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호원/학원물 2017. 5. 17. 22:39


 2017.02.04


 

 야간 자율학습이 끝난다. 10시까지 꾸역꾸역 시간을 채운 학생들은 너도나도 좋아라하며 가방을 싸고 학교 밖으로 뛰쳐나간다. 하지만 단 한 명은 예외적이다. 졸듯말듯 시간을 채우며 공부를 겨우 끝낸 호원은 남들보다 느긋하게 가방을 싼 다음 교실 문을 잠근다. 당번은 아니지만 매번 여유롭게 정리하게 된 호원이 어느 순간 맡게 된 일이였다. 꼼꼼하게 문을 잠근 후 불을 끈다. 이미 대부분의 아이들이 밖으로 나간 터라 빛 한 점 없는 교실이 어딘가 어색했다. 실내화를 갈아 신기전에 운동화를 덜렁 손에 쥐고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호원의 느긋한 발걸음이 복도를 타고 울렸다.
 열 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학교 내부가 전원 불이 꺼지는 건 아니다. 단 세 곳의 장소만이 번쩍번쩍 빛이 난다. 하나는 아이들이 다 집으로 돌아갔는지 확인해야 할 행정실 내부의 경비원들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었고, 둘은 11시 반까지 심야 야간 자율학습을 신청한 공부벌레들을 위한 독서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긴 복도 끝을 지나 가장 안쪽에 있는 문을 호원이 벌컥 열었다. 환한 빛에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눈 부셔....”
 “왔냐?”


 익숙한 목소리였다. 이 시간에 이곳에 있을 사람은 단 한 명 뿐. 약간 헝클어진 반곱슬 머리카락에 떡하니 왼쪽 하얀 안대를 두르고 있는 소년. 붉은 빛이 감도는 눈동자는 오래된 작업 탓인지 조금 피곤해보였다. 응 왔어. 호원이 실없이 웃으며 메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툭 떨어트렸다.
 마지막 하나. 평소엔 도자기부인 동아리실이지만 이 시간이 되면 부장인 주명의 작업실로 바뀐다. 이곳저곳 수많은 도자기 공예품들과 토목 재료, 부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따뜻한 흙냄새. 호원은 이 교실에 들어오면 안락해지는 편안한 마음을 느꼈다. 잠이 왔다.


 “언제 끝나?”

“한 시간... 정도? 전시회가 코앞이라 조금만 하고 가자.”
 “그거- 절대 조금이 아닐 것 같은데... 뭐 됐어. 다 끝나면 말해.”


 이제 이 일은 일상이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렸다.
 2학년 말이 다가오면서 호원과 주명은 여느 때처럼 땡땡이를 치는 일상을 잘라버렸다. 그리고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지막 농구 시합을 뛴 호원은 공식적으로 내년 3학년부턴 시합에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주로 나머지 활동 시간을 공부로 때웠다. 이따금 친해진 보건 선생님과 보건실에서 1 : 1 공부를 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간호학을 전공하는 것을 목표로 둔 탓에 공부의 길이 열렸기 때문이었다. 그치만 평소 성적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으니 쉬이 될 리는 없었다. 매일 밤을 새고 새고 또 새는 일상이 이어지고 눈가 아래에 침침하게 자리 잡은 다크서클은 점점 더 짙어져갔다.
 주명도 만만치 않은 길을 걸었다. 원래 미술 쪽 감각이 남들보다 뛰어나고 집중력도 좋았으며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부활동을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으니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있나. 본래 선생님들에게 예쁨 받던 편인 그는 전문적인 예술 쪽 전향을 권유받았고 그쪽을 평소 생각하던 주명도 거절 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본격적으로 목표를 두다보니 일이 많아졌다. 전시회나 대회는 끝도 없이 나왔으며 선생님들은 일일이 하나하나 주명에게 권유했다. 대회는 많으나 주명의 몸은 하나. 게다가 학업까지 플러스. 결국 심야 야간학습을 늘려 작업시간까지 만들기까지 했다. 호원이 그를 보기 위해선 동아리실까지 가야만 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를 볼 시간이 거의 없다.


 ‘힘들지만 싫은 건 아냐. 목표가 생긴 건 학교를 다니는 의미중에서 가장 큰 거고....’


 그리고 이렇게라도 볼 수 있는 게 어디야? 둘다 좀처럼 만나는 시간이 없어 호원이 멋대로 정한 룰이었다. 주명이 작업 시간이 다 끝날 때까지 호원이 교실 키를 가지고 정리한 후 동아리실로 들어와 시간을 떼운다. 그리고 열한시가 넘어서야 드디어 둘이서 하교.


 동아리실 중앙에 있는 커다란 소파에 호원이 몸을 맡겼다. 낡고 싸구려지만 피곤한 이 순간만큼은 고급진 침대다. 소파에 얼굴을 묻으며 호원이 몸을 부비작댔다.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다. 잠이 솔솔 몰려왔다. 무거운 눈꺼풀이 내려와 당장 잠을 자! 라며 뇌세포가 명령질하는 기분이다.
 아아, 그치만 아직은 잘 순 없어. 뺨을 소파에 비비며 가만히 앞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이곳은 명당자리다. 네가 가장 잘 보이는. 위이잉 소리를 내며 판이 굴러가는 소리를 내면 죽어가던 주명의 눈빛이 반짝 빛난다. 남자가 집중을 할 시간이다. 주명의 화려한 손놀림에 커다란 진흙이던 물건이 점점 더 동그랗거나 얇아지거나 하며 가지각색의 모형을 만들어내 간다.


 문득 호원은 떠올렸다. 빗은 도자기들을 말려내던 주명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꺼냈던 말이었다. “내 손으로 생명을 불어 넣는다는 느낌, 그거 진짜 최고거든.” 분명 고되고 힘든 작업일 터인데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게 게워낸 듯 마냥 시원하다는 얼굴이었다. 흐으응, 그렇구나. 당시엔 그러려니 하고 생각했던 말들.


 ‘그치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아.’


 네가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기분을 알 순 없지만, 네 손길을 받는 무언가의 느낌은 알 수 있겠지.
 공부는 어렵고 몸은 따라가지 못해 지치고 머리는 아프다. 그것으로도 충분히 괴로운데 너랑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더 멀어져만 간다. 지금도 변하지 않을 테고, 앞으론 점점 더 멀어지겠지. 우리가 함께 걷고 있는 길은 같은 곳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다. 너에게는 너만의 길이, 나에게는 나만의 길이. 라고 생각하면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공부나 주명이 작업하는 저 흙조차 미워져 참을 수가 없었다.


 “아, 이게 아닌데....”


 주명이 조금 짜증이 섞인 투로 작게 웅얼거렸다. 본래라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빽 소리를 지를 그였지만 옆에 호원이 잠든 줄로만 알고 목소리를 죽인 모양이었다. 쓸데없이 상냥해 너도 참. 웃음이 튀어나왔다. 자연스레 깜빡이는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다 스르르 내리감는다.


 그렇게 미워서 참을 수가 없는데.

 그게 뭐라고 인상을 찌푸리며 화를 내거나 가끔은 웃거나 흐뭇해하거나 기뻐하는 건지. 네 손 안에 찰싹 감겨 점점 더 고운 도자기의 형태로 변해가는 걸 상상해보며 호원은 눈을 감았다. 주명은 마치 신과도 같다.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 넣는 격이니 신의 대리인과도 같을지도 모르겠네. 저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걸 보면 화를 내는 버릇은 고쳐야겠지만. 입 꼬리를 올리며 남몰래 킥킥 웃었다.


 밉고, 서럽고 때론 부럽기도 해.
 그렇지만.....




 “일어나.”
 “....”


 시야가 까맣다. 호원이 눈을 감고 있어서가 아니다. 주명의 차가운 손이 호원의 눈과 이마에 얹어 가리고 있던 탓이었다. 옅은 흙과 나무 냄새. 귓가에 울리는 익숙한 목소리. 몸은 이상하게 나른하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설마


 “나 잤어?”
 “코도 골고 아주 잘 자더니만. 여기에 살아라 아주.”
 “끙...”


 그치만 졸린 걸 어떡해. 작게 투덜거려봐도 주명은 들어주는 체도 안 한다. 정리 다 끝났으니까 일어나고 슬슬 나가자. 차가운 손이 거칠게 호원의 이마와 머릿결을 쓸어 넘겼다. 차갑다. 하지만 기분은 좋아. 손끝에서 느껴지는 옅은 목재 향이 좋다. 향수라던가 그런 복잡미묘한 냄새가 아니야. 이건 이 남자의 손에서 스며든 수많은 재료들의 향이다. 조금 전까지 지끈거렸던 두통이 확 가시는 기분이었다. 조금 더 만져주면 좋으련만, 호원의 바람과는 다르게 주명은 금방 손을 떼어냈다.

 어두웠던 세상에 또 빛이 비춘다! 눈 아파.. 끙끙대며 제 손으로 얼굴을 쓸어 넘기는 호원에게 주명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그의 가방을 주워다 소파 쪽으로 툭 던졌다. 야 가자.


 “열한 시 다돼가.”


 주명이 벽걸이 시계를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시침이 열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늦었다간 경비가 또 와서 뭐라 잔소리하잖아. 빨리 짐 챙기고 나와.”
 “으으, 알았어... 뭐처럼 기다려줬는데...”


 살가운 반응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툴툴대며 호원이 가방을 멨다. 주명은 부실을 정리하기 전 마지막 점검을 하는지 올려둔 도자기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며 손가락으로 집어 세는 행위를 시작했다. 하나, 둘 셋... 꼼꼼히 세어가며 손가락이 한 개 두 개 접혀 들어간다. 오른손이었다. 호원의 이마를 쓸어주었던 손과 동시에 도자기를 열심히 만들어가던 주명의 손이었다.

 호원은 그 손을 홀린 듯 멍하니 바라보다가도 가늘게 눈을 떴다.


 ‘좋아해...’


 밉고 서운할 때도 있고
 점점 더 시간을 빼앗아가기도 해 얄밉지만.

 그래도 자신의 아이들 하나하나 귀이 여기고 생명을 불어넣는 네 손이 좋아.


 하지만 역시 날 만져줬으면 해! 넌 내 거잖아! 충동을 이겨내지 못하고 정신을 차리면 이미 주명의 손을 잡아채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주명이 동그랗게 눈을 뜬 사이 호원은 그 부드러운 손바닥 사이로 입을 맞췄다. 쪽. 깊은 소리는 나지 않는다. 조용히, 까칠한 입술을 살결 사이로 꾹 눌러 부비며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다. 더운 입술의 온도와는 다르게 손은 조금 차가웠다. 시간이 멈춘 것 마냥 정적이 휩싸였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것도 역시 호원의 몫이다. 손은 더 이상 차갑지 않았다. 호원은 잡은 손을 떼어내며 입을 앙 다문 채 걸음을 물렸다. 그리고 조금 토라진 얼굴로 이내 못마땅한 듯 주명을 응시했다.


 “...대체 탐내는 게 뭐가 나빠?”
 “너, 너, 너....”


 잔뜩 당황한 주명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도 마찬가지니까! 호원은 터질 듯한 뺨을 식히려 손등을 가져다 대다가도 참지 못하겠는지 버럭 소리를 내지르며 자신의 검은 머리를 마구마구 헝클였다.


 “-아 이젠 진짜 몰라 미술 덕후 짜증나!”
 “하!?”
 “갈래!”


 내가 미쳤지 진짜. 뭘 했지 방금!!!! 그제야 자신이 저지른 만행에 폭포수로 쏟아지는 창피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버벅대는 주명을 두고 호원이 부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야 기다려 차호원!”

“아 좀 따라오지 마 궁예 자식아!”
 “뭐- 누가 궁예- 진짜 죽을래?!?!?!”


 왁왁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결국 지나가던 경비원에게 걸려 단단히 혼쭐이 난 호원과 두명은 나란히 늦게 하교할 수밖에 없었다.










손바닥 키스 = 질투 , 소유욕...
아 주명아 좋아해..(드러누움)
근데 진짜 시간의 흐름으로 써서 그런지 내용이 거지같ㅌ다 그냥 주명이 나와서 좋다 주명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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