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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호원/여러 AU에 해당되는 글 7건
글
이누야샤 AU
1.
“사혼의 구슬이요?”
“그래, 이것만 있으면 가족은 화목하고 사업을 번창하게 해주지.”
“...그래서 이런 구슬을 팔겠다고요? 할아버지.. 이런 열쇠고리, 요즘엔 인기도 없는데....”
“녀석, 뭘 알아야 그런 소릴 하지! 사혼의 구슬은 이래봬도 이 절의...”
무릎 위에 얌전히 앉아 있던 아가가 구슬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동그란 것만 보면 환장하는 녀석이니. 새하얀 몸을 바싹 세우며 노란 눈을 가늘게 떠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야옹, 하고 울며 구슬에 손을 뻗기 시작한다.
“호원이 형아! 아기가 구슬이 마음에 들었나 봐!”
“그럼 뭐해. 고양인 이런 열쇠고리 살 돈도 없는데...”
이내 구슬에게 손을 뻗던 아기가 호원의 무릎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이거야 원, 아기가 삼켜버리기 전에 치워버리든 해야지.
“잘 들어라 호원아!”
할아버지는 호원이 다른 곳으로 정신이 팔렸던 게 영 시원찮았던 모양이다. 아아, 그가 한 번 ‘이 절의 유래’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면 멈출 도리가 없는데. 호원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옆에 어린 동생 호천이 고양이 아기를 끌어안으며 꺄르륵 웃었다.
참, 그러고 보니
“우리 500년 역사로 이루어진 이 절에 내려오던 사혼의 구슬 말이다....”
“그런 시시한 것보다 할아버지! 내일 무슨 날인지 기억하고 있죠?”
“음?”
노인은 동그랗게 눈을 뜨며 첫 손주를 가만히 지켜보다 이내 인자한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나이를 먹었어도 귀여운 손자녀석 생일 하나 잊어버릴 것 같더냐? 자랑스럽게 말하는 할아버지에겐 다행히 지겨운 절 이야기를 꺼낼 틈은 없어 보인다.
헤헤헤. 호원이 싱글벙글 웃었다. 그 뒤로 노인이 주섬주섬 구석에 무언 갈 찾기 시작했다.
“그래, 여기 있을 텐데. 미리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와! 설마 선물이요!?”
그는 건넸다.
시커멓게 타들어가선 말라 비틀어진 정체불명의 생명체의 손모가지를.
“구하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 이건 말이다. 일본 유명한 신사의 호수에서 발견되었다는 행복을 부르는 캇파의 손 미이라다!”
“.....”
그가 기세등등한 얼굴로 말했다.
“애초에 그 유래는 말이다!”
“아가야. 자, 간식.”
호원은 아가의 입에 구슬 대신 먹이를 물려줬다.
“야, 아깝게 뭐하는 짓이냐! 요 녀석 아가! 빨리 내놓으... 커헉!”
놀라 자빠진 할아버지가 아가를 향해 뛰어들었지만 고양이는 날쌔게 캇파 어쩌구 저쩌구라는 말린 오징어를 물고 냅다 거실로 뛰어가 버렸다. 그가 낑낑대며 겨우 고양이의 뒤꽁무니를 쫓아가면, 어린 동생은 신이 나서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 뛰쳐나갔다.
‘아아, 유래.. 유래 진짜 지겨워.’
유래 유래 말을 토해내는 할아버지는 오래된 절을 이끄는 가문의 마지막 신관. 라며 말을 늘여놓지만 애초에 스님도 아니고 애매한 위치에 서 있는 평범한 나의 할아버지다.
아버지는 평볌한 회사원. 엄마는 평범한 주부. 삼남 중 장남으로 태어난 나도 평범한 중학생에 어린 남동생이 둘 있는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가족이다. 그 지겨운, 유래라고 말하는 절만 빼면 말이다.
우리 집은 정말로 오래된 절. 약 천 년의 역사를 가진 신목도. 무언가 꺼림칙한 기색이 드는 뒷간의 말라버린 우물도 뭔가를 유래를 가지고 있다며 할아버지는 입이 닳도록 말하고 있지만 신경을 써 본 적도 없고 관심을 가진 적도 없었다.
15살이 된, 오늘까지는...
2.
“뭐? 아기가 사라졌다고?”
“정확힌, 뒷간의 우물 안으로 들어가버렸어.”
“혀엉아아~”
3. - 힘이.. 넘치고 있어... 아아, 기쁘다.. 4. 하지만 아무리 불운이라고 해도, 침착했던 마음이 서서히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도 어쩔 수 없다. 여긴 분명히 우리 집일 텐데, 왜 절이 없어져 버린 거지? 불안한 느낌과 함께 호원의 눈앞에는 다시 커다란 나무가 들어왔다. 5. (스킵하고 눈을 뜬 주명이랑 만났을 때) 저 괴물, 꿈에서 나타난 거 아니었어!?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일단 어떻게든 없어진 거 아니었냐고!!!! 괴물은 ‘사혼의 구슬’이라 칭하며 호원의 뒤를 바싹 쫓아왔다. 어떻게든 마을 사람들만은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아 도망쳤지만 이대로 가단 내가 반대로 잡아먹힐 게 뻔하다!!! 비명을 지르며 우물 쪽으로 어떻게든 달리고 달리고 달린 호원이지만 괴물이 빨랐다. 6. (다시 스킵..)(단순한 대화)
“사혼의 구슬이 다시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다니, 요괴들이 나타나 판을 꾸미겠지. 그 구슬을 가지게 되면 엄청난 힘을 가지게 될 테니 악의 무리들이 모습을 드러낼 게다.” “사혼의 구슬이란 거, 정말로 있었구나... 왜 내 몸에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어제의 요괴처럼” “단순히 요괴뿐만 아니야. 인간도 그 구슬을 탐내는 존재들이 많을 게다. 이 녀석처럼 말이다.” “구슬이나 내놔 멍청아.” “멍청이가 아니라 호원이래도! 애초에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걱정 말거라 호원아. 염주의 위력을 알게 된 이상 이 녀석도 쉽게 손을 뻗칠 순 없겠지. 사혼의 구슬을 노리는 놈들 중 하나여도 일단은 안심이다.” “왜 사혼의 구슬을 가지고 싶어 하는 거야?” “반요로서의 불안정한 ‘반절’의 존재를 완전한 존재로 갖추려면 사혼의 구슬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 따윈 당연히 생기는 법이지.” “할멈, 아까부터 날 아는 것 같이 말하는 데 당신 뭐야?”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지. 네가 잠든 후론 많은 시간이 지났으니. 난 널 봉인한 원이라는 신관의 여동생 연이다.” “여동생....? ......마을에서 한창 떠받치던 그 꼬맹이가, 쭈글쭈글한 할멈이 됐다고?” “그 뒤로 시간이 꽤 지났으니 말이지.” “허, 인간들이란... 빨리 늙는 게 영 시원찮아. 안 봐도 뻔해. 원 그 녀석도 탱글탱글 재수 없는 웃음만 흘기는 영감탱이가 됐겠지.” “원이 오라버니는 죽었다.” “....” “널 파마의 검으로 봉인한 바로 그 날에 죽었지. 너도 알고 있겠지? 무녀만이 쓸 수 있는 정화의 힘이 담긴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그 칼을 쓸 수 있는 건 오직 살아남은 신관이었던 오라버니뿐이었다는 걸.” “.....” “뭐, 그래도 신관은 신관. 남자는 남자. 순순히 파마의 힘을 다룰 수 없었으니 약해진 몸을 봉인을 한 이상, 오라버니도 명을 끌고갈 수 없었어.” “역시 재수 없는 놈은 일찍 죽는다 이건가. 속이 다 후련한데.” “안심하긴 이를 거다 명. 호원, 아마 저 아이는 오라버니의 환생일 테니까.” “에?” “뭐?” “환생, 네? 음..... 어?” “저런 멍청한 녀석이 원을?” “머, 멍청하지 않다니까!!!” 7. 원이란 사람은, 한 무녀를 지키는 신관 중에 한 명이었던 모양이다. 대대로 악한 사혼의 구슬을 정화시키기 위해 정화의 능력이 깊은 무녀의 곁을 지켜, 그녀 존재가 악해지지 않도록 요괴에 눌리지 않도록 사혼의 구슬을 정화시키고 지킬 수 있도록 받쳐주는 존재를 신관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 많은 신관들 중 그는 조금 특별했다. 정화의 능력을 가진 무녀인 연이라는 오빠였던 그 남자는 똑같이 무녀를 닮은 정화의 힘을 가졌다. 하지만 그는 무녀는 아니었다. 무녀를 지키는 신관. 그는 정화 대신 정화의 일을 하는 무녀인 연을 지키는 신관으로서 자리를 잡았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검은 그 정화의 힘, 파마의 힘이 깃든 검으로서 모든 악한 요괴를 베어버린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정확힌, 봉인당한 거지만.”
막내 동생이 울먹이며 호원의 바지자락을 잡아끌었다. 호원의 둘째 동생인 호민은 괜스레 괜찮은 척 표정을 짓지만 눈가에 물든 눈물을 감추긴 어려운 듯 보였다. 으음, 곤란하네. 이내 꺼이꺼이 울기 시작한 호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호원이 작게 앓았다.
낡은 우물가가 있는 뒷간은 애초에 절 내에서 사용하고 있지 않는 공간이다. 우물은 말라버려 사용할 수도 없고, 애초에 집 내에 물이 나오고 있으니 그저 그 놈의 유래 상으로 남겨 둔 곳일 뿐. 하지만 워낙 절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을 뿐만이 아니라 어딘가 섬뜩한 부분도 남아있어 호민, 호천을 포함한 호원도 옛날부터 다가가지 않던 장소 중 하나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집에 기르던 고양이가 이곳으로 들어갈 줄이야.
아니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뒷간 안쪽엔 야옹~하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호천이 꺽꺽 울며 아기를 꺼내 달라 보챘다. 호민도 선뜻 들어가지 못하는 걸 보면 무서운 모양이었다.
“정말.. 학교 가야 하는데...”
“형아아~! 아기 데려와아~!”
“네네, 알았다 알았어...”
어린 동생들을 뒤로 밀어두고 호원은 태연히 우물이 있는 뒷간 안으로 내려갔다. 낡은 나무 계단을 밟으면 끼익, 끼익 하고 불안한 소리가 울렸다. 부서지는 건 아니겠지? 최대한 조심스럽게 내려온 호원은 잽싸게 우물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쿵쿵 하는 소리가 울린다.
쿵,
쿵쿵
“무슨 소리야 형!?”
“누가 있어어~!!”
“고양이겠지...”
그런데 이상하다. 우물 근처로 다가온 호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라버린 우물 위론 나무판자로 막아둔 뚜껑이 세워져 있었다. 그곳엔 불안하게 수많은 부적들로 붙여져 있었다. 있었는데,
‘...우물 안에서 소리가 나는 거야?’
야오옹
“아!”
“아기다!”
그 소리에 집중하기 전에 다행히 아기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호원의 발편으로 다가온 하얀 고양이의 모습은 금방 눈에 띄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작은 아기 고양이를 안아다 웃었다. 두 어린 동생들의 얼굴에도 금방 긴장에서 안도감으로 변했다.
방금, 까진.
“....?”
호민이 눈을 비볐다. 막 계단을 올라오려는 형의 뒤로 우물이 빛나기 시작했다. 빛날, 리가 없는데...? 잘못 봤다고 생각하려던 찰나 막내 동생인 호천이 소리를 질렀다.
“호원이 형아!!”
빛나기만 하던 우물이 커다란 소리와 함께 우드득, 하고 판자가 뜯어졌다. 어라? 호원이 안고 있던 고양이 아기가 발버둥을 치며 호원의 품에서 벗어났다. 우물이 부서졌다. 수많은 하얀 물체가 호원의 어깨를, 배를, 다리를, 팔을 감싸 뒤로 끌어당겼다.
‘....어?’
“형아!!!!!”
“호원이 형!!!!”
호원은 우물 속으로 끌려 빠져버렸다.
- 드디어... 드디어...?
발가벗은 여자가 내 몸을 강하게 짓누르고 있다.
아니, 여자가 맞아?
그녀의 몸은 아주 괴상망측했다.
맨몸의 나체는 분명 여성의 모습을 띄고 있지만, 눈은 초점이 맞추어지지 않은 채였고 그녀가 쾌감에 젖어 입을 벌리면 그 입안은 상어의 이빨처럼 수백 개의 이빨이 입천장까지 달라붙어 움직이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팔은 가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아주 많은 팔들이 있었고 그 중의 대부분은 나의 몸을 옥죄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거... 꿈이야?
- 그래 너, 가지고 있지?
여자의 손에 호원의 머리를 잡아챘다. 그 덕에 더 많은 그녀의 적나라한 신체가 호원의 시야에 들어왔다.
사람의 몸이 아냐. 호원의 눈동자가 떨렸다. 지네, 벌레의 등껍질이 그녀의 등을 타고 내려가 흔들고 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이미 말라버린 뼈가루에 불과했지만 이상하게, 그것은 느려도 빠르게 재생하고 있었다. 완벽한 괴물의 형태로.
- 너 가지고 있구나. 가지고 있지!?
“와아악, 뭐야 당신!!!!”
호원이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기분 나빠! 살려줘!!!! 벌레의 몸이 제 몸을 느글느글 타고 올라왔다. 악, 악 뭔데 이거!!!! 격앙된 얼굴로 호원이 겨우 자유로워진 한 쪽 팔을 여성의 얼굴을 밀었다.
그리고 다시 새하얀 빛이
빛이
강력한 빛이 손 끝으로.
여자는 점점 더 멀리.
- 너, 이 녀석... 놓치지 않을 거다.... 사혼의 구슬이여.....!
‘사혼의 구슬....!?’
정신을 차리면 여자의 형태를 한 괴물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뭐지 방금은..? 가쁜 숨을 내쉬며 호원이 떨리는 다리로 겨우겨우 몸을 일으켰다. 꿈이었나? 새까만 우물은 어딘가 조금 밝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째 서늘한 바람이 느껴지기도.. 호원이 주변을 돌아보았다. 설마 진짜로 꿈인가?
그리고 호원의 눈앞에 보이는 건 금방 제 몸을 감쌌던 괴물의 팔 한쪽이 바닥에 나뒹굴어져 있었다.
“꾸, 꿈이 아니었어...!?!?”
서늘한 느낌이 소년을 덮쳤다. 나, 나도 이런 건 무섭단 말이야...! 내가 본 건 뭐지!? 귀신!? 드디어 이 낡아빠진 절도 저주받았다 이건가...! 파르르 떨리는 몸을 감싸고 호원은 제 동생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치사하게, 도망간 거야...!?’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한숨을 내쉰 호원은 다시 두리번거리며 올라갈 수 있는 나무줄기를 찾았다. 불안하긴 해도 계속 이 팔 한쪽과 같이 있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호원은 나무줄기를 붙잡고 우물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발이 미끄러져 우물 아래로 엎어지긴 했지만, 익숙하게 흙투성이가 된 교복을 털어내며 호원은 다시 몸을 일으켜 우물을 올라탔다. 넘어지는 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다행히 조금씩 요령이 생겼다.
하지만 올라갈수록, 약간의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우선은 귓가에 선명하게 울리는 새의 울음소리들. 시원한 바람. 그리고 위로 올라가는 순간 호원의 주위로 맴돌던 하얀 나비들.
그 의문을 깨끗하게 해소시켜주는 건 겨우겨우 우물 밖으로 나온 순간. 낡은 우물의 나무 판에 매달린 호원이 끙끙대며 밖으로 몸을 꺼내면 밝은 빛이 소년을 감쌌다. 후우. 가벼운 숨을 내쉰 호원이 고개를 들어 올리면 낡고 먼지 가득한 뒷간의 침침한 배경 대신 자연의 아름다움이 뻗어져 있는 외딴 곳의 숲속이 호원의 눈앞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여기...... 어디?”
옛날부터 운이 안 좋단 얘기는 수없이 들어왔다.
뭐, 공감은 한다. 차호원이란 소년은 운이 좋지 않다. 하루에 몇 번이나 불운에 휩싸이는지 셀 수 없을 정도다. 워낙 걱정이 깊은 부모님은 어디 씌인 게 아니냐며 절 가문의 손자인데도 불구하고 무당집에 데려갈 정도였으니 이쯤이면 말 다했다. 걸어가기만 해도 기본적으로 두세 번 엎어지거나 무언가를 잃어버린다. 개똥을 밟거나 새똥을 얻어맞거나, 불량배에게 삥을 뜯기는 건 일상 중의 일상. 중요한 시험은 불운과 불운이 겹쳐 망치거나 치루지 못한 적도 많다. 여태까지 제대로 하루하루를 살아가 본 적이 있던가? 불운 없이.
솔직히 갑작스레 우물 속으로 끌려가 정체모를 괴물에게 먹힐 뻔 하고, 또 우물 밖으로 나왔더니 있어야 할 뒷간 대신 웬 평화로운 숲속이 보이는 것을 보며 나 자신은 불안 대신 ‘그럼 그렇지’라며 납득을 하고 말았다.
일어날 리 없는 판타지같은 상황에 호원은 어딘가 침착했다. 그래, 진정하자. 어쩌면 우물 안에 그대로 떨어져서 기절했을 지도 몰라. 그리고 이 세상은 꿈일 지도 모르지. 하는 마음에 뺨을 꼬집어 봤지만 꽤 아프다. 음, 꿈은 아니라는 걸로.
결국 나무와 풀밖에 보이지 않는 이 숲속에서 호원은 자신의 가족을 찾으러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호민아?! 호천아아!”
한참을, 한참을 다시 불렀다.
“아빠!! 엄마!! 할아버지!! 아가!!!”
저건... 절에 있는 신목이다!
“다행이다! 우리 집 근처구나!”
알게 된 순간, 발은 더 성급해진다. 호원의 앞길을 가로막는 풀숲을 낑낑대며 헤쳐나갔다. 다행스럽게도, 풀숲을 헤쳐 나가면 익숙한 신목이 호원의 앞에 다시금 존재를 드러냈다.
그리고 그 곳에는, 바라던 집과는 달리 커다란 수호신의 나무 한 그루와 함께 또래의 한 소년이 잠들어 있었다.
나무에 매달려 정확히 왼쪽 가슴에 칼이 박혀, 죽은 듯이 잠들어 있는 한 남자가.
그 존재는 어딘가 신비로워 보였다. 심장 부위에 정확히 칼이 박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는 것 같았고, 그가 입고 있는 붉게 물들인 옷도 어딘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느낌이 들었다. 한 쪽 눈에는 낡아 보이는 붕대까지 감고선, 어딘가 신비로운 소년의 느낌은 단지 그것들뿐만이 아니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남자의 흑발이 천천히 흔들렸다. 호원이 그 앞으로 다가갔다. 저기, 뭐하고 있는 거야? 조심스레 물어도 대답은 없다.
그래, 그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건...
“이거, 인간의 귀가 아닌데....”
소년의 귀에는 부드러워 보이는 개의 귀가 붙어 있었다.
뭐냐 이거 만져보고 싶어.
호원은 잠시 동안 소년의 귀를 만지고, 만지고 만지고 만지고 또 만지다
“거기 수상한 녀석! 누구냐!”
그 근처를 맴돌고 있던 병사들 무리에게 자연스레 끌려가고 말았다. 아니, 잠깐 그 전에 병사~!? “수상한 사람이 아닌데요!”라고 말해도 들어줄 턱없는 자들은, 호원의 교복을 보며 이국의 수상한 복장이라 칭하며 소년을 질질 끌고 갔다.
괴물의 꼬리가 호원의 앞을 후려치면 그 땅은 갈라지고 거대한 폭음과 함께 호원의 몸이 날아갔다. 비명을 지를 틈은 없었다. 가볍게 날아간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머리의 충격과 몸의 지릿지릭한 쓰라림에 호원이 작게 신음했다. 으으, 이러다 진짜 죽겠어...!
“아파 죽겠네...!”
“야, 원! 겨우 지네요괴 같은 시잘 데 없는 녀석을 상대로 뭘 꾸물대고 있는 거야?”
“뭐?”
갑작스레 호원에게 말을 꺼낸 존재는, 나무에 매달려 있다. 정확힌 가슴에 칼이 꽂혀 있는 상태로. 커다란 신목에 매달려서 죽은 듯이 잠들어있는....... 랄까, 평범하게 눈 뜨고 말하고 있는데? 살아있어?
무슨 일이야. 호원이 끔뻑끔뻑 눈을 깜빡이면 소년은 답답한 듯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비아냥이 가득 담겨져 있다.
“한 번 휘두르면 끝이잖아. 나를 죽였을 때처럼. 오, 아니면 네 명검이 아니면 무리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무슨 소릴...”
“아아, 하긴 그렇지. 네 저주 받은 명검이 또 한 개 더 있겠냐? 더럽게 칼만 가려선.... 하?”
남자가 인상을 잔뜩 구겼다.
“뭘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거야 원.”
“아까부터 원, 원 하는데.... 아니, 그 원이 맞긴 해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나 알아?”
“알지. 멍청한 신관.”
“아니거든!?”
뭔가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는 거 아냐 이 녀석!? 남자의 붉은 눈이 호원을 향했다. ‘멍청한 놈이 또 어디 있냐’라는 얼굴이다. 아, 젠장 처음 보는 사람인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인다...!
“뭘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난 멍, 멍청한 것도.. 신관도 원이라는 사람도 아니야!”
‘멍청하다’라는 말 때문에 울컥한 호원은 뒤에서 바짝 쫓아오던 괴물의 존재도 잊어버린 채 소년이 있는 나무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그 또한 아니라고 부정하는 호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웃기지 마! 이런 구린 냄새를 풍겨대는 신관 녀석이 또 누가 있어!?”
“뭐, 뭐... 일단 나 옷은 더러워도 마을에서 제대로 씻엇...! 가 아니라 그 신관이 아니라니까! 평범한 중학생이야!”
“중학생!? 그건 또 뭔데..... 어, ”
버럭 화를 내던 소년이 코를 킁킁대기 시작했다. 미묘한 얼굴로 호원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 얼굴은 어딘가 어색하지만 호원을 상대로 ‘처음 보는 존재’로 인식한 눈동자였다. 그 녀석 냄새가 아니네...? 웅얼대는 소년의 목소리에 호원이 당연한 거 아니겠냐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알았어? 그 신관이라는 사람이 아니라니까. 이름은 비슷한 것 같지만... 내 이름은 호원이야. 차.호.원”
소년은 데굴데굴 눈을 굴리더니 이내 천천히 호원의 시선을 피했다.
“원은, 그.... 좀 더 차분하고 어른스러운 녀석이다... 너처럼 멍청해 보이지도.. 못생기지도 않았어.”
허, 방금 눈앞에서 엄청 실례되는 얘길 들은 기분인데요?
남자가 한 번 검을 휘두르면 요괴들이 몸을 떨고, 그 존재는 하늘과 땅을 울렸다. 신관은 강했다. 검과 한 몸이 된 신관은 무녀와 구슬을 지켰다.
“라는 건 다 구라지.”
“엑, 구라야!?”
“원의 힘은 대단했지만 그릇이 쓸만하지 못했다고. 허황된 소문만 널리 퍼졌었지.”
단지 그 검의 힘만은 사실이라, 모든 신관들이 쓰는 검은 원이란 신관이 다루고 만들어냈다고 주명은 말했다. 어딘가 탐탁해 보이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 녀석은 살생을 싫어했어. 검은 잘 다뤘지만 개미 한 마리도 못 죽이는 재수없는 녀석이었지.”
“저기, 지금 그 환생이라는 사람이 나인 건 알고 말하는 거지...?”
“그랬던 녀석이”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처음으로 죽인 게 바로 나야.”
“....”
생각해보면 못 죽이는 게 아니라 안 죽였던 거였군. 소년은 입 꼬리를 올리며 몇 번이나 상대의 험담을 날렸다. 마치 자신이 욕을 먹기라도 하는 양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지만 호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실컷 깎아내리는 주명의 얼굴에서 어딘가 외로움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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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나 (미완)
“거기 아가, 받쳐주지도 못하면서 왜 그런 걸 껴안고 댕기누.”
?
호원이 우뚝 걸음을 세웠다. 함께 걷고 있던 가람과 유메는 자연스레 할아버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통학로의 길거리에 떡하니 자리를 잡은 웬 할아버지는 호원을 보며 혀를 끌끌 차고 있었다. 턱 아래까지 자란 복슬복슬한 수염을 쓸어내리면서 영감이 입을 열었다.
“딱 봐도 그릇이 작은 놈인디.”
“....저 아무것도 안 들고 있는데...”
그 말대로 호원의 양 손은 텅텅 비워져 있었다. 모의고사로 학교가 일찍 끝나 평소 잘 어울리던 후배 가람과 유학생인 유메와 함께 시내로 막 놀려가던 참이었다. 시험이 끝난 덕에 가방은 필통 하나와 노트만 덜렁. 무게조차 느껴지지 않는 가방을 껴안지도 않았는데 이 할아버지는 무슨 말을 하는 거란 말인가. 호원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네가 들고 있던 물건이래냐?” 할아버지는 퉁명스럽게 말을 받아쳤다. “네놈 주위를 뱅뱅 돌고 있는 분을 말하는 게지.”
주위를 뱅뱅? 여전히 고개를 기울이는 호원을 향해 가람은 “아냐 형, 우리 얌전히 걷고 있었는데?”라고 말했고, 유메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이젠 도통 이해하지 못하는 소년들이 답답했던 모양인지 버럭 소리를 높였다.
“너희 말고 요놈들아! 거 가운데 사내 녀석한텐 어림도 없는 존재가 씌워졌단 말이다.”
“뭐, 뭐가 씌워져요!?”
호원이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 그러고 보면 할아버지는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띄웠다. 길가에 덜렁 테이블 하나와 의자 하나를 받쳐 세우고 앉아있던 영감은 옆에다 큼지막하게 ‘사주’와‘점’등을 쳐준다는 표지판을 세우고 있었다. 가람은 흐응~하고 콧소리를 내며 슬쩍 호원의 귓가에 속삭였다.
“저 할아버지, 점을 보라고 슬쩍 떠보려시는 거 아냐? 왜- 요즘 그런 가게들 많다잖아. 귀신이 씌웠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귀신이란 말에 호원의 몸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진짜든 거짓이든 자신을 겨냥해 씌웠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좋게 들려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귀신같은 좁쌀만한 존재면 이야기도 안 했어 인마.”
가람이 속삭이던 얘기를 어떻게 들은 건지 할아버지가 잽싸게 대답했다. 호원은 오묘한 얼굴로 가람과 유메를 번갈아 보았다. 가람은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였고, 이를 잠잠히 지켜보던 유메가 입을 열었다.
“돈을 내라는 말도 아직 안 했으니 할아버지의 얘기를 잘 들어보는 게 어떨까요?” 유메가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게다가 호원에게 할 말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니까요.”
“으음.... 난 별로 상관없지만...”
어쩐지 뒷목이 뻐근하게 아파오는 것 같았다. 호원은 으스스해진 뒷목을 주무르며 할아버지가 있는 자리로 다가가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할아버지. 씌워졌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설마, 진짜 귀신이라던가 하는 건....”
“예끼, 귀신은 씌우는 존재가 아니야. 뭣도 모르는 놈들은 그딴 식으로 나불거리지.”
할아버지는 세 아이들을 둘러보며 큼큼, 헛기침을 하고선 말을 이어나갔다.
“영은 들러붙는다고 해야 정확한 말이야. 씌운다는 건 엄밀하게 말해서 네 주변에 어느 한 존재가 막처럼 싸여 있다고 하는 것과 가깝지. 그게 좋든 나쁘든 말이다.”
주변이라고 말해보았자 호원의 주위엔 가람과 유메, 그리고 처음 만난 점쟁이 할아버지뿐인데. 오싹한 기분에 호원이 몸서리를 쳤다. 영감은 호원이 멀리 있었을 때부터 그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는데, 가까이 오고 나서야 비로소 그가 자신이 아닌 자신 주위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흠.” 할아버지는 덥수룩한 수염을 문질렀다.
“느이 가족 중에서 영매사인 사람이 있더냐?”
호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면 바로 윗세대가 흉악한 살인마라던지-”
“그럴 리가 없잖아요!”
호원이 질색하며 소리쳤다.
“그것도 아니면, 네 전 세대 분들이 역사에 쓰일 위대한 업적을 이뤘다던가....”
“정말이야 형!?”
“그랬다면 학교 시험 가지고 고민할 필요도 없었겠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 가람을 향해 호원이 힘없이 대답했다. 유메가 쿡쿡 웃음을 흘리는 사이 할아버지는 인상을 팍 찌푸리며 그런 게 아니라면 이상한데.. 라고 멋대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저한테 뭐가 씌워졌다는 거예요? 저한테 많이 안 좋은 건가요? 솔직히, 할아버지 말을 믿기도 힘들어서....”
유메의 말에 귀가 얇아져 다가왔다만 반대로 호원의 힘을 쭉 빼가는 얘기들뿐이었다. 씌워졌다더니, 가족 중에 영매사가 있냐느니 살인마가 있냐느니- 등등. 영감의 허무맹랑한 소리를 전부 믿는 건 아니었지만 진지해 보이는 그의 얼굴을 보아하니 약간의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인은 반대로 호원의 말에 정색한 얼굴을 띄우며 “오히려 그 반대다 요녀석아.”라며 그에게 혼쭐을 냈다.
“네 곁에 있는 분이 아니었으면 넌 벌써만치 죽고도 남았어.”
“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만, 너 옛날부터 안 좋은 일에 죄다 줄줄이 꼬이지? 사소한 것부터 심각한 것까지 말이다.”
노인의 말은 족집개였다.
“와, 어떻게 알았어요? 호원이 형 운 하나는 개미 발톱만큼도 없는데!”
“...가람아, 나 운다....?”
호원이 우울하게 말했지만 가람의 말엔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그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주구장창 운없는 사내로 불릴 정도로 운이 없었기 때문이다. 길가다 엎어지는 건 기본이요, 그 흔치 않다는 온갖 사고에 휘말리고 돈을 뜯기거나 잃어버리는 건 일상 중의 일상. 하다못해 일주일에 두 번은 기본으로 개똥을 밟거나 새똥에 맞는 등의 패턴이 익숙해질 정도니 이 정도면 말 다했다.
헛, 설마.... 우울한 기분을 너머로 스쳐간 하나의 생각에 호원이 자동으로 입을 열었다.
“씌워졌다는 존재 때문에 제 불운이 계속 이어진-!” “그건 네 천성이다 어디서 귀한 분께 뒤집어 씌울려고”
뜨끔
“아무튼, 그나마 그 분이 네 옆에 계시니 네가 요정도지, 아니면 어릴 때 진작 요절했을 게다. 왜 리스크를 다 끌어안고 아무 조건 없이 네 곁에 있는 진 모르겠다만....”
애초에 내가 알 수 있는 것도 한계적이지. 이제 노인은 테이블 위에 놓여 져 있던 종이를 가지고 붓펜으로 끄적이기 시작했다.
“나로선 정확히 볼 수 없어. 어렴풋이 느끼는 게 전부지. 욘석아, 그거 하나 운 좋은 줄 알어.”
노인이 그리는 네모난 하얀 종이 위엔 서서히 문양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문양이라고 해봤자 약간 어설픈 감이 있긴 했지만. 마지막으로 구석에 꾹 점을 찍고선 사인까지 한 영감은 펜을 내려놓는 대신 호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봐준 값 오천원에다 운이 좋아지는 부적 이만원에 이만 오천원.”
“....”
그 날 호원은 가람, 유메와 함께 시내로 놀러가지 못했다.
* * *
“운이 좋은 걸까....”
“형아, 형 차례!”
호천이 붕붕 손을 흔들며 재촉했다. 아, 알았다 알았어. 호원이 대충 대꾸하며 손에 집어져 있는 카드를 들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요즘 유치원생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카드게임에 단단히 빠진 막내동생은 빈번히 두 형의 옷자락을 끌고 게임을 해달라며 조르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동생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이길 수 없도록 게임을 진행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몇 번이나 행하는 게임에 지친 호원은 동생 몰래 느린 한숨을 내셨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아 게임에 집중하기도 힘들었다.
누군가가 곁에 있다라.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여태껏 누군가가 곁에 머무르고 있다는 위화감도 느껴본 적 없다. 노인은 상당히 그 존재를 높게 칭하고 있었지만 호원에게 있어 보이지 않은 무언가는 위엄 있게 보이는 대신 어딘가 꺼림칙할 뿐이었다.
아니, 꺼림칙하기보단.....
“궁금해?”
“?”
호천이 눈동자를 멀뚱히 굴리며 호원을 바라보았다. 수월하게 진행하고 있던 게임은 어느새 멈춰져 있었고, 호원은 다시 자신의 턴으로 돌아왔다는 걸 눈치 채지도 못하고 있었다. 어, 그러니까.... 호원은 동생이 꺼낸 말에 어쩌지도 못하고 입술을 우물거렸다.
“궁금하면 물어보면 되잖아.”
동생은 상당히 쉽게 방안을 내밀었다. 그보다, 방금 내가 생각했던 걸 내뱉은 건가? 호천은 이미 흥미를 잃은 듯 쥐고 있던 카드들을 내려놓았다. 제 형이 들고 있던 카드까지 가로채고선 얌전히 장난감들을 정리하는 여섯 살배기 아이는 작은 입술을 오물대며 말했다.
“엄마가 그랬어! 고민하지 말구 알고 싶은 건 꼭 물어보라고!”
“음.....”
“그러니까 형아두 물어봐!”
물어보라고, 해도- 말이지.... 해맑게 웃는 아이의 얼굴엔 티끌만큼도 고민이 없어 보인다. 결국 호원도 작게 웃으며 호천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아이는 이따금 어른보다도 훨씬 빠르게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응, 고마워 호천아. 두 형제는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보다 이내 키득키득 웃었다.
“그런데 어떻게 물어보냐고-!” 저녁 식사까지 끝내고 든든해진 배를 끌어안은 호원은 자신의 방 침대에 몸을 뉘였다. 동생을 돌보고 배까지 채우고 나니 다시금 몰려오는 생각에 호원은 복잡한 머리를 굴릴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할아버지의 말은 믿을 게 되지 못했다. 점이라든가 미신과 같은 이야기를 믿는 호원도 아니었고, 게다가 마지막에 부적에 돈까지 요구하는 노인을 보면 신뢰감까지 떨어지게 만들었다. ...혹시 몰라서 사둔 부적은 아무 효능도 찾아볼 수 없었고. 주머니에 대충 구겨 넣었던 부적을 꺼내든 호원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부적을 산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바로 홀로만 은행열매 폭탄을 맞아 그는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뭐, 애초에 불운이 한순간에 사라질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말았어야 했지만... 안일한 생각이었다.
부적 종이를 내려놓은 호원은 지친 눈꺼풀을 내려 감았다. 미신같은 건 믿는 게 아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다라고 생각을 떨칠 때마다 찜찜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부정하면서도 믿으려 하고 있다. 그건 어째서지?
“만약 정말로 있는 거라면...” 천장을 올려다보던 호원이 중얼거렸다. “한 번쯤 얼굴 정도 비추어도 되는 거잖아.”
볼 수도 없는 존재를 믿으라니, 매정도 하시지. 한참을 투덜대던 호원은 어느새 잠결로 훌러덩 빠지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서서히 몸에 긴장을 풀었다.
* * *
어렸을 땐 온갖 잔병치레를 앓아왔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던 걸까, 고뿔스러운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았던 탓일까. 이유는 알 수 없다. 물어보아도 부모님들은 자연스레 화제를 돌리곤 했다.
그 때문에 자연스레 잊었다고는 하나 의뭉스러움을 잊은 건 아니었다.
언제쯤 한 번 알게 됐으면 좋겠네. 지금이야 멀쩡한 몸으로 평범하게 (“그게 평범한 거야 형?”라며 가람이 되묻곤 했다만.) 다니고 있으니 걱정할 일은 없었다.
그래도 역시,
궁금증을 없애긴 힘들다.
‘꿈인가?’
구석에 침대 위에서 앓으며 잠들어있는 소녀는 분명 자기 자신이다. 꿈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낯익기도 했다.
어린 호원은 가쁜 숨을 겨우 내쉬고 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네 저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양 팔짱을 끼고 아픈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혼자는 아니다. 그 주변엔 부모님이 계셨다. 엄마는 슬피 울고, 아빠는 고개마저 돌렸다. 그들에겐 사랑하는 아들의 아픈 모습을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병원을 다녔는데, 애 병 하나 알 수 없다니!
그녀는 아들의 작은 손을 감싸며 흐느꼈다.
그 서글픔이 자신에게까지 닿는 것 같다. 어딘가 가슴이 아려왔지만 호원은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띄엄띄엄 쓰다가 훗내용이 생각나지 않아서 도중에 멈춰버린 글,,,
기가 약해서 여러 것에 씌워지다 주명이란 신이 곁에 남아서 건강해졋다! 라는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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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기반 AU...
*히로아카 세계관 바탕은 일본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한국 초능력 히어로 전문 양성 고등학교가 별도로 있다고 하자...
1.
“-아, 나 꼭 모두를 지키는 히어로가 될 거야!”
소년은, 히어로를 동경하고 있었다.
2.
호원이 일반과에서 히어로과로 편입된 지 이틀 정도 지났을 무렵이다. 새롭게 편입됐더라도 1학년으로서 약 두 달 남짓 정도 지났을 때였고 같은 A반 학우들과 쉽게 어우러지는 건 소년에게 있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선망 받는 히어로과 학생들인데, 초학기 때부터 이 얼굴들을 잊을 수가 있을쏘냐.
모든 걸 무중력 상태로 띄워버리는 능력, 현대 사회에서 선망 받는 전기 계열의 발열 능력, 다이아몬드보다 더 단단한 몸을 이루어내는 능력, 로켓처럼 빠르게 쏘아 올리는 다리를 가진 능력까지 아주 다양하게. 이런 천재적인 능력을 부여 받은 자들과 함께 같은 반 같은 책상 같은 의자에 앉아 같은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다니 호원에게 있어 평생 없을 행운과 다름없었다.
열심히 해야지! 히어로 양성 교육 학교에서 그저 아무것도 아닌 취급을 받아온 일반과에서 꾸역꾸역 클래스메이트들을 차고 올라와 얻은 자리가 아닌가. 첫 입학시험 때는 자신의 초능력 계열과는 맞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눈에 띄지 못해 떨어져 버렸다. 겨우 턱걸이로 일반과에 입적한 것도 기적 중에 기적. 정말 다행히 히어로과에 새롭게 편입할 수 있는 기회를 ‘코리안 유에이 고교 체육 대회’의 실적 덕분에 얻을 수 있었고, 호원은 다시 새롭게 이 학교의 히어로과 학생으로서 당당하게 등교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니, 앞으로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돼. 호원의 눈에는 의자가 담긴 투혼의 불꽃이 마구마구 타오르고 있었다. 그에 반해 여전히 몸과 운이 따라주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히어로과에 들어와 줄곧 꿈꿔왔던 ‘야망’을 이뤄낼 수 있다는 가능성에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만큼은 자신의 불운도 허락해 줄 것이다. 차게 식어가는 손에 주먹을 천천히 그러쥐며 호원은 눈을 감았다. 그래, 조금 정도는 기뻐해도 되겠지.
3.
지만, 혼자서 감수성에 푹 빠져 기뻐할 틈은 없는 것 같다.
“변태같이 혼자서 뭘 그리 실실대며 서 있냐.”
“~엇?!”
4.
예상외의 목소리에 놀란 호원이 몸을 흠칫 떨며 빠르게 고개를 올렸다. 채 닫히지 않은 교실 문 너머로 흑발의 인상이 사나워 보이는 소년이 미간을 찌푸린 채 호원을 노려다보고 있었다.
아, 문은 닫아놓을 걸! 랄까, 쪽팔려!!! 교실 안에 홀로 덩그러니 서선 히죽대며 웃는 남고생의 모습은 확실히 그 말대로 변태 같았을 것이다. “그, 저기 오해..!” 그제야 부랴부랴 허둥대보지만 운은 소년의 편이 아니다. 허둥대다 못해 발이 책상 발거리 틈에 걸려 그대로 바닥에 수직낙하. 억! 소리와 함께 엎어진 호원을 내려다보며 같은 코리안 유에이 교복을 입고 있는 남학생은 푹 한숨을 내쉬었다.
“나원 참... 띨띨하게 뭐하는 거야. 괜찮냐?”
일어나. 무심하게 툭 던진 말과는 다르게 호원의 코앞에 소년의 손이 다가왔다. 고..마워.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겨우 그의 손을 잡아 호원이 몸을 일으켰다.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 혼자 꼬여서 엎어지지 좀 마, 편입생. 전부터 봤는데..... 너 주변에서 호구라는 소리 많이 듣지?”
“......(맞는 소리라 부정 못함)”
“듣는구만.”
윽.. 작게 앓으며 대충 머리를 흩트리던 호원은 그제야 겨우 자신을 일으켜주던 소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호원과 같은 1-A반의 히어로과 학생이다. 편입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고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 둘이서 마주해 말을 나누는 건 이번이 처음. 그가 낯설게 ‘편입생’라고 부르는 것도 호원과 소년의 거리를 설명해주는 호칭이었다.
호원과 같지만 조금 더 짙은 색을 띄고 있는 청결한 흑발의 머리카락은 살짝 곱슬기를 머금고 있다. 옛날부터 다친 모양인지 왼쪽 눈을 하얀 안대로 가리고 있지만 반대쪽인 오른쪽 눈은 태양처럼 적색으로 타오르고 있다. 호원보다 조금 신체가 큰 편이다. 그리고 자신이 의기소침 해질 정도로 상당하게 얼굴이 깔끔한 미남. 늘 어딘가 화나 보이긴 하지만.... 하지만 단지 체격과 외모만 뛰어난 게 아니다.
‘코리안 유에이 고교. 히어로 인재 창출 역사 이래로 다음 세대를 잇을 TOP3의 유망주...’
주명. 그의 이야기는 뉴스, 예능, 신문기사, 소문 등 들어보지 않은 곳이 없다. 그는 히어로 양성 전문 고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빌런들을 손쉽게 때려잡는 유망주 히어로로 유명했다. 사이코키네시스의 능력으로 이제껏 헤어 나오지 못한 빌런들은 없다. 그는 무려 고교의 추천입학으로 온 우등생. 호원과는 다른 세계에서 사는 남자. 이런 남자랑 같은 교실에 같은 책상 의자를 쓰고 같은 수업을 듣...
“뭘 또 멍청하게 멍 때리고 있어.”
“?! 아야!”
저기 아픈데요?! 첫 얘기를 나누나 싶었더니 망설임 없이 호원에게 딱밤을 때리는 이 남자는 무엇인가!! 이 정도로 뭐가 아프냐. 쯧쯧 혀를 차던 주명이 호원을 때린 손가락을 튕기는 시늉을 하면서 웃었다. 들어 올린 팔. 호원은 그제야 남자의 팔이 시야에 들어왔다.
“~!? 잠깐, 주명 너- 팔!”
“...멋대로 잡아 흔들지 마. 따갑거든?”
“아니.. 출혈이 이렇게나 심한데 단순히 따가운 걸로 안 끝나!”
일반인이면 과다출혈이거든요! 호원이 덥석 잡은 주명의 팔은 손목에서 팔꿈치까지 칼로 쑤셔 그은 듯한 상처가 움푹 패여 있었다. 뼈가 드러나지 않는 게 신기 할 정도야. 어떻게 출혈을 막고 온 모양인진 몰라도 다행히 피가 뚝뚝 떨어질 정도는 아니었으나 충분히 심한 고통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다친 거야?”
“....UJK 훈련실에서 새로운 특제 거대 로봇이 만들어 졌다고 들어서 시험 삼아.”
“으아아.. 제대로 출시되지 않은 걸 멋대로 하겠다고 하면 어떡해..”
“조금 불량이긴 하더라. 죄다 고철덩이로 만들었으니 알아서 고쳐주겠지.”
“....”
분명 입학시험 때도 거대 로봇들이 학생들을 상대했었지. 로봇 하나만으로 열댓 명의 아이들이 허둥지둥 거렸었는데 그걸 혼자서, 특히나 제대로 출시가 안 된 물건을 홀로 다루다니 역시 무시무시한 녀석이었다.
“어쨌든 꽤 중상이야... 얼른 보건실에 가보는 게 나아. 아니면...”
“허, 너도 참 별 걸 다 걱정한다 편입생. 이런 건 대충 침만 바르면...”
낫는다고. 주명의 말이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따뜻한 기운이 주명의 부상당한 팔을 감쌌다. 퐁, 퐁 부드러운 솜털과 맑은 빛이 호원의 손바닥 주위로 튀어 나와 상처를 감싸고 곧 주명의 통증을 줄여주기 시작했다. 이는 엄밀히 ‘치료’ 계열의 능력이다. 범죄 투성이의 곳으로 둘러싼 이 세계에서 치료 계열의 능력은 특별하다.
“편입생 너... 힐러였나?”
“아까부터 편입생 편입생 하는데...”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하하, 어색하게 웃어 보이던 호원은 눈 꼬리를 살짝 휘어 올리며 주명을 향해 다시 미소 지었다. 이젠 편입생이 아니라고.
“차호원. 호원이라고 해.”
일단 같은 클래스메이트인데 기억해주지 않을래? 주명아.
나이 17세
키 167cm
몸무게 평균 57 , 측 정 불 가
파워 D 스피드 C 테크닉 B 지력 C 협조성 A
가족 사항 부 , 모 , 형제 둘
능력 자신의 지방과 근육을 깎아 손바닥에 에너지원으로 모아 상처에 집중시켜 재생시킨다. 정확힌 치료가 아니라 재생. 지방과 근육을 깎아 치료하기 때문에 내장이 파열될 정도인 상대를 재생시키면 한 번에 3~4kg가 빠져 몸에 무리가 올 때도 있으나 평소에 에너지원 섭취를 남들보다 두세배로 보존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큰 무리는 없어 보임.
일반과에서 평균 이상 성적을 냈으나 입학시험에선 포인트 0P. 체육 대회 실적 때 4회전까지 진행. 회의 결과로 히어로과에 편입 결정.
“...심한 거 아냐!?”
그가 이렇게 난리를 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늘 하이텐션이기는 하다만. 마치 자기 일이라도 되는 양 활짝 웃어대는 한심한 얼굴에 창가를 내다보던 주명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주명은 그가 기뻐하고 있는 이유를 알고 있다.
“축하할 일이지 그럼!”
주명이 자신의 걱정을 하는 걸 알기나 하는 건지 정작 둔해 빠진 호구원은 두 눈을 반짝이며 냉큼 어제 발간된 히어로 잡지를 내밀었다. 이미 주명이 몇 번이나 본 매거진이었다. 그곳엔 메인으로 주명의 이야기가 커다랗게 실려 있었다.
“허풍이거든. 일본의 유에이 고교에서도 이미 한 학년의 반절 이상은 정식 히어로 면허증을 취득했다고 난리잖냐.”
임시 면허는 1학년 시험 이래로 한정적으로 히어로과 아이들이 얻을 수 있는 권한으로 배속된 히어로들과 동참해 빌런들을 향해 전투 개성을 쓸 수 있는 권한이었지만 정식 히어로 면허증은 조금 다르다. 옆에 굳이 배속된 다른 히어로가 있지 않아도 자신의 판단 이래로 전투 개성을 얼마든지 쓸 수 있다. 물론 그만큼 세간을 신경 써야 한다는 게 있었지만 유에이 고교 히어로과 아이들이라면 꼭 가지고 싶어 하는 권한 중의 권한. 3학년도 취득하기 힘든 졸업시험과 마찬가지인 이 면허증을 최초로 주명이 먼저 따온 것이다.
“아직 깊게 생각 안 했어. 저번에 동참했던 히어로 선배가 조언해 준 몇 개 정도 생각하고 있긴 해.”
“주명은 어디에 가서도 잘 할 거야! 헤헤, 뭔가 분하기도 한 걸~ 그치만 기뻐. 어떡하지? 진짜 축하해!”
“암, 당연히 열심히 해야지. 내가 도와준 몫은 똑똑히 치러서 너도 면허증 꼭 따라.”
“응! 나 힘낼게 명아. 나는 네 운을 믿고 있으니까.”
팔찌가 운을 불러다 준다고는 할 수 없다. 여전히 호원은 불운을 띄는 남자며 행운의 팔찌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증거로 같은 시험을 본 결과로 주명만 덥석 합격하지 않았는가. 그래도 받은 계기는 상당히 좋은 의미로 받아들였던 모양인지 호원은 전처럼 불운으로 심하게 우울해하지 않았다. 주명 네 덕분에 여기까지 올라 왔는 걸. 그는 전보다 더 상큼한 얼굴로 웃으며 주명 옆에 서 있었다.
“뭐든이라며?”
“만원 내외 한정이라니까!”
“이렇게 눈앞에 있는데, 가끔 손을 뻗으면 점점 더 멀어져서.”
마치 환상 같아. 침대에 누운 채 푹 가라앉은 잔잔한 목소리로 웅얼대는 호원에 주명이 잠시 흠칫, 몸을 떨었다. 호구같은 게 참 별난 비유를 하네. 애써 쓴웃음을 지으며 주명이 호원이 누워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작은 침대가 끼익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편안한 듯 두 눈을 감으며 웃고 있던 호원이 주명이 다가오는 소리에 조심스럽게 눈꺼풀을 올렸다. 거리가 가까워.
“...그런 거 아냐.”
“그야... 뭐처럼의 기회니까 유망한 히어로가 될 주명이라면 놓칠 수 없는 걸.”
자주 연락 할게. 달래듯 주명의 더운 목소리가 호원의 눈가에 닿았다. 호원은 대답 없이 조용히 입술을 깨물고는 그의 안대를 잡아 벗긴다. 역시나 거부감 없이 툭 떨어진 안대 너머로 흉터가 짙게 남은 눈가를 호원이 몇 번이나 쓰다듬었다. 이미 시간이 지난 흉터는 재생 개성을 가진 호원이라도 고칠 수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버릇처럼 주명의 눈가를 매만지고는 했다.
“응?”
“왜 히어로가 되고 싶은 거야?”
옛날부터 지금까지. 변한 게 없으니 이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뿐이야. 쓰잘 곳 없는 질문이라며 주명이 불평했다. 셔츠 한 장이 침대 아래로 툭, 떨어졌다. 두 소년은 커다란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러니 전력을 다 할 뿐이야. 몇 번이나 호원에게 대답했던 말이다. “....그렇구나.” 호원도 매번 같은 대답을 던지며 까만 흑안의 눈을 깜빡였다.
“이번엔 또 왜.”
“...응원할게.”
그래, 실컷 응원이나 해 둬. 마지막 말을 건네는 대신 호원의 입가에 제 입술을 묻으며 주명은 눈을 감았다.
라며, 그렇게 달콤한 음색으로 말하던 건 너면서.
10.
“글쎄?”
“저기, 그렇게 싫은 얼굴이면 죽여도 괜찮아 명아.”
“...차...호원....너..!!!!!”
14.
나이 19세
키 178cm
몸무게 평균 65
파워 B 스피드 S 테크닉 B 지력 B+ 협조성 A+
가족 사항 없음.
부 , 모, 형제 둘 10년 전 ‘히어로 대 빌런 4차 대전에서 살해당하고, 홀로 생존. 이후 보육원에서 자랐으나 그 뒤로 행방이 묘연.
능력 초능력을 카피하는 능력. 최대 2~3개의 능력을 카피할 수 있으나 시간제한이 있다. 상대의 피부에 닿으면 능력을 카피할 수 있지만 읽어낼 순 없다. 본인이 얼마나 활용하나에 따라 위력도가 달라진다. 피부에 닿는 정도가 깊어질수록 능력을 오래 사용할 수 있지만 단, 능력을 가진 자의 목숨을 뺏을 경우 그 능력 자체를 ‘뺏어오는 것’이 가능. 다만 살육으로 인해 뺏은 능력을 쓰면 쓸수록 생명력이 깎이므로 사람을 죽여 능력을 얻으면 그 능력은 금방 해지하는 편이다.
암묵상으론 보육원에 있었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때 빌런 빈민가에 팔려 빌런 연합 상부층으로 끌려가 훈련받는다. 중학생 이후 도시에 섞여 학생 행위를 하다 작전 수행을 위해 한국 유에이 히어로 인재 양성 고등학교에 일반과로 진학.
그 시기에 00기업의 힐러 히어로가 행방불명된다.
주명과 만나다.
차호원 완전 쓰레기 아냐..? (진짜 막말)
히로아카 보다가 뽕차서 주명이로 보고싶다! 해서 썼더니 너무..막장이 되었네요 죄송합니다.....
먼가 더 복잡하게 이어나가고 싶은데 무리였습니다..
호원은 사실 히어로를 극도로 혐오해요... 가족이 죽었을 때 히어로가 온다고 구출을 기다렸지만 가장 외각 쪽에 있던 터라 무너져가는 집에 깔려서 가족이 죽어가는 걸 다 지켜봤거든요,,,, 빌런 빈민가에 팔려나가긴 했지만 어찌저찌 능력이 잘 보여서 상부층으로 불려나간 건 어찌 보면 호원에게 있어서 복수? 행위를 할 수 있어서 좋았을지도 모르고..
그치만 주명을 만난 뒤로 그 결심이 조금 흔들리게 됩니다. 사실 주명이 해외 히어로 연수를 가고 일을 그만둔다고 했으나 빌런측에서 일종의 세뇌 행위를 시켜서 얘가 더 맛간 겁니다(..) 뭐 그래도 사실 본심도 있어요 주명을 죽이고 싶단 건 아니지만 저렇게 살육전에서 히어로들을 죽이는 게 호원의 복수전이었지만.. 주명과 싸우고 싶지 않아했습니다. 그래서 일을 터트린 시점도 연수를 간 뒤였지만 주명이 돌아와버렸다.. 라는 이야기? 솔직하게 말하고 싶지만 빌런측에서 세뇌+고문측이 나와있어서 사실상 몸이 생각대로 따라주는 것도 아닙니다 말그대로 저거 진짜 미친놈이에요 (..)
오랜만에 쓰니까 성격조정이 제대로 안 잡힌 걸수도..ㅠㅠ 흑흑 죄송합니다 사랑해용..
공미포 9,131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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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AU
2017.03.26
그들이 거래처 방에 도착했을 땐 썰렁하게 빈 내부 안엔 본 적 없는 값비싸 보이는 초콜릿이 테이블 위에 덜렁 올려 져 있었다. 호원의 뒤를 따라 들어온 주명은 내부를 힐끗 둘러보다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뭐야, 안 왔어? 상대가 도착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을 느낀 모양이었다. 응, 먼저 온다고 들었는데... 그의 물음에 대답하며 호원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방과는 호원이 친숙감을 느끼지 못한 곳 중 하나였다. 어릴 적 유일하게 들어가지 못한 방이었기도 했고, 머릿속으론 어른들만 들어갈 수 있으며 자신이 방해하면 안 된다는 의식이 새겨졌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머리가 차기 시작할 땐 처음으로 할아버지와 함께 들어간 기억이 남았다. 노인의 취향이 박혀 있는 고급 목재들과 어둑어둑한 인테리어는 무거운 분위기를 형성해 꺼림칙하던 기억이 새록새록했다. 앞으로 네가 혼자 이끌어야 할 것들이 많으니 잘 기억해두거라. 라고 말하던 할아버지의 목소리고 기억났다. 그래, 이곳은 거래용 방으로 암묵적 뒷거래를 실시할 때 높은 자들이 앉아 협상을 나누는 할아버지의 방이었다.
지금은 모든 것을 이어 받은 자신의 것이 되었지만. 일을 이어받은 후 매번 거래를 협상하거나 손님이 올 때마다 이곳을 모셔오고는 했지만 올 때마다 꺼림칙한 기분은 지울 수 없었다. 음, 인테리어를 새로 해야 할까... 반짝반짝하고 포근한 분위기로. 털썩 소파에 눌러 앉은 호원은 테이블 위에 올려 진 초콜릿을 집어 들었다.
“아니, 먼저 만나자고 해서 왔는데... 이 영감은 어디로 뒷구멍을 뺐어?” 사람 일 다 빼고 왔더니만... 주명은 깔끔하게 넘겨 올린 머리카락부터 이마를 쓸어 올리며 후- 긴 한숨을 내쉬었다.
호원과 주명은 일을 마무리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드문 연락처로 호원에게 전화 한 통이 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기 전 깊은 인연을 쌓던 암거래처의 우두머리인 어르신으로부터의 연락이었다. 오랜만의 만남인데다 긴히 할 이야기도 있고 하니 호원의 본가에서 기다린다고 그는 말했다. 먼저 기다린다고 한데다 천천히 오라고는 했지만 어르신을 홀로 기다리게 할 순 없기에 호원과 주명은 부랴부랴 짐을 싸고 본가로 달려왔다. 그리고 도착.. 했지만 정작 반기는 건 싸늘한 방과 덜렁 초콜릿 한 개 뿐이니 주명이 답답할 만도 했다.
“영감 어디로 내뺐어? 아직 도착도 안 했대?”
주명은 슥 고개를 옆으로 돌려 문을 지키고 있던 조직원 남자를 향해 물었다. 그는 덤덤한 얼굴로 다물고 있던 입술을 가볍게 떼어냈다.
“도착하신지는 오래 되셨습니다. 다만 중간에 연락이 와 잠시 처리하고 오시겠다며 먼저 도착하신다면 보스에게 조금 기다려달라고 하시더군요.”
“하.. 그럼 그렇다고 말하던가. 괜히 일찍 왔네..... 시간은?”
“보스와 주명님께서 도착하시기 전에 약 40분 정도 지났습니다.”
그 전까지 초콜릿을 전해달라고 전언을 남기셨습니다. 그 정도 시간이 지났다면 곧 온다는 이야기였다. 것보다 웬 초콜렛? 주명은 답답한 단추자락 하나를 풀고선 머리를 탈탈 털어냈다.
호원은 오랜만에 그와 만난다며 붕 떠있었다. 듣자하니 어릴 적부터 친분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 점에 넘어가면 큰 일인데 저거. 몇 번을 말해도 붕방붕방대기만 하니 주명은 답답할 노릇이었다. 혈육이래도 서로 뒤통수를 치기 마련인데 호원은 자기 선 안에만 들어온다면 간이든 쓸개든 가볍게 내줄 준비가 되어있는 것 같았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쯧, 혀를 찬 주명은 호원의 이름을 부르며 시선을 돌렸다. 미리 만남을 가지기 전에 관계자로서 우선 가볍게 경고는 넣어줘야 할 듯 싶었다.
“야 차호원. 아무리 친분이 있는 사이라고 해도 방심하지 말고 요긴하게 이야기....”
“??”
예쁘게 포장되어 있던 초콜릿 포장지는 호원에 의해 뜯어져 있었고, 열린 뚜껑 안엔 이미 두어 개의 초콜릿 공간이 비어 있었다. 우물우물. 두 눈을 반짝이며 우걱우걱 초콜릿을 씹어 먹는 꼴이 제법 만족스러운 것 같다. ....후. 주명은 침착하게 숨을 들이쉰 후 성큼성큼 호원에게 다가갔다. 그 뒤를 지켜보던 조직원 남자는 저질렀다... 라는 표정으로 가만히 둘을 응시했다.
“말, 할- 틈은. 주.라.고!!!”
“-!? 아, 아파!!!”
뻐억! 큰 소리가 호원의 뒤통수에 울렸다. 호원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얻어맞은 부위를 꾹 눌러 감싼 채 원망스럽다는 듯 씩씩대는 주명을 올려다보았다.
“무슨 짓이야-!”
“내가 할 소리다! 뭘 또 처 먹고 앉아있냐 넌!”
“뭐- 냐니, 초콜릿....”
“독이나 마약이라도 들어있으면 어쩌려고! 뒤지고 싶냐?!”
이런 직종에서 일하는 놈이, 그것도 보스란 작자가 위험이란 걸 생각 자체를 안 해요! 이 빙구! 쏟아지는 팩트 세례에 호원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나도 생각은 할 수 있거든! 그리고 괜찮아! 호원의 귓주변이 시뻘개졌다.
“준 사람은 독 같은 걸 넣어줄 사람이 아닌 걸! 내가 초콜릿을 좋아하는 것도 알고...! 아무튼, 괜찮아! 봐! 아무 반응도 없는 걸!”
“뭐든 그렇게 믿어버리니까 통수 칠 틈이 없는 거 아냐....! 하, 됐어. 이거 압수.”
“아! 뭐야 치사하게!! 아직 한 입밖에 못 먹었는데!!!”
“이 와중에 더 먹을 생각이었냐?!”
어! 뻔뻔스럽게 양 고개를 끄덕이는 호원의 입가에 더덕더덕 초콜릿 가루가 묻어 나있다. 빨리 줘! 팔을 뻗으며 동시에 입을 벌리는데 혀에 초콜릿 무스 흔적이 남아있다. 아주 맛깔나게 먹었다 이거냐! 주명이 호원의 한쪽 뺨을 잡아다 쭉쭉 늘어뜨리기 시작했다.
아아- 아파, 아프다고 바보!! 아프라고 꼬집지! 투닥대는 둘의 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던 조직원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이 둘에겐 상사와 부하라는 경계선이 전혀 없었다. 애초에 주명이란 자가 들어오는 조건부터 그 경계를 허무는 게 전제였으며 보스인 호원도 가장 먼저 선호하는 주제였던 듯 싶었다. 그래서인지 주변인들이 쩔쩔맬 정도로 투닥여도 둘에겐 칼질도 총질도 그 무엇도 없다. 주먹질을 죽이려듯 하지도 않는다. 마냥 고등학생 친구처럼 투닥대는 꼴은, 머리끝까지 잠겨버린 이 세계와의 이질적인 것이었다.
투닥거림이 꼭 나쁜 건 아니다. 다만, 상황을 가려서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지. 큼큼, 조직원 남자는 헛기침을 하며 꾹 다물던 입을 열었다.
“저어, 보스.. 주명님. 손님께서 이미, 크흠. 막 도착하셨습니다만.”
“!”
“!”
“허허.”
한창 혈기왕성할 시기이지 안 그러나. 어느새 조직원 남자의 옆에 서선 남자들의 호위를 받고 들어온 노인은 보스와 그의 오른팔이 투닥대는 모습을 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갑과 을의 위치라고 보기엔 그저 어린 청년들이 마냥 귀여워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제 서야 어르신이 나타난 걸 보며 호원과 주명의 몸이 그 자세로 딱딱하게 굳었다.
“죄- 죄송해요!” 겨우겨우 정신을 차린 호원이 손바닥으로 쭈욱 주명의 뺨을 꾹꾹 눌러 밀어내며 소리를 높였다. 뭐, 뭐처럼 오셨는데 상황이 이래서...! 버벅대는 보스의 꼴이 꽤 볼만 했다.
“아니네. 나도 늦었으니 오히려 인사는 이쪽에서 해야지.”
“아- 아뇨! 그, 그.... 우, 우선 자리에 앉으세요!”
“음. 그래.... 긴히 할 이야기도 있고 말야.”
하지만 그 전에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허겁지겁 호원이 소파에 자리를 잡아 앉는 사이 어르신은 먼저 걸음을 떼었다. 떨떠름한 얼굴로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이는 주명을 향해 노인이 다가섰다. 이거 말일세. 그는 냉큼 주명이 가지고 있던 초콜릿 상자를 텁, 잡아챘다. 호원과 주명이 동시에 아. 소리를 냈다.
“이거 어때 보이나? 꽤 괜찮았지?”
노인은 흡족스럽게 웃으며 탈탈, 초콜릿 상자를 흔들었다. 겨우 한 알맹이만 꺼내 먹은 초콜릿상자는 남자의 손 안에 털털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노인이 그 말을 꺼내는 이유는 즉슨, 호원에게 해를 가하려 넣으려는 음식은 없다는 소리! 호원의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 어떠냐는 듯 의기양양하게 주명을 응시하면 그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끌끌 혀를 찼다.
“물론 괜찮죠! 어르신께서 이런 것까지 챙겨주실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이제 어느 걸 받아먹을 어린 아이도 아니니까요. 손수 좋아하는 음식까지 챙겨주니 호원에게 있어 감사할 따름이었다. 어린 보스의 말에 노인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상냥하게 입 꼬리를 올려 웃었다.
“어릴적 꼬맹이가 영감 자리를 거뜬히 지키는 게 여간 기특해야 말이지. 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거들어주겠네.”
“가-감사합니다...!”
“천만에. 이번 물건은 자네에게 있어 흡족한 물건이었으면 좋겠군.”
‘음.. 물건?’
노인은 초콜릿 상자를 요긴하게 뜯어보다가 이내 음? 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포장지 부분이 뜯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일 테다. 벌써 시험해본 건가? 그 말에 뒤이어 호원이 두 번의 의문이 들었다. 실험...?
“이번 우리가 특별히 주선해서 만들어낸 것인데, 일반 암거래에서 구하는 것보다 쏠쏠한 놈이지. 어느 계집을 사용해본 건가? 효과는 어땠어?”
“..저어, 무슨 의미... 신가요?”
“? 설마 모르는 건가? 호원군.”
노인은 초콜릿을 호원을 향해 내밀어 보이고선 말을 이었다.
“이 특제 비아그라 초콜릿 말일세.”
.......네?
“너- 말야.. 그런 쪽으로 일하는 사람이면 제대로 눈치 깠어야지!!!”
“나, 난 몰랐... 아으”
“그 영감탱이 말대로 효과는 좋나보네.”
“나.. 장난 치는. 거 아니거든!”
“이쪽도 장난 아니거든.”
“아, 으아 그- 그, 게 아니...! 미안..!”
“아니... 됐다. 자리 비켜줄 테니까 잘 풀고 와.”
“.....알았으니까 좀 천천히 말해. 너 숨쉬기 힘들다며.”
“...”
“주명이 아니면 싫어...!”
“...”
끌어안는 손길까지도 예민함이 올라와 온 몸이 화끈화끈 따가워진다. 호원은 겨우 실눈을 떠 눈앞에 달라붙어 있는 주명의 눈감은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누워 있는 몸은 반쯤 일으켜 다가온 주명이 침대에 걸터앉으면 이미 게임은 시작종을 알리고 있었다.
“..차호원?”
“....?”
“..너 반쯤 정신 나갔는데...”
“아.. 괜찮으니까 빨리... 으윽, 으... 나 진짜 힘들거, 든 명아..!”
“...”
“...이제부터 알게 될 거야.”
앤오님이 마피아 정장입고 최음제먹고 올라탄걸 계속 말하셔서 ㅋ
ㅋ
ㅋ
ㅋㅋ
씬을.. 끝까지.. 적기엔.. 용기가....!!!<<< 없었어요...!<.....죄송합ㅂ니다 하나도 안 .. 야하네요..
앤오님.. 공부 파이팅입니다...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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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넬버스 1
2017.03.12
첫 번째 각인 상대는 아이러니하게도 옆집에 친하게 지내던 남자아이였다.
“신난다! 원이 네가 내 가이드야?”
“...? 으, 응. 그런가 봐!”
“아싸! 잘 부탁해!”
이제 계속 만나서 놀 수 있겠다! 잔뜩 신이 난 친구 기섭이 호원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작고 앙증맞은 손은 아이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저 자신에게 내밀어줬다는 사실만이 기뻐서 기섭의 손을 잡으며 실실 웃었다. 그땐, 아무것도 모르는 그저 어린 아이에 불과했다. 선택된 센티넬이나 선택받은 가이드인들 겨우 7살 남짓한 아가들이 뭘 알겠는가.
신에게 선택받은 인간이라고 여겨지는 센티넬들은 세계적으로 다양한 능력들을 쥐고 있고, 그만큼 높은 자리에 올라 다양한 지배력들을 쥐고 있다. 하지만 신에게 사랑받은 몸이라고 한들 인간이 그 능력을 전부 다 제어할 수는 없는 법. 혼자서 그 능력을 다스리다간 언젠가 머리가 미쳐버려 그대로 죽어버린다고 한다. 홀로선 절대 살아남을 수 없는 외로움쟁이 센티넬들을 제어하기 위해 그들은 다른 종족을 만들었다. 능력은 별반 인간들과 다를 바가 없지만, 유일하게 센티넬의 몸을 제어시킬 수 있는 능력만을 가지고 있는 가이드라는 종족이었다.
센티넬이든 가이드든 흔하게 태어나지 않는 종족들이지만 이들은 유전적으로 대를 잇고 태어나거나 이따금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태어나기도 한다. 각자마다의 수치도 구분되어 있고 높은 자들은 그만큼 수치가 높은 상대를 고르기도 한다. 골라야 하는 이유는 간단. 센티넬이 상대의 가이드와 정확한 각인을 맺어야 능력에 좀먹히지 않고 오랫동안 부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센티넬과 가이드들은 각자의 능력이 발화하면 센터에 등록해 때로는 일반인처럼, 때로는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역할로 각자 살아가고 있다.
이 때문에 센티넬 가문이라면 센터에 배치되어 있는 높은 수치를 가지고 있는 가이드를 돈을 쥐어 직접 사들이거나 가문대 가문으로 이어지고는 한다. 호원과 기섭도 이와 같은 경우였다. 쉬이 입을 담아 말할 수 없는 명문 재벌 집 가문은 아니었지만 전통적으로 가이드를 배출해내고 있는 차씨 가문은 조금씩 센터 세계에 발을 들이고 있는 중이었고, 그런 호원이 처음으로 발탁된 상대 센티넬인 기섭네 가문은 정부축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중축의 센티넬 가문이었다. 무엇보다 외동아들로 태어나 고이 자란 기섭이 상대로 호원을 선택했으니 이보다 더 경사스러운 날은 없었을 거라며 호원의 할아버지는 말했다.
“우리 축구하러 가자!”
“응!”
복잡한 센티넬과 가이드의 세계였지만 정작 단짝인 두 남자아이는 서로 놀기 바쁘다며 어른들의 이야기는 흘겨듣고 공을 들고 나가기 바빴다. 센티넬이든 가이드든 무슨 상관인가? 둘은 각인을 짓기엔 너무나도 어린 나이였고, 그런 우스운 관계보단 친구라는 사이가 더 중요했다.
‘넌 장차 우리 가문을 지탱할 가이드다 원아.’ 라고 말하던 할아버지의 잔소리도 싹 잊어버렸다. 호원은 가벼이 생각하며 공을 든 기섭의 뒤를 따랐다. 가이드는 계약 파기 전까지 무슨 일이든 센티넬의 곁을 맴돌아 지켜야 한다. 라는 교육식의 말 같은 건 금방 백지화가 되어버렸다. 할아버지의 맹렬한 가이드 교육은 속수무책으로 돌아갔다. 소년은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 안일한 생각에 벌을 받은 것이다.
“....섭아..?”
툭! 데구르르. 축구공은 도로변에서 굴로 호원의 발틈에 굴러왔다. 멍하니 부른 호원의 부름에도 기섭은 침묵을 유지한 채 차가운 시체로 남아 도로 위에 누워 있었다. 벌겋게 물든 아이의 몸이 마치 인형 같았다. 한 번 떨어트렸다는 이유로 와장창 깨져버린, 어머니가 아끼시던 유리 인형.
..아, 설마? 그제야 허겁지겁 축 늘어진 친구의 손을 꼭 잡았다. 처음으로 센티넬을 위해 기운을 불어넣는 행위였다. 할아버지에게 교육받은 대로 온 신경을 집중하며 힘을 불어넣었다. 손기에 느껴질 따뜻한 온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책에 실려 있는 따뜻한 느낌이 돈다는 것과는 달리 손에 감싸진 기섭의 손은 너무나도 차가웠고, 또 축축했다.
그건 저주의 시작이었다.
* * *
제대로 각인이 되지 않은 미각인 상태라고 해도, 각인을 맺기로 한 상태에서 곧바로 일어나버린 사고는 세간의 관심이 꽂혀버렸다. 우연적인 뺑소니 사고일 뿐인데도 기자들은 가이드의 악영향이라며 오보를 냈고, 호원을 저격하는 기사들을 쏟아냈다. 단 7살, 가이드라는 이유로 친구를 눈앞에서 잃은 충격을 고쳐낼 새도 없이 수많은 손가락질과 비난을 받은 건 지금도 호원에게 있어 트라우마로 남았다. 불운은 그렇게 시작됐다.
겨우 물이 오르던 차씨 가문의 가이드들은 센티넬에게 저주를 불러온다며 직접 돈으로 사들이는 센티네들이 기피 대상 1위로 낙인되어 버렸다. 할아버지로선 애통한 일이었다. 그 탓에 다음에 맺으려던 센티넬들의 후보들이 쏙쏙 빠져나가고 몇 년 동안이나 맺으려던 약조가 깨져 버렸으니. 결국 나이 15살, 까이고 까이고를 반복하며 호원은 두 번째 센티넬을 맞이했다.
“아, 그쪽이 저주내린 가이드구나!”
“...차호원인데요....”
나이 32살 여성과 나이 15살 소년. 누가 봐도 아이로밖에 보이지 않는 땅꼬맹이를 보며 30대 센티넬 여성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처음 본 그녀는 양 품 안에 잘생긴 가이드 두 남자를 껴안으며 신기한 듯 호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름 명문있는 센티넬 가문의 셋째 자녀인 그녀는 가지고 있는 돈으로 가이드 수집을 하던 중에 이리저리 쫓겨나던 호원을 발견한 것 같았다. 여성은 거부감 없이 가이드인 호원을 계약직으로 맺겠다며 불러냈고, 이번에 둘도없을 기회라며 할아버지는 호원을 냉큼 보냈다. 결국 학교가 파하기도 전에 책가방을 매며 그녀의 집으로 들어온 호원에겐 거부권은 없었다.
뭐야, 소문이랑 달리 그냥 꼬맹이구만. 그녀는 호원의 모습에 조금 실망한 듯 보였다. 쭈뼛거리며 다가온 소년을 향해 손을 휘적대며 입을 열며 말했다.
“방은 집사들이 안내해줄 테니까 거기에서 쉬고 있으렴.”
“아, 아! 네... 그, 근데 저... 각인은...?”
“갓 성인도 안 된 꼬맹이랑? 꼬마야, 각인 맺는 법은 알고?”
꺄르륵 웃으며 되묻는 그녀의 말에 호원이 얼굴을 붉히며 말을 얼버무렸다. 그야... 모를 리가 없잖아요...
단 한 짝밖에 맺지 못하는 센티넬과 가이드의 각인 맺기는 ‘타액 공유’였다. 평생을 함께 할 사이라고 정한 상대나 보통의 각인 관계는 일반적인 성관계를 통해 각인의 매듭을 짓지만 이를 선호하지 않는 자들은 타액이 섞인 잔을 교환하거나 입맞춤으로 통일 짓고는 한다. 다만 제대로 된 성관계로 맺어진 각인이 아닐 경우엔 완벽하게 센티넬과 가이드의 상호관계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애초에 가이드의 역할은 센티넬의 폭주를 맞기 위한 ‘제어제’ 역할이니 제어하기 위해선 접촉을 목적을 기반해야 한다. 호원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그녀의 눈치를 보았고 여성은 옆에 안고 있던 남성의 뺨을 쓰다듬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나도 된다면 제대로 각인을 맺고 싶지만~ 이 오빠들도 있어서 말야. 한 명이랑만 관계를 맺는 건 조금 어렵지? 특히 너 같은 어린 애랑은.”
“네?! 그, 그럼 각인은 어떻게...!”
“나중에 각인 주사 따로 보낼 테니까 방에서 기다리고 있어.”
“....? 주사라면...”
새로 개발된 각인 맺기용 주사기는 호원도 얼핏 내용만 들어보았다. 원래는 단 한 짝밖에는 맺을 수 없는 센티넬과 가이드 사이에 다수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용으로 새롭게 개발된 것이었다. 상대 센티넬의 혈액과 특별한 용액이 주입된 주사기를 맞으면 본래 각인된 센티넬이 있다고 한들, 또 하나의 다른 센티넬을 상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일시적이지만 몸으로 관계를 맺은 센티넬처럼 같은 효과용 제어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신비한 주사기.
“...하지만, 가이드가 그 주사를 맞으면 그만큼 부작용으로 고통스럽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싫다고?”
“.....아니.. 그건 아니지만..”
“내가 널 얼마로 사들였는데. 게다가 너, 너 때문에 센티넬도 죽었었다면서. 그거 다 듣고도 감안하고 사온 거야. 그 정도 값은 해줘야 할 거 아냐.”
내 말이 틀려? 사납게 쏘아 붙는 그녀의 말을 부정할 수도 없이 호원은 입술을 꾹 다물고 있어야만 했다. 그녀와의 다음 대화는 없었다. 집사로 보이는 사람의 안내를 따라 쭉 방 안에 대기를 해야만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성의 센티넬 기운이 흐르는 피가 섞인 주사기가 덜렁 준비해졌다. 여기에 사는 다른 가이드들도 나랑 같은 주사를 맞고 있을까? 여러 의문과 함께 호원은 눈을 질끈 감으며 팔에다 주사기를 맞았다.
그 날은 종일 온 몸에 화끈화끈 열이 나 새벽 내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끙끙 앓아야만 했다. 몸이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명을 질러댔다. 눈물이 더 이상 나오지 못할 때까지 흐르고 또 흘렸다. 말라붙은 눈물자국이 호원의 애석함을 대신 전했다. 사지가 다 뜯겨나갈 것 같았고, 뜨겁고 뜨거워 고통의 나날이었다. 그래도 이것만이라도 각인이 된 거니까. 더 이상 저주저주 놀림받을 이유도 없을 테니까. 분명 괜찮을 거야.
끊이질 않는 고통 속에서도 이를 악물며 참았고, 호원은 어서 빨리 그녀가 자신을 찾아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호원을 찾는 일은 단 한 번도 없게 되어버렸다. 호원이 각인 주사를 틈틈이 받기 시작한 지 한 달 채 넘어간 일이었을 것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호스트 가이드들을 품에 끌어안고 드라이브를 하던 그녀가 갑작스레 튀어나온 오토바이와 충돌해 그대로 즉사해버렸다.
그렇게 두 번째 가이드를 잃어버린 채, 몸은 덜렁 부작용만 남은 채로 호원은 다시 혼자가 되었다.
* * *
세 번째 센티넬은 온 얼굴에 기분 나쁜 주름이 진 70대 할아버지였다. 당시 호원의 나이는 19살. 그는 다시 학교에서 야간 자율을 하기도 전에 덜렁 가방만 메고 웬 삐까뻔쩍한 차를 타고 끌려가야만 했다.
“차씨 영감이 자네를 소개해주더군.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네. 치수는 무려 200을 뛰어넘는 상급 가이드가 안 좋은 일이 겹쳐 짝을 못 찾았다고.”
“....하하, 네.... 부득이하게도요...”
“딱하기도 하지. 하지만 이제 걱정하지 말게. 특별히 내가 자네를 거둬주지. 굳이 다른 센티넬을 찾으려 헤맬 필요도 없지.”
진작 얘기만 해줬으면 미리 만났을 터인데. 아쉬운 듯 쯧쯧 혀를 차는 영감의 모습에 호원의 몸은 점점 더 작아졌다. 당신 같은 사람에게 쉽사리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는 중소 기업 몇 개를 운영하고 있는 나름의 이름 알린 기업의 회장님이었다. 젊었을 적 센터의 탑에 들어갈 정도로 능력을 거뜬히 발휘한 센티넬이라고도 알려져 있었으나 현재는 가이드 모두가 이 남자를 꺼릴 정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매일 같이 배우는 가이드 교육에 나온 영감의 이름에 할아버지가 침이 마르도록 설명을 해왔으니 잊을 리 없었다. 이런 별종은 눈이 마주치지도 말아야 한다며.
‘그렇게 말했는데... 나한테 말도 없이 이 할아버지를 붙여준 걸 보면....’
“각인식은 될수록 빨리 진행하는 게 좋겠지. 집 쪽에 동의도 얻었으니 오늘은 우리 쪽 집에 머물러 가게나.”
“네? 그, 그치만 따로 연락은...!”
“괜찮대도.”
앞으로 계속 함께 할 사인데 뭐가 어렵다고. 금이빨을 씩 드러내며 웃는 꼴이 호원의 눈에는 메스껍게 느껴졌다. 그는 거리낌 없이 손을 내밀며 호원의 의사도 없이 덥석 손을 잡고선 주름진 손을 그 위에 덮었다. 느릿하게 조물딱 거리는 손길에 호원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손에서 벌레가 기어가는 것만 같았다. 호원을 내다보는 끈적한 시선이 역겨웠다. 귓가에는 벌써부터 할아버지가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내젓던 꺼내던 말이 울린 듯 했다.
그 영감은 틀렸어! 쯧... 제 나이를 구분하면서 자신의 분수를 알아야지. 남색을 밝히는 게 가당키나 한 소린지...
이제껏 가이드와 맺은 숫자만 해도 열댓이 넘지만 그의 성적 희롱에 질려 나가떨어진 자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작 가이드들은 자신들의 의지에 의해 계약을 해지하고 나올 수 없었다고. 각인을 풀자고 말한 가이드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며 그들의 꼬리도 찾기 힘들다고 할아버지는 말했다. ‘분명 나가겠다고 하니 다른 센티넬에게 보낼 바에야 아예 없애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거겠지.’ 넌 절대 그런 놈들에게 꼬이지 마라 원아. 라며 서툰 손길로 어린 손자를 쓰다듬던 할아버지의 기억은 아직도 선선했다.
그랬는데, 그렇게 말한 할아버지가 정작 호원과는 아무 말도 없이 먼저 선동해서 이 영감에게 가이드로서 소개시켰다. 돌아오는 배신감과 죄악감은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다. 팔아졌다고는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호원은 튀어 나오려던 눈물을 꾹 삼켜냈다.
센티넬과 가이드가 그렇게나 중요한 걸까? 저주내린 가이드라고 불릴 정도면 이젠 별로 각인같은 건 맺지 않아도 되잖아. 각인, 그게 뭐라고... 가문의 영광, 그게 다 뭐라고......
‘차라리 이렇게 팔려갈 거라면......’
“20분 내로 도착할 테니 눈 좀 붙여두게. 이야기는 그때 가서 천천히...”
“...............텐데.”
“응? 방금 뭐라고...”
차라리 다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
그건 마치 반갑게 들리던 저주의 재시작이었다. 운전석에서 핸들을 돌리던 기사의 숨소리가 커졌다. -빠앙! 클락션 소리와 함께 호원의 몸이 순식간에 앞으로 쏠렸다.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던 능구렁이 영감은 눈앞에서 바로 밖으로 튕겨져 나가버렸다. 유리창이 와장창 깨지고 차가 장난감처럼 데굴데굴 도로변을 굴러 전봇대에 꽂혔다. 안전벨트에 단단히 묶인 호원은 그대로 차 안에서 기절해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차사고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호원뿐이었다. 차의 타이어가 좋지 않았던 모양인지 아니면 기사가 졸음운전을 하고 있었던 건지, ..그것도 아니면 모두가 수군거리던 말 대로 가이드의 저주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던 건지 차사고는 다시 한 번 발생했다. 밖으로 튕겨져 나간 영감은 그대로 죽어버렸고 운전석에 자리 잡던 기사님도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다. 오직 호원만. 그는 살아남았다.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겠네. 운도 지지리 나쁘면서 이럴 때면 용하게 살아남는다. 눈을 떴을 때 걱정스레 자신을 내려다보던 할아버지의 가증스러운 얼굴을 호원은 잊을 수가 없었다. 이젠 다신, 각인 같은 건 맺지 않을래요. 차라리 정말 얼른 죽어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고인 눈물이 또르륵 뺨을 타고 흘렀다. 왜 항상 내가 맺으려던 짝들은 모두 죽어버리는 거지.
* * *
인정하자.
차호원은 저주내린 가이드다!
애초부터 누굴 센티넬로 받아들여 짝을 만들 생각 따윈 해선 안 되었던 것이다. 성인이 될 때까지 수많은 짝을 찾아보고 세 번째 센티넬까지 관계를 맺을 뻔 했지만 정작 성사된 건 단 한 명도 없었고 그들을 전부 죽음으로 몰아버렸다. 더 이상 호원을 찾는 센티넬은 없었다. 제 아무리 수치가 높은 뛰어난 가이드라고 한들 다들 고개를 내저으며 다른 이들을 찾아보겠다며 손을 떼어냈다.
이 가문에 먹칠하는 미련한 놈 같으니. 어릴 적에 그렇게나 자상하던 할아버지도 이젠 호원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호원의 뒤를 잇는 두 동생 다 호원보다는 수치는 낮아도 뛰어난 가이드로 태어난 것이다. 호민과 호천은 나름 이름 날린 센티넬과 계약을 맺어 거덜나려던 가문도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상태였다. 두 동생들은 저렇게 잘하고 있는데, 정작 장남이라는 놈이 저래서야 써?! 이젠 얼굴만 볼 때마다 으르렁 이를 가는 통에 호원은 쉽사리 본가로 돌아가기도 힘들었다. 결국 대학을 들어가 기숙사에 쭉 지내고 취직을 하고 나선 부랴부랴 단칸방을 구해 집을 나와야만 했다.
간호사로 일반인의 삶을 살아가게 된 건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평범한 삶을 살게 된 것 같아 기뻤다. 매일같이 할아버지와 1 : 1로 가이드 교육을 받는 건 부담스러웠고 제대로 놀지 못했었다. 가이드로서 일했다면 분명 24시간 내내 센티넬의 일에 따라 센터 일을 맡아왔을 것이다. 그래도 그 편이 더 살기는 쉬웠을 걸. 적어도 막노동은 아니라며 친구들이 입을 모아 말했지만 호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냥 이대로 만족해. 간호사로서 환자들과 웃으며 지내고, 버거워도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고. 어떻게 보면 센티넬을 위해 가이드로서 일하는 것도 이와 비슷할 지도 모르겠다. 배시시 웃으며 호원은 다시 입을 모아 대답했다. 이걸로 만족한다고.
...만족하는데.....
“...그러니까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가도 되,”
“응- 안 돼^^”
단호하게 호원의 말을 잘라낸 흑발의 남성은 말끔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양 손에 턱을 괴고 있었다. 난 분명히 만족한다고 했는데. 전과는 다른 의미로 땀을 뻘뻘 흘리던 호원은 마치 조직 폭력배처럼 커다란 등치의 두 남자에게 붙잡혀 무릎을 꿇고 있었다. 호원이 자리잡고 있는 곳은 센티넬 센터의 중앙지점에 위치한 이 남자 전용 사무실이었다. 남자의 비싸 보이는 테이블 위엔 값비싼 양주와 잔 몇 개. 그리고 남자의 현직을 알리는 이름표가 부착되어 있었다.
[백화 이사] 제 아무리 무지한 호원이라고 한들 이 남자의 이름을 모를 리가 없었다. 젊은 나이에 센터의 중추를 지지하는 역할을 맡은 그는 이미 수십 명의 센티넬들의 몫을 단 한 명으로 거뜬하게 수행하고 있는 요원이라고 들었다. 센터에서 일하는 것뿐만이 아닌 이미 기업의 몇 개를 꿀떡 삼켜 회사의 주주로서도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뒷배경도 장난이 아니겠지. 이 이야기를 들은 건 호원이 중고등학생 때 할아버지가 귀가 닳도록 얘기해준 것이었으니 시간이 지난 지금은 남자의 위치는 배로 더 커졌을 것이다.
어깨 아래까지 내려오는 곱슬의 긴 흑발 머리는 깔끔하게 하나로 묶어 단정해 보였다. 여자는 여럿 울렸을 법한 얼굴도, 쫙 차려진 정장과 길쭉하게 뻗은 다리는 능숙하게 꼬아 올린 채로, 마치 천한 것을 내려다보는 듯한 붉게 타오르는 눈동자는 어딘가 호원을 공포감으로 서리게 만들었다. 자신과 절대 엮일 리 없는 이 남자는 어째서, 왜 날 찾은 거지?
정확히 이곳으로 오게 된 건 채 30분도 지나지 않았다. 야간근무로 잔뜩 지친 호원이 병원 입구를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폭력배처럼 생긴 곰남자 둘이 덥석 호원을 덮쳤다. 고함을 지를 새도 없이 입부터 틀어막고 명치를 때리고 기절시켰으니 저항을 할 틈은 있었을까. 정신을 차리니 센터의 이 남자의 사무실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아직 비몽사몽한 호원에게 싱긋 미소를 짓고선 ‘우리 쪽 가이드로서 일해.’라며 부탁 아닌 명령, 협박의 어조로 말했다.
“어차피 그쪽 제대로 맺은 센티넬 하나 없을 텐데 우리 쪽 권유는 오히려 감사합니다. 라고 해야하는 거 아닌가?”
“시- 싫다니까요! 난 이제 별로 각인 같은 건 관심 없고...!”
“흠... 싫다고 해도 이쪽도 내빼긴 어려운 입장인데.”
이거. 어느 샌가 들고 있던 종이를 들고 백화가 성큼성큼 다가와선 호원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그건 하나의 계약서였다. 호원이 단 한 번도 눈에 본 적이 없는. 이 가문의 가이드로서 센티넬을 위해 일하겠다는 일종이 계약서. 게다가 아래에는 호원의 이름과 본 적도 없는 지장이 찍혀져 있었다. “아, 참고로 이건 그쪽이 찍은 거거든.” 냉큼 호원의 손을 잡아 올리면 정말 엄지손가락에 본 적도 없는 빨간 자국이 남아 있었다. ....기절한 사이에 멋대로 찍은 거야!?!?
“경찰에 신고할 거야 그쪽..!”
“경찰도 우리 쪽에 굽신대는 거 잘 알면서.”
“...윽”
“나쁜 제안도 아니라니까 그러네? 참고로 멋대로 계약을 파기할 시 벌금 1억이야.”
“-!!!”
그 커다란 돈을 어디서 구하라고....! 그러니까 하라는 말이지. 그는 세 번째로 만난 센티넬 영감보다 더 능구렁이 같았다. 한 번 덥석 물어서 놔주지 않으려는 독종! 바들바들 떨며 눈물을 글썽이는 호원을 즐겁게 내려다보며 백화라는 남자는 크게 웃었다.
“뭐, 나쁜 제안도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부탁하는 입장이니까”
‘협박이잖아-!!!!’
“게다가 그쪽 워낙 말도 많은 가이드라 다른 센티넬들은 거들떠도 안 봐주는 것 같은데. 다시 예쁨 받을 좋은 기회라고. 본가에 쫓겨나서 이도저도 못한 상황에 단칸방에서 지낸다며? 거기 집값 싸더만. 얼마 안 하던데.”
“....뒷조사까지 하면서 날 가이드로 데려가려는 이유는 뭐에요? 그만큼 아는 거면... 내가 이제까지 가이드로서 어떻게 지내왔는지도.. 다 알 텐데..”
“알지 그럼.”
알기 때문에 더 당신이 필요하단 거야. 훌쩍이는 호원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시선을 맞춘 남자는 덤덤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례적으로 찾기 힘들다던 가이드 지수 200을 단순하게 뛰어넘어 버린 가이드지 그쪽. 듣자하니 214였던가? 하지만 지수가 높다고 다가 아니지. 단지 계약을 맺기 위했던 것만으로도 앞길이 창창한 센티넬을, 부유하던 센티넬을, 저속하지만 이용가치가 뛰어나던 센티넬을 전부 다 골로 보내버린 가이드. 붙기만 해도 저주가 달라붙는다며 센티넬이 극악적으로 기피하는 대상 1등. 센티넬과 가이드로서 관계를 맺으려고 하면, 상대를 죽여 버린다던 저주 받은 가이드. 차씨가문의 장남 차호원.”
“.....”
“그쪽이 꼭 맡아줘야 할 센티넬이 있어.” 고이 계약서를 접어다 호원의 손에 쥐어준 백화는 사람 좋게 웃어 보였으나 그 웃음이 가식적으로 보인다고 생각했다. 마치, 이보다는 조금 더....
“...그건 그쪽이에요?”
“뭐? 나? 미쳤어? 난 죽고 싶지 않거든. 그리고 난 이미 계약된 가이드가 세 마리나 있어.”
“....”
완벽하게 가이드를 가축취급 하는구나. 호원은 인상을 콱 찌푸렸다. 그럼 대체 누군데요? 호원의 물음에 백화는 씩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내 동생.”
“....”
.......?
“......나를 가이드로서 맡기는 이유가.... 동생을 죽이고 싶어선가요...?”
“결국... 와버렸다...”
‘아아.. 뭘 제대로 하려고 하면 항상 이래...ㅠ!’
“.....거기 뭐하냐?”
“!”
악 심지어 다른 사람이 보기까지! 수치감에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파르르 몸을 떨었다. 멀리서 멍! 하고 짓는 소리까지 들린 걸 보면 강아지도 있는 모양이었다. 터벅터벅 다가오는 발소리가 커졌다. 그냥 이대로 지나가주지... 속으로 울음을 삼키며 호원이 조금씩 비틀대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눈앞에 내민 손이 시야에 들어왔다.
“맨땅에 그렇게 미련하게 엎어지면 코 깨진다.”
“..아...”
“허, 손 아프거든? 빨리 일어나.”
“아, 감사합니다...”
착한 사람이다... 부끄럽기는 해도 상대에게서 내밀어진 배려심에 코끝이 찡해졌다. (다른 의미로도 찡해진 것도 있지만.) 급하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며 호원은 거리낌 없이 상대 남자가 내민 손을 덥석 잡았다.
“-!”
그건 마치 간지러운 정전기처럼 일어났다. 맞잡은 손끝에서 느껴지는 따쓰한 온기가 온 몸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처음 만졌던 차가운 느낌과는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그 느낌은 곧 사라지고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 찬 감정이 스며 들어왔다. 상대가 느껴왔던 웅축된 감정들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간 배워왔던 것 그대로 맞잡은 손 너머로 온기를 불어 넣었다. 그건 아주 당연하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상대를 진정시키는 마음을 불어 넣었다. 몇 초도 걸리지 않고, 상대도 능숙하게 기운을 받아냈다. 마치 빈잔이 덜렁 있는 듯한 남자의 속은 잔뜩 뒤엉켜 있는 것 같았다.
‘이 사람... 위험해.’
어떻게 견뎌온 거지?
“....그쪽.. 가이드...냐?”
“.....아.”
나도 모르게 그만! 급하게 고개를 들어 올린 호원은 상대의 얼굴을 확인했다.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배려를 받은 상대 남자는 호원이 찾던, 백화가 가이드를 맡아주라던 센티넬이었다. 그는 이 행위가 조금 불쾌했던 모양인지 인상을 콱 찌푸리고 있었다. 생글생글거리며 능글맞게 웃던 형과는 다소 큰 차이를 보였다.
이렇게 쉽게 찾게 될 줄이야. 사진과 똑같이 번지르르한 얼굴로 서있는 남자의 얼굴은 분명 주명이었다. 형과는 다르게 조금 밝은 빛이 감도는 붉은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그저 얼굴만으로 대면해서 만났더라면 그의 생김새에 중점을 두고 보았을 지도 모를 일이었겠지만 호원은 마음이 급했다. 이 남자는, 당장이라도 제어를 해주지 않는다면 언제 폭발할지 모를 위태로운 사람이야.
문득 남자가 보자마자 하라던 팁이 떠올랐다. ...그걸 위해 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상대의 상태가 이래서야 그저 눈을 뜨고 지켜보기도 어려웠다. 호원은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마음의 양심보단 계약서에 적혀 있던 1억이 더 컸다. 미안해요 주명씨! 그치만 이렇게라도 하면 어차피 가이드로 일할 거, 조금은 안정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호원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쪽 멋대로 이러는 거 그만..-”
덥석 멱살을 잡아다 끌어당긴 주명이란 남자는 무방비하게 호원의 앞으로 끌려왔다. 당황해 벌어진 입술로 호원의 입술이 겹쳤다. 놀란 주명의 붉은 두 눈동자가 번쩍 떠지며 커졌다. 단순한 입맞춤이 아닌 감정을 공유해 제어하기 위한 농밀한 행위였다. 서로에 대한 마음따윈, 하나도 없어도 뽀뽀도 키스도 섹스도 할 수 있다는 게 우습지.
‘이 사람이랑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우선 멋대로 키스한 것부터 각인 확정이지만. 쪼오옥 소리가 날정도로 입술을 눌러 붙인 호원은 입술을 파고들어 고여있던 타액을 꿀꺽 삼켰다. 딱딱하게 굳은 남자의 입안을 더듬어 서툴게나마 타액을 흘려보냈으니 간접적 각인 맺기는 성공한 셈이었다. 이렇게 쉬웠다면, 그동안 다른 사람들이랑도 진작 해놓을 걸. 돈이란 건 참 애석한 존재였다.
처음 만난 사이에 5분조차 지나지 않은 상대.
저주를 뿌려 된다면 죽음으로 몰아달라던 형과 똑 닮은 남동생.
저주받았다던 가이드인 차호원. 어딘가 위태로운 센티넬 주명.
그렇게 각인은 맺어졌다.
삘받다 쓰니까 오랜만에 만자 넘었다.. (코슥) 정작 주명이랑 만난 장면밖에 없어서.... 나중에 더 쓸 수 있어요.... 주명 : 센티넬. 가이드 없음. (강제적으로 호원이랑 맺어진다..) 24년동안 형식적으로 가끔 손만 잡는 가이드만 만나옴. 정신력이 강하다... 무슨 능력인지는 앤오님이... (ㅈㄴ) 백화 : 센터의 젊은 중추 관리원.. 직급이 높다.. 돈도 많다.. 주명이 괴롭힌다.. (분노) 센티넬. 주명일 어떻게든 나락으로 떨어트리고 싶어하지만 제 손을 더럽히긴 싫을 것 같아.. (..) 그 말많던 가이드 호원을 배치시킨다. 1억으로 협박한다.. 호원 : 저주받은 가이드. 센티넬 싫어한다. 그치만 1억 때문에 강제로 주명이랑 각인을 맺는다. 의외로 가이드 수치가 높다. (평균 100~150인데 호원은 214) 갑자기 센티넬버스가 땡겨서.. ㅠ..... 멋대로 설정 끄집어 캐붕시켜서 죄송합니다.....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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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AU
2017.01.29
*요괴 AU
한, 중, 일 삼국에서 구미호(九尾狐)는 신통력을 가진 꼬리 아홉의 여우를 뜻하며 남자를 잘 홀리는 매혹적인 여성으로 변신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구미호에 대한 가장 오랜 문헌적 기록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해경(山海經)에서 발견된다. 그 산해경 중에서도 남산경(南山經)의 내용은 이러한데 식인 요괴로서의 특성이 보인다. 사람들을 곧잘 잡아먹는 여우 요괴는 주요 공포 대상이 되었으며 여우들이 모인다는 산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퍼질 정도로 거대한 요괴들이었다. 50년 이상 살아온 여우는 아름다운 여성이나 남성으로 둔갑할 수 있었으며 그들은 종종 산에서 내려와 여자, 남자와의 성관계를 치른 후 자신들의 주 목적을 위해 간과 살점을 뜯어먹는다고 기록되어있다.
"!"
"그거야?"
"그럼 같이 가줄까?"
"! 야!"
"호원이는 날 먹지 않을 거잖아? 그거면 됐어!"
"아 ㅋㅋㅋ 그래도 죽었으면 한 번이라도 내거 빠꾸시킨 자식 저주라도 넣어보는....?"
"-!? 야, 괘- 괜찮냐!? 너 인간이야 뭐야?! 아니.. 그 전에 꼬리"
"그럼 요괴로."
ㅋ
ㅋ
ㅋ
ㅋ진짜 환장하겠네 가람 오너님 주명 오너님 멋대로 설정 써버려서 죄송해요... (게다가 멋대로 조작하기까지.. 불쾌하시면 바로 내릴게요! ㅠㅠ!)
날라가서 다시 썼다 환장하겠다...
1. 소꿉친구 섭이는 이후 부모님과할부지 여우한테 살해당해 호원에게 먹힌다.
2. 물론 호원은 그게 섭이 고기인줄 모르고 억지로 먹은 것.. 그리고 그걸 먹자마자 호원은 꼬리가 다섯개로 변한다.
3. 이후 그게 친구 섭이의 몸이라는 걸 알게되고 가족들이랑 엄청 싸움. 그러다 져버려서 생사구로 쫓겨난다. 이승에 돌아오면 갈기갈기 찢어죽이겠다고 할아버지가 협박.
4. 죽는 건 무섭지 않았으나 요괴한테 죽기 싫었다. 특히 자신과 같은 여우 요괴한텐 더더욱.
5. 후에 하즈키를 만나고 사정도 알게 된다. 죽고 난 뒤의 탄생이라니 아름답지만 슬프다... 라고 생각한다.
6. 된다면 인간 손에 죽고 싶다. 그게 호원의 소원이며 나머지의 죗값. 꼬리를 몇 번이나 잘라보았으나 재생됨,,,,
7. 평생 만날일 없던 인간들이 명부오류 때문에 오게되구 애들이랑 만나다 주명이 딱걸림...(미안)
8. 커뮤 이야기처럼 애기들이 생사구에 오게 되는데 주명이 그 중에 한명.... 요괴 au니까 반대로 주명도 인간 au면 잼겠다 싶어서!
9. (결론) 멋대로 조작하고 써버려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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