방울들은 모래를 흐트려 감추고 구슬들도 어찌저찌 모아 주머니 춤 안에 넣었다. 누군가가 나타난 건 예상 외였지만 타이밍은 나쁘지 않다. 막 끝내고 나타난 주명을 보며 호원은 빙긋이 웃었다. 이게 좋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가 없네.

 “미안, 열쇠 두고왔단 걸 깜빡했지 뭐야.” 슬쩍 천을 감긴 오른쪽 손을 허리 뒤춤에 가리며 호원이 멋쩍게 웃었다.

 “그냥 억지로 열어 제끼지..”
 “큰 소리 내면 또 몰려오잖아? 무섭다고!”
 “어휴, 찌질이...”
 “찌질이라서 죄송하네요! ...정말.... 아, 그보다 주명. 내 팔찌 못봤어?”

 뭐? 갑자기 무슨 말이냐는 듯 주명이 되물었다.

 “아까 손 씻을 땐 있었는데 안 보여서...”
 “야 너- 사람이 준 걸 그렇게 막 잃어버리면..”
 “미안! 난 아직 여기 창고도 다 안 뒤져봤거든. 미안한데 보건실에 있나 찾아봐줄래?”
 “아주 사람을 막 쓴다..?”

 막 조사 다녀와서 피곤한 사람한테. 불쾌 가득한 주명의 얼굴에도 호원은 환하게 웃었다. 아 그러지 말고 한 번만 봐주라. 친군데.


 “다녀간 곳이 보건실밖엔 없었으니까 아마 거기에 있을 거야. 한 번만 찾아봐주라.”
 “너 진짜... 없으면 죽을 줄 알아라.”

 하여간 귀찮은 건 나만 시켜요. 머리를 탈탈 털어내가며 투덜거리던 주명이 별 수 없다는 듯 몸을 돌려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 문을 열었다. 피곤해 보이는 등을 보니 조금 미안해졌지만 어쩔 수 없다. 주명은 상냥하니까 내 부탁은 곧잘 다 들어주잖아. 네가 너무 상냥한 걸 원망해. 라고 말하면 맞을 게 뻔하니 목구멍으로 말을 넘겼다. 주명이 끼익 낡은 손잡이 문을 열어 제끼며 안으로 들어갔다.

 “주명!”

 넌 정말 상냥하니까.
 갑자기 불러 세운 호원의 목소리에 주명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또 뭔데?
 말끔한 주명의 얼굴을 보니 가슴이 떨렸다. 고통으로 울부짖는 것과는 다르다. 늘 그를 보면 느꼈던 행복한 고통이었다. 잠시 머뭇대던 호원이 붉어진 눈가를 감추며 작게 웃음을 흘렸다. 넌 상냥한 사람이라서 분명 이 말도 잘 들어줄 거라고 생각해.
 
 “아니, 그냥... 미안하다고.”

 그래서일까, 더 말 못하겠다......
 “싱겁긴.” 가만히 말을 듣던 주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곧 흥, 콧방귀를 뀐 주명이 빨리 끝내고 오라며 문을 열고 건물 안을 들어갔다. 굳게 닫힌 철문에 멍하니 시선을 띄우던 호원이 푹 고개를 숙였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게 눈물인지, 피인지 모르겠다. 점점 더 굳어져가는 몸이나 쿡, 쿡 찔러대는 두통이 호원을 괴롭혔다. 베어 좀먹힌 손에 옹기종기 모인 구슬을 꾹 쥐며 호원이 무거운 걸음을 내딛었다. 걷고 걷고 또 걸어 교문 앞까지 발을 딛는다. 끼익, 잠금 자물쇠를 풀고 딱딱하게 굳은 철문을 익숙하게 여닫았다. 순간 그 얇은 소리에 학교 너머로 기어 다니던 좀비들이 휙, 삐걱대며 고개를 돌렸지만 호원의 모습에 달려드는 시체들은 없었다.

 그저 그러려니
 쥐새끼 한 마리를 보듯 바라보다 고개를 돌린다.


 호원은 다시 걸었다. 목적지가 정확히 어딘진 알 수 없다. 그저 우르르 모여있는 시체들 사이로 걷고 또 걸었다. 그저 이곳엔 벗어날 수 있도록. 구슬을 쥔 손엔 천이 감겨있던 것도 잠시 흥건하게 피로 적셔져 뚝, 뚝 떨어졌다. 맑고 붉었던 핏방울들이 점차 검붉은 색으로 스며들었다. 호원은 그저, 그저 태연하게 걸음을 옮겼다.

 “....”

 그 끝이 마지막이 될 때까지. 그저 걸었다.










주명이가 물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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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어났습니다 (Feat.주명♡)



 “아~ 뽀삐 최고야. 오빠가 그렇게 좋아..?”
 “(NO어이..) 그렇게 좋으면 입양해. 사장님도 괜찮다고 했잖아?”
 “형 때문에 안 돼. 그리고 다른 애기들을 못 보잖아 바보야.”
 “진짜 개덕후...”


 째릿, 하고 날카로운 시선이 꽂히자 언제 말했냐는 듯 호원이 슬쩍 고개를 돌리며 빨대를 물었다. 주명이 멍멍이를 끌어안으며 한숨을 쉬었다. 뽀삐가 그 틈을 타 주명의 뺨을 핥았다. 귀여워.


 “넌 이 귀여운 생명체를 보면서 아무 생각도 안 드냐? 매정한 자식.”
 “아냐! 귀여워.. 귀엽다고... 그치만.. 너무 자주 오잖아!”


 이것 봐! 급하게 가방을 뒤져 주명의 눈앞에 지갑을 내밀었다. 갈색 가죽 지갑 안은 몇 개의 천 원짜리 지폐와 동전 몇 개만 덜렁 남아 있었다. 가만히 한쪽 붉은 눈을 깜빡대며 호원의 지갑 내부를 잔잔히 뜯어보던 주명이 입을 열었다.


 “와- 거지네..”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된 건데! 으으.. 알바도 하면 곧잘 짤리는데 이제 큰일이야. 사장님이 단골이라고 조금 깎아주니까 망정이었지...”
 “뭘 고민해. 내가 사준다니까!”
 “도련님한테 빌리면 찝찝하거든요! 됐어, 다음 주에 있을 시합도 준비해야 하고 이제 일주일에 한 번만 올 거야.”
 “야!”


 그러는 게 어디 있어! 뽀삐를 끌어안던 소년의 양 손이 쾅! 테이블 위를 때렸다. 평소라면 지레 겁을 먹을 호원이었겠지만 돈이 걸린 문제는 쉬이 물러설 수 없었다. 여기 있다 왜! 따라서 호원이 주먹을 쾅 테이블 위로 내리치자 주변에 있던 강아지들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 또 새로운 문제를 가지고 투닥대기 시작한다. 야 강아지 놀랐잖아! 주명이 화내서 그런 거잖아?! 이게 또 까분다! 악! 저 멀리 두 남고생이 퍼덕대며 싸우는 것을 익숙하게 지켜만 보던 사장은 허허 인자하게 웃으며 유리잔을 닦았다. 그 사이 낑낑대며 작은 말티즈가 제 주인의 바지자락을 잡아 애잔한 눈빛으로 올려다본다. 시끄러우니 어떻게든 해달라는 아이들만의 의사였다.

 쉬이, 조금만 기다리렴. 청춘이고 좋을 때잖니. 사장은 가벼이 미소 짓고선 강아지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었다. 마침 설거지도 다 끝났다. 그는 싸우는 두 아이를 내버려두곤 자연스레 리모컨을 조작해 텔레비전을 틀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틀 생각이었다


.
 [~서울 특별시 OO연구소에서 비밀리에 조작된 OXO바이러스가 발각돼 정부가 군을 투입했지만, 주범이자 OO연구소 부장 김X식 연구원이 분신자살 시도와 함께 보관중이던 OXO 바이러스가 퍼져...]


 의미없는 뉴스다. 리모컨을 조작했다.


 [속보입니다! 원인불명의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된 원숭이들과 개가 광견병 현상을 일으켜 사람들을 공격...!]


 으음, 다시 조작.


 [이변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며 사람들을 공격...]


 다시.


 [새로운 바이러스의 문제점을 지적한 정부는 군을 투입해 경기도부터 좁혀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으며.. 사람들은 즉시..]


 재미있는 게 없구나.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사장은 결국 텔레비전을 다시 꺼버렸다. 아이들은 아직도 투닥대고 있다. 낑- 우는 말티즈를 내려다보며 사장은 다시 한 번 머리를 쓰다듬었다. 끝날 때까지 간식이나 먹자꾸나. 강아지의 눈빛이 다시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남자는 흐뭇하게 웃으며 간식이 담긴 통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때였다. 쾅!!!! 큰 폭발음과 함께 카페 밖 너머로 사람들의 비명이 일제히 울렸다. 바르작대며 싸우던 주명과 호원의 움직임이 멈췄다. 강아지들이 안절부절하기 시작했다. 남자도 간식을 꺼내기 전에 슥 고개를 들어올렸다. 이어지는 굉음과 함께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고 밖 너머는 까만 연기와 충돌한 듯한 차들이 연달아 이어졌다. 그 뒤를 따라 다시 쾅-! 쾅! 콰앙-! 이어 불을 내며 폭발한다. 카페 창가 너머로 벌어진 참사에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뭐, 뭐야...? 사고야? 미친 뭔 차들이 저렇게 박아대...!”
 “아, 1.. 119! 연락해야지!”


 싸울 틈은 없었다. 호원이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는 사이 주명도 따라 가방 속에 있는 핸드폰을 뒤졌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사건 현장을 눈앞에 본 사장도 손님들도 모두 전화기를 들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전화 연결음만 옅게 이어질 뿐 아무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상하네...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눌러대며 호원이 인상을 찌푸렸다.


 “전화가 불통인 것 같아.”
 “저렇게 대사고가 터졌는데 아무도 신고를 안 했겠어? 밀려서 그런 거겠지. 곧 올 거야.”
 “그러면 좋겠는데...”


 -아아악!!!!


 그리고 다시 한 번 비명소리. 여러 사람들이 울렸다기 보다는 한 여성의 울분섞인 외침이었다. 카페 내부에 있던 사람 모두 움직임이 딱딱하게 굳었다. 창가 너머로 그 여성의 모습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그것도 피칠갑을 한 상태로. 긴 머리카락을 흩트리며 터덜터덜 걸어오던 여성은 축 처져있는 듯 하면서도 경련을 일으키는 것 마냥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녀는 창 너머로 터벅, 터벅 걸음을 옮겼다.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이렇게 멍청하게 서 있을 때가 아니지. 친절한 사장님은 다른 누구보다도 빠르게 몸을 움직여 문을 열었다. 부상자라면 걷게 할 순 없다. 빨리 응급차가 도착할 때까지 그녀를 데려다 부축해 놓는 게 옳은 선택이었다. 카페 문을 열고 난 너머는 상상 이상으로 퀘퀘한 냄새가 뿜어졌고 가려진 연기들 속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연달아 울렸다. 남자는 긴장된 마음을 감추고 침을 꾹 삼키며 여성에게 다가갔다.


 “저, 괜찮습니까?”
 “.......으으...”


 아픈 모양이었다. 옅은 신음 소리에 남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서 계시지 마시고 이쪽으로 오세요. 곧 응급차가 올 겁니다. 상냥한 그는 조심조심 그녀에게 권유했고 여성은 슬금슬금 걸어 그에게 다가왔다. 바로 코앞.
 그녀가 튀어오르듯 사장에게 달려들었다. 망설임 없이 날카로운 손톱으로 남자의 얼굴 살갗을 찢으며 귀를 물어뜯었다. 찌이익 소리를 내며 귀가 갈라지며 피가 흘러내린다. 아아아아악!!!!!! 끔찍한 고통에 사장이 비명을 질렀다. 모두가 목격한 현장이었다.


 “사장님!!!”
 “야, 차호원!”


 눈앞에서 처참한 상황이 일어났는데 그 누가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급하게 벌떡 일어난 용기 있는 사람들이 사장과 여성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고 참을 수 없었던 호원과 주명도 그들을 뒤따라갔다. 여자는 미친 사람 같았다. 싫다고 버둥대는 남자를 잡아다 온 몸을 뜯어먹었다. 인육에 미친 여자. 이미 돌아버린 눈동자는 핏빛에 미쳐 있었다. 사장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죽인 거다. 이 여자가, 이 남자를.
 말릴 틈을 겨우 잡아낸 몇 사람들은 미친 여자의 몸을 제압했다. 캬아아악! 마치 굶주린 짐승 마냥 발버둥치는 여성을 내려다보며 사람들의 몸에 확 소름이 끼쳤다. 여러 명의 남자들이 겨우 막아냈다. 엄청난 힘이었다. 웅성웅성대는 사람들 소리가 울린 가운데 호원이 벌벌 떨리는 손을 겨우 뻗었다.


 사장님이 죽었다. 그 맑게 웃던 인자한 얼굴은 살가죽이 떨어져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사장님...? 조심스레 몸을 흔들어 보았지만 움직임은 없었다. 사람이 죽었다. 처음으로 살육의 현장을 눈에 담은 호원의 시야가 흐릿해졌다. 이렇게 가시면 아기들 밥은 어떻게 줘요... 흐끅 삼키지 못한 눈물이 남자의 와이셔츠에 뚝, 뚝 떨어져 스며들었다.


 “사장님.....윽, 으으...”


 그때였다.


 텁, 하고 호원의 어깨가 잡혔다. 응? 주명의 손이 아니었다. 사장님이었다. 죽은 듯이 누워있던 사장님의 손이 벌떡 올라가 호원의 어깨를 잡아챘고, 그리고 시야가 뒤바꼈다. 비명소리가 울렸다. 벌떡 일어난 남자의 시체가 호원을 잡아 눌러 달려들었다. 

 

 “사, 장.. 아아악!!!!”

 -그어, 어.....어어어..!


 그는 사람 소리를 내지 않았다. 마치 여성과 같은 굶주린 짐승 마냥 입을 벌린 채 호원에게 달려들었다. 그것도 바로 코앞에! 급하게 발로 남자의 배를 눌러 보았지만 꿈쩍도 않는다.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얼굴부터 목까지 온 몸이 갈기갈기 살덩이가 찢겼것만 고통스럽지도 않은지 뚝, 뚝 피와 타액을 흘리며 남자가 입을 벌렸다. 그는 사장이 아냐! 달려드는 시체의 어깨와 배를 밀어내며 호원이 비명을 질렀다. 살려주세요!!!!!


 “살려, 살.. 아, 아아악!!!”


 하지만 아무도 


 아무도 손길을 뻗어주지 않았다. 마치 겁에 질린 것 마냥 사람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고 동시에 너머로 호원의 목소리를 삼키는 비명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시야가 뒤집어진 채라, 아니 그 전에 달려드는 시체 탓에 눈앞이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남자에게서 떨어지는 핏방울이 뚝, 뚝 호원의 이마에 떨어져 흘러내렸다. 공포감에 어찌하지 못하고 흐느꼈다.


 살려줘!
 아무도 도와주지 않,


 “이런 미친새끼가!!!!!!”


 뻑! 소리를 내며 호원을 짓누르던 무게가 가벼워졌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다시 팔이 잡혀 몸이 일으켜졌다. 정신 차려! 양 어깨가 잡혔다. 손길은 거칠지만 아프진 않다. 시선을 마주했다. 붉은 눈이지만 무섭지 않다. 조금 화난 듯 보였긴 했지만.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에 유난히 안대가 가려진 눈이 마음에 걸렸지만, 어쨌든 지금은 그저 반갑기만 한 얼굴이었다. 호원은 울음을 터트렸다.


 “멋대로 달려드는 것 좀 그만 하라고 했지!”
 “허엉, 엉.. 그치만.... 사장님이...”


 아 그래, 네가. 
 네가 있었다.


 주명이었다. 그도 벌어진 상황이 혼란스러웠는지 얼굴에 당혹감이 크게 묻어나 있었다. 꺽꺽 바보마냥 울음을 멈추지 않는 호원을 잡아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게 사장님으로 보이냐?! 버럭 소리를 외친 주명이 땀으로 흠뻑 젖은 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리며 말했다.


 “저건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야! 것보다 달릴 거니까 따라와. 뽀삐!”


 멍! 주명의 뒤를 따른 강아지가 월 소리를 내며 꼬리를 흔들었다. 그 작은 생명의 귀여움에 작게 미소를 지어보인 소년이었지만 곧 주변에 벌어진 참사에 입을 다물었다. 호원도 겨우 눈물을 닦아내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곳은 지옥이다. 살아난 남자의 시체는 주명이 걷어 찬 뒤였지만 다시 주변 사람들에게 달려들고 있었고 여자를 제압하던 남자들은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채 이상한 소리를 내며 여자와 같은 행위를 저지르고 있었다. 마치 괴물 마냥. 제압이 풀린 여자는 목표물을 잡아채며 사장에게 했던 그대로 사람들을 물어뜯고 있었다. 아아악!!! 사람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러대며 도망가고 있었다.


 “주, 주명..”
 “뛰어!”
 “아- 왓!”


  두 소년은 빨랐다. 그 뒤를 따르는 강아지도 결코 적지 않은 스피드를 내며 두 아이를 따라나섰다. 이미 딴 목표물에게 정신이 팔린 괴물들은 여전히 사람들을 물어뜯고 자신들의 동료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물을 흘릴 새도 없이 떡 입이 벌어진 호원은 간신히 주명의 뒤를 따랐다. 카페 밖을 뛰쳐나오고 달리고 또 달렸다. 연달아 사고가 일어난 탓인지 연기가 소년들을 덮쳤다.


 삐익-
 꺄아아악!
 살려주세요!!!!
 사람 살려!!!
 아 씨발, 대체 뭔.. 악!!!!
 쾅!!!!


 비명 소리. 터지는 소리. 먹어치우는 소리. 신음 소리. 괴물의 소리. 죽어가는 소리.
 귀가 터질 것 같아. 잔뜩 겁에 질린 호원이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명아.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는다. 끙 질끈 눈을 감고 다시 한 번 토해내듯


 “며, 명아...”


 간신히 너의 이름을 불렀다.


 “나, 나 무서..”
 “알아.”


 주명은 작게 숨을 들이 쉬며 이어 말했다.


 “나도 무서워.”


 분명히 뭔가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썼지만 주명ㅇ1가 너무 멋있어서 죽는다.. (죽어있음)
이거... 계속 생각하면서 ㄴ이어 쓸게요.....
그 머냐 우선 이렇게 밖에서 배회하다가 아심여칭 사람들 만나고 학교로 가서 정착할것같다.





2. 숨었다가 해치웠습니다.



 두 소년은 화장실 칸막이 안에 숨죽이고 있었다.


 -...아, 그어......어어어....


 세면대 쪽에 비틀비틀 걸음을 옮기고 있는 시체와 함께. 시체는 뻐득뻐득 이빨을 갈며 축 처진 몸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어깨는 타인의 공격에 살점이 뜯겨 하얀 뼈틈이 드러나 있었고 후두둑 떨어졌던 피는 딱딱한 검붉은 색으로 응고돼 옷을 더럽히고 있었다. 까맣게 타버린 듯한 이빨이나 점점 더 피폐해져 가는 얼굴빛은 마치 썩어 들어가는 것 같다. 무엇보다 멀리서도 느껴지는 시체의 악취. 호원은 인상을 찌푸리며 입과 코를 손으로 덮어 가렸다.
 카페에서 도망쳐 나온 호원의 세상은 악몽으로 변해 있었다. 카페에서 일어났던 일이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 마냥 도시는 이미 사람과 사람을 먹어 치우는 현장이 벌어져 있었다. 이곳은 지옥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을 덮친 몇 시체들이 정신없이 그의 살을 베어 물었다. 살려달라며 비명을 질렀지만 곧 멈췄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었으며 아무도 도망칠 수 없었다. 정신없이 살을 찢어낸 시체의 입가에 내장이 꿀렁대며 튀어나왔다. 입가에 질겁질겁 핏덩이를 묻혀내며 음식 마냥 사람의 내부기관을 음미한다. 이따금 서로가 더 많이 먹을 거라며 시체들을 서로끼리 밀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움직임을 멈출 때가 있다. 방금 전까지 시체들에게 먹혀 누워있던 사람의 손이 움찔 움직이기 시작할 때다. 마치 신호 마냥 내장과 살점을 뜯어먹던 시체들이 뚝, 움직임을 멈추다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들은 더 이상 자신들이 죽인 사람을 먹지 않는다. 마치 어서 오라는 듯 환영의 눈길을 보낸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죽어있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 끔찍한 소리를 내며 꺾인 목을 움찔댔다. 사람은 시체가 됐다. 그렇게 사람을 먹고 동료를 만들어냈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은, 나도 저렇게 될까? 고개를 돌렸다. 흐릿한 연기 사이로 바로 옆에 있는 네 얼굴이 보였다. 너도 저렇게 될까?

 ......아니! 그렇게 둘 순 없어. 싫어. 널 잡은 손을 다시 한 번 꾹 쥐었다. 주명아! 주변을 돌아보던 네가 다급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시선을 맞췄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말의 대답이었다. 달리자! 두 소년이 다시 빠르게 달리기 시작하면 그 뒤를 따르는 강아지 푸따가 헥헥 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틈을 노리지 않고 사람을 먹기 위한 시체들이 주명과 호원을 뒤따랐지만 몰려다니는 속도는 그만큼 빠르지 않았다.


 다행이다.
 다행

 다행이었는데....


 쾅! 소리를 내며 칸막이 문이 닫혔다. 큰 소리에 시체가 들썩대며 칸막이 문을 퍽, 퍽 손으로 두드리기 시작하자 겨우겨우 주명과 호원이 칸막이 문을 잠궜다. 그어억 소리를 내며 한참동안 문을 두드리던 시체는 이내 다시 조용해졌다. 호원과 주명이 입을 틀어막고 숨을 죽인 덕분이었을까? 이유는 제대로 알 순 없었지만 잠잠해진 좀비는 화장실 주변을 서성대고 있는 것 같았다. 호원은 안도감에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 옆으로 단단히 화가 난 주명에게 뺨을 잡혔다는 게 흠이지만. 쭉 쭉 뺨을 늘어뜨린 주명이 험악한 얼굴로 입소리를 내며 조용히 말했다.


 이-게 뭐처럼 나서길래 순순히 따라갔더니만 반대로 갇히게 만들어-?
 아.. 아 미안, 미안 아아아-!
 큰 소리 내기만 해봐. 저 놈한테 죽기 전에 나한테 죽을 줄 알아.

 괴, 괴물보다 더 무서워...


 그치만 어쩌겠는가. 시체들을 피하느라 도망치다보니 건물 안을 겨우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조용해 보이는 화장실만 눈에 띄었는데! 허겁지겁 도망친 탓에 뽀삐도 도중에 잃어버리고 말았다. 죄책감이 호원의 마음을 졸였다. 겨우 도망처일 줄 알고 문도 열었다. 하지만 문을 열어 재낀 순간 거울을 바라보고 있던 시체와 딱 눈이 마주쳐 얼어붙어버렸다. 아, 생각해보면 장소 고르는 운이 더럽게 없었지. 순간적으로 화장실 칸막이 안에 뛰어들지 않았더라면 뒤에 있는 시체나 앞에 있는 시체들에게 먹잇감이 되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둘에게 주어진 기회는 시간밖에 없다. 둘을 뒤쫓던 좀비 무리는 큰 소리가 울리지 않는 것을 보아 자리를 비운 듯 했다. 하지만 화장실에 남아있던 시체는 여전히 같은 자리를 뱅뱅 돌고 있었다. 미친, 저 새끼 화장실에 살림 차렸나. 몰래 문틈 사이를 엿보던 주명이 혀를 끌끌 찼다. 호원은 변기 뚜껑에 앉아 버벅대는 핸드폰을 조작해가며 인터넷을 뒤졌다. 상황은 꽤나 심각한 듯 했다.


 [OXO 바이러스 = 신 좀비 광인병]


 “...좀비.... 저게 좀비래 주명아.”
 “그러게나 말이다. 그것밖엔 안 보이네. 영화도 아니고...”


 [OO연구소에서 극비리로 실험되고 있던 OXO 바이러스가 드러났다. 정부는 이를 지적해 알려지지 않은 바이러스 연구소를 철폐를 요구했으나 군의 진압이 실시된 동시에 총괄 부장 김X식 연구원이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연구원이 소지하고 있던 바이러스는 불과 함께 불탄 줄 알려졌었으나 일부 바이러스가 유출되어 연구소 내에 서식하고 있던 원숭이와 개, 실험용 쥐에게 감염된 것으로 알려진다....]
 [감염된 동물들은 공격적인 태세를 취하며 무장한 군들을 무는 행위를 하다 이내 사살되었다. 물린 3명의 군인은 즉시 병원으로 수송됐지만 동물들과 같은 광견병 증상을 보이며 이내 의사와 간호사들을 공격했다고 보도되었다.]
 [연구소부터 AAA병원에서부터 시작된 바이러스를 정부는 ‘좀비 광인병’이라 칭하였다. 밝혀진 연구 자료 문헌으로 보아 신체의 뇌줄기를 빠른 속도로 갉아먹어 신체 정지가 된 몸을 침식해 조종한다. 감염된 생물체는 타 생명체의 몸을 공격해 타액과 혈액이 타인의 몸 안에 섭취하면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정확한 치료제는 불확정한 상태로... ]


 그 뒤의 기사를 검색하기엔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아 뚝뚝 화면이 끊겼다. 별 수 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끄고 주머니로 깊숙하게 집어넣은 호원은 고개를 들어올렸다. 걸어 다니는 시체, 아무리 봐도 좀비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19금 좀비 영화마냥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모두 현실. 게임이라던가 드라마, 영화가 아냐. 호원은 눈앞에서 끔찍하게 유린당하던 사람들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역겨워...’


 “야.”
 “......? .....! 주명 너 뭐-!”
 “쉿.”


 조용히 좀 해. 주명은 두 번째 손가락을 자신의 입가에 가져다대며 웅얼댔다. 그제야 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그으으으... 어으어... 작게 앓는 소리를 내던 좀비는 다행히 이를 눈치 채지 못한 듯 보였다. 안도감에 숨을 돌린 호원이 고개를 올렸다.
 주명은 칸막이 위에 매달리고 있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칸막이를 타 넘어가 다른 화장실 칸이나 너머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조금 비켜 보라는 듯 위에 매달린 주명이 툭 툭 발을 동동거렸다. 변기에 앉아있던 호원이 자리를 비키자 그것을 버팀목 삼아 밟던 주명이 끙 소리를 내며 완벽하게 다른 칸으로 넘어갔다. 킁! 반대쪽에 시체, 아니 좀비가 그르렁대는 울음소리가 들려 움찔했지만 다행히 잠잠해졌다. 들키지 않았다는 건 다행스러웠지만 같은 칸에 있지 않는 그의 행동이 걱정됐다.

 그리고 톡톡, 작게 손톱으로 두들기는 소리가 울렸다. 주명이다. 바닥 틈으로 주명의 검은 스마트폰이 건너왔다. 밝게 켜진 화면 너머론 주명이 적어내린 메모가 있었다.


 [세면대 반대쪽. 걸레냄새 쩔어. 근데 여기 공사 중이었나봐. 공구함 있다.]


 ‘공구함..?’


 시선을 위로 올렸다. 그러고 보니 유난히 어두웠던 화장실 내부였다. 불을 켜지 않는 이유도 있었지만 천장에 붙어있는 전등에 전구가 반으로 갈라 떼워져 있었다. 이따금 천장 타일도 벗겨져 있는 것도 보였다. 시선을 살짝 내려 칸막이를 둘러보면 공중 화장실 내부에 달려있는 낙서나 흔적 하나 없이 말끔해보였다. 어렴풋이 예상이 됐다. 그 말대로 이곳은 공사중이다.


 [리모델링 하려고 했던 걸까.... 우리한텐 좋은 기회네. 거기에 뭐 좋은 거라도 있어?]


 까딱까딱 주명의 핸드폰에 메모를 넣은 후 다시 바닥 건너편으로 밀어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핸드폰이 건너왔다. 데구르르 굴러 들어오는 날카로운 물건과 함께. 동그란 손잡이와 그 너머로 단숨에 꿰뚫어 버릴 만한 날카로운 송곳이었다.


 [쓸만한 건 그거랑 망치. 혹시 몰라서 주는 거지만 장난치다 다치지 마.]

 ‘내가 애도 아니고....’


 망치라. 주명이 망치를 쥐고 흐뭇하게 웃는 모습을 잠시나마 상상했다. 소름이 끼쳤다. 그 정도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버렸기 때문이다. ....당분간 까불지 말아야지. 작게 다짐한 호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송곳을 쥐었다. 그러고 나서 언제쯤 돌아올 것이냐고 메시지를 적고 바닥 너머로 보낼 생각이었다. 허리를 숙인 호원이 핸드폰을 쥐고 밀어 넣으려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쾅! 소리와 함께 주명이 있는 쪽으로 큰 소리가 울렸다.


 “?!”


 명아, 무슨 일-?! 입을 열 틈은 없었다. 반대쪽에 열이 오른 짐승의 짖는 소리가 울렸다. 꼬리를 문 것이다. 너머에 무슨 일이 있는 지 알 순 없었지만!!!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터벅, 터벅 좀비가 꺽꺽대며 주명이 있는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바닥 너머로 좀비의 그림자가 비췄다. 공포감에 호원의 몸이 벌벌 떨렸다.


 어쩌지 어쩌지 어쩌면 좋지!


 주명은 아직 저곳에 있는데! 고민할 틈도 없이 단 몇 초 만에 좀비는 칸막이 너머로 성큼성큼 걸어가 주명이 있는 뒤쪽 세면대로 향할 것이다. 무서워. 호원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호원은 아무 탈 없이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그아아... 기분 나쁜 울음을 짖으며 좀비가 성큼성큼 지나쳤다.


 하지만 저곳엔 주명이 있잖아....!!!
 잠금표시를 풀고 칸막이 문을 열어 재꼈다.


 “주명아!!!!!”


 악 소리를 질러 네 이름을 불렀다. 뒤쪽 세면대로 향하던 좀비의 걸음이 뚝 멈추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끔찍한 형체의 좀비는 마치 웃는 얼굴을 짓는 것 같기도 했다.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달려오기 시작하는 좀비를 보며 호원은 송곳을 쥐어 치켜세웠다.
 괜찮아. 시간은 벌었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도 주명은 이대로-


 “-야 이 멍청아!”
 “?!”


 너머로 들렸어야 할 그의 목소리가 위쪽에서 울렸다. 호원이 소리가 들린 쪽으로 시선을 올렸다. 막 칸막이를 넘기 직전인 주명이 다급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갑작스레 울렸던 큰 소리. 소리에 반응해 천천히 다가갔던 좀비. 칸막이를 넘고 있는 주명. 유인작전이었다. 난 왜 이렇게 바보 같은 걸까. 자기혐오에 호원이 질끈 눈을 감았다. 주명은 넘어왔던 칸막이 칸을 다시 펄쩍 가볍게 뛰어 내려오고 나선 달려오던 좀비의 배를 걷어찼다.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휘청여 넘어지던 좀비였지만 그 틈을 노리고 걷어 찼던 주명의 발목을 콱 잡아챘다.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두 명이 동시에 바닥을 굴렀다.
 아윽! 잡아챈 발이 아프다. 주명이 인상을 찌푸리며 작게 앓았지만 가만히 있을 틈은 없었다. 함께 구른 좀비가 다시 한 번 더 벌떡 일어나 눈앞에 놓여있는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에 손을 뻗었기 때문이다. 꺼져! 다가오던 좀비를 향해 미리 쥐고 있던 망치를 휘둘렀다. 어깨뼈 정중앙에 맞아 뿌득, 뼈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시체는 고통도 그 이상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갈구할 뿐이었다. 덜렁대는 팔을 움찔대다가 소용이 없다는 걸 알아채자 얼굴을 들이밀었다. 윽, 미친...! 욱신대는 발목을 움직일 수가 없어 반대쪽 손으로 다가오는 얼굴을 밀어내는 게 전부였다. 끔찍한 썩은내와 이빨 너머로 질질 흘리는 혈액 섞인 타액이 혐오스러웠다. 끔찍하다. 주명이 인상을 잔뜩 찌풀이며 소리쳤다.


 “멍 때리고 뭐하냐 차호원!!!”
 “!”
 “아- 빨리 가라고 좀!”


 가? 어딜?
 너를 두고?


 먹히기 직전인 주명이 좀비와 아웅대며 싸우고 있었다. 카페에서도 자랑하던 날려차기를 하기가 어려운 상황인지 주명은 주저앉아 있었다. 왜? 왜 그러고 있어? 왜 나는 움직이지 않아. 크어어어억!! 끔찍한 비명을 외마디 지른 좀비가 불쑥 주명의 코앞에 얼굴을 내밀었다. 어마어마한 힘을 버텨내기가 어려운지 주명이 앓는 소리를 냈다. 금방이라도 저 시체가 주명의 코부터 얼굴 전체를 삼켜버릴 것 같았다. 그가 위험했다.
 그런데 그런 그는 정작 나더러 도망가라고 하네. 카페에서도, 도망칠 때에도, 화장실에 갇혀 숨어있을 때도 지금도 늘, 늘 너는 도망가라고만 한다. 아무것도 아닌 양 익숙하게 버럭 화를 내며 호원더러 가라고 한다. 싸우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거뜬하다며 몸으로 행동으로 얼굴로 손짓으로 말한다. 그런 얼굴에 홀라당 속아 넘어 가는 것도 호원의 몫이었다. ...하지만


 나도 무서워.


 ‘그렇게 말했었는데’


 그렇게 말했는데 내가 어떻게 너를 두고 가! 자신의 이기적인 행동에 끔찍한 혐오감이 들었다. 결국 또 주명에게 밀어냈다. 호원은 그가 건넸던 송곳을 쥐고 주명과 좀비가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차호원 얼른 가래도!!!! 다급하게 소리친 주명의 외마디 고함을 뒤로 삼키며 불끈 쥔 주먹을 위로 치켜 세웠다. 달려갔다. 날카로운 송곳 끝을 주명의 귀를 스쳐 지나갔다. 아주 작은 거리, 그 틈을 노리고 찔러 넣으려던 송곳을 그대로 꽂아 박았다. 누구에게? 좀비지 누구겠어!


 [신체의 뇌줄기를 빠른 속도로 갉아먹어 신체 정지가 된 몸을 침식해 조종한다. 감염된 생물체는 타 생명체의 몸을 공격해 타액과 혈액이 타인의 몸 안에 섭취하면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뇌줄기를 갉아먹어 사람의 신체를 조종하는 바이러스라면, 몸을 움직이도록 만들어주는 전두엽. 아니 뇌 그 자체를 마비시키면 그만이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기사가 정말 맞는 내용이라면- 늘 영화에서만 보는 전개가 맞다면!!


 머리통을 꽂아넣은 송곳의 손잡이에 힘을 주고 다시 꾸우욱 눌렀다. 찌꺽대며 뚫린 구멍틈 사이로 검붉은 색의 피가 흘러나온다. 이미 신체 내부에서 썩혀버린 혈액이었다. 좀비는 송곳에 의해 머리가 뚫리자마자 움찔움찔 떨며 괴로운 소리를 짖었다. 효과가 있었다! 주명을 뒤에서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고 그를 뒤로 밀어 넣었다. 쉽게 덤벼들지 못하는 좀비의 어깨를 걷어차고 넘어뜨리자 꾹 쥐고 있던 송곳이 함께 뽑혔다! 날카로운 쇠붙이가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졌다. 앞뒤를 가릴 틈은 없다. 호원의 옆엔 여전히 주명이 있었다.
 뽑힌 송곳과 함께 튀어나오는 핏줄기에 호원은 다시 질끈 눈을 감았으나 힘을 준 손은 풀지 않았다. 후두둑, 호원의 새하얀 교복 와이셔츠와 주명의 바지에 피가 튀었다. 입을 악물고 다시  한번 송곳을 쥔 손을 그대로 좀비의 후두부에 내리꽂았다. 빡 소리를 내며 쉽게 시체의 머리에 송곳이 관통했다.

 쩍 소리를 내며 시체의 머리가 갈라졌다. 두 개의 구멍 자국에서 꿀렁꿀렁 핏덩이가 흘러 올라오더니 이내 멈췄다. 좀비의 움직임도 함께 말이다. 시체는 더 이상 소리 한 번 내지 않았으며 마치 인형마냥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일어날 기색은 없었다. 죽었다. 시체가 비로소 죽은 것이다.
 두 소년은 정적 속에서 숨을 고르기 바빴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머리를 정리할 틈은 없었다. 호원은 떨리는 손을 조심스레 펴보았다. 말라 굳어버린 검붉은 피가 흥건하다. 막힌 숨을 토해냈다.


 사람을 죽였다.


 “~야.. 너 방금 뭐 한 거야..?”


 그치만 너는 살았어.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주명은 살았다. 뒤로 밀어버린 탓에 반쯤 넘어진 상태고 발목도 삐어버린 것 같았지만 큰 상처는 없었다. 그는 죽지 않았다. 여전히 호원의 옆에 있었다.
 그러면 사람을 죽였다는 죄악감보다 네가 살았다는 안도감에 복잡한 눈물이 후두둑 눈가를 타고 떨어졌다. 아 울보 또 울어! 기겁한 주명이 또 소리라도 낼까 싶어 다가와 호원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화장실 내부에 작은 훌쩍거림이 새어 가다 천천히 등을 토닥여주는 어색한 손길에 점점 더 멎어들었다.


 너는 정말로 상냥하다. 


 방금 전까지 호원이 저지른 살인을 기꺼이 넘어가주며 아무것도 묻지 않고 달래기만 해준다. 그 어색한 손길이, 거칠지만 상냥함이 든 목소리가 좋았다. 주명이 살아서 다행이다... 꺼이꺼이 울음을 삼키던 호원이 주명을 확 끌어안았다.


 “다신.. 다신 멋대로 굴지 마!”
 “..뭐?”


 아니, 멋대로 굴던 놈이 누군데. 주명이 투덜거렸다. 그래 맞아. 멋대로 굴던 놈은 나지. 하지만 제 발 굴려 멋대로 행동한 호원 때문에 주명이 그를 대신 할 이유는 없었다. 내가 괴물에게 물어 뜯겨도, 그들처럼 시체가 된다고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너만은. 절대 너만큼은.


 “내가 싼 똥은 내가 해결할 테니까 주명 네가 대신해 줄 필요는 없어...!”
 “....”
 “허엉, 다신.. 다신 그러지 마. 나도 조심할 테니까... 나때문에 주명이 죽는 건 진짜 싫어...!!”


 죽지마. 주명을 끌어안은 팔에 강하게 힘을 쥐어냈다. 살짝 곱슬기가 도는 검은 머리카락은 여전히 윤기가 났고 괴물처럼 눈동자 색이 충혈된 게 아닌 그만의 붉은빛 눈동자도 여전했다. 허어엉..ㅠ... 하염없이 울리는 서러움에 꺼이꺼이 눈물을 쏟아내며 주명을 품안에 가뒀다. 숨결이 느껴졌다. 따뜻하다. 혈색이 돌았다.


 “오래 살아. 계속, 계속 살아줘.”


 살아있어.


 “주명은 죽지마...!!”




짧게 쓰려던 내용인데 쓰다보니까 길어져서..ㅎㅇㅎ


 


 
 


3. 만났습니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좀비는 화장실 칸막이 안으로 밀어 넣었다. 다시 일어나면 어쩔까 싶어 단단히 문도 잠구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호원은 우선 피범벅이 된 송곳과 손, 얼굴부터 깨끗하게 씻어냈다 씻겨 내려가는 검붉은 핏물에 잠시 현기증이 일어났으나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정신 차려. 깨끗해진 손으로 양 뺨을 짝 때렸다. 이 상황을 봐. 누가 누굴 죽일 수밖에 없는 현장이라고. 내가 하지 않았더라면 주명이 다쳤어. 어질어질한 머리를 쥐어  박으며 호원은 얼굴까지 꼼꼼하게 씻었다. 송곳도 다시 깨끗해진 원상태로 돌아갔다.


 “야, 차호원-”


 다 씻었냐? 뒤에서 주명이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응 곧 갈게! 부랴부랴 젖은 손으로 교복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어 헤쳤다. 군데군데 시체의 피와 먼지가 가득한 와이셔츠를 내다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이건 안 되겠네. 결국 와이셔츠 안에 입고 있던 흰 티셔츠를 벗었다. 다시 더러워진 교복을 말끔하게 갈아입은 호원은 날카로운 송곳으로 흰 티셔츠의 부분을 갈기갈기 찢었다. 송곳이 날카로운 덕분인지 티셔츠가 얇아서 덕분인지는 몰랐지만 티셔츠에서 깔끔한 천이 된 것을 보며 호원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다음은 간단했다. 아직 일어서지 않고 벽에 등을 기대며 앉아 있는 주명에게로 갔다. 다리 보여줘. 호원의 말에 순순히 삔 다리를 내밀었다. 호원은 주명의 발목을 잡고 양말을 벗겨냈다. 좀비가 얼마나 꽉 쥐어냈던 건지 자국이 남을 정도였다. 발목과 발 틈 사이사이를 이리저리 눌러대며 호원이 물었다. 아파? 주명이 고개를 저었다. 틀면 조금 아픈 정도야.


 “그럼 다행이다. 심하게 삔 건 아닌 것 같아. 그래도 너무 무리하면 안 되는데..”
 “이 상황에 무리를 안 하는 게 이상한 일이겠지만... 노력은 해볼게.”
 “응.”


 찢어놓은 천으로 꼼꼼하게 주명의 발을 감기 시작한다. 발가락 끝 사이에 천 여분을 남겨두고 너무 답답하지 않게끔만 천을 감는다. 붕대보다야 못하겠지만 움직이면서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는 데엔 방지해줄 것이다. 불편하지 않도록 발목 위만 감아준 후 풀어지지 않게 꽉 묶는다. 안 아프지? 다시 되묻는다.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너 요령 좋네... 이런 건 어디서 배웠어?”
 “...내가 한두 번 다친 게 아니잖아... 보건쌤한테. 이제 봐주는 것도 귀찮다면서 직접 하라더라고.”
 “그 인간도 참....; 야 그래도 이럴 때 써먹는 거 아니냐. 고맙다.”


 그럼 슬슬 가볼까? 주명이 슥슥 호원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더니 가뿐히 일어섰다. 그가 만진 머리카락을 만지작대며 호원이 따라 일어섰다.


 “조금 쉬다 가도... 무리하면 안 된다고.”
 “쉬다가 또 튀어나오면 이제 도망칠 곳도 없거든? 죽이는 법도 알았겠다- 이제 진짜 이판사판이야. 물러설 곳은 없어.”

 손에 쥔 망치를 흔들어 보이며 주명이 얄밉게 웃었다. 그런 네 모습이 싫진 않지만.... 끙, 호원이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럼 부축해줄게.”
 “저 괴물떼가 몰려올 때도 그럴래? 잘도 하겠다.”
 “....그럼 어부바!”
 “너 나더러 죽지 말라며.”


 죽일 셈이냐. 일절의 신뢰도 없는 주명의 말에 찔린 듯 윽, 호원이 움찔했다. 하기야 정말로 주명을 업는다 해도 자신이 언제 어디서 넘어질지 모르고 정말 급한 상황에 달릴 수 있을까도 문젠데.... 주명을 말로 이겨낼 방법은 없었다. 결국 나가는 걸로 합의가 끝나고 나서야 슬금슬금 주명과 호원이 화장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몇 시간 전까지 비명과 폭발음, 괴물의 울부짖음으로 가득했던 게 마치 거짓말 같았다. 도시엔 사람들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고 이따금 부딪혀서 폭발한 자동차들이나 부서진 조형물들, 그리고 구석에 모여 있는 시체들로 가득했다. 마치 살아있는 자들이라고는 우리들밖에 없는 것 마냥. 세상이 그렇게 멸망해버린 것 같았다. 물론 절망감에 빠져 있을 여유는 없었다. 나오자마자 몰려있는 좀비떼를 피해 주명과 호원이 다급히 몸을 숨겼다.


 “그, 그럼 이제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네가 했던 것처럼 쓰러트려야지. 그런데 머리를 노려야 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
 “아- 그거...”


 호원은 주명에게 화장실에서 찾았던 기사 내용들을 대충 요약해가며 설명했다. 그 말만으로도 이해가 갔는지 주명이 두어 번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가 진짜가 된 기분이네. 뇌줄기라..”
 “전두엽이 몸의 움직임을 막아내니까 그것만 공격하면 대충 움직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머리를 과격 하자마자 죽어버렸잖아. 본래 시체처럼. 정확히는 알 순 없지만 바이러스가 뇌를 조종한다고 하면 그 뇌 자체를 파괴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놀랐는데 생각 의외로 잘 들어가던데?”


 그거 말야. 작게 속삭이며 주명이 호원이 든 송곳을 가리켰다. 아, 그거야... 호원이 우물쭈물하던 것도 잠시 입을 열었다. 인간의 몸은 생각 의외로 약하니까.


 “우선 죽었..잖아? 시체라고. 몸에서 썩은내 나던 거 기억하지?”
 “그래, 살아나긴 했지만 죽은 거라고 밖엔 생각 못 할 정도로 났지.”
 “바이러스가 몸을 조종한다고 해도 결국 죽은 몸이잖아... 죽은 후에 일어나는 사후경직 때문에 좀비들이 몸을 자유롭게 쓰지를 못해. 뇌도, 시야도, 후각도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부패 속도도 굉장히 빨라. 썩은 몸이 버텨낼 린 없지. 세포들이 죽어버렸으니까. 다시이겨 만들어낼 항체 따윈 없는 거야. 그래서 송곳도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건 아냐.”
 “그 정도로 충분해.”


 열심히 공부했네. 다시 손을 슥슥 쓰다듬은 주명이 연달아 말했다. ...결국 이런 걸로 공부했다는 걸 알게 되어 버렸지만.. 민망하게 뺨을 긁으며 웃는 호원이었지만 곧 그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주명 뒤쪽 너머로 자신들을 발견한 좀비 한 마리가 그어어어- 괴상한 소리를 내며 기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좀비 또한 몸은 성치 않은 상황이었는지 다른 좀비보다 걷지도 못하고 질질 다리를 끌며 기고 있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지만.
 아, 아- 아 저기 저기 저기 저저저저저저저기 잔뜩 당황한 호원이 급하게 손가락으로 주명쪽을 가리켰지만 그는 픽- 가볍게 소리를 흘기며 웃을 뿐이었다.


 “울보에 멍청이에 둔한 너지만 이럴 땐 가끔 쓸모가 있다니까...”
 “아으, 어 저기저기- 저 주, 주며어읍”


 왁-! 소리를 지르기 직전인 호원의 입을 틀어막은 주명이 이어 말했다. 그러니까 실험 딱 한 번만 해보자 이거야. 네 말이 정말로 맞는지. 좀비는 코앞까지 다가왔다. 금방이라도 주명의 다리를 베어 삼킬 듯 입을 커다랗게 벌렸다. 하지만 주명이 조금 더 빨랐다.
 쿠직! 신명 나는 소리가 울리며 좀비의 머리가 반쯤 깨졌다. 리얼하게 찌그러진 인체의 얼굴에 역한 느낌이 들었지만 호원이 주명을 막을 수 있을 린 없었다. 아직 채 망가지지 않은 좀비는 어억- 대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올렸지만 주명이 쥔 망치를 들어 올리고 다시 꽝! 소리를 내며 좀비의 두개골을 강타했다. 좀비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분명 뇌가 짓눌려진 걸로도 몰라 으깨진 거야 저건. 두개골 뼛조각이 아스라졌겠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통에 호원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


 “...이런 느낌인가?”


 그제야 손을 떼어낸 주명이 붉게 물든 망치를 탁탁 털어내며 말했다.
 아, 역시 어울린다. 좀비보다 주명이 더 무서워.... 망치를 들고있는 한 절대 개기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 *


 “학교로 가자.”


 두 소년은 가장 먼저좀비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스레 행동하는 대신 곳곳에 열려있는 차 트렁크를 열거나 안을 뒤져보기도 했다. 다 각자의 주인이 있겠지만... 그들 중 좀비가 되어있을지 또 누가 알랴? 각자의 생존을 위해 호원과 주명이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종종 허탕친 것도 있었으나 몇 개는 좋은 물품도 찾을 수 있었다.
 우선 차 내부에 있는 먹거리들로 배를 채우고 트렁크를 열었다. 망치와 송곳도 좀비를 해치우기 훌륭한 무기들이었지만 손에 들어올 정도로 작고 여러 번 후려치거나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다수의 상황으로는 불리했다. 그러던 순간 트렁크 내부에 있는 야구 배트가 있었다. 이 차의 주인은 야구를 좋아했나봐. 호원이 야구공을 들던 사이 주명이 흡족하게 웃으며 배트를 휘둘렀다.

 “이거 좋은데?” 은색 두 야구배트는 호원과 주명의 것이 되었다. 무거운 망치는 버리고 송곳을 챙겨두고 나서야 두 명이 입을 모아 말하기도 훨씬 더 수월해졌다.

 그러고 나서 가장 먼저 정한 곳은 호원과 주명의 도착지.


 “...집..”
 “동의하긴 한데.. 지금은 우리 몸부터 지켜야 할 거 아냐.”
 “윽... 그러면 경찰서....?”
 “이미 출동명령 내려져서 아무도 없을 텐데?”
 “국회의사당..”
 “아예 가서 따지게? 지하철 타야 할 텐데 좀비들 몇이나 되겠냐.”
 “.....”


 그럼 어디를 가라고....! 말하는 것마다 족족 막히는 통에 서럽게 울분을 토해낸 호원의 모습에 주명이 푹 한숨을 쉬었다. 그거야 당연하잖아.


 “학교.”
 “어..?”
 “학교로 가자.”


 왜 하필 가도 학교야? 의문 가득한 얼굴로 묻자 그는 쉬이 대답했다.


 “우리 학교 재난 재해 대피령 장소로 정해졌었잖아. 매 년마다 훈련도 하고 있고.”
 “아..!”
 “군들이 우선시 하는 곳도 병원 아니면 학교야. 거기 가서 구조 요청을 하는 게 더 빠를 테고. 병원을 가기엔 거리가 더 멀기도 하고 거긴 더 좀비 밭일걸. 우리 오늘 선생님들 교육 듣는다고 학교 일찍 끝났잖아.”


 주명의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병원은 좀비들에게 물려 다친 사람들이 수송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병원이 가장 주요 위협지라는 건가. 애초에 주명과 호원이 즐겨 갔던 애견 카페는 학교와 거리가 멀지 않은 곳에 떨어져 있었다. 걸어서 곧장 향하려면 내구도를 잘 알고 있는 학교가 낫다. 군들이 사람들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면 학교에 있을 사람들을 구조할 게 뻔하다. 주명이 훨씬 더 영리했다. 둘의 목적진 당연하게 학교가 되었다.

 물론 아무리 학교가 가깝다고 한들 쉬이 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평소라면 걸어서 십오 분이 걸릴 것을 한 시간이 내내 지나도 도착하지 못했다. 곳곳에 좀비들이 깔려있으니 오죽할까. 소리에 크게 반응하는 좀비들을 유인하기 위해 열려있는 자동차에다 크락션을 울려 한쪽에 모이도록 만들거나 가까이 다가오는 좀비를 각자 한 명씩 맡아 후려치기도 했다. 처음엔 죄악감이 들던 것도 서서히 좀비들이 몰려다니며 저마다 물어뜯는 잔인한 행각을 보며 서서히 사라져만 갔다. 약육강식이지 뭐. 배트를 있는 대로 휘두르다가 다리부터 공격해 움직이지 못하게끔 만드는 것에도 겨우 익숙해질 즘이면 아직도 반밖에 못 왔다는 좌절감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제 무리야아아-... 헉헉대며 야구배트를 땅 바닥에 세운 호원이 가쁜 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언제 도착해애.. 해도 질 것 같고... 윽, 가도 좀비가 있으면 어떡...”
 “투덜대지 마! 앞도 뒤도 다 좀빈데 뚫고 지나가야지. 쉴 공간도 직접 만들어야 할 판인데 빨리 가야돼.”


 빨리 와. 호원의 팔을 잡아끌며 재촉하는 주명이었지만 그 또한 지쳐있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다리. 호원이 못내 걱정스러운 눈으로 주명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정말 좀비들 없는 곳으로 가서 쉬어야 하는 거 아냐..? 주명, 너 발 무리해서 아프잖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거든! 그리고 그런 장소 찾다가 괜히 시간도 버리고 저 괴물 새끼들도 더 몰려. 서두르는 게 더 나아.”
 “..역시 업어줄게.”


 무리하는 거 싫어.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는 호원에 주명이 잠시 멈칫했다.


 “...나 진짜 죽으라고?”
 “아냐! 아니라고! 넌 사람이 걱정해줘도 진짜!!!”
 “아 미친 차호원 큰 소리 내지 마!!! 저 새끼들 몰려오잖아!!!”
 “뭐래, 네가 더 시끄러워!!!! 입 다물어!!”


 이쯤이면 좀비랑 싸우는 건지 사람과 싸우는 건기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주명과 호원이 이를 갈며 투닥대기 시작했다. 누가 누가 더 시끄럽나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그 소리를 들은 좀비 한두 마리가 반응해 터벅터벅 두 소년에게로 다가온다는 것이 중요했다. 서로 뺨과 머리를 잡고 흔들던 주명과 호원이 다시 멈칫 움직임을 동했다. 끔직한 형태를 갖추고 온 좀비들이 서서히 둘의 거리를 좁혀왔다. 둘은 정적을 지키며 잠시 서로를 흘낏 바라보며 눈빛으로 말했다.


 일단 나중에 싸우자.
 ㅇㅇ...


 주명과 호원이 다시 바닥에 내려놓은 야구배트를 쥐고 자세를 잡았다. 결국엔 이판사판이다. 스피드에는 자신이 있었으나 주명은 부상을 당해 제대로 뛸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해야 해. 둘이 거의 동시에 한 발자국, 두 발자국을 내딛으며 점점 더 다가오는 좀비들을 향해 배트를 휘둘렀다.


 뻐억-!

 ““?!””


 마치 커다란 진동같았다. 배트를 휘두르는 깡-! 소리와는 다르다. 마치, 무언가를 엄청나게 휘둘러 때린 듯한.. 주명과 호원의 손에는 여전히 배트가 쥐어져 있었지만 휘두른 끝은 상대를 맞추지 않은 상황이었다.
 뒤에서 큰 소리가 울렸던 탓일까 둘에게 다가오던 대여섯 무리의 좀비들이 고개를 꺾었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얼굴이 삐걱댔다. 시체들은 눈앞에서 나가떨어진 자신들의 동료를 발견했다. 어찌나 심각하게 맞았는지 흉측해진 얼굴이나 몸 부분부분이 짓눌려 있었다. 반절 정도 뒤집힌 얼굴이나 손목은 뒤로 꺾여 너덜너덜했고 다리는 재기불능이었다. ....차라리 죽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처참했다.


 “하... 씨발, 엄청 거슬리네요 못난이들.”


 낯선 목소리. 분명 좀비가 튀어 나가떨어진 방향이었다. 어두운 그림자와 함께 서서히 남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갈색빛 머리카락이 희끄무리한 빛에 반사돼 빛난다. 그는 새까만 정장을 갖추고 있었지만 두 소년은 알 수 있었다. 단순한 검빛 정장이라면 실로 훈훈한 남성이었을 테지만 그는 달랐다. 피를 제대로 뒤집어 쓴 채 쓰읍 숨을 들이키며 소매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예쁘지 못하게.”


 괴물이 괴물을 패는 건지
 사람이 괴물을 패는 건지

 정확하게 분별할 순 없었지만 사건이 터지고 난 후, 주명과 호원이 처음으로 발견한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으으으ㅡ 3편!! 언제까지 쓰려낭
운누리두 나왔고 담편엔 하얀이랑 가람이 진수씨 백여씨 유메슌군 천천히 등장시켜야지~

 

 



4. 도착했습니다.



 “...음? 거기 예쁜이들은 괴물이 아니죠?”


 글쎄요. 일단 당신한테 도로 돌려줘서 여쭙고 싶습니다만.

 떼거지로 덤벼든 좀비들은 혼미박산이 되었다. 남자는 꽤나 잔인하게 달려드는 좀비들을 꺾어 움직이지 못하도록 팔과 다리를 분질러버렸다. 그들이 까드득 소리를 내며 앓았고 입을 벌렸지만 그마저도 남자는 허용하지 않았다. 콱! 소리를 내며 죽어가지도 못하는 시체의 얼굴에 발을 밟고 퍽퍽 짓눌렀다.
 으아아아아... 무, 무서워...! 호원이 주명의 뒤에 숨으며 소리를 삼켰다. 두 소년이 본 참상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결국 둘이 상대했어야 할 좀비들은 대부분 움직이지도 못하고 바닥에 너덜너덜한 상태로 누워있어야만 했다. 남자는 살짝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내며 가볍게 미소를 짓고선 너머에 있는 두 소년에게 인사를 건넸다.


 “살아있는 예쁜이들을 보니 반갑네요.”
 “거, 예쁜이라는 말 좀 치우지..?”
 “미안, 버릇이라.”


 남자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래에서 거으으윽 소리를 내는 좀비를 다시 한 번 콱 짓밟는다. 으아아아아... 차마 보지 못할 광경에 호원이 두 눈을 가리다가도 혹시나 싶어 저기.. 하며 용기를 내 말을 걸었다.


 “네?”
 “그... 모르시는 것 같아서요... 그, 저 시체.. 아니, 좀비들은 머리에 있는 뇌를 망가뜨리면 움직이지 않..”
“아 알아요.”


 남자는 상냥하게 웃으며 호원의 말에 가벼이 대답했다. 지글지글 비벼 밟던 남자의 구둣발이 살짝 세워지더니 이내 좀비의 후두부를 꾸우욱 짓밟는다. 너무나도 쉽게 부패해진 시체의 얼굴이 반쯤 짓눌러지더니 이내 좀비는 뚝 움직임을 멈췄다.


 “그치만 쉽게 죽이는 건 그것대로 재미없잖아요.”
 “....주명, 주명아아아 우리 죽을 거야...!”
 “..이, 이런 곳에서 안 죽는다는 게 더 이상하다 야.”


 잔뜩 겁먹은 호원의 머리를 탈탈 쓰다듬으며 주명이 긴장된 입 꼬리를 올렸다.


 “그쪽 이름은? 여기 이 울보는 차호원이고 난 주명. 어떻게 어디서 왔냐고는 여기에서 묻기엔 시간도 급하고..”
 “...하운입니다. 그렇네요. 자리라도 옮겨서 대화라도 해볼까요. 본래 그런 걸 선호한 직종은 아니지만...”


 직종이 아니라는 건 뭔데?!?! 반쯤 울음을 삼키며 주명의 허리를 콱 틀어잡았다. 야 아프거든. 주명이 투덜대며 호원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상황도 상황이니... 게다가 저도 한 몸은 아니라서요.”
 “응?”
 “한 몸이 아니라니...?”


 물음표를 그리며 두 소년이 되묻자 운은 그저 빙긋이 웃으며 자신이 들어왔든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주명과 호원이 시선을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 탁, 탁 가볍게 내려오는 발소리가 울렸다. 좀비라기엔 조용했고 가볍다.
 “다 끝났어요?”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습을 드러냈다. 호원과 주명이 사건이 터지고 난 후 두 번째로 본 사람의 모습이었다. 맑은 붉은빛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내려온 웨이브 머리칼이다. 피부는 깔끔하게 하얀빛이 돌고 있었고 예쁘장한 얼굴이었다. 그보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저도 모르게 시선이 뺏긴 호원이 아차 싶어 그녀의 모습을 살폈다. 하얀 원피스엔 핏방울 하나 묻지 않았고 깔끔했다. 누가 뭐래도 조숙한 여성의 모습이었다. 손에 든 나이프만 제외하면.


 “...어머, 거기 누구?”
 “어서 와요. 우리만 살았던 게 아니었나 봐요.”


 페퍼톤의 눈동자가 두어 번 깜빡이며 두 소년을 응시했다. 으응-? 어디서 봤더라... 호원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아!”


 생각났다! 저도 모르게 커다란 소리를 내자 주명이 다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좀 조용히 하래도! 그가 입을 틀어막은 탓에 그녀를 부를 순 없었지만 대신 호원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주명이나 하운은 알아봤을까? 그녀는 한창 대중가요 차트에서 높은 순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가수인데! 종종 음악을 즐겨듣는 호원의 음악파일에는 그녀의 부드러운 감성 노래가 담아져 있었다. 호원과 주명보다 한 살 어린 나이었지만 뛰어난 노래와 작곡 실력으로 한국을 한 번 들썩이게 만들었던 가수!


 ‘싸, 싸인 받고 싶어......!’


 이런 상황인 게 안타까울 정도로! 뭐, 굳이 이런 사태가 터지지 않았으면 만나기조차 어려운 상대였을 지도 몰랐지만 호원은 그저 안타까웠다. 가방도 그대로 카페에 두고 왔기 때문에 종이도 펜도 없다! 아아아아아아아아...


 “..넌 그냥 입 다물고 있어라.”


 혼자서 훌쩍이고 있는 호원을 미심쩍게 지켜보던 주명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자 겨우 입을 틀어막던 손에서 벗어났다. 하운은 옆으로 다가오는 그녀에게 슬쩍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선 주명과 호원에게 하얀을 소개했다.


 “이쪽은 이하얀 씨. 저나 이 예쁜이도 도망치다가 도중에 만났어요. 혼자 있으면 아무래도 조금 불리하고, 여성을 혼자 둘 순 없으니까.”
 “하운 씨 덕분에 살았죠 뭐. 상황도 상황이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진 모르겠지만요.”


 처음 뵙지만 그쪽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나이프를 든 채 도도하게 팔짱을 끼며 하얀이 되물었다.


 “우린 학교로 가는 중이었어.”
 “학교? 거긴 안전한가요?”
 “적어도 이 미친 거리보단 안전하진 않겠어?”


 저걸 보라고. 주명이 지겹다는 얼굴로 뒤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언제 또 꼬리를 물었는지 도로가에서 좀비떼들이 스멀스멀 걸어오고 있었다. 아- 아아아...!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호원도 가만히 세 남자를 번갈아 보던 하얀도 금세 얼굴빛이 새파래졌다. 그 중에서 가장 유일해 보인 하운이란 남자는 픽 웃음을 흘겼다.


 “그 말에 동감합니다. 괜찮다면 합류해도 될까요? 사실 부하들을 찾고 싶긴 하지만.. 터라도 잡지 않으면 이쪽도 큰일 날 것 같아서.”
 “우릴 도와서 그 괴력을 써준다면야 학교까지 같이 가줄 수는 있겠지.”
 “...좋네요. 돕겠습니다. 하얀 씨는요?”
 “저, 저도 갈 곳은 없으니.... 따라갈게요.”


 여기 있는 네 사람 그 누구도 밥이 되고 싶진 않을 거 아녜요. 하얀의 말에 세 남자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좀비들에게 좀먹히고 싶지 않다. 자신의 살을 시체인 그들에게 내어주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도 그들과 같은 동류가 되고 싶지 않다. 세상은 멸망 직전이 되어버렸지만 네 사람은 살아 있었다. 살아가야만 했었다.
 그러기 위해선 섣불리 단독행동 보다는 손을 잡고 터를 잡는 게 중요했다. 자세한 소개는 그 뒤에 해도 나쁘지 않겠지. 죽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그렇게 네 사람은 암묵적 동맹을 맺었다. 좀비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을 사로잡고 있던 공포감은 조금 누그러진 상태였다. 함께라는 건 대단하네. 호원이 야구 배트를 꽉 쥐며 입술을 깨물었다.



* * *



 “호원 씨.. 라고 했었나요? 배트 잘 휘두르시네요. 좀비 머리 후려치는 게 꼭 개미핥기가 혀로 개미 후려치는 것 같네.”
 “아, 정말요? 에헤헤.. 가, 감사합니다..”
 “차호원 넌 저게 칭찬으로 들리냐..”


*  *  *



  진짜 학교를 도착하긴 했구나..


 호원은 다시 눈물이 튀어나올 뻔한 걸 꾹 참아냈다. 여기까지 오는 데에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들였다. 해는 벌써 지는 바람에 주변은 깜깜했다. 어두워진 상황에선 시야가 좁은 좀비들에게 도망치기 쉬웠지만 그와 반대로 빠져 나오기도 어려웠다.
 호원은 덜덜 떨리는 팔로 깡- 깡 좀비들의 머리를 백여 번 후려치고 나서야 학교의 건물을 겨우 볼 수 있었다. 주명도 무사했고 도중에 만난 하얀과 하운도. 그리고 도망치던 와중 도중에 헤어졌었던 뽀삐도 근처 쓰레기장에서 기적적으로 발견해 데려올 수 있었다. 뽀삐다! 다른 좀비와 상대하고 있던 주명의 얼굴이 강아지를 발견하고 환하게 밝아졌다. 뽀삐는 몰려있는 좀비들에게 왈왈 소리를 내며 이를 세우고 있었고, 호원과 주명이 그 뒤를 깡 깡 때리고 나서야 품에 강아지를 안아들 수 있었다. 정말 기적적인 일이다. 성한 곳이 없어 보인 뽀삐는 튼튼했다. 극박한 상황에 구해져 잔뜩 열이 난 강아지는 이후 좀비의 다리를 거침없이 물어뜯으며 호원들을 지켰다. 덕분에 더 수월했어. 주명이 흐뭇하게 뽀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멍! 뽀삐가 학교를 향해 한 번 짖었다. 하운은 굳게 닫혀있는 학교의 교문을 흔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너머로 굳게 잠겨져 있다.


 “아마 주명 씨나 호원 씨처럼 도망치자고 생각한 사람들이 잠군 것 같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학교는 일찍 끝났지만 자율 학습을 하는 학생들도 있는데다 선생님들도 몇 명 남았었거든요.”
 “적어도 우리가 나올 땐 교문은 열려 있었지.”


 그럼 안엔 생존자가 있는 거야? 헥헥 꼬리를 흔드는 뽀삐를 안아 올리며 호원이 물었다. 글쎄. 하운과 같이 교문을 흔들던 주명은 주변에 널려있는 좀비들을 내다보다가 교문 턱 손잡이를 잡았다.


 “우선 넘어가보자. 차호원, 뽀삐 이리 줘.”
 “어? 왜? 내가 들고 넘어가도 되는데..”
 “넌 담 넘을 때마다 넘어지니까 불안해.”
 “....”


 어서 내놔라. 찝찝함을 뒤로하고 별 수 없이 뽀삐를 주명의 품에 안겨주며 함께 교문 턱 손잡이를 잡았다. 2년 내내 탈주범인 마냥 함께 담을 넘어 본 탓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다만 주명의 말대로...
 손잡이를 잡고 능숙하게 몸을 올려 담 턱을 잡는다. 무게가 뒤로 쏠리기 전에 다리를 뻗고 담 기둥에 올라타면 된다. 되는데 왜 매번? 손쉽게 기둥에 내려앉은 주명과 뽀삐와는 다르게 호원이 담 너머로 몸을 던지는 것 마냥 넘어졌다.


 “악!”
 “...안 봐도 뻔하지.”


 아픈지 발목을 느리게 문지르며 주명이 인상을 찌푸렸다. 잠시 안을 둘러보다가 뽀삐를 미리 엎어진 호원의 위에 내려두고 그도 따라 사뿐히 학교 운동장을 밟았다.


 “아으, 아아...”
 “너 때문에 좀비가 다 몰려오겠다 야.”
 “으으윽, 아파...”


으이그 쯧쯧쯧. 주명이 혀를 끌끌 차며 엎어진 호원을 일으켜 세웠다. 허리는 안 아프고? 으응, 뭐 익숙하니까....
 자리에 일어서고 몸에 묻은 먼지를 탈탈탈 털어낸 호원은 꼬리를 흔드는 뽀삐의 머리를 쓰다듬고 나서야 휑한 운동장을 볼 수 있었다. 교문 틈으로 확인해두긴 했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운동장엔 밖을 으르렁대며 돌아다니는 시체들이 없었다.
 대신, 그 자리를 대신하듯 바닥에 죽은 듯이 잠들어있는 시체들이 몇 마리씩 널려 있었다.


 “..죽인 거겠지?”
 “그래, 우리들처럼 머리가 빠른 놈들이 이미 해치웠나 보네.”


 아무래도 학교로 온 게 정말 정답이었나보다. 주명이 호원의 머리를 꾹 누르며 말했다. 윽... 구깃해진 머리카락을 정돈하며 호원이 주변에 널린 죽은 시체들을 확인하는 사이 하운과 하얀도 따라 담을 넘어왔다. 하운은 두 소년을 따라 운동장을 신기한 듯 내다보고 나선 빙긋이 웃었다.


 “미리 온 손님이 있었나보네요. 텃세 싸움 나쁘진 않은데.”
 “히이익”
 “...혼자 있으면 불안하다면서?”


 “지금은 예쁜이들이랑 같이 있잖아요. 만나는 상대가 호의적이지 않다면 나도 그렇게 상대할 수밖에.”


 총, 가지고 오지 않아서 조금 아쉽네요. 턱을 괴며 고개를 갸웃댄 하운의 모습에 호원이 몸을 떨었다.
 이, 이 사람 조폭이야...?!?! 파랗게 질린 호원의 얼굴을 발견한 운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조폭이랑 비슷하지만 일하는 곳은 외국이라.”
 “...!!!! 마, 마인드 컨트롤...!!!”
 “네 얼굴에 다 써있거든 멍청아.”
 “아파!"


 또 맞았어... 욱신대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앓은 호원이 눈물을 찔끔 흘렸다.
 하얀은 살짝 아래가 쓸린 하얀 원피스 끝을 문지르며 학교 내부를 슥 훑어보았다. 곳곳에 미리 해치운 듯한 좀비들. 중요한 건 학교의 건물이었다. 저녁이지만 불은 한 곳도 켜져 있지 않나.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아니면... 층층마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단 몇 군데 빼고. 멀리서만 봐도 깨진 듯 금이 가거나 텅 비어 있는 창문에 하얀은 가늘게 눈을 떴다.


 “안에 누가 있는 건 확실하겠네요.”
 “응, 일단 들어가야죠?”
 “으윽, 무서워....”
 “신명나게 때려놓고선 이제와서 뭐가 무서워?”


 앞뒤 가릴 건 없어. 주명의 말에 푹 고개를 숙인 호원은 수긍할 수밖에는 없었다. 네 명은 그렇게 곳곳에 시체가 널려있는 시체를 건너 뛰며 학교 교문을 향했다. 주변의 죽어있는 사람과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게 마치 꿈만 같았고 오래된 일 같았다. 불과 몇 시간까진 평범하게 사람들과 인사하며 주명이랑 놀고 있었는데... 호원은 흐릿하게나마 인자하게 웃으며 주명과 자신을 맞이해주던 사장을 떠올렸다. 그리고 한순간에 자신을 잡아 먹으려던 시체의 모습도 동시에 떠올렸다.

 ....얼른 모두가 원래대로 돌아오면 좋겠어. ...아니,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까? 희망 한 점 없는 세상에 호원은 그저 연락이 되지 않는 가족들 걱정 뿐이었다.


 ‘....나아갈 수밖에 없어.’


 그러기 위해선 첫 번째 난관은 이곳. 중앙현관에 도착한 네 사람은 각자의 무기를 손에 쥐며 서로에게 시선을 보냈다. 하운이 먼저 나서 문손잡이를 잡아 밀었다. 끼이익 소리를 내며 학교 내부로 발을 들였지만 들리는 건 그들의 발걸음 소리밖에 울리지 않았다.
 정말 아무도 없는 거야? 호원과 주명이 발을 들이며 주변을 살폈다. 저녁이라서 그런지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뿐더러 좀비들의 소름끼치는 소리조차 울리지 않는다. 결국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핸드폰을 들고 플래시를 켤 수밖에 없었다. 깜깜해진 주변이 겨우 밝아졌고, 호원은 빛을 마주 편에 내다 비추어 보았다. 


 “!”
 “이건...”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 않던 게 제대로 드러났다. 현관 주변들도 몇 체의 좀비들이 쓰러져 있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은 채 머리가 으깨져 있었다. 역시 이곳에 누군가가 있다. 그 증거로 계단 측을 연결하는 통로가 모두 셔터로 차단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좀비들을 막기 위해 통로를 막아 놓은 것이 분명했다.


 “그럼 찾느냐가 문젠데...”
 “저 너머로 있을 수도 있겠네요.”


 열어 볼까요? 슬쩍 제안한 하운이 빙긋 웃으며 셔터 쪽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열지 않는 게 좋을 걸~? 죽어도 난 모른다!”
 “...?”


 네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반대측 복도에서 들린 목소리에 놀란 호원과 하얀이 플래시로 빛을 비췄다. 아 눈부셔! 호원과 주명처럼 같은 교복이었지만 넥타이 색이 다른 남자아이가 안경을 슬쩍 빼고 눈을 부비고 있었다. 군데군데 피가 묻어 있긴 했지만 말끔한 복장이었다.
 아니, 중요한 건 이게 아닌데. 호원의 동공이 살짝 떨렸다. 맑아 보이는 웃음기 달린 얼굴과 목소리가 익숙했기 때문이다. 빛을 비추고 소년이 팔을 내린 순간, 호원이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가람아...!!!”
 “안녕 호원이 형, 주명 형. 둘다 좀비는 아니지?”


 가람이었다. 아이가 생글생글 웃으며 손짓했다.





한 다음 편까지만 쓰고 ㅎㅅㅎ 그 다음엔 보고 싶은 부분만 생략해서 써야지...

  




5. 시작합니다.



 태양볕을 쬐면 환하게 빛나는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이었다. 귀엽게 말아 올린 입술이나 애교살이 잔뜩 불어진 눈웃음은 소년만이 지을 수 있는 얼굴이었다. 교복은 이제까지의 고생으로 인해 군데군데 먼지나 자국이 묻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깔끔한 차림새였다. 안녕 형들. 가람이 씩 웃으며 안경을 매만졌다. 가람이었다. 호원이 알고 있는 한가람.


 “으윽.. 가람아 무사해서 다행이야...!”


 진짜, 정말로 다행이야....! 꺽꺽 울음을 삼키는 호원을 바라보던 가람이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형이랑 주명이 형도! 그리고 뽀삐도! 가람을 알아본 듯 헥헥대며 꼬리를 흔들어대는 뽀삐에게 가람은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멍! 뽀삐가 기분 좋게 짖었다.
 가람은 호원과 주명보다 한 학년 아래였지만 둘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아이였다. 종종 땡땡이를 칠 때에도 셋이서 함께 PC방이나 애견카페를 갔다. 주명이 좋아하는 뽀삐를 가람이 친숙하게 대하는 것도 호원에겐 익숙한 광경이었다. 정말로, 정말로 무사해서 다행이야... 누군가가 학교 내에서 살아있을 거라곤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중 한 명이 친한 동생이자 친구인 가람이라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렸다. 한 명이라도 무사해서 다행이었고, 그게 가람이라 안심이었다.
 마치 함께 놀았던 그때가 옛날 일인 것 마냥 느껴진다. 가람은 방긋방긋 웃으며 안경을 고쳐 잡고선 꼬리를 흔드는 뽀삐를 안아 올렸다.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야. 어.. 다른쪽 사람들은?”
 “도망치는 와중에 만났어. 그나마 학교가 가장 안전할 거라고 생각해서 왔거든. 담턱 넘어서 왔는데 학교 내부엔 좀비들도 죽어 있었고... 그거 네가 한 거야?”
 “음, 정확힌 모두와 함께.. 한 거지?”


 모두? 놀란 네 명의 반응에 가벼이 웃어 보인 가람은 고개를 까딱이며 깜깜한 복도 쪽을 가리켰다.


 “우선 자리부터 옮기자. 여긴 조금 위험할 수도 있거든...”
 “...?”
“저거 때문에.”


 가람은 손가락으로 셔터가 내려져 있는 쪽을 가리켰다. 네 사람이 고개를 갸웃대며 소년이 가리킨 계단 쪽을 응시했다. 솔직히 말해서, 생각하는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셔터를 내린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가람이 이곳에 있고, 주변에 죽어있는 시체들이 널려 있는 이유는? 호원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저곳에도 있구나.
 좀비들이.


 어느 누구 하나 가람에게 이유를 묻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자, 그럼 갈까요? 안내 해드릴게요. 가람은 안아든 뽀삐의 콧등에 쪽 입을 맞추더니 이내 아이를 내려놓은 후 먼저 앞장서기 시작했다. 몇 걸음 걸어가다 옆에다 기대 뒀던 것으로 보여 지는 기다란 막대기를 주워다 어깨에 메고 갔다. 성큼성큼 내딛는 가람의 뒷모습이 어쩐지 조금 작아 보였다고 생각했다.



* * *



 복도는 어두웠지만 하얀과 주명이 곳곳을 플래시로 켜준 덕에 걸어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운과 호원이 긴장이 서린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가람은 “1층에는 괴물들이 없으니까 안심해도 돼 호원이 형.”라며 싱글벙글 웃었다. 하긴, 있어도 이런 거지 않을까. 호원은 저도 모르게 지나가다 굴러다니는 시체를 밟아버렸다. 허억... 작게 숨을 삼키며 그 옆을 피해 지나갔다. 시체의 머리는 대부분 짓눌리거나 뻥 뚫려 그 속이 훤하게 드러나 있었다.
이쪽. 제일 끝 방을 가리키는 쪽은 행정실이였다. 꽉 닫힌 문 창 너머로 흐릿하게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여기에요. 다시 문틈에 막대기를 걸어 놓은 가람이 낡아서 끼긱소리를 내는 문을 활짝 열었다.


 “짜잔~! 제가 생존자들을 데려왔어요!”
 “....!”


 근심스러웠던 얼굴도 금세 환해졌다. 최악을 치닫고 있던 깊은 우물 속에 한줄기 빛이 들어온 느낌이었다.
 행정실의 책상들은 모두 한 곳으로 몰아 자리를 만든 것 같았다. 불 대신 촛불을 가운데다가 몰아넣어서 그런지 방 내부는 꽤 밝아 보였다. 호원의 얼굴이 밝아졌다. 단 둘밖에 남아있지 않다 생각했던 세상에서 하얀과 하운을 만나고, 잃어버렸던 뽀삐를 되찾았으며 기적적으로 가람까지 재회했다. 그리고 행정실 정중앙에 촛불을 두고 둘러쌓인 다른 사람들까지.


 “...우리학교 학생들이네.”


 게다가 그곳에도 호원과 주명이 알고 있는 메이트들도 있었다. 가람과 같은 안경과 비슷한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외형은 날카롭고 눈매가 가느다랗다. 주로 교문에서나 가람의 집에서 우연치않게 만난 그녀는 하즈키였다.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던 호원이었지만 쉬이 다가갈 순 없었다. 그녀가 거뜬히 쥔 표지판에 더덕더덕 붙은 피범벅이....... 무서웠다.


 “물어뜯긴 사람들 말고 또 무사한 녀석들이 있었구만!”
 “무사해서 다행이군.” 


 가장 오른편쪽 구석에는 숏컷의 하얀빛 머리가 감도는 남자와 푸른빛 머리칼의 남자가 대화를 멈추고 호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쪽은 히스이 씨랑 서화 씨래. 바텐더에 계시다가 괴물들이 나타나서 도망쳤을 때 우리 학교로 들어왔을 때 만났지! 가람의 소개에 히스이는 호탕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서화는 조용히 고개를 까딱였다. 호원과 하얀도 따라 푹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운이 좋았네 다들-. 우리도 오느라 꽤 고생했지.”
 “푹 쉬세요. 적어도 여긴 안전할 테니까.”


 흑발의 머리칼에 끝에 꽁무니로 머리를 묶은 남자와 단발의 여성이었다. 남자는 특유의 말투로 다정하게 그들을 부르며 손목시계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값비싸 보이는 시계였지만 끝이 조금 깨져있었다. 여성은 신고 있던 굽이 부러진 모양이었는지 검은색 구두 끝을 누르며 씁쓸하게 웃고 있었다.
 저쪽은 진수 씨랑 백여 씨! 히스이 씨랑 서화 씨처럼 괴물을 만나고 여기까지 오셨대. 진수와 백여가 조용히 미소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까딱 고개를 움직이며 주명이 넌지시 눈길로 인사를 던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호원! 주명! 무사해서 다행이네요.”
 “아, 유메슌군!”
 “너도 무사했었네.”
 
 일본으로 건너와 한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유메 슌케이였다. 호원과 같은 말끔한 흑발의 머리카락이 찰랑댔다. 종종 호원과 함께 서로 일본어와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주명과 가람은 그게 가르치는 거냐며 의문을 가졌지만) 배우고 있는 클래스 메이트였다. 살아있었구나, 다행이야! 호원이 눈물을 글썽이며 유메슌과 손을 잡고 위아래로 붕붕 흔들었다.


 “자율학습 때문에 학교에 계속 남아 있었거든요. 운이 좋았어.” 그는 주명과도 악수를 청한 후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슬쩍 뒤에 있던 하운과도 간단하게 눈인사를 건넸다.


 ...그럼 대충 이렇게 10명 정도인가. 적은 인원이었지만 호원과 주명의 단 둘이었던 몇 시간 전을 생각하면 훌륭한 인원이었다. 서로끼리의 간단한 인사를 끝낸 네 명은 드디어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었다. 긴장이 풀린 호원들에게 가람들은 손수 구해온 물과 빵을 나누어줬다. 우선 허기진 배를 겨우 채우고 나서야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가람아... 분명 1층 괴물.. 정확힌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들이 없다고 했는데 역시 그건 너희들이 해치운 거야?”
“...응. 운동장에서도 사람들이랑 같이 했었어. 하지만 전원 해치운 건 아냐.”


닫힌 셔터쪽을 조심하라고 말한 거 기억하지? 가장 먼저 가람이 학교의 상황 설명을 시작했다.

학교 선생님들이 교육을 들으러 간데다가 학생들 인원도 30명 겨우 남짓에 행정실쪽에서도 사람들이 많진 않았어. 처음엔 좀비 바이러스 어쩌고 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자습중이라 아는 사람은 드물었고 깊게 생각은 안 했지 뭐. 그런데 학교 안으로 대피하고 그 안으로 쫓아오는 좀비들을 보고 나서야 우리들은 상황을 인식하고 선생님들의 지시에 따라 정문을 폐쇄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모았어. 좀비를 죽이는 법이야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나오잖아? 다만 도덕적 문제 때문에 말이 많았지만 당장 우릴 먹으려고 하는데 별 수 있나. 싸울만한 학생들과 선생님들, 도망쳐온 사람들을 모아서 운동장이랑 1층에 쳐들어온 좀비들을 겨우겨우 해치웠어. 다행히 거기서 죽을 뻔한 사람들은 없었어. 하지만 밖엔 좀비가 득실거리고 어떻게 해야 하나 선생님들끼리 의논을 하는 사이 학교 내에 있는 먹을거리들을 다 모아서 4층과 옥상에 구출해줄 군들이 올 때까지 숨어있자는 결론이 나왔어. 숨어든 좀비가 쳐들어올까 싶어 셔터를 내리고 모든 사람들이 4층쪽으로 올라갔지.


“하지만 그게 오산이었어....” 가람이 창백한 얼굴빛으로 조용히 대화를 이어나갔다. “좀비들이랑 싸웠을 때 물린 사람들이 있었던 거야. 그들은 쫓겨날까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리들이랑 같이 올라갔었어. 그리고...”


그들이 감염이 된 거야. 4층에 도착하고 셔터를 내리려던 순간 감염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물기 시작해서 혼란스러워졌지. 나랑 하즈키는 겨우겨우 도망쳤고.. 그때 유메슌형도 만나서 도망쳤었어. 히스이 씨, 서화 씨, 백여 씨, 진수 씨도 그때 만났지. 초면이었지만 바로 서로의 힘을 합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어. 내가 조금이라도 정신을 떨어트리면 먹혀 버리잖아. 그렇게 도망치고 또 도망치다가... 2층쪽으로 겨우 내려왔고 우리는 닫힌 셔터를 열어 1층으로 빠져나오고 좀비들이 튀어나오기 전에 다시 닫아버렸지.


“그 뒤로 좀 쿵쿵대다가 아무 말도 안 하니까 잠잠해지더라고. 우리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침착하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가람이 꺼낸 이야기는 참혹했고 작게 떨리기도 했다. 그 좁은 공간 내에서의 살육 현장에 호원은 몸서리를 쳤다. 옆에 있는 사람이 먹히고 좀먹히고 나까지 먹힌다고 생각하면 공포스럽기 그지없었다. 호원은 조용히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를 다독였다.


 “무서웠지? 수고 많이 했어.”
 “..응, 그래도 다들 무사하니까 안심이야.”
 “그럼 1층은 무사하단 건가요 예쁜아?”
 “그렇다네. 우리가 전부 확인해봤지.”


 하운의 물음에 가람 대신 진수가 입을 열며 대답했다. 적어도 1층 안엔 좀비들이 아무도 없을 거야. 나돌아다니는 시체 빼고는 말일세.


 “그럼 예쁜아. 1층엔 여기 행정실 말고도 뭐가 있나요? 학교에 있던 게 가물가물해서 알 수가 있어야지.”
 “그 예쁜이라고 말하는 것 좀.... 하아, 글쎄.... 행정실이랑... 기가실, 본 교무실도 하나 있고... 화장실은 총 네곳. 교장실이랑 방송1실도 있어. 통로로 매점도 하나 있을 테고....나머지 하나는”
 “보건실.”


 주명의 말을 자른 호원이 냉큼 대답했다. 그래, 가장 중요한 보건실이 있었지. 이 순간에 가장 중요한 거기가. 순간 벌떡 일어난 호원을 모두가 의아한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호원 씨...?”
 “이곳엔 좀비가 없다고 했으니 보건실도 무사한 거지?”
 “뭐, 그렇긴 한데...”
 “좋아! 가자 주명!”
 “뭐? 이 상황에 어딜...”
 “너 다쳤잖아. 파스 정도는 뿌려야지.”


 중요한 이야기 중이었지만 미안해요. 어리벙벙하게 호원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을 힐긋 시선을 흘긴 그가 멋쩍게 웃으며 사과했다. 냉큼 주명의 팔을 잡아채며 행정실 문쪽으로 끌었다. 야, 야! 다급한 주명이 호원을 불러 세웠지만 멈추는 일은 없었다. “그럼 먼저 실례할게요. 조금 쉬고 계세요.” 주명을 잡아끌고 나가기 전 문틈에 얼굴을 내밀고 방긋 웃었다.



* * *



 보건실 앞엔 막 기어 들어가려던 자세의 좀비가 누워 있었지만 끙끙대며 한 쪽으로 치워 겨우 내부로 들어갔다. 안은 지금 이 사건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깔끔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울 정도야. 미리 들고 온 촛불로 내부를 비춰가며 붕대와 파스를 찾았다.
 어딘가 부루퉁한 주명을 침대에 앉혀두고 그의 발을 매만졌다. 흰 천으로 감싼 부위가 전보다도 더 부어올라 있었다. 역시 무리했었구나. 돌아다닌 탓에 더러워진 천을 벗겨내고 소독약품으로 발을 깨끗하게 닦아냈다. 파스 포장지를 떼어다 붙이기 위해 호원이 손을 놀렸다. 내려다보던 주명이 가만히 있다 입을 열었다.


 “너 말야..”
 “응?”
 “이럴 때 날 분위기 전환용으로 쓰지 말지?”
 “아- 들켰어?”


 그치만 어쩔 수 없잖아. 그렇게 우울한 분위기인데 계속 대화를 진행시킬 수가 있어야지. 천천히 파스를 붙여내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역시 티셔츠 천보다야 훨씬 더 깔끔하고 좋네. 호원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래도 걱정했던 건 사실이라구.”
 “....”
 “이제 나 때문에 다치지 마.”


 깔끔해진 주명의 발을 만족스럽게 내려다보던 호원이 입을 열었다. 삼십 분 전까지 싸우던 게 마치 거짓말 같지 않아? 조용한 보건실 내부가 현실 같다. 그냥, 주명이 우연치 않게 나 때문에 다리를 다쳐서 내가 보건 선생님 대신 부축해서 널 이곳으로 데려와 치료해주는 상황. 그런 것 같은데. 사실은 정 반대인 거.


 “별 걱정을 다 한다.”
 “...그치만..”
 “네가 바보 같은 짓만 안 하면 안 다쳐.”


 주명이 털털하게 호원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차호원, 무서워?”
 “당연하지. ....너도 그렇잖아.”
 “뭐- 겁쟁이인 너보다는 아니지만.”
 “....”


 그렇지만 무서워해도 어쩌겠어. 꾹꾹 머리를 눌러대는 주명이 픽 웃음을 흘기며 말했다.
 밖도 좀비 안에도 좀비. 괴물이 스멀대는 이곳에서 겨우 숨만 쉬어대는 게 전부다. 괴물은 사람을 삼키며 또 하나의 괴물을 만들어내고 괴물이 된 사람은 다시 표적을 우리들에게 돌린다. 살을 뜯고 내장을 파먹는 믿을 수 없는 참혹한 상황의 정중앙에 있는데 무섭지 않을 리가 없잖아.


 “그렇지만 어쩌겠어.”

 살아가야지.

 “너 나더러 죽지 말라며.”
 “응.”
 “네가 그렇게 말했는데 무서워하면서 찌질하게 떨면 되겠어?”


 난 안 죽을 거야. 거칠었던 손길이 천천히 부드러워진다. 따뜻하다. 굉장히 안심이 된다. 딱딱하게 굳었던 입가가 점점 더 풀어지는 호원을 보던 주명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너도 살아.


  “같이 살아가자 차호원.”
  “...그래, 좋아. 그럴게.”

 너도 절대 죽으면 안 돼 주명아. 


 가볍게 토해낸 두 소년의 말에는 분명 깊은 의미가 담아져 있었다.






다 써가고 있었는데 앤오님이 주명이 좀비 물린 로그 올리셨다
주명이가 물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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