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호원/아포칼립스 2017. 5. 17. 22:41

주명아....

2017.02.07



주명이가 물렸대..................







 콰득
 
 “아...!”


 틱,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파란 구슬 비즈들이 바닥에 후두둑 쏟아졌다. 검붉게 물들어진 이빨이 아득 소리를 울리며 호원의 손목을 뜯어냈다. 시선은 바닥에 굴러가는 구슬들에게 한눈이 팔렸지만 딱딱하게 몸을 굳을 틈은 없었다. 살들을 비집고 씹어 먹는 상대의 시선을 끌고 물린 팔을 잡아당기면 따라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그때를 노리고 손에 쥔 송곳을 상대의 후두부를 강하게 찔렀다. 부패해서 머리카락이 없는 썩은 뒤통수에 송곳이 꽂히고 꿀렁대며 검은 피가 새어나오면 괴물은 움직임을 멈췄다. 호원을 물고 씹어 먹던 것이 멈췄다. -아윽, 괴로운 소리를 토해낸 그가 시체를 발로 걷어찼다. 튀어나왔던 곳에서 다시 밀려들어간 시체는 더 이상 살아나지 않았다.

 호원은 작게 숨을 헐떡이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손목에 물린 살점이 반절은 뜯겨져 나가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흐르는 핏방울이 바닥에 흐트러진 비즈들에게 스며들었다. 호원은 점차 떨리는 몸에 불끈 주먹을 쥐었다. 눈에서 뚝 뚝 눈물방울이 따라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손목에서 울부짖는 고통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다. 철없이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하고 문을 연 자신의 한심함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뚝. 뚝. 피에 스며들었던 구슬이 맑은 눈물에 다시 한 번 씻겨져 내려갔다.


 ‘주명....’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너의 이름. 덜덜 떨리는 손으로 허겁지겁 흐트러진 구슬들을 주워 모으기 시작했다. 철렁 내려앉은 심장은 차가웠다. 몸이 마치 마비가 든 것 마냥 덜덜덜 떨렸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앉아 있을 시간은 없었다. 서너 개 구슬을 주워든 호원은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벌떡 일어나 쓰러진 시체를 창고 안에다 밀어 넣어 덜컹 문을 닫아 잠궜다. 굳게 닫힌 철문에 이마를 쿵 쿵 박아내며 호원은 물렸던 주먹에 불끈 힘을 내쥔다.

 이곳에 오는 게 아니었어. ‘정말 혼자서 괜찮겠어?’ 어차피 학교 밖도 아니고 뒷간에 다녀오는 건데 뭘. 수차례 조사 탐방이 끝나고 난 일이었다. 아직 열어보지 않은 학교 뒷간에 물건을 가져 오기로 했었고, 막 돌아온 조사팀들은 지쳐 있는 상황이었기에 호원은 제 스스로 나섰다. 밖도 아니고 학교 내부인데! 상처 입은 동료들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며 호원이 웃었다. 금방 다녀올게.


 그리고 그 다녀온단 결과가 겨우 이거.


 ‘...아까 그 좀비... 경비 아저씨였지.’


 물리고 나서 뒷간으로 도망치셨던 걸까. 조용했던 건 이 근처에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좀비가 숨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곧 다가간 호원의 발자국 소리를 들은 좀비가 문을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드르륵 문이 열린 순간 경비원에서 시체가 된 좀비는 단 번에 호원을 덮쳤다. 안일한 생각이었다. 호원이 어리석었다. 그 벌로 입은 상처는 처참했다. 무엇보다도 망가진 팔찌가 그 증거였다.


 “....으윽...속상해...”


 이제 넌 더 이상 그 무엇도 만들어주지 못할 텐데. 손 안에 쥐어진 작은 구슬들을 내려다보며 호원이 작게 흐느꼈다. 처음으로 나한테 준 네 선물인데. 이렇게 험하게 다뤄버렸어.


 아직 세상이 멸망하기 전, 처음으로 뛰게 된 주전 시합에 긴장 된 그가 호원을 위해 선물해 주었던 구슬로 된 비즈 목주 팔찌였다. 손재주가 좋은 넌, 곧잘 이런 걸 만들어다 전시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나를 위해 만들었다고 한 건 그게 처음이었잖아. ‘이게 찌질한 차호원을 위해 행운 팔찌가 되어줄 거다.’ 걱정 말라며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네 손이 그저 덧없이 좋았다. 호원은 남몰래 붉어진 얼굴을 감추며 웃었다. ‘고마워.’ 너한텐 그저 친구를 위한 가벼운 선물이었겠지만, 나한텐 참 의미가 컸었는데.


 어떡하지, 무서워. 죽고 싶지 않아. 살고 싶어.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덜덜덜 떨리는 몸은 공포심으로 가득 찼다. 머릿속을 헤집던 수많은 좀비들을 떠올렸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그들처럼 된단다. 믿겨지지 않았다. 살을 좀먹혔던 손목은 허연 뼈가 드러날 정도로 처참했고 흐르는 피는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아프다. 더럽게 아프다. 이렇게 아픈데 곧 고통조차 느끼지도 못할 시체가 된다니 싫어 싫어 싫어.


 너를 먹고 싶지 않아. 해치고 싶지 않아. 줄줄줄 흐르는 눈물은 알 수 없는 감정들을 씻어냈다. 무서웠다. 가장 먼저 널 공격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호원을 사로잡았다.

 결국 이렇게 망쳐버리고 말았어. 더 이상 푸른 바다빛을 띄우지 않는 구슬은 호원의 피와 함께 굳어져 갔다. 훌쩍훌쩍 울먹이던 호원은 이내 눈꺼풀을 천천히 내리감았다 번쩍 떴다. 소년은 울음을 삼켰다.


 무섭고 아프고 괴롭다.

 하지만, 계속 이대로 있을 순 없었다.





*  *  *



 “야, 너 뭐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려?”

 결국 기다리다 못한 주명이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 온 모양이었다. 단단히 창고는 잠구어 뒀다. 바닥에 쏟아졌던 핏방울들은 모래를 흐트려 감추고 구슬들도 어찌저찌 모아 주머니 춤 안에 넣었다. 누군가가 나타난 건 예상 외였지만 타이밍은 나쁘지 않다. 막 끝내고 나타난 주명을 보며 호원은 빙긋이 웃었다. 이게 좋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가 없네.

 “미안, 열쇠 두고왔단 걸 깜빡했지 뭐야.” 슬쩍 천을 감긴 오른쪽 손을 허리 뒤춤에 가리며 호원이 멋쩍게 웃었다.

 “그냥 억지로 열어 제끼지..”
 “큰 소리 내면 또 몰려오잖아? 무섭다고!”
 “어휴, 찌질이...”
 “찌질이라서 죄송하네요! ...정말.... 아, 그보다 주명. 내 팔찌 못봤어?”

 뭐? 갑자기 무슨 말이냐는 듯 주명이 되물었다.

 “아까 손 씻을 땐 있었는데 안 보여서...”
 “야 너- 사람이 준 걸 그렇게 막 잃어버리면..”
 “미안! 난 아직 여기 창고도 다 안 뒤져봤거든. 미안한데 보건실에 있나 찾아봐줄래?”
 “아주 사람을 막 쓴다..?”

 막 조사 다녀와서 피곤한 사람한테. 불쾌 가득한 주명의 얼굴에도 호원은 환하게 웃었다. 아 그러지 말고 한 번만 봐주라. 친군데.


 “다녀간 곳이 보건실밖엔 없었으니까 아마 거기에 있을 거야. 한 번만 찾아봐주라.”
 “너 진짜... 없으면 죽을 줄 알아라.”

 하여간 귀찮은 건 나만 시켜요. 머리를 탈탈 털어내가며 투덜거리던 주명이 별 수 없다는 듯 몸을 돌려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 문을 열었다. 피곤해 보이는 등을 보니 조금 미안해졌지만 어쩔 수 없다. 주명은 상냥하니까 내 부탁은 곧잘 다 들어주잖아. 네가 너무 상냥한 걸 원망해. 라고 말하면 맞을 게 뻔하니 목구멍으로 말을 넘겼다. 주명이 끼익 낡은 손잡이 문을 열어 제끼며 안으로 들어갔다.

 “주명!”

 넌 정말 상냥하니까.
 갑자기 불러 세운 호원의 목소리에 주명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또 뭔데?
 말끔한 주명의 얼굴을 보니 가슴이 떨렸다. 고통으로 울부짖는 것과는 다르다. 늘 그를 보면 느꼈던 행복한 고통이었다. 잠시 머뭇대던 호원이 붉어진 눈가를 감추며 작게 웃음을 흘렸다. 넌 상냥한 사람이라서 분명 이 말도 잘 들어줄 거라고 생각해.
 
 “아니, 그냥... 미안하다고.”

 그래서일까, 더 말 못하겠다......
 “싱겁긴.” 가만히 말을 듣던 주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곧 흥, 콧방귀를 뀐 주명이 빨리 끝내고 오라며 문을 열고 건물 안을 들어갔다. 굳게 닫힌 철문에 멍하니 시선을 띄우던 호원이 푹 고개를 숙였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게 눈물인지, 피인지 모르겠다. 점점 더 굳어져가는 몸이나 쿡, 쿡 찔러대는 두통이 호원을 괴롭혔다. 베어 좀먹힌 손에 옹기종기 모인 구슬을 꾹 쥐며 호원이 무거운 걸음을 내딛었다. 걷고 걷고 또 걸어 교문 앞까지 발을 딛는다. 끼익, 잠금 자물쇠를 풀고 딱딱하게 굳은 철문을 익숙하게 여닫았다. 순간 그 얇은 소리에 학교 너머로 기어 다니던 좀비들이 휙, 삐걱대며 고개를 돌렸지만 호원의 모습에 달려드는 시체들은 없었다.

 그저 그러려니
 쥐새끼 한 마리를 보듯 바라보다 고개를 돌린다.


 호원은 다시 걸었다. 목적지가 정확히 어딘진 알 수 없다. 그저 우르르 모여있는 시체들 사이로 걷고 또 걸었다. 그저 이곳엔 벗어날 수 있도록. 구슬을 쥔 손엔 천이 감겨있던 것도 잠시 흥건하게 피로 적셔져 뚝, 뚝 떨어졌다. 맑고 붉었던 핏방울들이 점차 검붉은 색으로 스며들었다. 호원은 그저, 그저 태연하게 걸음을 옮겼다.

 “....”

 그 끝이 마지막이 될 때까지. 그저 걸었다.










주명이가 물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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