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찾] HAPPY ENDING?



*  *  *

2017.03.01





 당신은 기억을 돌려받았다.
 당신과 당신의 연인이 서로 노력한 덕분이겠지.
 눈앞에 상대, 아니 연인의 이름이 떠올랐다.
 간지러운, 또는 슬픈듯한 느낌에 왜인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넌, 결국 나 때문에 죽었던 거구나.”
 “..너보다 내가 멍청했네, 본인이 죽은 것도 모를 정도로..”


 그치만 네가 살았으니까, 그걸로 됐어. 라며 가벼운 목소리로 네가 말했다. 맞아 넌 멍청이야. 라고 네 속을 건드려도 그저 편한 얼굴로 웃을 뿐이었다. 붉게 빛나던 눈동자가 인자해진다. 넌 화를 내지도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 


 틈만 생기면 곧바로 때리고 화도 내면서, 왜 이럴 땐 아무렇지도 않게 웃기만 해? 바보야? 화도 못 내? 나보다 멍청이야? 연인에게 왔을 분노가 자신에게 몰려 오는 느낌이었다. 이유도 없이 화가 나고 이유도 없이 슬퍼서 이유도 없이 죄악감이 몰려왔다.

 결국 넌 나 때문에. 돌려받은 뚜렷한 기억 속엔 눈앞에 피로 덮인 꽃잎들 속에 파묻힌 명아가 있었다. 아름답던 붉은 눈동자는 굳게 감겨 보이지 않았다. 오직, 네 몸에서 나온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수많은 붉고 붉은 피가 너의 몸과 내 몸을 적셨다. 나 때문에 죽은 거야. 이렇게 다시 한 번 더 소중한 사람을 눈앞에서 잃어버렸어, 너 때문에. 멀리서 둘을 지켜보고 있던 소년이 입가를 비죽대며 웃었다. 그와 반대로 이질적인 눈물 또한 소년의 뺨에 흘러 내렸다.
 
 절대 잊을 수 없을 거야, 살인마. 
 


 “명아, 난....!”


 -이제, 돌아갈 시간이야.


 “...!”


 신께서, 끝없이 사랑한 너희들에게 단 한 번밖에 없을 기회를 안겨주셨어. 스피커 너머로 레이첼 그녀의 목소리가 잔잔히 울려 퍼졌다. 상대를 잊어버려도 다시 반할 수밖에 없던 너에게, 신께선 자비를 안겨주셨어.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쿡쿡 박혀온다. 온 몸에 느릿하게 전율이 울려 퍼졌다. 팔찌를 찬 손목이 욱신욱신 조여 오는 느낌이 들었다.

 편안해 보이던 펜션 안은 어느새 새하얗게, 주변에 자리를 채우고 있던 다른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눈앞의 너마저도 흐릿한 모습이었다. 안 돼 명아.. 가지 마. 불안해하는 바보 같은 얼굴을 보던 명아는 뭐가 그리 우스웠던 모양인지 천천히 입 꼬리를 올렸다. 그는 마지막까지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나를 바라보면서 입술을 달싹댔다.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작게 모인 입모양은


 차, 호 원
 나중 에


 .


 뭐라고?


 [이제 너만 남았구나.] 어딘가 따뜻한 목소리가 닿았다. 그 손이 뺨, 귀, 목, 허리, 다리 군데군데 사심한 곳까지 나를 감쌌다. 마치 그 분은 따뜻한 봄 같았어. 눈앞에 보이진 않았지만 온 몸을 감싸며 안아준 그 분의 손은 컸고 목소리는 인자했다. 그는 마치 갓난아기를 돌보는 것 마냥 조심스레 나를 안아들고선 가만히 살피며 다시 말했다. [너는 다시 정에 빠져 네 정인을 구했구나. 그런데도 어찌 그리 서글프게 우는 게냐.] 그 말 때문에 울고 있다는 걸 겨우 깨달았다. 하하, 어떻게 마지막까지 울보일 수가 있을까. 방울방울 흐르는 눈물은 기이하게도 뺨을 타고 내리는 것 대신 공중에 떠 동그랗게 둥둥 떠다녔다. 마치 마법처럼, 투영하게 빛나던 물방울 너머론 나와 명아의 얼굴이 비췄다. 그리운 네 얼굴에 멍하게 입을 벌렸다. 그거야 당연하잖아.


 나 때문에 명아가 죽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이번 일은]


 퉁퉁 벌겋게 부어 자국이 남은 목을 쓸어내리던 그 분은 말했다. [이번 일은 네게 거대한 벌이 되겠구나.] 단 한 번의 손길 덕분에 붉게 남았던 자국이 깔끔하게 사라져갔다.


 나는 눈을 감았다.
 네 얼굴을 떠올렸어.



*  *  *



 “-차호원!!”
 “~?!”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귓가에 지잉- 울렸다. 아파! 놀라 덥석 귀를 틀어막으려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이미 움직이고 있던 것이다. 나를 붙잡으려 뛰어들려던 네 손을 꽉 잡고 있었다. 너 또한, 닿지 않던 내 손목을 붙들고 있었어. 확 고개를 들어 올렸다. 조금 전까지 하얀 가운을 둘러 입고 서있던 것과는 달리 어두운 검은색의 와이셔츠를 입은 네가 눈앞에 있었다.

 명, 튀어나오려던 네 이름을 입술을 꽉 물며 틀어막았다. 그리고 다시 네 이름을 불렀다.

 “...주명아!”
 “너 멍청하게 뭐하려던 거야! 큰일 날 뻔 했잖아!”
 “아악, 아파!”

 뻑, 소리를 내며 머리를 쥐어 박혔다. 찌릿하게 울리는 고통에 머리를 싸매며 작게 앓았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흘러 나왔지만, 마주 편에 헉헉 숨을 몰아쉬던 주명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와 크게 불평을 늘어뜨릴 수도 없었다. 질겁한 네 얼굴이 평소보다도 하얗게 질려 놀란 듯 보였기 때문이다.
 너 진짜! 부들부들 주먹을 쥔 주명의 손이 떨렸다. 냉큼 내 얼굴을 쥐어 잡으며 (아, 아아 것보다 아파.. 아파팟) 확 돌려 재꼈다. 주명이 가리킨 방향은 차들이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던 도로변이었다. 마주 편엔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는 신호등. 일직선으로 쭉 진열된 횡단보도.

 아, 이곳은.
 너를 잃었던 곳이야.

 “진짜, 도중에 네가 갑자기 멈춰서 다행이지. 너 거기 한 발자국만 내딛었으면 큰일 날 뻔 했거든!?”

 한 발자국. 횡단보도로 내딛기 바로 전 걸음이 멈췄던 모양. 그런데, 도중에 멈췄다고? 생소한 이야기였다. 아는 것과는 다른 전개였다.
 분명 그것을 쫓고 횡단보도로 뛰쳐 들었다. 빨간 신호등이 자신을 반겼던 것도 기억에 선명했다. 차에 치이기 직전, 눈앞을 쫓던 게 없었다는 결 겨우 떠올렸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눈앞에 누워있는 너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널 보았어.’

 충격에 백지처럼 기억을 잃었던 나와, 나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의사가 되어 나타난 너를. 지쳐 보이는 붉은 빛 눈동자와 하얀색 가운이 유난히 눈에 띄었었다. 아마 나를 돕느라 조금 지쳐 있던 걸 테지. 그렇게 짧은 시간동안 기억을 찾기 위해 너와 함께 있었고, 곧 얼마 지나지 않아 기억을 되찾았다. 내가 너를 죽였다는 것도 함께.

 ...그리고 다시 돌아왔고
신은 우리들에게 기회를 안겨다 주었다.

 멍! 옆에서 바짓단을 물며 질질 끄는 돌식이 큰 소리로 짖었다. 옆에 있었구나. 멍하니 돌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를 달랬다. 그것을 바라보던 주명은 한숨을 푹 쉬고 탈탈 머리를 털어내더니 이내 몸을 숙여 돌식의 목에 목줄을 단단히 묶었다. 도중에 풀어져 주명에게 맡겼던 파란색 목줄이었다.
 나 참, 이게 뭐라고. 푹 한숨을 내쉬는 주명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돌았다. 그는 목줄 끝을 놓지 않기 위해 꽉 쥐어낸 다음 돌식의 털을 쓰다듬은 다음에 벌떡 일어났다. 야 차호원.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머릿속이 어지러웠고, 눈앞에 그가 거뜬한 모습으로 있다는 게 믿기가 어려웠다.

 카민 빛이 감도는 눈동자가 눈앞에 있다. 살짝 당황한 사이 눈앞에 손가락이 불쑥 다가왔다. 딱! 소리가 날 정도로 주명이 딱밤을 먹였다. -아파! 벌겋게 부어 오른 이마를 감싸며 헉, 숨을 들이켰다.

 “뭐, 뭐하는 거야~!”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멍청이처럼 뛰어들려던 이유가 뭐야?”
 “-그, 그건...”
 “아무튼 사람 마음 멋대로 들쑤시고 다니지 좀 마, 알았어?”
 
 -응.... 힘없이 수긍하는 대답을 듣고 나서야 다시 푹 한숨을 내쉰 주명은 내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익숙한 손길이었다. 너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손길.

 “돌아가자.”

 집으로. 그 한 마디가 얼마나 크게 다가왔던지. 뭉클한 가슴이 찌잉 울리면서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제야 네가 살아있다는 게 느껴졌다. 빨리 안 오면 두고 간다. 냉큼 돌식과 함께 등을 돌려 되돌아가는 주명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몸은 자동적으로 둘의 뒤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래, 당신은 시간을 거슬러 사고가 나기 직전으로 돌아갔다. 왜냐고 묻는 연인에게 위험한 일이 벌어질 뻔 했다 말한다거나 아무것도 아니라 변명하며 몸을 피했다.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신은 나에게 단 한 번의 기회를 주었다. 어찌 되었든 눈앞에 나타난 연인과 다시 사랑하여 기억의 단편을 모으면 사건이 일어나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준다고. 나는 다시 한 번 주명과 사랑에 빠지고 기억의 단편을 모았다. 기억을 찾았고, 원래 시간대로 돌아와 너를 구했다. 너는 여전히 내 옆에서 살아있다.

 그걸로 끝
 ...끝?

 일
 리가 없

 툭! 데구르르르. 공 하나가 발끝을 지나가자 온 몸에 찬물을 뒤집어씌운 것 마냥 차가워졌다. 공은 도로변으로 굴러가지 않고 인가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그 뒤를 어린 소년들이 뒤쫓았다. 차에게 뛰어들기 직전 보았던 제 얼굴과 몹시 흡사했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여전히 네 머릿속에 있는 거잖아.

 [이번 일은 네게 거대한 벌이 되겠구나.] 신은 그리 말했다. 제 손으로 직접 목을 졸라 남겼던 자국을 안타까운 시선을 내려다보던 신은, 손짓 한 번으로 자국을 깔끔하게 없애며 나머지 말을 덧붙였다. 나는 그 말을 똑똑히 기억한다.

 정인이 기억하지 못하는 걸 네가 기억할 게다.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걸 나는 기억하고 있어.

 어떤 상황이 닥쳐 날 너와 나를 바꾸었다고 한들, 내가 너를 죽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소름끼치는 사실 하나가 양 날의 화살이 되어 가슴을 꿰뚫었다. 죄악감에 흠칫흠칫 몸이 떨리고, 흐르는 눈물은 시뻘건 봄꽃이 되어, 견딜 수 없는 벌이 된다.
네가 죽였어. 도로변 위엔 더 이상 한 명의 소년이 서있지 않았다. 그와는 반대로 새하얀 머리카락과 새하얀 옷과 피부를 가진 연인이 덩그러니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어서 빨리 찾아와 너 자신을 죽여 버리라고, 그렇게 손짓하는 끔찍한 악몽이 다시 한 번 더 시작된다. 그것이 나의 벌.

 “차호원.”
 “!”
 “안 오고 뭐해, 진짜 두고 가는 수가 있다?”
 “....아, 아아.. 응. 미안.”

 곧 갈게. 저 멀리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연인과 강아지를 향해 시야를 펼쳤다. 까만 머리칼에 까만 계열의 복장, 마치 저승사자마냥 어두운 차림새의 그지만 저와는 다르게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그치만 살아서 다행이야. 꾸역꾸역 튀어 나오려는 목소리를 눌러 삼키며 푹 고개를 숙였다. 네 피로 젖었던 손가락 사이를 매만지며 걸음을 옮겼다.


 명아. 다신 부르지 못할 네 이름을 머릿속에 새겨 박으며 입을 열었다.

 “주명아”



*  *  *






 나는 기억하고 있어.


 “차라리 원망하고 화내고, 미워하지.”


 그렇게라도 했으면 덜 생각났을 지도 모르잖아. 난 뭐든지 도망쳐버리는 겁쟁이니까, 네가 그렇게라도 날 싫어하고 미워하게 됐으면 아무 말 않고 피해버릴 수 있었을 텐데. 네가 그렇게 웃어버리고 화도 내지 않고 나를 보고 있으면 나 또한 너를 피할 수가 없게 되어버리잖아.


 “미안하다고 하고 싶었어.”
 “고맙다고도 말하고 싶었어.”
 “제대로 사랑한다고도 말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그 기회를 주지도 않고 떠날 수가 있어? 반대로 내가 원망스러운 시선을 보낸다고 한들, 상대에게 닿지는 않았다. 그저 온통 하얀 페인트가 범벅이 된 연인은 붉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은 정이 담겨있나, 한이 담겨있나, 아니면 그 무엇도 담겨있지 않은 무인가?


 “나를 미워해줘.” 똑, 똑 천장 위로 물방울마냥 파아란 꽃잎이 휘날렸다. 이 꽃의 이름을 알고 있다. 발목 위까지 채워진 투영한 물가 사이로 내게 다가오는 꽃다발이 있었다. 하늘에 휘날리는 꽃잎과 똑같은 꽃. 파란 꽃잎이 머리에, 어깨에, 얼굴에, 다리에, 온 몸에 닿아 떨어졌다. 흘러가던 꽃다발을 손 안에 안아 올렸다. 잔잔한 꽃의 향이 콧등을 간질였다.

 아름다운 꽃은 나를 반기며 웃고, 나는 너를 보며 울었다.


 “이렇게 하지 않아도 널 평생 잊을 수 없을 텐데.”


 너를 잊을 수 없어. 꽃을 품에 끌어안으면 축축하게 젖은 꽃다발이 몸을 가득 적셨다. 흐르는 눈물방울이 바닥으로 뚝, 뚝 떨어질 때마다 빨간 페인트물로 번져 흘렀다.


 이것은 악몽이다.


 “명아....” 네 이름을, 부를 수가 없어. 무거운 다리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너는 여전히 묵묵부답인 채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돌아오지 않을 네 이름을 입안에 굴리며, 저 멀리 커다란 클락션 소리를 귀에 담으며 눈을 감았다.


 이건 악몽.

 나의 벌.
















'차호원 > 너를 찾고있어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터뷰  (0) 2017.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