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호원/조각조각 2017. 5. 17. 22:56

좋아하는 점 1



너의 이런 점이 좋아.

2017.03.19



1.

 


 사실은 난 그렇게 아침형 인간은 아니다. 학교 방학 내낸 부엉이 생활을 즐길 정도로 밤과 새벽을 달리는 것을 좋아하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매번 곤욕스러워 엄마께 꾸중을 매일같이 들을 정도다. 일어날 때의 나른함과 미처 채우지 못한 피곤함에 끙끙대며 겨우겨우 몸을 일으키는 과정이 싫다고. 그런데 참 이상하지, 너와 함께한 날부턴 아침이 그렇게 싫게 만은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여전히 피곤하고, 나른한 건 똑같지만 그게 정말 이상하게도 말야.


 짹짹거리는 새들이 우는 소리와 함께 맞추어 둔 핸드폰 알람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알람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는다. 내가 굳이 손을 뻗어 핸드폰 알림을 끌 필요도 없다. 너의 길쭉한 손이 먼저 뻗어 익숙하게 내 핸드폰을 만지작대더니 시끄럽게 울리던 알람을 꺼버린다. 눈을 뜨지 않아도 그 상황이 훤히 머릿속에 그려진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꼬리를 그려 올리며 크크, 웃어버린다. 그러면 넌 잠시 멈칫 하더니 “일어났으면 말 좀 하지?” 라며 아침인사 대신 말을 건다.


 나처럼 만만치 않게 잠도 잘 자는 잠만보면서 그는 이상하게 나보다 먼저 곧잘 일어나는 습성이 있었다.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에, 일 때문에 아주 가끔 출근하는 주제에 꼭 아침에 일어나 내가 출근하는 것까지 지켜보다가 밖을 나가면 그제 서야 다시 잠자리에 든다는 걸 알고 있다. 일어나고 나가는 모습까지 꼼꼼하고 세심하게 지켜다 주는 그런 네 배려가 좋았다.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머금은 채 천천히 눈꺼풀을 올렸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마주하는 너의 붉은빛 눈동자가 좋다.


 그건 태양빛과는 조금 다른, 가히 눈에 담기 어려운 햇빛보단 조금 잔잔하고 부드러운 빛이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며 천천히 집으로 발걸음을 돌릴 때, 마을단지 사이로 자신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태양은 붉은 노을빛으로 온 세상을 덮었다. 단풍마냥 따뜻한 붉은기의 색은 너와 쏙 닮았다. 그 눈을 보는 게 마냥 좋았다. 손이 다가온다. 조금은 차가운 기운이 돌지만 여전히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네 손길이 얼굴에 닿았다. 말은 투박하고 서툴고 쌀쌀맞으면서 나를 대하는 손길과 시선만은 누구 못지않게 달고 상냥했다. 그런 네 점이 좋았고, 여전히 좋아했다.


 “잘 잤냐?”
 “응.”


 좋은 아침, 명아. 채 떼어내지 못한 잠결에 풀어진 얼굴로 헤벌쭉 웃었다. 가까이서 웃음을 참는 듯한 숨소리가 들렸다. 응, 좋은 아침. 인사를 받아준 네 얼굴을 따라 손을 뻗어 보다가 뺨을 매만졌다. 고개를 조금 들어올렸다. 따라 다가온 네 얼굴이 금방 간격을 좁혔다. 살짝 까칠까칠한 입술과 제 입을 맞추며 나는 다시 한 번 나른해진 눈꺼풀을 내리감았다. 아침은 여전히 일어나기 힘들었다.






2.


 어리광 담당이 있다고 하면 그건 아마 고민할 새도 없이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우리 둘 사이에서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킬 것이다. 난 네게 매달려 징징거리는 일이 많았고, 그런 넌 나를 밀어내며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빈번했다. 주로 내 쪽이 떼를 부리는 게 많아 우리는 자주 투닥거리고 싸우기도 했다. 아주 가끔, 가끔은 그런 나의 어리광을 받아준 넌 한숨을 푹 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내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 손길에 가만히 머리를 맡기며 나는 어리광을 부리는 것을 즐겼다.

 하지만 가끔, 나의 가끔보다도 아주 더 가아아끔의 드문 일로 네가 먼저 다가오는 일이 있다. 남들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아해 할 것이다. ‘그 주명이 너에게 어리광을 부린다고?’ 참고로 말하자면, 이건 그에게 알코올의 힘이 들어갈 때가 아니다. 그때의 주명은 어리광보단 순전히 어린아이의 귀여운 애교에 가깝다.

 이건 아이보다도, 아마 어른에 가까운 이야기가 아닐까.

 “차호원....”
 “...어...”

 이런 주명은 정말 나밖에 모를 거야. 아니, 나만 알았으면 좋겠어. 막 저녁식사도 끝내고 돌식이와 함께 느긋한 여가를 보낸 것도 끝났다. 시간은 시침이 아홉시 남짓하게 가리키고 있었고 아빠들이랑 실컷 놀은 아이는 이미 집으로 돌아가 곤히 잠에 들어 있었다. 이 시간이면 슬슬 나도 잠자리를 들기 전에 마무리 단계를 끝내야 했다. 쌓여있는 설거지거리를 미리 끝내기 위해 단단히 고무장갑을 조여 쓰며 숨을 들이켰다. 금방 설거지를 끝내고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주명에게 가 함께 남은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먼저 상대가 다가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지. 마무리 단계를 잡지 못한 설거지 거리들은 내 손에 잡혀 있었다. 거품이 잔뜩 묻어난 장갑을 끼고선 달뜬 숨을 토해냈다. 아마 뒤에 매달린 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먼저 다가온 넌 자연스럽게 뒤에 매달려 내 몸을 끌어안았다. 꽈악 앞치마를 쥐는 네 양 주먹이 신경 쓰였다.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숨결 하나하나까지도, 가라앉은 목소리까지도 전부. 내 얼굴은 이미 홍당무처럼 벌겋게 달아올라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가끔, 어리광을 부리는 네가 좋아서 가끔은 정말 죽어버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이 들곤 해.

 “..저, 주명... 나 아직 설거지 하고 있..는데..”
 “...”
 “...라고 해도 변명거리도 안 되겠지...”

 꽈악 끌어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도 모르게 헉, 하고 숨이 삼켜졌다. 내 어깨에 요지부동으로 고개를 파묻고 있던 너는 슬쩍 고개를 들어 올린 듯 했다. 목가에 닿는 검은 머리칼이 나를 간지럽혔다. 너는 잠시 동안 말이 없다가 조심스레 입술을 떼어냈다. 더운 숨결이 귓가에 닿는다.

 “...그래서, 싫어?”

 아니아니
 완전 좋은데요!

 저도 모르게 튀어 나올 뻔한 목소리를 간신히 눌러 삼키며 끙, 앓았다. 나는 그의 어리광을 이겨내지 못한다. 아마 그를 사랑하는 평생 내내 그렇게 지면서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게 딱히 나쁘고 억울한 느낌으론 들려오지 않는다. 오히려, 엄청 좋다.

 천천히 고무장갑의 끄트머리를 잡아 벗겨냈다. 이젠 아이가 범접할 수 없는 어른만의 시간이다. 배에 머무는 네 손을 잡아다 올리고, 슬쩍 고개를 돌려 파묻고 있는 주명과 시선을 맞췄다. 둘다 열이 서려있다는 건 금방 눈치 챌 수 있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픽픽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한참을 키득거렸다. 그리고 동시에 웃음이 멈추면 먼저 네 쪽으로 입술이 붙여졌다. 그 의사를 거부하지 않고 끌어당겼다.

 막 잠근 주방 씽크대 위로 아슬아슬하게 걸린 고무장갑 끄트머리에 물방울이 뚝, 뚝 떨어질 때마다 거친 숨결과 짧은 탄성 섞인 소리가 오랫동안 오갔다.





3.


 “응? 웬일로 돌림판을 다 꺼냈어?”
 “손이 심심해져서.”

 뭐처럼 휴일이었지만 어디도 나가기 귀찮았던 판에 집에 눌러 붙어있기로 했다. 주명도 막 마감도 끝내고 푹 잠에 들었던 덕분인지 쌩쌩해 보였지만 우리 둘은 어딘가 심심해 보였다. 하지만 마땅히 옷을 갈아입고 나가기도 귀찮으니 집에서 시간을 떼울 수밖에. 나는 적당히 빵집에서 사온 조각 케이크를 들고 덜렁덜렁 입에 물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적당히 낮잠시간이 된 돌식이는 제 집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주명은 이 심심함과 무료함을 견디지 못한 모양이었다.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사이 창고에 다녀온다고 잠시 밖을 나간 주명은 곧 조금 큰 크기의 돌림판을 끙차 하며 가져오고 있었다. 돌림판은 도자기를 빗을 때에 쓰는 물레였으며 그가 아직 학생이었을 시절, 동아리에서 쓰고 있던 물건이었다. 착실히 동아리에 매진했던 넌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능숙하게 돌림판으로 예쁜 도자기를 빗어내고는 했다. 취업을 한 이후 마감에만 전전긍긍해 시달리면서 바빴던 터라 그 후의 도자기를 빗어내는 건 보기 드물었는데. 마지막 케이크 조각을 입에 쏙 넣으며 난 너를 신기한 듯 응시했다.

 한 번 마음을 먹은 넌 속전속결로 준비를 마쳤다. 도자기의 흑을 준비하고 자리를 잡아 판을 돌리기 시작한다. 절그럭 소리를 낸 도자기는 몇 년이 지난 후에도 능숙하게 잘만 돌아간다. 네가 만져서인 덕분일지도 모른다. 주명은 뿌듯한 얼굴로 만족스럽게 판을 돌려 덩어리 진 흙을 조금씩 좁혀 모양을 빗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소파 위에 누운 채로 가만히 지켜다 보았다. 우린 마치 고등학생 때의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어. 열심히 동아리 활동을 하는 너를 지켜보며, 시간을 때우는 나. 도자기 하나에 온 신경을 쏟아 붓는 네 집중어린 얼굴은 나의 눈을 빼앗았다.

 나는 도자기를 빗는 너의 손을. 아니, 네가 닿는 모든 손길을 좋아한다.

 섬세한 손길로 도자기를 빗어내는 손이 그땐 마냥 부러웠다. 주명이 집중하는 모습에 시선을 빼앗긴 것도 있지만, 반쯤은 질투하는 마음으로 부럽다는 듯이 도자기를 보았을 때도 있었다. 저 손길이 내게 향했더라면 좋을 텐데. 저 도자기가 나였으면 좋았을 텐데. 도자기의 틈을 파고드는 손길이 내 머리를 꾹꾹 누르며 쓰다듬어주고, 기둥을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손길은 대신 나를 어루만져 준다면 정말 좋을 텐데.

 그리고 그건 정말로 현실이 되었다. 기둥을 세워 틈을 파고들어 속을 파내는 세세하고 조심스러운 손길은 전부 나에게 향했다. 부드러운 손은 내 머리와 뺨을 매만져주고, 때론 세게 당기기도 하면서, 달래듯이 어루만져주기도 해. 그리고 그런 행위를 매일같이 할 때마다 고개를 올려 네 얼굴을 확인해보면 아주 신기하게도 도자기나 공예품을 만들던 그때의 집중된 시선이 나에게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때보다도 더 열과 욕정이 서려있고, 간절해 보임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때와는 다르다.
 깨끗한 손이 능숙하게 도자기를 거의 다 빗어갈 때 즈음에,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참지 못하고 조심스레 벌렸다.

 “명아”
 “어.”
 “명아!”
 “왜- 거의 다 완성 되어가니까 조금만 기달..”
 “나 섹스 하고 싶어!”

 쾅-! 예쁘게 빗고 있던 도자기가 순식간에 박살이 난다. 주명의 손이 어긋나 찌그러진 도자기의 흙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잠시동안 부들부들 떨고 있던 주명이 빽 소리를 지르며 호원에게 시선을 돌렸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드러난다. 이, 이런 미친 차호원...! 잔뜩 당황한 입이 어버버 대며 버벅거렸다. 호원의 말에 심하게 동요한 것 같았다.

 “이, 이 발랑까진...”
 “그치만!”

 냉큼 네가 있는 앞으로 다가가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잔뜩 당황한 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게 눈에 들어온다. 귀여워.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쭉 얼굴을 내밀어 무방비한 입술에 쪽쪽 소리를 내며 입맞췄다.

 “그 도자기 대신 날 만졌으면 좋겠어.”
 “...야, 너..”
 “아니면 내가 만져줄까!”
 “...진짜 못하는 소리가 없어요...”

 확실히 고등학교 때를 비교하면 지금이 용 됐기는 했네. 착잡한 표정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리는 주명을 바라보며 나는 싱글벙글 웃기 바빴다.

 그런 너도 정말 좋아.



 





'차호원 > 조각조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키스할까  (0) 2017.05.17
주명 자컾 해시  (0) 2017.05.17
해시태그  (0) 2017.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