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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라님 생축♥] 첫만남
길 을 비 켜 라
앤 오 님 이
지 나 가 신 다
앤오님 생일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 (머리 대굴빡)
제가 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학원물에서 주명이랑 호원이 첫만남을 쓰고 싶었어요...
예전에 앤오님이 그려주셨던,, 호원이의 불행 만화 한컷을 조금 참고했습니다.
오늘은 차호원의 불운이 더욱 눈부셨던 날.
눈을 떴을 때부터 카운트 다운은 시작된다. 막내 동생이 핸드폰에 장난이라도 친 모양이던지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그날은 호원이가 반 아침 당번이었다. 일어난 시간은 학교 등교 시간까지 약 15분이 남은 정각. 택시를 타고 가도 10분이상이 걸리는 거리라 시간을 확인한 호원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머리는 감을 새도 없이 붕 뜬 머리칼을 손으로 꾹꾹 누르며 세안하고 양치하는 데만 3분. 미리 다려 놓았던 교복을 허겁지겁 입는 데만 2분. 밥을 먹을 틈은 없으니 아랫 동생이 먹고 있던 토스트를 물어다 밖으로 뛰쳐나간다. 제 시간에 도착할 거란 희망은 버렸지만, 적어도 답이 없을 정도로 지각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호원은 자신의 불운을 간과했다.
이 정도로 끝날 거란 생각을 버렸어야 했다.
물고 있던 토스트는 뛰어가다 갑자기 덮친 비둘기 떼한테 뺏겨버리고 만다. 아직 한 입밖에 못 먹었는데..! 바닥에 주워 먹은 게 상당한지 포동포동한 몸을 끌며 기어이 토스트를 뺏어든 비둘기 떼가 돼지 떼처럼 보였다. 덤벼들 용기는 없어 결국 슬금슬금 옆으로 빠져 학교로 향한다.
거기로 끝났으면 좋았을까.
바닥에 물을 뿌리려던 아주머니와 휘말려 물을 바가지로 뒤집어 씌어졌다.
새와 인연이 끝났을까 싶었지만, 지나가던 비둘기의 똥이 머리에 직격해 버린다.
자기 발에 헛디뎌서 사람들이 모여있는 버스정류장 바닥에 얼굴이 정면으로 부딪친다.
개똥을 밟았다.
가방 아래가 터져 책이랑 필기도구가 이리저리 흩어져 떨어졌다.
겨우 도착한 학교에 서둘러 교실까지 달려가려다 학주에게 들키고 만다. 무사히 지나갈 수 있던 것을 운동장 10바퀴를 돌았다.
"..그래서 등교하자마자 이꼴이라고?"
기섭이 책상에 엎드려 있는 호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묻는다. 나머지 친구들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호원은 1교시가 다 끝나가서야 교실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마저 점심시간까지의 남은 쉬는 시간 동안 종일 담임 선생님께 시달려 눈 한 번 제대로 감지 못했다.
겨우 4교시 종이 치고 나서야 꼬질꼬질한 옷을 갈아 입을 수 있게 된 호원은 대충 화장실 세면대로 머리를 감고 체육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으 냄새. 교복에 고인 지린내를 보며 친구들이 진저리를 쳤다. 호원의 얼굴이 울듯말듯 구겨졌다.
왜 내 인생은 이렇게 기구할까? 라고 쓰여 져 있다. 기섭은 혀를 차며 "별 수 없잖냐." 라 덧붙였다.
호원의 불운을 아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꺼내는 대답이었다. 그게 네 운인걸 어쩌냐. 다음부터 조심해야지. 별 수 없잖아.
억울하다. 억울한데, 인정해버리는 나도 싫다..
책상에 쿵, 쿵 이마를 박으며 호원이 한숨을 내쉰다. 젖은 머리칼은 말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머리카락 끝에서 물이 뚝 뚝 떨어지는 것을 본 기섭이 보다 못해 가지고 있던 담요를 던졌다.
"이거 써."
"..수건 없어어?"
"불평이 많다?"
이거 초 학기 때부터 봤던 것 같은데... 길게 말을 늘어뜨리던 호원이 툴툴거리며 젖은 머리칼을 담요로 대충 털어냈다. 수돗물로 대충 씻어낸 게 전부였던 지라 찝찝하기까지 하다.
차호원이라고 하면 당연하게 불운이 따라가는 존재였다. 초등학교나 중학교나 고등학교나, 그의 친구들은 이 모습을 한두 번 본 것이이 아니다. 본인도 마찬가지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주 옛날부터 안 좋은 것들만 엉켰다. 부모님도 이가 걱정 돼 슬쩍 무당에 맡겨 보았지만 무당까지 '천성부터 이런 놈이다.' 라며 손을 내둘렀다고 한다.
뭐에 씌였다거나, 어떤 벌을 받는다거나 같은 미신을 믿는 건 아니다. 하지만 호원은 운이 극도로 좋지 않았다. 태어난 게 용하다고 불릴 정도로.
하루라도 좋은 일이 일어날까 말까인 확률 속에서 살아가는 호원이었기에 새삼 이런 불운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괜찮다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나도 힘든 건 힘들다구...'
죽겠네 정말. 팔에 고개를 묻으며 우울해하는 호원을 보고 친구들이 눈치를 보았다.
쟤 진짜 우울해 하네. 근데 저게 어디 한두 번 일어난 일이람? 누가 좀 달래봐. 과자 가지고 있는 애들 있어? 나 있어, 소금사탕. 그딴걸 왜 가지고 있냐;
별 영양가 없는 대화가 오고가자 기섭이 박박 머리를 흐트렸다. 이러다 시간만 가지. 뭐라도 한 마디 던지려 기섭이 입을 열었다. 그때였다.
"여기 농구부원 있어~?!"
호원이 있는 반에 농구부원이라고는 단 한 명 뿐이다. 파묻고 있던 고개를 올려 목소리가 들렸던 교실 문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모르는 남자아이가 농구공 두 개를 들고 서있었다.
농구공이 왜 가정실에 돌아다니던 건지 모르겠다. 굴러다니는 농구공을 발견한 선생님이 농구부원에게 가져다 달라고 건네면 얼굴 모를 학생이 호원에게로 다시 패스.
귀찮은 것은 꼭 나한테 오지. 농구부 담당 선생님께 열쇠를 받고 다시 교실에 돌아오면 친구들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호원이 부실에 공을 가져다 둘 동안 맛있는 거라도 사오겠다며 기다리라는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그나마 남아있던 기운조차 친구들의 부재에 맥이 빠져버린다. 핸드폰을 도로 바지 주머니 안에 밀어 넣고 축 쳐진 어깨로 한아름 두 개의 공을 안았다.
우울한 건 여전하지만, 과자로 참자. 친구들 또한 자신을 생각해서 한 행동들임을 알기에 호원은 내려가려던 입 꼬리를 올리며 겨우 미소를 지었다.
바닥만 보고 있던 호원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 우울해 한다고 어디 불운이 가시겠나!
걱정해주는 친구들도 있고. 불운하다 해서 세상이 꺼지는 것도 아닌데다 이런 일이 처음 일어난 것도 아니다. 호원은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축 늘어뜨려 있던 어깨를 반듯이 세워 허리를 폈고, 풀려 있던 눈에 부릅 힘을 주었다. 괜찮아 차호원. 뭘 기가 죽고 그래. 힘 내! 부실로 가는 호원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기운 내 차호원,
너에겐 보다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잖,
삐끗. 걸어가던 발 스탭이 엉켰다. 어라. 양 손에 끌어 안고 있던 농구공이 바닥을 직행한다. 어라. 어라라.
쾅! 소리와 함께 얼굴이 대리석 바닥과 충돌했다. 통, 통, 통.. 농구공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귀가 먹먹하다. 이마가 아프다. 코 깨진 건 아니겠지.. 호원이 눈물을 글썽이며 바닥 위에서 신음했다.
아프다. 아프다.. 얼얼한 코를 한 손으로 쥐고, 다른 손으론 주먹을 세게 쥐었다. 맨바닥에 정면으로 부딪친 터라 눈앞이 새하얗고 얼얼했다.
"아야야...."
호원은 급하게 코 밑을 훑었다. 다행히 뜨거운 뭔가가 흐르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아프긴 하지만... 천천히 바닥에 발을 짚고 일어 서려던 호원은 그만 비틀거리며 자리에 주저 앉았다.
아이고, 창피해라. 이번엔 내 발에 걸려 넘어진 거냐고. 아픈 것도 한편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또 속상했다. 마음을 먹은 것을 뒤로하고 또 이렇게 실수하고 만다.
운이 없네 정말. ..아니, 핑계 대지 말자. 운이 나빠서가 아니라 내가 덜렁거리는 거잖아. 결국 불운을 불러들이는 이유 또한 나라는 것을.
아파서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있던 눈가가 뜨거워졌다. 아. 호원이 다급하게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을 때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혼자서 제 발 걸려 넘어지는 애는 또 처음 봤네."
호원을 내려다보며 손을 내민 한 소년이 있었다. 까만 곱슬머리를 한 그는 한 손에는 커다란 도자기를 끌어안고 있었다. 인상을 찌푸리곤 있었으나 불쾌하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저 신기한 듯 호원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손을 내미더니 이내 입 꼬리만 올린
채 입술을 달싹였다.
"괜찮냐?" 불현 듯 호원의 눈에 비친 것은 소년의 호기심 가득한 붉은 눈이었다.
그날은 호원의 불운이 더욱 눈부셨던 날이다.
허나 가는 것이 있다면 돌아오는 게 있듯, 그 만남이 돌아오는 첫 행운이었다는 건 호원도 소년도 모를 이야기었다.
그저 먼 이야기.
가까운 것이라고 해도 앞으로 오분 뒤, 호원의 불운력이 상승하여 그에게 손을 내밀었던 주명이라 불리는 소년의 도자기를 깨트리게 된다는 것 정도밖에는. 물론 이 또한, 두 사람이 알 일은 없었다.
그렇게 시작하는 인연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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